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574)
을 위한 세계는 없다-574화(574/817)
EP.574 관심, 욕심, 복수심, 그리고 양심. (17)
* * *
***
옛 중국의 신선을 일컫는 말 중에는, 선(僊)이란 단어가 있다.
춤출 선(僊).
그 단어를 처음 알았을 땐, 여명은 물음표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속세를 떠나 중금속이나 퍼먹는 신선이랑 춤이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알 필요도 없었고.
하지만 지금, 갑작스레 춤을 추게 된 여명은 깨달았다. 어째서 옛날 사람들이 춤과 신선을 연관 지었는지.
“먼저 추게.”
만박불통의 목소리를 따라 한 걸음, 발을 내딛는 그의 몸에 힘이 실렸다.
지이잉 – !!! 쏟아지는 노란 광선을 따라 두 걸음, 회전하는 몸을 따라 마나가 출렁이고.
후우-깊은 숨결을 따라 세 걸음, 천지불인을 피한 몸이 위로 떠올랐다.
그래, 여명은 날아올랐다. 속세를 떠난 신선들이 그러한 것처럼.
‘비행, 그다음은?’
허공을 밟은 여명의 질문에 대답인 걸까, 갑자기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환골탈태로 새로 짜인 심근이 뻐근할 정도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고, 전신의 혈관이 그에 호응하며 피를 돌렸다.
그러나 허공에 떠오른 몸의 춤 자락은 빨라지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춤에 중요한 건 리듬이었으니까.
가속하는 건 오직 마나와 생각뿐.
여명은 자신의 혈류가속을 떠올리며 하늘을 짚었다.
다음 순간, 발꿈치로 따라온 바람이 그의 몸을 밀어내며 광선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이번에는 왼발, 그의 움직임을 억누르기 위해 뛰어오른 분신 세 명의 지팡이를 피했다.
순식간에 십수 미터를 좁혀온 속공을 보지도 않고 피하다니.
여명 본인조차 놀라움을 느꼈지만, 이번에는 확실한 답이 있었다.
정확한 감지, 재빠른 반사신경, 그리고 직감.
춤을 출수록 늘어나는 감각이 무서울 정도였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즐기는 자가 가장 강하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여명의 몸을 들어 올린 바람은 더더욱 강해졌다.
황금의 신성과 살기의 붉은 아지랑이조차 바람에 휘말려 화려한 소용돌이를 만들 정도.
그 사이로 천지불인의 광선이 파고들고, 분신들의 지팡이가 그를 노렸지만, 여명은 모든 걸 가볍게 흘려버렸다.
진짜 춤을 추는 신선처럼, 모든 걸 흘려내는 바람처럼.
“거, 생각보다 잘 추진 못하는구만. 춤을 추는 건지. 초식을 펼치는 건지 모를 정도야.”
“….”
“설마, 그 얼굴로 여태 춤 한번 안 배운 건가?”
물론, 속을 긁는 만박불통의 말은 흘리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여명은 춤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
사아아 – !
그의 몸을 휘감은 바람이 태풍이 되었다.
혈관을 타고 가속하는 마나가 원을 그리며 태풍의 핵이 되고, 불어 닥치는 바람이 점점 더 빠르게 휘몰아쳤다.
어찌나 태풍이 강한지, 정신이 아찔할 정도.
심장, 혈관, 마나, 그리고 외부의 마나를 하나로 모아 만든 태풍이라니.
이것만으로도 최상급 무술을 논하기에 충분한 수준이었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이었다.
‘춤으로 몸속의 마나를 특정 방향으로 유도… 그 과정에서 피어난 마나의 바람을 몸에 둘러 감각 증폭, 그리고 둘을 뭉쳐 거센 바람을 만든 뒤에….’
넘치는 재능으로 10강의 진의와 실제 무술을 해부한다.
싸우는 도중임에도, 아니, 싸우는 중이기에 직접 오류를 바로잡고 하나의 길을 찾는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진짜 천도무친 상여선인의 끝.
‘…증폭.’
황금과 검붉음이 뒤섞인 태풍이 방향을 틀었다. 화려한 춤사위 속에서 어마어마한 마나가 피어나는 가운데, 여명이 물었다.
