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569)
을 위한 세계는 없다-569화(569/817)
EP.569 관심, 욕심, 복수심, 그리고 양심. (12)
* * *
***
뚝, 뚝. 총에 맞은, 아니 스친 입에서 피가 흘렀다.
늙은 암사자는 혓바닥 살점과 함께 떨어진 타락석을 보며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운이 좋았다.
그녀의 머리통이 터지지 않은 건 어디까지나 트럭 불빛으로 인해 조준점이 흐트러진 덕분이었다.
다음은 없다. 판단은 빨랐고, 행동은 더 빨랐다. 머리를 노리고 날아온 다음 사격을 피해 바닥을 구를 만큼.
탕, 탕, 탕!
조준점을 맞춘 상대의 사격은 그대로 그녀가 있던 자리를 꿰뚫었다.
한 발에 생명유지장치가 박살 나고, 두 발에 휠체어가 날아갔다. 세 발째부턴 고개를 숙이느라 뭐가 맞는지 알 수 없었다.
좆 같은. 권총에서 무슨 저런 대구경탄이 날아와?
그사이 간신히 혓바닥 일부를 재생한 그녀는 폐에 남은 산소를 쥐어짜며 소리쳤다.
“죽여!! 동포들의 원한을 갚아라!!!”
피 냄새가 섞인 밤공기, 격렬한 총소리, 그리고 피를 흘리는 족장의 외침은 우물쭈물하던 수인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안 돼!!”
어린 족장의 외침이 그들을 막으려 했지만, 흥분한 수인들은 이미 폐공장으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몽키스패너와 빠루, 해머 등 연장으로 무장한 각양각색의 수인들이 파도처럼 우르르 공장의 창문을 넘었다.
그렇게 죽고 싶다면야. 여명이 주와이외즈의 불길을 키운 순간.
아-우우우우우 – !!
젊은 족장이 하울링을 내뱉었다. 달려들던 수인들이 움찔, 발을 멈췄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멈추지 마!! 족장의 명이다!!! 배신자를 죽여!!”
곧 일부를 제외한 수인들이 다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크르릉, 컹컹! 분노한 짐승의 소리가 가까워지고, 여명의 검이 수인들을 향해 불의 길을 그리는 찰나.
“자, 자비를!”
젊은 족장, 이복순은 방향을 바꿔 여명에게 애원했다. 여명이 갑자기 뭔 개소리냐는 듯 그녀를 노려보건 말건, 이복순은 그의 발을 붙잡고 빌었다.
“네, 네 실력이면 죽이지 않고 제압할 수 있잖아! 부탁할게! 저들은 모두 밑바닥 노동자들이야. 여기서 죽으면 고향에 있는 동포들마저 굶어 죽어!”
“⋯뭐 어쩌라고.”
“원하는 건 뭐든지 줄 테니, 제발!”
“⋯.”
다음 순간, 여명은 주와이외즈를 거두고 주문을 외웠다.
피를 보기 싫다거나, 이복순의 애원이 마음에 닿았다든가 하는 같잖은 이유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느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짐승들의 목숨을 결정하는 건 그보다 스승에게 어울린다는 것.
짧은 생각을 마친 여명은 주와이외즈 대신 염동력을 펼쳤다.
지이잉 – ! 평소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퍼지는 염동력에 대기가 떨리며 소리가 울렸다. 곧 눈치 빠른 네티가 그의 염동력에 자신의 주문을 더 하길 잠시.
-커헉!
-컹, 컹!
폐공장에 들어선 수십 마리의 수인이 일제히 땅에서 떠올랐다.
한 놈도 빠짐없이 목을 붙잡은 채로 컥컥거리는 소리와 들고 있던 연장들이 우수수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그리고⋯
뚜둑!
떠오른 모든 수인들의 고개가 일제히 옆으로 돌아갔다.
일반적인 인간이었다면 목뼈가 부러져 죽을만한 각도였으나, 수인은 생각보다 튼튼한 족속들이었다.
혀를 쭉 빼고 기절한 동포들을 확인한 이복순은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맙다.”
