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557)
을 위한 세계는 없다-557화(557/817)
EP.557 관심, 욕심, 복수심, 그리고 양심.
* * *
비료, 콜라, 핵무기, 콘돔, 복리이자.
[신보다 위대한 것이 있냐는 질문에, 익명의 아샤인이 내놓은 답변.]***
화르륵!
뒤틀린 마나가 푸른 귀화를 피워내며 조 박사의 시체를 뒤덮은 순간.
발막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두려움이나, 공포 때문이 아닌, 익숙함 때문이었다.
조 박사의 몸을 휘감은 푸른 불꽃은 히라리아의 하늘을 가로지르던 해골용의 불꽃과 똑같았으니까.
여명이 히라리아의 구원자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데스나이트에, 해골용에, 이런 고위 강령술까지 쓸 수 있을 줄이야.
이 녀석, 아무리 봐도 제2의 데메론드 아닌가?
‘…살로메가 이 녀석에게 물들면 어쩌지.’
발막이 쓸모없는 일을 걱정하는 사이, 뚜둑뚜둑-조 박사가 기괴한 자세로 일어섰다.
곧, 여명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넌 누구냐.”
[내 이름은… 조막현. 1952년 1월 9일생… 대외적으로는… 행정부 국토연구원… 소속….]“대외적으로는? 그렇다면 진짜 업무는 뭐지?”
[남산… 연구소… 제2 연구실… 소장… 제2 연구실은… 인신 공양의 효율을… 연구 중….]역시나, 이번에도 남산 연구소의 이름이 나왔다.
여명은 남산에 침투하기 위해 만나야 할 사람의 이름을 떠올린 뒤 발막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처형관님께서 질문하시죠.”
“그래도 되겠나?”
“예, 괜찮습니다. 애초에 이 박사만 콕 집어 잡아 온 건 처형관님 덕분이니까요.”
발막은 사양하지 않았다. 그는 살짝 투명 망토를 벗은 뒤 조 박사에게 물었다.
“마탑의 원로들은 너희와 뭘 거래했지?”
마탑이란 단어가 나오자마자, 조 박사의 입가가 뒤틀렸다. 노골적인 비웃음.
[마탑의… 멍청이들에게… 안정화된… 괴수 기술을… 위한… 연구 협약을… 맺었다….]“안정화된 괴수라… 원로들이 뭘 꾸미는지 알고 넘겨준 거냐?”
[마왕, 부활과… 영생… 멍청한… 놈들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할… 줄, 알았겠지….]“….”
원로들의 계획을 모두 알고 있는데도 도와줬다고? 여명과 세티가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발막은 불길한 예감을 삼키며 물었다.
“너희는 대가로 뭘 받았지?”
[마법진의… 해석과… 복구….]“마법진? 무슨 마법진?”
[승천… 마법… 진….]승천 마법진? 뭔가 불길함을 느낀 여명은 바로 발막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처형관은 뭔 개소리냐는 듯 삐딱하게 기울이고 있었다.
“승천 마법진이라… 설마 불사의 왕이 사실은 인간이었다는 허무맹랑한 소문을 믿는 거냐?”
[불사의 왕?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조 박사 또한 무슨 개소리냐는 듯 목을 삐걱거렸다. 그사이 뭔가 떠올린 여명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신을 떨어트리는 것과 관련 있는 마법진이냐?”
[그렇…다…. 추락… 할 수… 있다는 건… 올라갈… 수도… 있다는… 뜻….]세티가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더 놀란 건 발막이었다.
“잠깐, 뭐? 신을 떨어트린다고?”
여명은 발막에게 잠시 기다려 달란 손짓을 한 뒤 조 박사에게 질문을 이어 나갔다.
“한국이 왜 승천을… 아니, 어떻게 신을 떨어트리는 법을 알고 있는 거지? 누가 그 기술을 개발한 건지 알고 있나?”
[신을 떨어트리는… 법을… 연구한, 자들은… 소련이다… 그들은, 고차원적… 에너지… 생명체와 신앙을… 유물론… 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다….]“…소련이 무슨 별을 떨어트렸는지 알고 있나?”
[내가… 알기론… 없…다….]“없다고?”
[신을… 떨어트리기 위한… 재료… 세계수의 결정… 신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걸… 증명했… 는데… 그걸… 왜… 낭비하겠나? 신이… 떨어진들… 핵무기보다… 약할… 터인데…]신성모독적인 발언에 발막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과 달리, 여명의 표정은 한층 더 차가워졌다.
그는 침을 삼키며 물었다.
“세계수의 결정에 그런 기능이 있다는 건 어디서, 어떻게 알아냈지? 세계수가 직접 말해주지는 않았을 테고… 대부분은 그저 영약으로만 알고 있을 텐데. 엘프를 고문했나?”
[아니… 그분, 께서는… 처음부터… 알고, 계셨…다… 그분께선… 모르는 것이… 없으시다.]“….”
