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545)
을 위한 세계는 없다-545화(545/817)
EP.545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8)
* * *
***
“으어어어 – !!”
여명은 달려드는 적을 바라봤다.
잠깐 정신을 차렸다가, 다시 정신줄을 놔버린 용사 후보.
김강혁 국방부 장관의 기억 속에서 봤던 그는 용사의 무술을 알아봤다.
그리고 여명을 김강혁으로 오해했고, 김일성으로 오해했으며, 끝에는 각하로 오해했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정신을 차렸는지, 대화까지 가능했다.
하지만 그의 손을 잡고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그는 정신을 차린 게 거짓말이라는 듯 다시 이성을 잃었다.
‘왜지?’
네티가 염동력으로 붙잡고 있던 소장의 머리가 갑자기 터진 것도 그렇고, 단순히 미친 거라고 하기엔 시기가 너무 절묘했다.
마치 누군가 이렇게 상황을 유도한 것처럼.
여명은 집어넣었던 칼을 다시 뽑으며 마나를 넓게 펼쳤다.
혹시라도 어떤 마법이나 트리거를 찾을 수 있을까 싶었으나, 느껴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로 우연인 건가? 여명이 침을 흘리며 달려드는 용사 후보에게 안식을 주려는 순간.
그의 위장 속 용의 심장이 용사 후보의 머리에서 무언가를 ‘느꼈다.’
너무나 미세해서 미처 느끼지 못한 뒤틀린 무언가.
‘이거다.’
여명은 곧바로 검을 휘두르던 손에서 힘을 빼고 몸을 틀었다. 직후, 그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오던 용사 후보의 검이 위장을 깊게 찔렀다.
“형부!!!”
네티는 소장의 머리가 터졌을 때보다 더 크게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달려오는 그녀를 향해 손을 들어 보인 여명은 나머지 손으로 용사 후보의 머리를 붙잡았다.
“으아, 으, 으….”
용사 후보는 그의 몸을 두 동강 내려는 듯 손에 힘을 실었다. 여명은 위장을 파고드는 고통에 이를 악물고 그의 머릿속에서 느껴지는 ‘무언가’를 읽어냈다.
뒤틀린 마나로 만들어진… 어떤 주문, 혹은 신호.
그 신호는 용사 후보의 뇌를 자극하고 있었다. 마치 쇠꼬챙이로 뇌를 쑤시는 것처럼, 무자비하게.
혹시라도 그가 제정신으로 돌아와 한국 정부의 광기를 공개적으로 고발해 주지 않을까. 기대했던 여명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용사 후보가 주가시빌리라도 익히고 있지 않은 이상, 이렇게 망가진 뇌를 재생하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그렇다면 여명이 그에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안식뿐.
여명은 전기 목줄을 찬 짐승처럼 자아를 잃고 검 손잡이를 흔드는 그를 잠시 바라봤다.
그리고 네티가 정말로 괜찮은 게 맞냐고 묻는 순간.
용사 후보의 머리를 붙잡은 여명의 손에서 주와이외즈의 불길이 피어났다.
화르륵! 조국의 양심을 위해 싸웠던 애국자의 불꽃은 삽시간에 정부의 꼭두각시였던 자의 머리를 집어삼켰다.
고통도, 후회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강렬하게.
다음 순간, 머리를 잃은 마지막 용사 후보가 쓰러졌다. 여명은 위장에 꽂힌 검을 뽑아 땅에 내버린 뒤 불타는 애국자의 몸을 바라봤다.
이윽고, 그의 몸이 한 줌의 재로 돌아간 직후.
여명은 피를 뒤집어쓴 처제에게 다가가 손수건을 건넸다.
“형부, 괜찮으세요?”
“응, 위장 좀 찔렸다고 안 죽어.”
아니, 보통은 죽는데요…. 뒷말을 삼킨 네티는 손수건으로 대충 얼굴을 닦았다.
마찬가지로 피를 닦아낸 여명은 턱 위가 사라진 소장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왜 머리를 터트렸을까.”
“예?”
“이거, 누군가 뒤틀린 마나로 신호를 보내서 터트린 거야.”
“신호, 신호라… 역시 저희 습격이 들킨 거겠죠?”
여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티는 터진 소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씁,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머리를 터트리다니. 대체 뭘 숨기려고 이런 짓까지 하는 걸까요?”
“숨겨? 뭘?”
“그냥 제 생각이에요. 뭔가 숨길 게 있으니까 소장의 머리를 터트린 게 아닐까… 뭐 그런 거죠.”
“….”
“방위군만 아니면 확인하고 가는 건데, 아쉽네요.”
네티가 툴툴거렸으나, 여명의 반응은 달랐다.
“확인하고 가자.”