“감사 인사는 스승님이 너희의 처우를 결정한 뒤에 해라.”
차갑게 대꾸한 여명은 곧 이복순의 주머니를 향해 염동력을 펼쳤다.
“그래도⋯ 타락석을 쓰지 않은 건 칭찬해 주지.”
“⋯.”
주머니에서 타락석이 빠져나가는 걸 느낀 이복순은 말을 삼켰다.
그녀는 멍하니 주머니 밖으로 나온 타락석을 바라보다가, 여명이 타락석을 손에 넣는 쥐는 순간 눈을 감았다.
마치 뭔가를 포기하는 듯한 반응.
그녀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건, 타락석을 챙긴 여명은 덤덤하게 말했다.
“그리고 아쉽게도, 저 족장은 너와 달리 멍청하군.”
“뭐?”
이복순이 놀라 고개를 돌리자, 늙은 족장이 타락석을 입으로 가져가는 게 보였다.
“안 돼!”
애타는 목소리보다도 먼저 까드득! 늙은 족장이 검은 타락석을 씹었다.
콰아아아 – !!!
깨진 돌 사이로 뒤틀린 마나가 터져 나오고, 밤하늘이 일렁거릴 정도로 검은 연기가 그 뒤를 따랐다.
“결계⋯ 저, 저 미친년이.”
이복순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공장의 뒤덮는 결계를 바라보는 가운데, 여명은 신속하게 염동력을 펼쳐 처제들을 결계 범위 밖으로 밀어냈다.
“형부! 이건 돌려드릴게요!”
네티는 폐공장 밖으로 날아가는 와중에도 마총을 여명에게 던졌다.
그렇게 여명이 휘리릭 날아온 마총을 붙잡고, 처제들이 아슬아슬하게 결계 밖으로 나간 순간.
네티의 마지막 한마디가 그의 귀를 때렸다.
“아, 그리고 형부! 시리 지갑에 콘돔 넣고 다닌대요!”
“⋯?”
여명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지 못했다. 순식간에 완성된 결계가 그와 처제들을 완전히 단절시켰으므로.
***
코르부스는 날갯짓하며 승만 시티의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희생양 자매들이 차원문 너머로 날아가자마자 개성 차원문을 넘은 그녀는 천천히 도시를 훑었다.
축제에 빠진 도시, 제자의 이름을 연호하는 곳.
그곳에는 오크도, 드워프도 있었지만, 그녀들의 동족은 없었다. 그녀가 수인을 찾은 건 도시 외곽에 도달한 뒤였다.
공장 특유의 매연 냄새와 노동자들의 땀 냄새가 가득한 곳.
그녀의 동족들은 그곳에 있었다. 원래 그들의 땅인 살던 대초원과 비교하면 모든 것이 저주받고, 끔찍한 곳.
사회 밑바닥에서 소모되는 고깃덩어리들의 땅.
그곳에는 가난과 계급이 있었고, 자본주의가 절대 없애지 못할 종류의 고통이 고여 있었다.
코르부스는 죄책감을 느꼈다. 핵을 막은 게 옳은 일이었을까? 이런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삶이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때, 어떤 공장 뒤편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작은 TV와 숯불 앞에 인간들과 수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는데, 그들은 조촐한 식사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코르부스는 감각을 집중해 그들의 모습과 소리를 더 자세히 봤다. 그리고 놀랐다.
-이놈아, 좀 작작 처먹어! 상추를 두 장씩 싸는 놈이 어디 있냐!
-제가 양 수인이라서⋯.
-지랄, 그딴 핑계 댈 거면 고기를 처먹지 말아야지!
게 눈 감추듯 고기를 싸 먹는 수인과 그를 타박하는 인간.
-어차피 같이 먹을 거면 김치를 넣고 끓이는 게 맞지 않아요? 국물도 늘어나고.
-아, 라면 알지도 못하는 게. 맛이 다르다고! 맛이!
라면을 어떻게 끓이느냐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수인과 인간.
-아따, 성님. 내는 과일 소주가 좋은디.
