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544)
을 위한 세계는 없다-544화(544/817)
EP.544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7)
* * *
***
천둔검법의 기수식을 잡은 다섯 용사 후보와 여명 사이로 침묵이 차올랐다.
일곱 자루의 칼날이 만들어 낸 날이 선 침묵.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은 가운데, 여명은 불현듯 깨달았다. 이 침묵을 밀어낼 자격은 자신에게만 있다는걸.
그래서 그는 무장 혈청을 집어넣고, 후보들과 똑같은 기수식을 잡았다.
“천둔… 검법?”
비전 유물 속에서 봤던 용사 후보의 의문을 신호삼아, 여섯 개의 검이 동시에 움직였다.
시작은 가장 뒤에 있던 용사 후보였다. 그의 손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섬뜩한 검광을 따라 사아아-! 공기가 잘리는 소리가 따라왔다. 같은 순간, 여명은 발을 내디디며 다섯 명 모두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쩌– 어-엉 – !!!
다섯 자루와 한 자루의 검이 충돌하면 거센 충격파가 터졌다.
주변의 아지랑이가 반으로 갈라지는 와중에, 용사 후보들이 일제히 흩어지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오른쪽, 왼쪽, 위, 아래, 그리고 중앙.
다섯이 공간을 장악했으나, 몰아치는 검은 한 명이 휘두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완벽한 수준의 합공(合攻).
검기에 놀란 바람이 몰아치며 머리카락이 치솟았다.
번뜩이는 황금색 눈동자와 이성 따윈 남지 않은 다섯 쌍의 눈동자가 교차하고, 검과 검이 서로를 향해 이를 드러낸 순간.
그대로 검광이 번뜩였다.
촤아악-!
빛의 꼬리를 문건 뼈와 살이 분리되는 소리였다. 여명의 정면을 찌르던 용사 후보의 목이 몸과 이별했다.
툭, 몸을 떠난 머리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여명은 그대로 뒤로 물러났다.
거리를 벌리고 다시 달려들기 위해서? 아니, 그의 목에 생긴 붉은 실선 때문에.
주륵, 여명은 목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며 생각했다.
‘더 깊이 베였으면 목뼈까지 잘렸겠군.’
그래, 다섯 명이 동시에 펼치는 천둔 검법은 상상 이상이었다.
적어도 일반인이 사용할 수 있도록 억지로 늘리고, 비튼 검법이란 단점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는 됐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뿐이었다. 진짜를 분해해 늘려놓은 가짜는 아무리 노력해도 가짜일 뿐.
여명은 다시 한번 기수식을 잡았다.
천둔 검법과 비슷한… 아니, 원조의 기수식.
그것을 모르는 용사 후보들은 다시 한번 여명을 포위하며 거리를 좁혔다.
철저하게 훈련된 자세였다. 동료가 죽었음에도, 누구 하나 두려워하거나 화를 내지 않고 기계처럼 다가오는 모습.
두두두 – !
그 와중에 네티가 아지랑이 속에서 틈틈이 사격을 가했지만, 녀석들은 보호막으로 가볍게 총알을 튕겨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전차 로켓이라도 몇 개 쥐여줄걸 그랬나?
여명이 쓴웃음을 삼킨 그때,
네 명의 후보가 동시에 발을 내디뎠다. 사아아 – ! 이번에도 그들의 검을 타고 검기가 너울거렸다.
용사의 무술 첫 초식과 마찬가지로 횡으로 된 검기를 쏘아내는 천둔 검법의 마지막 초식.
유형화된 검기가 벼락처럼 여명에게 쏟아지며 눈앞에 보이는 모든 걸 베어내는 순간.
여명이 횡으로 검을 그었다.
***
어린 시절, ‘3번’이라 불렸던 사내는 여명의 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천둔검법과 비슷하지만, 본질부터가 다른 무언가가 녀석의 검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와 동료들이 쏘아낸 검기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진한 검붉은 검기.
아니, 저게 검기는 맞나? 3번은 여명의 검기가 자신들의 검기를 찢어발기는 걸 멍하니 바라보았다.
순간, 그는 고개를 숙이고 납작 엎드렸다. 조국에게 ‘윤매헌’이란 이름을 받은 시절의 경험 덕분이었다.
!!!
등허리를 타고 검기가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나머지 용사 후보들의 몸에서 터져 나온 피가 그의 몸을 적셨다.
