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581)
을 위한 세계는 없다-581화(581/817)
EP.581 목멱에는 바다가 없다. (6)
* * *
***
모낙랑의 입에서 시작된 여명의 부상 소식은 생각보다 널리 퍼졌다.
물론, 곧이곧대로 그 소문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올림피아에서 블러핑은 흔하진 않지만, 종종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뒤늦게 퍼진 추가 소문 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공개적으로 여명을 찾아간 성녀가 슬픈 표정으로 그의 숙소를 나섰다.’
선량하고 고귀하신 성녀님께서 슬퍼할 일이라니. 정말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게 틀림없었다.
-그냥 남녀 문제 아니야?
비교적 상식적인 의견도 있었으나, 대부분 묵살되거나, 불경죄로 처벌되었다.
함께 간 호위가 있거늘, 감히 성녀님과 저런 난봉꾼을 엮다니.
뭐, 아무튼.
처음 소문이 퍼질 때부터 여명의 부상을 확신하고 있던 한 청년은 성녀님의 반응을 전해 듣자마자 환호했다.
-이길 수 있어.
여명과 마찬가지로 로드 하우 아카데미 예선을 뚫고 올림피아에 올라온 3학년 믹 굴라공.
한때 호주에서 유력한 ‘성검의 후계자’로 여겨지던 그는 자신의 타이틀을 도둑질한(?) 여명에게 모종의 경쟁심을 느끼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여명은 어차피 한국인이니, 너는 신경 쓸 필요 없이 차근차근 준비하면 된다고 말했지만…
남자의 자존심이란 게 어디 그렇게 쉽게 해결되는 일이던가?
그는 이번 기회에 여명을 쓰러트리고 당당하게 자신의 자리를 되찾고자 했다.
심지어 여명과 친한 사이라고 알려진 파순에게 직접 찾아가 약점을 물을 정도.
-약점? 당연히 불알이지. 불알을 터트리면 꼼작 못할걸.
-대신, 불특정 다수의 여자들이 널 죽이려 하겠지만.
그는 파순의 장난스러운 대답도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경기 당일 아침까지 여명을 분석하고 또 분석했다.
사용한 무술, 몰아붙일 때의 패턴, 심지어 사소한 습관들까지.
그리고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하게 된다고들 하던가? 경기가 고작 한 시간 남은 시점에서, 호주의 높으신 분께서 그를 찾아왔다.
-믹, 행정부에는 자네의 승리를 바라는 사람들이 적지 않네. 성검은 호주인이 물려받아야지.
TV에서 보던 높으신 분의 말은 믹의 가슴을 뛰게 했다.
언론에서 성검의 후계자로 꼽히긴 했지만, 그걸 정부 인사의 입으로 직접 듣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곧 이어진 제안은 그의 가슴을 차갑게 식혀버렸다.
-이걸 받게나. 자네를 응원하는 친구들이 보낸 물약일세. 앞선 경기에 큰 도움이 될 걸세.
믹은 자신에게 내밀어진 물약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유리병 속 물약은 그가 사랑하는 조국의 국기처럼 영롱한 푸른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말게. 완벽하게 합법적인 물약이니.
완벽하게 합법적인 물약.
믹은 그걸 ‘최신 도핑 감지 기술로는 잡아낼 수 없다’ 는 뜻으로 이해했다. 아마 진짜 뜻도 비슷하리라.
전 도핑 같은 거 안 합니다.
그는 물약을 거절했다. 높으신 분께서는 이해한다는 듯, 그의 손에 꼭 쥐여주며 말했다.
-내가 이 위치까지 올라오며 느낀 게 하나 있는데, 뭔지 아는가? 패배자가 되어 잊히는 것보다, 추잡한 승리가 더 낫다는 걸세.
그 말을 끝으로, 높으신 분은 떠났다. 홀로 남은 믹은 물약을 쥔 채 고민했다.
그리고 경기가 코 앞에 다가온 시점에서, 그는 선택했다.
쨍그랑!
믹은 물약을 박살 냈다. 그리고 당당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경기장으로 향했다.
[로드 하우 아카데미! 호주의 믹 굴라공!!]뜨거운 햇빛과 환호가 겹치는 경기장 위.
천여명은 그곳에 있었다. 용의 해방자, 이번 올림피아의 주인공이라 불리는 세기의 천재.
기껏해야 호주의 음료 회사와 지역 광고가 붙은 그와 달리 온갖 광고가 덕지덕지 붙은 경기복을 입은 천여명은 천천히 그를 바라봤다.