-늑대 수인이 뭔 과일 소주여. 염병 떨지 말고 소맥이나 말어.
술잔을 주고받으며 킥킥거리는 수인과 인간까지.
그 모든 광경이 흑요석을 닮은 까마귀의 눈동자 위로 비췄다. 까마귀는 날갯짓하는 내내 그 광경에서 눈을 떼지도,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이윽고, 더 이상 그들이 보이지 않았을 때쯤.
까마귀는 눈을 감았다. 두 눈이 타오를 것처럼 뜨거웠다. 마치, 떠오르는 여명을 바라본 것처럼.
‘우리 인생이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살아봐야 아는 거라구요.’
성녀의 말이 맞았다. 그녀가 옳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동포들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래, 그의 스승과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동포들은 여전히 살아서 오늘을 살고 있었다.
고향에서 추방되고, 머슴으로 부려지고, 혐오 받고 있음에도.
살아남았고, 살아있으며, 앞으로도 살아있을 것이다.
다시 사람을 잡아먹어 짐승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초대 용사가 사랑하던 활기 가득한 종족으로 돌아갈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지금 하는 꼴을 보면 아마 높은 확률로 전자의 결과를 맞이하겠지만⋯.
그럼에도 살아있다는 건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뜻이었다.
사람이 평생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살아가듯, 한 종족 또한 그럴 수 있다.
그러니 오늘도, 그녀는 한 번 더 그들에게 기회를 주리라. 비록 그 대가로 배신자라 불릴 테지만⋯ 개의치 않았다.
스승께서 온갖 비난을 받았음에도, 개의치 않고 그녀를 제자로 삼았던 것처럼.
그렇게 짧은 다짐과 함께 마음을 다잡은 그녀가 한 번 더 크게 날갯짓한 순간.
코르부스는 도시 저편을 내달리는 자동차에서 이상한 사람을 발견하고 부리를 벌렸다.
“⋯만박불통?”
***
싸아아—
폐공장을 뒤덮은 결계는 금세 주변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뒤틀린 마나로 주변의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깨끗한 물속으로 퍼지는 검은 잉크처럼 뒤틀리고, 일렁이고, 퍼지면서.
여명은 그 꼴을 바라보며 결계의 강함을 가늠해 봤다.
아카데미를 덮쳤던 피혁 사제보다는 강하고, 아야톨라보다는 약한 어딘가쯤.
‘이 정도라면 부상 몇 개 입으면서 이기면 되겠네.’
이 와중에도 자신의 강함을 한국 정부에게 보여주기 위해 착실히 준비하는 여명.
모자란 수인놈들에게 ‘교훈’을 새겨주고 예상에 없던 타락석까지 하나 얻었으니, 꽤 괜찮은 작전이었다.
이제 늙은 수인 하나만 처리하면 끝날 일이었는데⋯
타락석의 결계 내부가 심상치 않았다.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드넓은 지평선, 하늘거리는 초원의 풀들과 듬성듬성 자라난 풀들까지.
“대초원⋯.”
놀란 이복순의 목소리가 이 풍경이 어딘지 확실히 알려주는 가운데, 결계를 발동한 늙은 수인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름답지 않나? 지구인들에게 더럽혀지지 않았던 시절의 우리 고향이⋯.”
“딱히.”
여명은 지평선에 쌓인 수인 시체를 보며 중얼거렸다. 다큐멘터리를 사랑한 그는 저게 단순히 타락석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저 늙은 수인이 실제로 벌인 심상의 반영.
“안타깝군. 지구인인 너는 이 아름다움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겠지.”
“글쎄, 이딴 걸 아름답게 보는 일은 없는 편이 좋겠는데.”
여명이 마총을 겨누자, 암사자 수인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하지만 아름다움의 일부는 될 수 있겠지.”
한 걸음.
수인의 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여명은 방아쇠를 당겼다.
탕!
코끼리도 쓰러트릴 퀴니의 마총이 그녀의 머리를 관통했다. 두개골이 깨지고 그 사이로 피가 질질 흘러내렸지만, 늙은 수인은 삽시간에 그 상처를 재생했다.
