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564)
을 위한 세계는 없다-564화(564/817)
EP.564 관심, 욕심, 복수심, 그리고 양심. (8)
* * *
***
모든 게 완벽하게 흐르고 있다.
최근 상황이 돌아가는 걸 본 여명은 확신했다. 복수가 코앞까지 다가왔다고.
오랜 준비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한국 정부는 완벽하게 여명을 신뢰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조웅찬 장관.
베팅 비리로 한 번 더 타격을 입은 그는 더욱 적극적으로 여명을 파벌에 끌어들였다.
장관은 사법부의 검사와 판사들에게 여명이 자신의 편이라는 걸 적극 어필했고, 여명은 한 번 더 사진 찍힐 위험을 감수하고 장관의 모임에 나가는 것으로 조 장관의 입지를 지켜주었다.
그사이, 틈틈이 홍용완 의원을 이용해 조웅찬 장관에게 받은 돈을 다방면으로 뿌리는 걸 잊지 않았다.
노골적이고 뻔한 뇌물.
막대한 현금 투척을 본 ‘애국자’들은 그제야 여명을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
뇌물 때문이 아니라, 그 악행 때문에.
성자를 따르는 이는 적지만, 도적을 따르는 이는 어디에나 넘친다고 했던가?
과연, 그 말대로였다. 사람들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보다 나쁜 일을 하는 자에게 더 끌렸다.
몇몇 애국자들은 자신들이 사자 대가리에 고개를 내미는 것도 모르고 여명에게 몰래 접촉해 왔다.
-미래의 오른팔로 써주십시오.
-조웅찬 장관의 후계자가 되실 거라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절 밀어주시면, 김관형 장관이 장악한 경찰 조직을 빼앗아 오겠습니다!
물론, 모두가 그에게 접촉한 건 아니었다.
여명을 ‘장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뒤에서 한국을 지배하려는 놈’으로 평가하는 의심병 환자들과 미래 권력의 경쟁자로 인식하는 야심가들.
그리고 삼 장관 사이에서 누가 여명을 집어먹을까 구경하는 기회주의자들은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여명을 관찰했다.
하지만 누가 무슨 판단을 하건, 중요한 건 그가 이미 확고한 ‘애국자’로 인식되었단 사실 그 자체.
그래, 조웅찬을 이용한 여명은 이미 ‘애국자’들 사이에 완전히 자리 잡았다. 마치 심부에 파고든 암 덩어리처럼.
거기에 장만 어르신의 테러 계획 또한 완벽하게 흐르고 있었다.
언론이 틀어막고 있어 사실이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기사단장님과 발막의 승전보가 매일 같이 날아왔다.
-테러범… 아니, 세계수 혁명단의 일원으로서, 한국은 잘 대응하는 편이에요.
그럼에도 쇠미리는 한국의 대응 능력을 높게 쳤다.
기사단장님에게 중대급 병력이 쓸려나갔음에도 뉴스에서 기사 하나 올라 오지 않다니.
-올림피아에 관심이 쏠려 있다는 걸 고려해도 말이 안 되는 수준이죠.
물론, 쇠미리는 처음부터 한국이 열심히 테러 사실을 감춰주길 바라고 있었다.
이 테러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거나 정치적 입장을 알리는 게 아닌, 서울의 병력을 움직이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기사단장과 발막 모두에게 ‘만나는 양치기들을 모조리 죽이고, 군대는 피하라’고 주문했다.
이번 테러는 소수의 초인이나 비밀 병력이 아닌, 정규군으로만 대응이 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
-그러다 아야톨라 본인이나, 동급의 병력이 나타나면?
-그것도 좋죠. 모카 딕… 아니, 장만 어르신은 오히려 그걸 원하고 있던데요? 꽁꽁 숨겨 둔 패가 온 세상에 까발려지면 한국 얼굴이 어떻게 되나 보자구요.
역사상 가장 현상금이 높은 테러리스트의 딸답다고 할까. 그녀는 한 번의 테러에도 여러 부비트랩을 숨겨놨다.
그 와중에 장만 어르신과 초면은 아닌듯했는데, 칠레 멸망의 주역이 데메론드라는 걸 떠올린 여명은 굳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올림피아 경기.
어찌 보면 가장 변수가 없는 일이었다.
여명과 그나마 겨뤄볼 수 있는 전윤성이나 파순 모두 16강 이후에나 만날 수 있었으니까.
그 외에 일반 학생 수준에서는…
***
[천여명 선수! 여유롭게 몰아칩니다!]여명은 귀를 찌르는 해설가의 목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국가의 해설에 비해 한국의 해설은 특히나 크고, 시끄러워서?
아니, 해설에 존중이 없어서.