“군이 오기 전에요? 하지만 아무 힌트도 없….”
그때, 여명이 머리가 터진 소장의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힌트라면 여기 있잖아.”
“…예?”
“머리가 날아가서 말을 못 하는 건 아쉽지만… 까짓것, 몸으로 안내하게 하면 되지.”
그렇게 말한 여명은 곧바로 손에서 푸른 귀화를 피워냈다.
산자를 불태우고, 죽은 자를 되살리는 터스키기의 귀화였다.
***
시간을 잠시 뒤로 돌려, 가축우리의 기록보관소.
“비, 비밀번호와 보안은 다 입력했다. 이제 네 맘대로 전부 보면 돼.”
보관소 중앙 컴퓨터 앞에서 홍세티와 늙은 연구원이 나란히 서 있었다.
세티가 중앙 컴퓨터의 중요 기록을 특수 USB에 옮겨 담는 사이, 늙은 연구원이 비굴하게 말했다.
“나, 나는 이제 살려주는 거지? 응? 습격의 범인이 너라는 건 절대로 말하지 않을 테니… 제발.”
“예, 박 주임님. 살려드릴게요. 그런 약속이었으니까.”
“고, 고맙다.”
“조언 하나 드리자면, 제가 아니라 정부를 더 조심하셔야할 걸요.”
“….”
“이 일이 끝나면 바로 차원문을 넘어서 미국으로 가세요. 가진 정보를 미국에 팔면 목숨 정도는 건사하실 수 있을 테니.”
세티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박 주임을 안심시켰다. 진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들어있지 않은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박 주임이란 인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정치질과 협잡질로 주임 자리를 꿰찬 쓰레기.
그는 살아남자마자 정부에 세티를 밀고할 인간이었다.
물론, 세티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보관소에서 원하는 정보를 건지면 어차피 죽여버릴 생각이었으니까.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 주임은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세티는 상관하지 않고 보관소 중요 파일들을 싹 훑었다.
역대 연구원 목록, 머릿고기 프로젝트, 그리고… 인공 용사 프로젝트.
인공 용사 관련 파일에는 그녀와 자매들에 대한 기록이 쫙 늘어져 있었다.
세티는 조심스레 파일을 열었다가, 문뜩 어떤 이름을 발견했다.
[천부명 박사]‘이 사람은….’
잠시 그 이름을 바라보던 세티는, 자신도 모르게 관련 파일들을 USB로 옮겼다.
직후, 그녀는 원래 계획대로 희생양 자매들의 기록으로 넘어갔다.
정확히는 ‘하얀 양’의 기록을 확인했다.
너무나 사랑하는 큰 언니. 3년 전 정부에게 끌려간 그녀의 꼬리를 찾는 게 이번 습격의 목적 중 하나였다.
세티는 숨을 삼킨 채 조심스레 파일을 훑었다.
이윽고, [하얀 양 추가 프로젝트]라 적힌 파일을 찾은 순간.
지지직 – ! 중앙 컴퓨터 화면이 일그러지며 데이터들이 삭제되기 시작했다.
‘보안 프로그램?’
박 주임이 그녀를 속인 건가 싶어 고개를 돌렸으나, 박 주임의 반응은 그녀가 상상하던 것과는 달랐다.
그는 갑자기 부풀어 오르는 머리를 붙잡은 채 이상한 헛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 안 돼! 각하! 살려주십쇼! 각하!!!”
갑자기 각하를 찾던 그의 머리를 점점 더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높아진 순간.
펑!
박 주임의 머리가 그대로 폭발했다. 세티는 손을 휘둘러 날아오는 피와 살점을 쳐낸 뒤 중앙 컴퓨터 화면을 확인했다.
그녀의 USB로 자료가 복사되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데이터가 삭제되고 있었다. 그녀는 언니의 기록을 우선적으로 복사하며 기록을 싹 훑었다.
[재능 ⬛식에 관한 ⬛험을 진행… 의도하지 않은 부⬛⬛발견, 두뇌와 상관없음을 확인… ⬛⬛에서 온 자들의 권⬛ 또한 비슷한 반응을…….]제기랄. 벌써 기록 곳곳이 비어가고 있었다. 세티는 빠르게 자료를 뒤로 넘겼다.
제발, 언니가 어디 있는지 만이라도.
필사적인 그녀를 비웃듯, 중앙 컴퓨터는 물리적으로 파괴되고 있었다.
펑! 서버의 일부분이 터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세티는 모든 자료가 지워지기 직전, 언니의 마지막 위치를 확인했다.
[가축우리 – 7397]여기에 있다고? 세티는 경악하면서도 USB를 잡아 뽑았다. 파지직! 그녀가 USB를 뽑자마자 중앙 컴퓨터에서 연기와 함께 전깃불이 튀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USB가 통째로 날아갔을 상황.