“총화기, 너희 쓰레기 같은 지구인들이 자랑하는 유일한 힘⋯ 이 결계 속에서 내가 그것 하나 대비하지 않았을 것 같나?”
그렇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몸은 조금 전까지 생명유지장치에 매달려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여명을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족히 3미터에 육박하는 키와 힘줄이 돋아난 근육질의 몸.
그리고 흉악하게 반짝이는 이빨들까지.
여명을 향해 군침을 흘리는 게, 당당하게 미국인을 잡아먹었던 옛 수인의 기세가 느껴졌다.
“천여명⋯ 내 이름을 아느냐?”
“아니, 모르는데.”
마총이 먹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여명은 주섬주섬 수류탄을 꺼내며 대답했다.
암사자 수인은 발톱을 꺼내며 말했다.
“모른다? 너의 스승이 알려주지 않았나보구나. 다행히 그녀에게도 수치심이란 게 남아있었나?”
“아니면 기억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한심했을 수도 있지.”
“⋯.”
“그리고 시간 아까우니까, 이제 입 그만 털고. 옜다.”
여명은 대뜸 수류탄 핀을 뽑아 수인에게 투척했다.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그리고 폭발이 그녀를 덮치기 직전, 늙은 수인은 네 다리로 땅을 박찼다.
콰앙 – !!!
수류탄 파편과 폭발을 정면에서 마주했음에도 늙은 족장의 속도는 느려지지 않았다. 그녀는 거의 날아오는 속도로 여명을 향해 발톱을 내려쳤다.
“죽어라!! 배신자의 제자여!!!”
여명은 대답 대신 싸움에서 도망치려는 이복순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그리고 그대로-쩌- 어엉!
이복순과 늙은 족장을 충돌시켰다. 젊은 족장은 살기 위해 발톱을 휘둘렀다.
“이런, 씨발!”
안타깝게도, 여명과 늙은 족장 모두 그녀가 어떻게 되든 개의치 않았다.
깨갱!
곧 늙은 족장의 발톱이 그녀의 가슴을 길게 베어 버렸고,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 확인한 여명은 그대로 이복순을 내던지고 검 ‘시리’를 뽑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주와이외즈.
화르륵! 열기를 머금은 검이 늙은 암사자의 발톱과 충돌했다.
!!
힘겨루기 따윈 없었다. 붉은 화염이 상대의 발톱을 그대로 두 동강 내며 파고들었다. 무술의 격이, 다루는 마나의 힘이 달랐다.
암사자가 숨을 삼켰다.
극한에 다른 초인의 공방은 인간의 그것과 다르다. 발톱이 잘린 팔을 뒤로 빼며, 허리를 돌려 발을 뻗는다. 통째로 불태운다? 아니, 페이크다.
진짜는 꼬리.
쩌어어엉 – !!!
마나로 강화된 꼬리와 검이 충돌하며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여명의 눈이 상대의 무술을 읽어냈다.
찰나의 충돌 속에서, 상대의 무술이 그의 불길을 흡수하는 광경을.
조금 전 젊은 수인을 잡아먹었던 그 흡수와 똑같은 무술인가.
어떤 면에서는 여명의 진의 무술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그는 한 번 더 확인할 요량으로 주와이외즈를 압축했다.
다시 한번 발톱과 충돌.
!!!
하지만 이번에는 발톱이 잘리는 정도가 아니라, 암사자의 몸이 뒤로 쭈욱 날아갔다.
반탄력? 아니, 아니었다. 무수한 실전 경험을 쌓아온 암사자의 노련함이었다. 휙 거리를 벌린 그녀는 자세를 다잡으며 말했다.
“위선과 오만을 쓰지 않는 이유가 뭐냐. 꼬마야?”
힘에서 밀렸음에도, 암사자에겐 아무런 당황도 없었다. 그녀는 아까 전 여명에게 목이 졸려 기절한 수인 하나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 너의 반푼이 스승이 인간이 쓸 수 있도록 개조하지 못했나 보지? 하, 역시 깃털 달린 것들이란.”