멍청한 놈이라니. 여명은 크흠, 헛기침한 뒤 대화를 정리했다.
세계수의 결정이 하늘과 땅을 잇는다.
떨어질 수 있다면 올라갈 수 있다.
두 말이 가리키는 진실은 뻔했다. 누군가 하늘에 올라 신이 되려 한다는 것.
“과대 망상에 걸린 정신병자나 할법한 생각이군. 인간이 마왕도 아니고 신이 되겠다고? 불사의 왕 전설… 아니, 승천한 초대 용사 동화를 너무 많이 본 것 아닌가?”
그와 비슷한 생각을 떠올린 걸까. 발막이 어이가 없다는 듯 쯧쯧 혀를 찼다. 세티와 여명은 그럴 수 없었지만.
곧, 조용히 대화를 녹음하고 있던 세티가 물었다.
“승천 마법진은 어디 있죠?”
[모른다… 장관님만이… 알고, 계신… 극비… 정보….]“….”
이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도 모르는 건가? 여명은 이마를 두들기며 신중하게 다음 질문을 골랐다.
“승천 마법진을 사용할 사람은 누구지? 김관형 장관?”
[그럴… 리가… 장관께선, 위대한… 애국자지만… 그분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그분….”
역시 모든 것의 뒤에는 각하가 있는 건가.
이 나라의 역사를 조작하고, 정부를 조종하고, 이제는 아예 승천하려는 자.
“…그분의 정체는 뭐지?”
[그분은… 해와 달의 아들… 민족의 선구자… 한민족의 축복… 몰락한 왕조가 낳은 마지막 희망… 온 나라의 아버지… 결사옹위의 마음으로 경배해야 할 영웅… 아, 찬미 받으소서….]“….”
언데드 상태인데도 이만한 찬양을 쏟아내다니. 여명은 어이없음과 경악 사이 어딘가의 감정을 느끼며 물었다.
“그분의 이름을 말해.”
[그분의 이름… 아, 그 신성한 이름은….]그때, 조 박사의 머릿속에서 어떤 트리거가 작동했다.
여명이 가축우리에서 경험했던 바로 그 마법의 트리거였다.
머리를 터트려 버리는 마법.
“…젠장.”
여명은 갑자기 크게 부풀어 오르는 조 박사의 머리를 염동력으로 억눌렀다.
각하에 대한 질문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귀화 너머로 느껴지는 마법은 각하를 떠올릴수록 머리에 가해지는 압박이 더 강해지도록 설계되어 있었으니까.
결국, 여명은 꺼내지 못한 질문을 꺼냈다.
“왜 신이 되려고 하는 거지? 아등바등 신이 되어봤자, 불사의 왕과 다를 바가 없을 텐데?”
[….]그 말대로였다. 강령술과 네크로맨서의 신인 불사의 왕은 분명 존재했지만, 그뿐이었다.
국가권력에 찍힌 네크로맨서들은 뒷골목에서 빌어먹는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한국이 신을 만들어봤자, 그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조 박사의 시체는 머리가 울컥거리는 와중에 대답했다.
[불사의… 와, 왕이… 누군지… 모, 모르겠지만… 다르다….]“어디가, 어떻게 다르지?”
[그… 그는, 호, 혼자의 힘으로… 올라갔겠지… 하, 하지만… 우, 우리에게는… 써먹을, 게, 마, 많다….]“써먹을 거? 그게 뭐지? 설마 타락석이냐?”
[타락, 석? 비, 비슷하지만… 아니다. 우리가, 가진 것… 이, 이 나라에… 마, 많은… 것… 아주, 아주, 많은….]염동력으로 억누른 박사의 두개골은 그 이상 버티지 못했다.
펑! 소리와 함께 폭발한 두개골과 뇌가 염동력에 부딪혀 주르륵 아래로 흘러내렸다.
“특정 단어에 반응해 터지는 자폭 마법… 이건 종말 교단의 마법이군. 저번 회의장의 사제도 그렇고, 이 나라는 종말 교단의 본거지라도 되는 거냐?”
“차라리 그런 거라면 좋겠네요.”
그렇게 대답한 여명은 머리를 잃은 시체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그대로 주와이외즈를 일으켜 불을 붙였다.
“…이 사람, 인신 공양 전문가라고 했었죠.”
화르륵, 발막은 흔적도 없이 발화하는 시체를 보며 대답했다.
“왜, 마지막 말 때문에 신경 쓰여서 그러냐? 인신 공양으로 신이 될 거 같아서?”
“….”
정확한 지적이었다. 하지만 발막은 고개를 내저었다.
“다시 말하지만, 과대망상이다. 인신 공양이고 뭐고, 객관적으로 인간이 승천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아. 인간은 결코 신이 될 수 없다.”
“….”
발막은 나름대로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꺼낸 말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여명은 이미 신이 된 인간을 알고 있었다.
‘스탈린….’
***
그렇게 발막과 헤어지고 개성 호텔로 돌아간 바로 다음 날.