고개를 들자, 그나마 살아있는 동료는 하나뿐이었다. 그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그를 향해 물었다.
“천둔?”
“아니다.”
“천둔!”
“아니다.”
동료는 그 이상 질문을 이어가지 못했다. 갈라진 그의 가슴에서 흘린 피가 너무 많았다. 초인이건 일반인이건, 뇌로 가는 혈액이 부족하면 죽을 수밖에.
털썩. 마지막 동료가 쓰러지는 걸 본 3번… 아니, 윤매헌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흐릿한 기억, 뒤틀린 감각.
그의 뇌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뇌는 이미 너무나 망가져 있었기에, 새로운 정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익숙한 기억을 떠올렸다.
“강혁아.”
그가 이름을 부르자, 김강혁의 황금색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녀석은 언제나 저랬다.
따라잡을 수 없는 1번이자 자랑스러운 동료였지만, 필요 이상으로 거리를 좁힐 수 없던 녀석.
하지만 그럼에도 미워할 수 없던 녀석.
“가, 강혁아, 나, 나는 네가 성공 하, 할 줄 알았어.”
“….”
“요, 용사의 무술. 드, 드디어, 우, 우리 조국이, 소, 손에 넣은, 거지?”
강혁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누가 그랬더라? 침묵은 긍정이라고. 그래, 분명 각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위대한 각하. 그분의 말은 모두 진실이다.
“나, 나는, 실패, 하지 아, 아, 않았어-그래, 요, 용사의 무술, 탈취, 해, 했어.”
“….”
“우, 우리는 훈장을 받을 거야! 그, 그래! 이 업적이면, 위, 윗분들도 이해하시겠지. 걔들은 그, 그냥, 빨갱이들에게 소, 속았을 뿐이야. 이, 이제 모두 모두, 교, 교실로 돌아갈 수 있다고!”
윤매헌은 벅차오르는 가슴을 두들겼다.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때, 강혁이가 한 걸음 그에게 다가왔다.
눈물 때문인지, 아니면 뇌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강혁이는 더 이상 그 자리에 남아있지 않았다.
강혁이가 서 있던 자리를 대신한 건, 천하의 매국노였다.
“기, 김일성?! 이 역겨운 새끼, 어떻게 살아 있는 거냐?!”
금색 눈의 김일성은 빨갱이답게 붉은 아지랑이를 뿜어내고 있었다. 윤매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검을 휘둘렀다.
“죽어!”
역시 고위 빨갱이인 걸까, 김일성은 여유롭게 그의 검을 막았다.
검을 막는 와중에도 입술을 달싹거리는 게, 그를 세뇌할 사악한 주문을 외우는 게 틀림없었다.
윤매헌은 마나로 귀를 틀어막았다. 빨갱이의 말은 들어선 안 된다. 저 사악한 혀 놀림에 현혹된 그의 동지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대화란 없다! 빨갱이에게 줄 것은 오직 하나! 죽음뿐!
그는 훈련소에서 수도 없이 외웠던 생각을 떠올리며 무차별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
하지만 아무리 휘둘러도, 그의 검은 김일성에게 닿지 못했다. 하지만 윤매헌은 절망 대신 분노를 느꼈다.
얼마나 많은 민족의 피를 빨아 먹었길래, 이리도 강하단 말인가?
죽여야 한다. 반드시 죽어야 한다! 그가 한 번 더 천둔검법의 마지막 초식을 준비하려는 순간.
탕!
총알 한 발이 그의 어깨를 꿰뚫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아지랑이 너머에서 김일성의 딸 김경희가 소련제 AKM을 든 채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머리를 하늘색으로 물들인 김경희.
윤매헌은 눈앞에 김일성이 있다는 사실도 잊고 소리쳤다.
“경희? 어, 어떻게 살아 있어? 어? 왜 살아있는 거야? 여, 염색했다고 내가 모를 줄 알아?”
“뭐요?”
“너, 넌 내가 죽였잖아? 너, 너희 오빠가 대통령이 되, 되기 위해서! 분명히 내가 그 새끼 대신 널 죽였는데?”
“….”
“죽은 사람이 도, 돌아오면 안 되지!”
그는 걸음을 돌려 김경희에게 달려들었다. 하늘색 머리카락의 김경희는 소총을 당기지 않았다.
왜 안 쏘지? 그때처럼 날 위해 죽어주려는 건가?