그러나 세티는 어떠한 기쁨도 없이 기록된 장소를 향해 내달렸다.
언니가 여기 있어.
가축우리는 넓었고, 언니가 있다고 기록된 장소는 그녀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였다.
실험실 뒤편에 숨겨진 비밀 공간.
대체 뭘 하는 곳인지 모르겠지만, 언니가 거기 있었다면 분명 좋은 장소는 아니리라.
그녀는 거의 날아가듯 비각술을 펼쳤다.
연구소 복도 곳곳에 머리가 터진 연구원들의 시체가 즐비한 걸 보아하니, 박 주임의 머리통을 터트린 뭔가가 연구소 전체에 영향을 미친 모양이었다.
아무튼, 세티는 몇 분 지나지 않아 비밀 공간에 도착했다.
새하얀 전등 아래, 액체 사이로 무언가 둥둥 떠 있는 유리관이 쫘악 늘어선 곳.
보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불쾌한 그 공간에는 선객이 있었다.
푸른 화염을 뒤집어쓴 머리 없는 언데드와…
“여명? 네티?”
그녀의 동생은 겁을 먹은 듯 몸을 떨며 여명의 품에 안겨 있었다.
세티가 조심스레 다가가자, 여명이 그녀를 발견하고 뒤로 물러나란 손짓을 보냈다.
세티가 ‘왜 그러냐’ 눈빛으로 화답하자, 여명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가 보지 않았으면 해. 무슨 일인지 나중에 알려줄 테니까… 일단은 물러나.”
“….”
평소라면 여명의 말을 따랐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큰 언니의 흔적이 있는 곳 아닌가.
그녀는 여명에게 ‘그래도 봐야겠다’는 뜻을 담은 눈빛을 보낸 뒤 내부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녀가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천장에서 비추는 밝은 빛이 유리관을 비추며 내부에 담긴 끔찍한 무언가를 드러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 속에 담겨 있는 그건… 사람이었다.
똑같은 얼굴, 똑같은 육체로 만들어진 복제 인간들.
각각 복제 인간 아래에는 매헌, 백범, 도산, 마미 등 세티가 모르는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뭔지 몰라도 끔찍한 게 틀림없었다.
어쨌거나, 그녀는 이를 악물고 7397라고 적힌 유리관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7397이라고 적힌 유리관은 여명의 바로 앞에 있었다.
하지만 그 유리관은 텅 비어있었다.
대신, 그 유리관 옆의 유리관들에는 온갖 인간의 부속물들이 둥둥 떠 있었다.
손, 팔, 다리, 발바닥… 이제 막 2차성징이 지난 어린 소녀의 사지.
그 끔찍한 유리관 아래에는, 용사 프로젝트 – 하얀 양이란 단어가 쓰여 있었다.
“언니….”
네티가 왜 벌벌 떨고 있는지 이해한 세티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몸을 떨었다.
직후, 여명은 손을 뻗어 그녀 또한 안아주었다. 그의 품에서 풍기는 피와 재, 그리고 땀 냄새가 차례대로 코를 스치자 머리가 좀 가라앉는 것 같았다.
곧, 네티가 눈이 퉁퉁 불은 얼굴로 말했다.
“언니… 큰 언니가….”
“아냐.”
세티는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말했다. 그래, 아니다.
“저건 큰 언니의 팔다리를 자른 게 아니야. 세어봐. 팔다리가 10개가 넘잖아.”
“….”
“전부 복제한 거야. 언니의 재능을 추출하려고 했거나, 따로 실험해 보기 위해서였겠지. 언니의 본체는 여기, 빈 유리관에 있었어.”
그녀의 말대로였다. 그다지 위안이 되는 말은 아니었지만.
곧 여명이 두 자매를 꽉 끌어안으며 말했다.
“상태를 보면 옮겨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거야. 아마 최근에 남산 연구소로 옮겨졌을 확률이 높겠지… 그렇지? 소장?”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을 들어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그제야 좀 안도했는지, 네티는 더욱 강하게 여명을 끌어안았다. 세티는 그런 동생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언니가 있었던 유리관을 보며 말했다.
“이제 돌아가자. 곧 방위군이 올 거야.”
“정보는?”
“챙길 수 있는 한도까지 다 챙겼어. 장만 어르신께 가져다드리면 될 거야. 일단은 동생들을 다 모으고, 흔적을 지우자.”
타당한 의견이었지만, 여명은 고개를 저었다.
“흔적은 지울 필요 없어. 나한테 더 좋은 생각이 있으니까.”
“좋은 생각?”