“어째서, 당의 지도부는 이 무술… 이만한 무술에 만족하지 못한 겁니까?”
질문에 대한 대답보다 먼저, 네 마리 분신이 달려들었다.
번뜩이는 천지불인의 불빛.
여명은 개의치 않고 발을 휘둘렀다. 화아악 – !발을 따라 휘몰아친 바람이 분신들을 후려쳤다.
분신들은 바람을 분해하며 제 자리에서 버텨냈으나, 여명이 한 번 더 발을 휘두르자 쭈욱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세 번째 발차기.
사아아 – !!!
휘몰아친 바람을 따라 분신 네 마리가 일제히 토막 났다. 그러고도 여력이 남았는지, 뒤에 있는 얼음덩어리가 깔끔하게 베이며 쿠웅! 땅에 떨어졌다.
위력만 따지면 화산쇄설 이상. 이것이 천도무친이 지닌 진짜 힘이었다.
첫 공격보다는 두 번째가, 두 번째보다는 세 번째가 몇 배는 강력한 무술.
만약에 만박불통이 처음부터 이 무술을 수련했다면 어땠을까.
진의를 세운 본인이, 본인이 만든 무술로 수십, 수백 번 증폭하는 경지로 나아갔다면.
여명이 그런 의문과 함께 땅에 내려선 순간, 만박불통의 본체가 입을 열었다.
“당이 원한 건, 무기였네.”
“….”
“당과 지도부가 원하면 선과 악을 가리지 않고 휘둘러질, 그런 순종적인 무기… 나는 그런 무기가 되지 못했지.”
상여선인(常與善人). 항상 선한 사람과 함께한다는 그의 진의는 당에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스스로 조국의 인재라 생각하며 밖으로는 신체를 단련하고, 안으로는 정신을 갈고 닦았으나…… 결국, 당에게 있어 나는 그저 쓰기 힘든 무기였을 뿐.”
“…억울하진 않으셨습니까?”
여명은 달려드는 분신들을 쳐내며 물었다. 만박불통의 본체 역시 달려들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자네, 미필이군?”
“…???”
그걸 어떻게-라고 묻기도 전에, 그가 덧붙였다.
“징병제 아래,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군인이 어디 있겠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나의 전우들은 모두 억울했네. 물론, 나는 조금 더 억울하긴 했지.”
“….”
“하지만 억울하다고 조국과 가족을 버릴 수는 없잖는가.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아무리 많아도…… 그걸 참는 게 어른이란 족속일세.”
다음 순간, 본체와 분신을 합쳐 열일곱 명의 만박불통이 일제히 여명에게 천지불인의 분해 광선을 발사했다.
!!!
대기는 물론이고, 여명을 휘감은 태풍조차 분해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광선.
스윽.
여명은 그에 맞춰 발을 움직였다. 다시 춤사위가 시작되고, 마나가 증폭되며 땅이 울렸다.
발끝에서 번진 태풍이 땅을 금색과 붉은색으로 물들였다. 타락석의 결계로 만들어진 초원과 얼음들이 전율하며 소리치는 가운데.
쿠구궁 !
두 사람 주변의 얼음덩어리가 분해되고, 녹아내리며 아스라이 굉음을 만들었다.
한 명에게서 나온 두 개의 무술이 그렇게 서로를 노리길 잠시.
쩌어엉 – !
광선과 바람의 열기가 충돌했다. 마나가 담긴 충격파가 무시무시했다.
그러나 가장 무시무시한 건, 두 사람이 주변 지형을 뒤바꾸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증폭된 발재간과 손짓에 강대한 분신들이 후두둑 터져나간다.
움푹 파인 땅이 그 위력을 증명하고, 그동안 분해한 마나로 다시 피어난 분신들이 천지불인으로 얼음과 대기를 분해한다.
참호전을 연상케 하는 무자비한 격돌.
그건 자기 수준도 모르고 10강을 운운하는 멍청이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진짜 10강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여명도, 만박불통도 아무런 감상을 내놓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이 싸움이 끝을 향하고 있다는 걸 직감했으므로.
***
“이백이십 명.”
시야를 가득 채우는 광선의 틈새로, 만박불통의 목소리가 울렸다.
“자네가 죽인 분신의 숫자일세.”