그렇게 이죽거린 암사자는 그대로 들어 올린 수인의 머리를 와그작-씹었다.
피는 튀지 않았다. 잘린 머리에서 주르륵 피가 흐르기도 전에, 그녀가 무술을 펼쳐 쭈아압! 남은 수인의 몸을 흡수해 버렸으니까.
“기회를 주마. 이 결계 안에서 나는 10강조차 쓰러트릴 수 있으니⋯ 지금이라도 위선과 오만을 써라.”
“⋯.”
여명은 헛웃음을 삼키며 생각했다. 저번에 만난 용사 후보들도 그렇고, 개나 소나 10강을 언급하네.
진짜 10강의 수준이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10강의 발치를 확인했던, 그리고 그들과 싸우기도 했던 여명은 천천히 검을 들었다.
그녀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
“⋯타락석이나 쓰는 개새끼 주제에, 함부로 10강을 논하면 안 되지.”
직후, 그는 땅을 박찼다. 비각술을 사용한 그의 몸이 흐릿해지고, 불길을 머금은 검이 기다랗게 선을 그린 순간.
푹!
뜨겁게 달아오른 검이 암사자의 어깨를 잘랐다. 목을 노린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결과였다.
“이 무슨⋯!”
당황 섞인 외마디. 기겁한 암사자는 마나를 갑옷처럼 겹겹이 둘러싸며 몸을 뒤로 뺐다.
도망치면서도 따라오는 여명의 검기를 분해하고, 흡수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피부를 파고드는 검기보다 빠르진 못했다.
“컥!”
재생하는 오른팔을 다시 자르고, 검을 수평으로 휘둘러 가슴을 벤다. 갈비뼈와 폐가 토막 난다.
암사자는 무릎을 쳐올려 반항했다. 여명은 그냥 맞아줬다. 어차피 그녀의 심장이 코 앞이었으므로.
그리고 여명의 검이 암사자의 심장을 찌르려는 순간.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던 암사자가 입을 쩍-벌리더니, 갑자기 여명에게 마나를 쏘아냈다.
어-흐으응!!!
사자후. 문자 그대로 사자의 울음소리에 담긴 마나가 폭발하며 여명의 몸을 밀어냈다.
울음소리에 담긴 마나가 어찌나 큰지, 여명의 몸이 붕 떠올라 초원 저편까지 날아갈 정도.
이건 또 뭐야.
금세 자리를 털고 일어난 여명은 눈살을 찌푸렸다.
“특이한 무술이군. 다른 것도 있나?”
암사자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가까운 수인을 흡수한 뒤에야 대답했다.
“여유가 넘치는구나. 꼬맹아. 내 재생력을 보고 두려움을 숨기는 것이냐?”
재생력이라. 암사자는 자신의 말을 증명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잘린 폐와 갈비뼈를 재생했다.
여명은 시큰둥하게 검을 늘어트렸다. 뭐 어쩌란 건지.
하지만 암사자는 그 반응을 다르게 해석했다.
“이제와서 겁을 먹어도 늦었다. 나는 불사신이고, 결계는 무적이다. 그리고⋯ 나의 무술은 그 이상이지.”
“예⋯ 뭐, 대단한 무술이시겠죠. 그래봤자 이름도 밝히지 못할 무술이겠지만.”
짧게 이죽거린 여명은 그대로 몸속에 흐르는 살기를 풀어놨다.
붉은 아지랑이가 서서히 그의 어깨 위로 피어오르고, 조금 전 암사자에게 입은 상처가 말끔하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누구 재생력이 더 뛰어난지, 어디 두고 보자고.’
그렇게 주가시빌리를 끌어 올린 여명이 다음 페이즈로 넘어가려는 순간.
사아아-! 갑자기 결계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예상외의 인물이 안으로 들어섰다.
어울리지 않는 지팡이를 든 꼬장꼬장한 외모의 노인.
10강의 말석. 만박불통.
그는 암사자와 여명이 나눈 대화를 주워들었는지, 담담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이만물위추구(以萬物爲芻狗). 그게 저 수인이 가진 무술 이름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