‘조웅찬이 더 적극적으로 널 이용할 거다’ 라는 세티의 말은 적중했다.
그리고 동시에, 틀렸다.
조웅찬 장관은 세티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은 수준으로 여명을 이용했다.
그는 아침이 지나자마자 여명과 자매들을 전부 점심에 초대했다.
그것도 호텔 레스토랑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오후에 올림피아 경기가 있는데 무슨 레스토랑인가 싶었으나, 조웅찬은 평소와 달리 어마어마한 양의 돈과 선물을 약속하며 그를 불렀다.
어차피 그를 이용해야 하는 입장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세탁된 한국 돈이 필요했던 여명은 자매들과 함께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대략 15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한 레스토랑에는 조 장관의 파벌들과 그동안 파벌에 줄을 대고 있던 고위층들, 특히 기업인들과 초인들이 바글거렸다.
왜 이런 놈들이 모여있느냐? 이유는 간단했다.
-다음 광고 계약은 반드시 부탁드립니다.
-경기복에 저희 기업 마크를 달아주신다면 최고의 영광일 겁니다.
-경기 중에 저희 유통사에서 내놓은 새로운 음료수를 마셔주시면….
기업인들은 여느 때처럼 여명의 유명세에 달라붙으려 했고.
-저희 용병단 무술을 봐주셨으면….
-다 필요 없고, 나중에 술이나 한잔합시다.
-용병단 외부 고문으로 와주게.
용병단들은 미래의 10강이란 간판을 노렸다.
심지어 평소에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취급이었던 자매들에게까지 수많은 제의가 오갔는데, 여명이 자매 전원과 관계한다는 불순한 소문 덕분이었다.
…뭐, 아무튼.
여명을 팔아 사람을 모은 조웅찬은 그대로 파벌의 결속과 이익을 도모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의 수완은 장인인 홍용완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여명과 거래가 성사되지 못한 사람이라도, 파벌 내부 거래를 유도해 서로의 이익을 도모하고 이권을 독점할 수 있도록 했으니까.
참가한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도록, 미리 판을 깔아놓아야만 할 수 있는 짓.
여명이란 훌륭한 보증인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일이긴 했지만, 혓바닥 하나로 기업인들과 초인들을 구워삶는 게, 역시 정치인은 정치인이었다.
물론, 그 개짓거리를 가만히 보고 있을 여명이 아니었다.
여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크흠, 헛기침으로 모인 파벌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참 기쁜 날입니다. 좋은 분들을 이렇게나 많이 뵙게 되다니… 이렇게 좋은 회의를, 이대로 끝내기엔 아쉬울 정도입니다.”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발언에 조웅찬이 살짝 당황하건 말건, 여명은 계속 말했다.
조웅찬이 그에게 의지하고, 장관들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서는 여명 본인의 영향력도 중요했으니까.
“올림피아 경기에는 돈이 오가는 베팅이 꽤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여기 계시는 분들 중에서도 이미 즐기시는 분들이 계시겠지요.”
“잠깐, 천여명, 자네….”
여명은 끼어들려는 조웅찬에게 괜찮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마냥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인형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제스처.
그걸 본 주변 사람들의 눈에 흥미가 고이는 가운데, 여명이 말을 이었다.
“…제가 오늘 모인 여러분들을 위해 특별히, 오늘 베팅의 필승 비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아, 물론 경기의 승패야, 제가 이길 테니 배당률이 낮겠죠. 제가 알려드릴 건, 다른 부분입니다. 경기 종료 시간, 부상 입을 위치, 그리고… 사용하는 무술.”
여명이 언급한 건 전부 사설 배팅 사이트에서 언급되는 부분이었다.
까놓고 말해서,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오가는 내기 정보들.
“특히, 사용 무술의 경우 배당률이 못해도 1대3은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모두 어떠십니까? 그리 대단한 선물은 아니지만, 하루 친목을 도모하기엔 충분한 선물아닙니까?”
모인 사람들은 각자 어깨를 으쓱이거나, 술잔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엄청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나쁘지도 않은 분위기.
그래, 좋아해라. 어차피 죽일 놈들. 떡 하나 먹인다고 뭐가 달라질까.
여명이 그렇게 속으로 쌍욕을 삼키는 사이, 조웅찬이 다가와 그 분위기를 이어갔다.
“하하하! 우리의 영웅이 재밌는 선물을 준비했군요. 아마 용병단을 보고 옛 생각이 떠올랐나 봅니다. 자, 자!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도 있겠지만, 모두 우리 천여명의 입에 집중해 주시죠!.”
여명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경기는 1분 내로 끝날 겁니다. 부상은… 이번에도 팔을 자르면 배당률이 낮겠지요? 그래서, 오늘은 아무 부상도 입히지 않겠습니다.”
“우리를 위해 아주 큰 마음을 먹었군! 마지막으로 사용할 무술은 뭔가?”
조웅찬이 호응하고, 여명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대답했다.
“위선과 오만. 제 스승님께서 알려주신 무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