여명은 대답 대신 해골 지팡이를 꺼냈다. 불사의 왕의 심상에서 가져온, 사악한 네크로맨서의 지팡이를.
***
박철은 자신의 행운에 기뻐하며 카메라를 들었다.
올림피아 개막식에서 쫓겨날 때까지만 해도, 그는 분명 자신이 불행하다고 확신했다.
아마 천여명의 기자회견에서 입을 턴 것 때문에 찍힌 탓이겠지.
엿 같은 정부, 빌어먹을 기레기들.
세상을 욕하며 시내를 벗어나던 그가 번쩍이며 하늘에서 떨어지는 대통령 동상을 본 건 우연이었다.
지극한 우연.
하지만 기자인 그는 거기서 무언가 숨길 수 없는 필연을 느꼈다. 할부가 10년이나 남아있는 차를 거칠게 몰아 재낄 정도의 필연을.
가까운 빌딩 옥상에 오른 그는 반파된 건물을 보며 확신했다. 테러다!
‘올림피아 개막식에 모두가 관심이 쏠린 날, 테러라니!’
이거라면 대형 언론사들, 아니, 외신들까지 줄을 서서 돈을 줄 정도로 어마어마한 기삿거리였다.
그는 자신의 행운에 감사하며 멀리서 현장을 찍었다.
처음에는 신나서 찍었지만, 5분이 넘도록 아무도 오지 않자 그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리 외곽이라지만, 여기는 개성인데? 5분이 넘도록 아무도 안 온다고?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몰려오는 헬기와 군용 차량을 보고 뭔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확신했다.
차원문 방위군에, 초인군에, 심지어 그조차 처음 보는 검은 양복쟁이들까지.
단순 테러를 넘어선 뭔가를 느낀 그는 옥상에 몸을 숨긴 채 아주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었다.
대체 뭔지 모르겠지만, 이건 뒤가 구린 사건이 틀림없었다. 어쩌면, 아니, 분명 정부와 관련된 사건.
아무튼, 그렇게 건물로 침입하는 군인들을 찍기를 잠시.
!!!!!
건물 지하에서 무시무시한 폭발이 일어났다. 무슨 폭탄이라도 터졌나 싶었는데, 건물 창문을 확대해 보니 연기 대신 핏자국이 흥건했다.
한때 남미에서 종군 기자 생활을 한 그는 알 수 있었다. 저건-
‘시체 폭발?’
그것도 거의 백구에 가까운 시체를 동시에 터트린 위력. 한국에 네크로맨서들이 돌아다닌다더니, 설마 네크로맨서들의 테러인 걸까?
그는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연신 카메라 화면을 확대했다. ‘진심과 진실을 꿰뚫어 보는’ 그의 카메라가 뭔가를 잡아내길 바라면서.
그리고 기적처럼, 그의 카메라에 뭔가가 잡혔다.
망토를 쓴 다섯 명의 남녀.
커다란 망토를 쓴 소녀 셋, 각자 개인용 망토를 두른 남녀 한 쌍.
그의 카메라로도 확실히 뚫지 못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사고 뒤에 나온 저 사람들이 테러범일 가능성이 높았다.
누군지 모르지만, 감히 테러를 벌이다니.
박철은 그대로 카메라를 들고 건물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도로변에 주차된 그의 차에 타서 시동을 건 순간-뒷자리에서 방정맞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봐, 내 말이 맞지? 우리가 백업 해줘야 한다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차가운 목소리.
“…그걸 꼭 지금 말하셔야 해요? 아직 기절 안 시켰단 말이에요.”
뭐지? 누구야? 박철이 백미러를 보려는 순간, 차가운 총구가 그의 뒤통수를 겨눴다.
“아저씨, 뒤지기 싫으면 뒤돌아보지 말고 카메라 넘겨요. 거, 살려는 드릴게.”
“….”
이런 상황에서 영화 대사를 따라하는 걸 보니 역시 미친 테러범이 맞는 모양.
“자, 3초를 줄게요. 3, 2….”
하지만 상대가 아무리 위협한다 해도, 그는 기자였다. 그것도 목숨보다 기자 정신이 더 중요한 기자.
1초가 되기 직전, 그는 카메라 플래시로 바꾸고 번쩍! 뒷좌석을 찍었다.
나름대로 섬광탄 효과를 노린 건데…
상대 중 하나는 안대를 차고 있었고, 또 하나는 두꺼운 후드를 입고 있는 탓에 아무 소용도 없었다.
“와, 이걸 찍네.”
안대를 찬 여자가 중얼거리건 말건, 박철은 멍하니 자신이 찍은 사진을 확인했다.
‘진심과 진실을 꿰뚫어 보는’ 그의 카메라에 찍힌 건, 오색으로 빛나는 다섯 신의 상징과…
“…히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