아니, 아니다. 그런 일은 두 번 벌어지면 안 된다. 그래, 저건 총에 문제가 생긴 거다. 아마 약실에 총알이 걸린 거겠지. 그러게 소련제 무기는 쓰지 말았어야지!
반쯤 정신줄을 놓은 윤매헌이 그대로 김경희의 머리를 내려치려는 순간.
뒤에 있던 김일성이 그의 다리를 베었다. 윤매헌은 달리는 자세 그대로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아팠다. 눈앞이 번쩍일 정도로.
“아으… 아….”
그는 신음하며 생각했다. 지금은 사심을 부릴 때가 아니다. 우선 김일성부터 처리해야 했다. 그 대가로 그가 죽는다 해도, 반드시.
조국을 위해 피를 흘리는 건 그 자체로 기쁨이니, 목숨을 아끼지 말라!
한데, 고개를 돌려보니 김일성이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 있는 건 다름 아닌…
“가, 각하?”
윤매헌은 피가 철철 나는 다리를 질질 끌어 각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오직 비통함만을 느끼며 소리쳤다.
“각하! 저희가 저지른 모든 일은 조국을 낙원으로 만들기 위한 일이라고 하셨잖습니까!”
“저, 저희는 당신의 이상을 믿고 그 모든 시련을, 그 역겨운 작전을 전부 참아냈습니다!”
“모두 조국을 위해서였습니다! 조국을 위해 모든 걸 쏟아부었습니다! 왜, 왜… 그 아이들과 저를 이곳에 버리시는 겁니까?”
그는 십수 년간 말하지 못한 말을 쏟아냈다. 비통하고, 또 비통하게.
“이건 부당합니다! 거름이 되라면 기꺼이 거름이 되겠습니다. 죽으라면 몇 번이고 죽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아닙니다! 기억되지 못할지언정, 우리는 애국자로 죽어야 합니다! 그 아이들은, 우리는 가축이 아니라, 애국자입니다!!!”
가슴에 묻혀있던 말을 다 내뱉자, 눈 앞을 가리고 있던 과거가 사라졌다.
윤매헌은 멍하니, 눈앞에 선 청년을 바라봤다.
검은 머리카락에 황금색 눈동자. 차원문 너머 황족들보다도 전설 속 용사에 가까운 얼굴.
조용히 그를 내려다보던 용사가 말했다.
“어쩌면, 다른 시대, 다른 시간에서 태어났다면… 당신들의 애국심이 옳은 일에 쓰였을 수도 있겠지.”
“….”
“정의를 위해 싸우고,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진짜 영웅이 되었을지도 몰라.”
용사는 검을 거뒀다.
“하지만 당신들은 오래전부터 방향을 잘못 잡았고, 이미 기회를 놓쳤다.”
“놓쳤다고…?”
“그래, 당신들은 더 이상 애국자는 될 수 없어. 하지만….”
용사는 그에게 손을 내밀며 덧붙였다.
“속죄는 할 수 있겠지.”
“….”
“당신들이 지은 죄. 이 나라가 국민들에게 지은 죄… 모든 걸 공개해. 다시는 그런 비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윤매헌은 멍하니 용사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와 눈을 마주친 순간, 그는 자신의 조국이 용사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고 확신했다.
조국에게 배신당한 사람은 모두 저런 눈을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사는 그에게 속죄의 기회를 주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단순히 그의 조국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물론 그럴 수도 있었지만, 윤매헌은 그런 얄팍한 계산을 생각 너머로 넘겼다.
다른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 바라고 있었다.
속죄를.
그래서 그는 용사의 손을 붙잡았다.
휘청거리는 다리로 일어나, 어딘가 익숙한 하늘색 머리의 소녀와 그녀의 옆에 둥둥 떠 있는 과학자를 차례대로 바라봤다.
“너희는… 우리 조국을….”
그렇게 윤매헌이 입을 연 순간.
가축우리 바깥, 저 머나먼 곳에서 작은 신호가 날아왔다.
이 연구소에 있는 가축들은 물론이고, 연구원들의 머릿속에 심어진 금제를 건드릴 수 있는 신호.
결과는 즉각적이었다. 신호를 받은 연구소장의 머리가 부풀어 오르더니, 그대로 펑! 폭발했다.
갑작스레 뇌수와 피를 뒤집어쓴 소녀가 ‘형부!’ 라고 소리치는 찰나.
‘용사 후보 1번’ 으로 돌아온 윤매헌은 용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