[아! 위기에 몰리는 데릭 드루스 선수! 마지막 마나를 쥐어 짜냅니다! 이제와서 발악을 해보려는 것일까요!]경기장 위, 여명의 맞은편에서 시합용 권총과 군용 장검을 든 흑인 소년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해설하고는… NFL(내셔널 풋볼 리그)에서 저 지랄 했으면 총 맞았을 텐데.”
여명은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고개를 끄덕였다.
“좆 같긴 하지.”
그러자 상대는 피식 입술을 비틀었다.
“진심이냐? 아니면 여유냐?”
“진심이야. 평생 링에 올라오지도 못할 인간이 저따위로 씨불이는 건 나도 영 별로라서.”
데릭이란 이름의 흑인 소년은 총의 약실을 확인하며 말했다.
“…새끼, 쿨하네. 혹시 웨슬리랑 아는 사이냐?”
“웨슬리?”
여명이 처음 아카데미에 도착했을 때, 방 쟁탈전을 벌였던 흑인 녀석.
“당연히 알지. 이번 올림피아 팀에도 있는데… 너도 아는 사이인가?”
“중등부 때 룸메이트였지. 아는 사이면 싸워도 봤겠네. 혹시 걔 주력 무술이 뭔지 아냐?”
“에어 도미넌스… 그런 이름이었던 거 같은데.”
정답이었던 걸까. 데릭은 쩝 입맛을 다셨다.
“에이 시발, 이래서 군용 무술을 주가시빌리 정도 아니면 주력기로 쓰면 안 돼. 다른 놈이 어디서 어떻게 털렸을지 모르잖아.”
“….”
주가시빌리를 익힌 사람에게는 별 의미 없는 말. 데릭은 툭, 툭, 발끝을 세우며 덧붙였다.
“못 이길 건 알지만, 맨정신으로 경기장을 내려갈 생각 없다. 괜히 봐주지 마라.”
터프하다 못해 멋진 말을 끝낸 순간, 해설이 둘 사이에 찬물을 끼얹었다.
[아, 설마, 대화하는 척 무술을 준비하고 있는 걸까요? 데릭 드루스! 굉장히 영악한 수입니다!]노골적인 조롱. 하지만 데릭과 여명은 그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해설가가 ‘영악하다’ 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던 순간, 데릭의 몸이 여명의 코앞에 도달했으니까.
화악!
그의 군용 장검이 호쾌한 곡선을 그리고, 바람이 뒤늦게 여명의 뺨에 닿았다.
여명은 장검을 막거나 피하지 않았다. 그는 역으로 오른손에 들린 검을 휘둘렀다.
뻔히 보이는 크로스 카운터. 데릭은 휘두르던 검을 회수하고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
현대전의 상식. 근접전이건 장거리 전이건, 결국 총 든 놈이 유리한 법.
탕, 탕, 탕!
하지만 여명은 상식을 벗어난 존재였다. 그는 몸을 틀어 아슬아슬하게 총알을 피했다. 애꿎은 경비복이 찢어지며 불쌍한 기업들의 광고가 그을렸다.
“씁, 이래서 경기용 총알은.”
데릭이 쌍욕을 삼키기 무섭게, 여명의 검이 권총을 든 그의 손을 노렸다. 데릭은 총을 포기하고 장검을 휘둘렀다.
깡! 막혔다. 가속을 이용해 무릎을 찔러넣는다. 막혔다.
왼 주먹, 파고들며 어깨치기, 고개를 젖혀 박치기.
막히고, 피하고, 흘려낸다. 마치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시발, 웨슬리 병신아.’
데릭은 로드 하우에 입학한 동기를 저주했다. 대체 얼마나 밑천이 털렸으면 이렇게 정확하게 막는 거야?
하지만 데릭은 포기하지 않았다. 명색이 미국을 대표해 올림피아 본선에 진출한 초인 아닌가.
그는 맨정신으로 경기장을 떠나지 않겠다는 말을 지키기 위해 군용 장검에 마나를 실은 순간.
터엉!
여명의 발이 기습적으로 그의 복부를 후려쳤다. 데릭은 그대로 하늘에 붕 떠올랐다.
위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그가 바닥에 떨어지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릴 정도.
쿵!
그렇게 추락한 데릭을 보는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아, 근접전에서 상대도 되지 않았습니다! 압도적인 차이입니다!]해설은 끝까지 데릭을 깎아내렸지만, 관객들은 치열한 공방을 보여준 데릭에게 감탄과 환호를 내뱉었다.
하지만 그런 감상들과 별개로, 데릭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봐준 건가?”
퉤- 피가 섞인 침을 뱉는 데릭을 보며, 여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 정도면 끝날 줄 알았어. 웨슬리도 그렇고, 너도 생각보다 튼튼한데.”