만박불통의 말에는 감탄이 실려있었다.
여명의 앞에 여전히 열여섯 마리의 분신이 서 있었지만, 여명은 분신이 늘어나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분신들을 처치한 것이다.
놀라움을 넘어선 경악의 영역. 그의 나이대에 누가 이러한 강함을 가지고 있었을까.
이미 수십 년 전에 10강에 오른 자와 동수를 이루다니. 심지어 서로의 무술도 상극이거늘.
만박불통은 애끓는 목소리로 말했다.
“잘해주었네. 이제, 물러나게.”
여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억누르고 있던 빗금이 곧 풀릴 것 같네. 이런 곳에서 목숨을 낭비하지 말고, 자네 스승과 함께…… 이런, 늦었군.”
직후, 만박불통의 분신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천지불인의 광선을 쏘던 녀석들이 우르르 지팡이를 거꾸로 들고는, 그대로-자신의 배를 찔렀다.
움찔, 태풍을 만들던 여명이 뭔가 싶어 춤을 멈춘 사이, 배를 찔린 분신들이 펑, 펑! 터지며 사람의 껍데기를 벗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드러나는 건, 농구공만 한 노란색 빛의 구슬들.
천지불인의 빛을 내뿜는 구슬들은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여명의 본체를 동그랗게 둘러쌌다.
‘이런.’
여명이 뒤늦게 저게 무슨 짓인지 깨달은 순간, 빛의 구슬들이 동시에 그를 덮쳤다.
빔 다음에는 몸통 박치기냐?
여명은 허리와 팔다리에 힘을 주고 밀려오는 빛을 향해 춤을 췄다. 아니, 오히려 먼저 달려들었다.
탓. 뛰어오른 그의 발 뒤로 아지랑이가 긴 꼬리를 만들었다.
!!!!
빛의 구슬과 여명이 충돌하며 마나가 분해되는 소리가 어지럽게 터져 나왔다. 구슬은 분신과 달리 아무런 타격도 없이 닿는 족족 모든 걸 해체했다.
“고집부리지 말고 그만 도망치래도!”
만박불통의 호통이 귀를 찔렀지만, 여명은 멈추지 않았다. 열여섯을 유지했던 분신과 달리 빛의 구슬은 삽시간에 두 배, 세 배로 늘어났다.
황금과 검붉은색으로 물든 하늘 아래에서, 여명의 마나가 타올랐다.
만박불통은 차오르는 어마어마한 마나를 느끼며 한탄하는 것과 달리, 여명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마치 퍼주는 것처럼 끝없이 주가시빌리와 신성력을 뿜어냈다.
흡수형 적들을 상대할 때 종종 쓰이는 ‘배가 터지도록’ 마나를 먹이는 전략?
하지만 만박불통은 빛의 구체를 만들어 그때그때 마나를 사용하고 있었다. 배가 터져 죽는 일 따윈 생길 리 없었다.
그걸 모르진 않을 텐데.
만박불통 본체가 의아함과 걱정, 그리고 기대 속에서 여명에게 빛의 구체를 쏟아내길 한참.
쿠웅 – !!!!
얼음덩어리 저편에서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대한 수인이 쓰러지는 소리였다.
혹시 수인 스승을 기다리는 건가? 만박의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진 순간.
여명이 입을 열었다.
“네 배가 한계군요.”
“뭐라?”
“제 진의와 어르신의 진의가 너무 달라서 그런가, 저는 네 번 증폭이 한계입니다.”
“….”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으려는 순간, 여명의 춤이 뚝, 끊겼다.
검색
그러자 벌써 50개가 넘게 불어난 빛의 구슬들이 일제히 여명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네 번이면 충분한 거 같기도 합니다.”
여명의 입에서 담담한, 혹은 오만한 선언이 흘러나온 직후.
그의 오른손이 검게 물들며 검은 구멍을 만들어 냈다. 달려가던 빛의 구체들이 미처 반응할 수 없는 속도.
마치 황금색과 검붉은 태풍 속에서 태풍의 눈이 만들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진짜 태풍의 눈과 달리, 그것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
만박불통은 눈을 떴다.
팔다리는 여전히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당의 지도부가 심어놓은 실이 풀렸나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10강을 이겼군.”