어째서일까. 대화 한 번 해본 적 없지만, 믹은 천여명에게서 어떤 친숙함을 느꼈다.
그리고 서로에게 검을 겨눈 순간. 그 친숙함의 정체를 깨달았다.
성검, 프레아 칸의 거친 미소 속에서 느껴지던 어떤 중압감.
여명의 담담함 속에는 그것과 똑같은 중압감이 숨겨져 있었다.
단순히 그의 착각일까? 믹은 그 느낌을 확인하기 위해 먼저 천여명에게 달려들었다.
쩌엉 – !
마나를 머금은 검과 검이 충돌하며 강렬한 떨림을 주고받는다.
누가 말했던가? 무술은 그 어떤 것보다도 솔직한 대화라고.
과연 그랬다. 믹은 천여명과 검을 나누며 그가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검을 휘두르는 속도, 받아치는 팔의 움직임, 바닥을 박차는 발자국.
모든 게 그를 상회했다. 부상이 아니었다면 1분도 되지 않아 그를 초살할 수 있을 만큼.
혹시 연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떠올랐지만, 어마어마한 돈과 명예가 오고 가는 경기에서 이런 연기를 할 이유가 없었다.
만약 부상을 입지 않은 천여명과 싸웠다면 어땠을까.
믹은 아쉬움을 느끼며 더욱더 검을 휘둘렀다.
[믹 굴라공 선수, 계속 몰아칩니다! 아! 역시 같은 로드 하우의 선배!]터질 듯 쿵쾅거리는 심장과 폐, 번뜩이는 마나의 빛과 검광.
-패배자가 되어 잊히는 것보다, 추잡한 승리가 더 낫다는 걸세.
숨이 차오를수록, 승리가 멀어질수록, 버린 물약과 높으신 분의 목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만약에 그 물약을 먹었다면, 이길 수 있었을까?
자신은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승리를 내다 버린 것일까? 고작 하찮은 자존심 때문에?
[화려합니다! 수백 번의 검을 주고받는 정석적인 검술 대결!! 마치 그림 같습니다!!]속도 모르는 해설자 새끼. 어디가 정석이란 거냐. 지금 우리는 모든 걸 쥐어짜고 있는데.
후회인지 짜증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을 따라 손끝이 떨렸다.
이윽고, 서로의 체력이 바닥을 보인 순간.
천여명이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선배, 이렇게 끝내지 맙시다.”
“뭐?”
“서로, 주력기 한 번 못 보여 주고 끝내면 아쉽잖습니까.”
“….”
믹은 주와이외즈나 위선과 오만을 쓸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몰아쳤다는 사실도 잊은 채, 검을 멈췄다.
“너, 내 주력기가 뭔지 아냐?”
“이름만 압니다. 스타 더스트.”
이름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네. 믹은 뚱한 얼굴로 검을 늘어트렸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네가 가진 무술에 비하면 대단치 않은 무술이다. 혜성검의 마이너 카피거든.”
“…마이너 카피?”
“혜성의 비전 유물에게 선택 받지 못한 사람이 익히는 무술이지. 뭐, 나보고 자유롭지 않다나.”
믹은 어쩐지 부끄러운 말을 꺼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감정을 떨쳐내려는 듯, 강하게 마나를 모았다.
번쩍, 곧 그의 검에 혜성의 빛을 닮은 새하얀 마나 가루가 피어올랐다.
“자, 너도 주력기를 꺼내라.”
믹은 주와이외즈를 떠올리며 말했다. 10강의 불길을 카운터 칠 방법은 많지 않았지만, 어차피 사람이 쓰는 기술. 분명 약점이 있-그때, 여명의 검에서 불길 대신 전혀 다른 빛이 터져 나왔다.
선명한 별의 빛.
“…혜성검.”
그 빛을 보고 처음 떠올린 건 이 새끼 악질이네-라는 감상이었다. 하지만 여명이 천천히 자세를 잡는 걸 보자, 이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에게 패배하는 가짜라. 그래, 이건 나쁘지 않다. 적어도 부정한 승리보다는 가치 있었다.
“간다.”
믹은 자세를 잡았다. 둘의 자세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었다. 깊은 숨, 일렁이는 빛, 화려한 의지가 교차하려는 그 순간.
여명이 픽 웃었다.
비웃음이라기엔 너무나 이상한 타이밍이어서, 믹은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뭐가 그리 웃기냐?”
“아니, 그게, 혜성께서 화를 내셔서요.”
“화를 내는 게 웃겨?”