“웨슬리도 이렇게 당했냐? 그러면 억울하진 않네.”
데릭은 장검을 지팡이 삼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충격이 가시지 않은 다리가 후들거리고,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음에도 그의 눈에는 투지가 가득했다.
“마지막 일격은… 저번에 독일 놈 보냈던 그건 쓰지 마라.”
“왜?”
“그거 쓰면 밥 존나 처먹어야 한다며. 그날 니가 50인분 처먹어서 우리 팀은 당면 못 먹었다.”
“….”
…미안. 여명은 속으로 말을 삼킨 뒤 검을 들었다. 그리고 화르륵!
그의 검에서 주와이외즈의 불길이 피어올랐다. 이름도 외향도 너무나 찬란한 10강의 무술.
“…청춘의 마무리치곤 괜찮네.”
그 불길을 마주한 데릭은 웃으며 검을 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불의 검에 처맞은 그는 그대로 기절했다.
***
“멋진 쇼맨십이셨어요.”
경기를 끝낸 여명을 찾아온 건 아직 경기가 남은 세티나 성녀가 아닌, 시리였다.
“한국은 단박에 상대를 때려잡는 걸 원하겠지만, 역시 장기적인 이미지를 생각하면 형부께서는 앞으로도 계속 상대를 존중하는 모양새를 유지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일행 중 가장 먼저 64강에 진출한 그녀는 여명에게 물병을 건네며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세티 언니는 1시간, 미리 언니랑 성녀님 경기는 2시간 뒤인데, 보고 가실래요?”
“아니, 괜찮아. 괜히 있다가 기자들에게 걸리지 말고 바로 숙소로 돌아가자.”
그렇게 숙소로 돌아가게 된 두 사람은 방음 마법까지 써가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계획 진행이나, 진척도, 그리고 모든 게 완벽할 정도로 풀리고 있다는 여명의 개인적인 감상까지.
이대로 각하를 찾아내 처리하고, 애국자들을 하나하나 쓸어버리고, 그 후에는 그동안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은혜를 갚아야겠지.
어쩌면 성녀를 위해 성도에 집을 사야 할지도 몰랐….
“…형부, 괜찮으세요?”
“응? 뭐가?”
“아니, 그게… 음….”
여명의 말을 끊은 시리는 잠시 뜸을 들였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그리고 둘이 숙소 건물 내부의 계단을 오를 때가 다 돼서야,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너무 계획대로 잘 흘러가서, 오히려 더 긴장하고 있는… 그런 상태?”
“….”
마치 그의 속을 들여다본 것 같은 시리의 한 마디에, 여명은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여명이 정색했으나, 시리는 손가락을 휘휘 저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이러다가 뭔가 잘못되는 건 아닐까, 아직 파악하지 못한 게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우리 계획 자체가 전부 우물 안에서 준비한 돌 무더기에 불과하고, 미국이란 폭풍우에 휩쓸려 전부 날아가는 건 아닐까.”
“처제, 잠깐….”
듣다 못 한 여명이 그녀를 말리려 했으나, 시리는 멈추지 않았다.
“형부, 이제와서 이 복수를 상처 없이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건 아니죠?”
“….”
“나이브한 생각이세요. 이런 규모의 복수는 잠재적인 적들을, 그리고 또 다른 복수를 불러오는 일이기도 해요. 상대가 바보가 아닌 이상 반격도 하겠죠. 거기다 유명인이 된 형부에겐 이미 경계의 눈길이 향하고 있고, 신분을 감춰줄 피눈물의 환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KGB까지 이 땅에 깔려 있어요. 피해 없이 끝나는 건 불가능해요. 아시잖아요.”
여명이 걸음을 멈추자, 시리는 계단 아래에서 그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희 자매는 물론이고, 미리 언니와 살로메 언니, 그리고 성녀님까지 모두 다 알고 있어요. 그 이유가 사랑이건, 은혜건 간에… 다들 알고 뛰어든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시고….”
“…시리.”
여명은 결국 목소리를 깔고 그녀의 말을 끊었다. 하지만 차마 그런 생각이 없었다고는 하지 못했다.
짧은 침묵.
먼지 한 올 없는 계단을 타고 흘러내린 차가운 침묵은 얼음처럼 단단한 시리 노란 눈동자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잠시와 한참 사이 어딘가쯤 되는 시간이 지난 후. 여명이 입을 열었다.
“처제 말이 다 틀린 건 아니야. 물론 나도 두려움을 느껴. 일행 중 누구도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니까.”
“….”