감탄과 질투가 뒤섞인 말. 곧 그의 얼굴 위로 여명의 상체가 그림자를 드리웠다.
“처음부터 이길 생각이었습니다.”
자신만만한 말과 달리, 여명의 몰골이 심상치 않았다. 눈, 코, 입에는 마른 피딱지가 가득했고, 이미 반쯤 날아간 오른팔은 힘겹게 상처를 재생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눈치챈 만박불통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미완성 무술을 함부로 쓰면 쓰나.”
“이 정도로 반발력이 강할 줄은 몰랐습니다.”
“증폭 때문이겠군. 아마 내 진의와 자네의 진의가 상극인가 본데… 대체 어떤 진의인가?”
여명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뭔가를 고민하더니, 눈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말했다.
“그, 맹자에 곰 발바닥과 물고기 비유를 아십니까?”
“알다마다. 웅장여어(熊掌與魚). 물고기도 좋아하고, 곰 발바닥도 좋아하지만,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곰 발바닥을 선택하는 것처럼, 생명과 의로움 중 의로움을 택하겠다… 하, 우리 나라의 경전에서 진의를 따왔을 줄이야. 멋진 진의구만.”
“….”
여명은 기뻐하는 만박불통을 향해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음… 저는 물고기와 곰 발바닥을 모두 가지는 걸 진의로 삼았습니다.”
“…뭐라?”
황당한 시선이 잠시 여명의 볼을 찔렀다. 자신의 진의가 부끄러운 건 아니었지만, 역시 당당하게 까놓을 건 아니-
“아, 그래서 처제들을….”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아니, 아니, 잘 이해했네.”
이해하긴 뭘 이해해. 여명이 정색하자마자, 만박불통이 쿨럭! 피를 한 사발 토했다.
“이거야 원, 몸도 돌보지 않고 마구잡이로 무술을 쓰게 하다니… 늙은 몸이 아쉽구만.”
점점 더 작아지는 목소리. 여명이 놀라 그의 곁에 주저앉자, 그가 힘든 숨을 삼키며 말했다.
“노파심에 말하는데, 자네 목적이 무엇이건 오늘 익힌 내 무술은 철저히 숨기게. 세상인심이란 게 워낙 더러워서, 보물을 가진 걸 알리면 바퀴벌레만 꼬일 뿐이네.”
“어르신, 그런 말 마시고 지금은 재생에 집중…”
만박은 그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성녀는 절대 건드리지 말게. 진의대로 사는 것도 좋지만, 평생 정신병 걸린 장인 장모와 성기사단에게 쫓겨 다니고 싶지 않다면….”
“….”
“이번 대 성기사단 단장은 또라이 새… 아, 맞다. 아카데미에 엘프가 숨어 있을 텐데, 그것도 절대 건드리지 말게. 절대로.”
여명이 무어라 할 말을 떠올리지 못하고 시선을 돌린 사이, 만박이 작아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또… 조언을 해줄 일이… 그렇군. 자네 무술 이름이 뭐라고 했지?”
“아직 못 지었습니다.”
“…이름도 없는 무술이 그만한 위력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하, 혹여 단서라도 잡았는가?”
“맹자에 답이 있다는 조언은 들었습니다.”
“맹자, 맹자라… 거기까지 갔다면 내가 조언해 줄 것도 없겠군.”
그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더니, 이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이렇게 죽을 줄 몰랐지만, 자네가 내 유언을 듣는 사람이라서 다행일세. 부디, 천도무친을 중히 써주게나.”
“…유언이라뇨?”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 우리는 언젠가 죽는 법일세. 슬퍼하지 말게, 나는 떠나지만, 내 진의는 자네에게 남아….”
그때, 여명이 인벤토리에서 꺼낸 물약 뚜껑을 뽕! 땄다.
그리고 만박이 무어라 질문하기도 전에, 여명은 구더기 공주 특제 회복약을 만박의 입에 꽂아 넣고 말했다.
“…???”
“죽는 건 나중에 하시지요. 하다못해 분신술 쓰는 법이라도 가르쳐 주고 가세요. 저 그거 꼭 필요합니다.”
“….”
“그리고 무엇보다, 죽고 사는 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