“하지만 동시에, 난 믿고 있어. 우리가 함께 겪어온 시련과 목숨을 건 수련… 그 시간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한, 난 우리가 우리를 지킬 수 있다고 믿어. 설사 마왕이 앞에 있더라도, 내 목숨을 걸면 모두를 지킬 수 있다고 믿어.”
“그러면 뭐 때문에….”
여명은 다시 계단을 오르며 말했다.
“각하.”
“….”
“그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는 게 걸려. 그가 가진 힘은 이 나라 전체고, 가진 권력이 얼마나 큰지도 알겠어. 하지만 결정적으로… 어째서와 왜, 라는 부분이 비어있어.”
“어째서와, 왜요?”
“그래, 그는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왜 국민들을 팔아먹고, 사람을 암살하고, 억지로 정부와 역사를 조작한 걸까…? 대체 왜?”
시리는 조심스레 대답했다.
“권력을 위해서 아닐까요?”
“…그는 이미 한국의 절대 권력자야. 굳이 만주 사태처럼 권력이 흔들릴 이벤트를 벌일 필요가 없어.”
“그럼 국력 향상?”
“국력을 위해서였다면 미국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최소한 같은 교역권에 들어갈 노력이라도 했겠지. 하지만 이 나라는 공산 국가의 몰락으로 두 번의 경제 위기가 왔을 때도 미국과 대립각을 세웠어.”
하나하나 따져 보니 시리라고 뾰족한 답이 있는 건 아니었다. 대답할 말이 궁한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어느덧 여명은 숙소 문 앞에 도착했다. 그는 손잡이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어쩌면… 우리의 복수조차 그의 계획 속에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의문이 들어.”
“…그건 너무 나가셨어요. 각하가 무슨 정보가 있다고 그걸 다 준비하겠어요?”
“바깥에서 온 자.”
“….”
“각하도 플레이어나 작가 같은 빙의자라면….”
여명은 말끝을 흐렸다. 한 번이면 우연이고, 두 번이면 운명이라지만 그는 바깥에서 온 자를 벌써 네 명이나 만났다.
여기서 한 명 더 만나는 건 필연일지도.
뒷말을 삼킨 여명은 그대로 숙소로 들어섰다. 그리고 곧장 이상함을 깨달았다.
라날이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할 용이 없는 걸 깨달은 여명은 곧바로 마나를 끌어 올리고, 인벤토리에서 검을 꺼냈다.
천천히 내부를 살폈지만, 특별한 건 보이지 않았다.
딱 하나, 식탁 위에 올라와 있는 정체불명의 쪽지만 제외하고.
[각하께서 그대를 보고자 한다.]쪽지를 읽은 시리가 경악하건 말건, 여명은 차가운 눈으로 쪽지를 내려다봤다.
조금 전의 대화가 현실이 된 건가? 각하가 그를 노리고, 라날이 그사이에 잡혀갔다고?
방심했다. 설마 그의 방을 이렇게까지 대놓고 노릴 줄이야.
하지만 방심의 대가는 참혹했다.
여명은 세상 물정 모르는 순박한(?) 용을 생각하며 쪽지를 구겼다.
“형부….”
분노한 여명의 등을 보던 시리가 조심스레 그를 위로하려는 순간.
푸드득-커다란 연녹색 시조새가 갑자기 숙소 베란다에 착지했다.
[뭐야, 왜 빈손으로 왔어? 약과 어딨냐?]“….”
여명과 시리는 동시에 시조새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이런 빌어먹을 용가리 새끼가.
“너… 어디 갔다 온 거야?”
[응? 아까 이상한 놈들이 우르르 이 방으로 오길래 잠시 나가 있었다. 알잖아? 용은 잠자는 장소에서 감지력이 대폭 늘어난다.]누군가 오긴 왔다는 거군. 여명은 숨을 고르며 물었다.
“…그보다 왜 하필 시조새야?”
“….”
[아무튼, 약과 어딨냐?]여명은 그제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인벤토리에서 약과를 꺼냈다. 약과를 본 라날은 허겁지겁 식탁으로 날아와 간식을 입에 욱여넣었다.
그렇게 우걱, 우걱 라날의 식사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길 잠시.
손에 쥔 쪽지를 보던 여명은 자신도 모르게 시조새의 뒤통수를 딱! 때렸다.
[아악! 이게 뭐 하는 짓이냐!]“그냥.”
[이런 씨… 한국에서는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 속담 있는 거 다 안다. 넌 한국인 아니냐?]“아닌가 보다. 지금도 한 대 더 때리고 싶은 걸 보면.”
그리고 잠시 후, 기어코 용의 머리통을 한 대 더 때린 여명은 한숨과 함께 쪽지를 확인했다.
각하의 이름이 들어간 것치고는, 어딘가 엉성한 쪽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