“아니, 그게… 그런 무술을 익힌 선배의 재능이 아깝다네요.”
“….”
혜성 본인에게 꺼지란 소리를 들었던 믹은 미간을 구겼다. 과연, 웃기긴 했다.
“혜성님에게 전해. 진짜를 가르쳐주시면 언제든 배울 생각 있다고.”
대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여명은 잠시 뜸을 들인 뒤, 웃으며 대답했다. 중압감이 담겨있지 않은 순수한 웃음이었다.
“성검께서 유부녀가 되면 생각해 보시겠답니다.”
“…그거 싫다는 소리 아니냐?”
“그거야 모르는 일이죠.”
모르긴 시발. 믹은 그와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팔에 힘을 실었다.
두 개의 검기가 동시에 터져 나오고, 가짜와 진짜가 충돌했다.
콰아아아 – !!!
일 초를 수십 번 쪼갠 충돌의 순간, 믹은 반으로 쪼개지는 자신의 검기를 보며 생각했다.
추잡한 승리보다는, 괜찮은 승자에게 패배하는 편이 낫다고.
그리고 여명은 꽤 괜찮은 승자였다.
***
몇 시간 후, 남산 공원, 제2 이승만 기념관.
일제 시대, 일본이 강제로 조선인들에게 신사 참배를 강요했던 조선 신궁의 터에 지어진 기념관은 화려했다.
이승만 대통령님의 80세 생일 기념으로 지어진 거대한 동상은 일제의 야욕을 짓밟듯 당당하게 서 있었고, 그 옆의 기념관 건물은 성공한 한국을 증명하듯 번쩍거리고 있었다.
아쉽게도 올림피아에 사람들이 몰려 평소보다 사람이 적었지만, 이승만 대통령님의 동상만큼은 여전히….
“…저 동상은 안 돼요. 은밀하게 잠입하기로 했잖아요.”
여명의 상념을 끊은 건 네티였다.
연락책으로 여명과 함께 남산을 방문한 그녀는 묘한 눈으로 형부와 동상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피눈물의 환상을 뒤집어쓴 여명은 억울하게 말했다.
“아직 아무 짓도 안 했어.”
“하지만 하실 생각이었죠?”
“…아니라니까.”
여명이 항변했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네티는 손가락을 까딱이며 말을 이었다.
“아까 경기 보면서 다짐한 건데, 앞으로 형부 말은 안 믿기로 했어요.”
“….”
“혜성검끼리 충돌할 때는 진짜 지는 줄 알았다니까요? 부상 입은 척한다고 했지, 폭발에 휘말린다고는 안 하셨잖아요.”
“그건… 상대가 진심이라 어쩔 수 없었어. 어쭙잖은 연기를 하느니 진짜 힘을 억누르고 싸우는 편이 더 나았다고. 그리고 또 내 부상 소문 덕분에 오늘 남산 공격에도 알리바이가…”
“우우-핑계 댄다.”
네티의 장난스러운 야유를 마주한 여명은 피식 웃었다. 그는 처제가 긴장을 풀어줄 생각으로 평소보다 더 장난스레 말한다는 걸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굳이 고맙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네티도 그걸 아는지, 기념관의 시계를 힐끗거리며 말했다.
“이제 3분 남았어요. 형부, 준비하시죠.”
다음 순간, 네티는 군용 통신기가 들어있는 묵직한 가방을 꺼내들었다.
“저는 투명 망토 쓴 채로 이곳에서 군용 통신 감청하고 있을게요. 연락용 무전기 잘 가지고 계세요.”
“되도록 쓰기 전에 나올게.”
검색
그렇게 대답한 이승만 동상을 힐끔거렸다. 네티는 다른 가방 하나를 더 꺼내며 말했다.
“그게 베스트이긴 하죠. 하지만 애국단도 그렇고,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잖아요? 대비는 많을수록 좋죠.”
여명은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네티가 새로 꺼낸 가방을 보며 물었다.
“그건 또 뭐야? 다른 준비물이 있다곤 못 들었는데.”
“아, 이건 제가 따로 준비한 침투 의상이에요.”
“…침투 의상?”
네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준비 해놓을 테니까, 가서 빨리 동상 챙기고 오세요.”
여명은 기꺼이 그렇게 했다.
그리고 남산 돌입 1분 전. 이승만 동상이 통째로 사라진 이승만 기념관에서, ‘침투 의상’을 본 여명은 웃음보를 터트렸다.
***
남산 지하로 통하는 비밀 통로.
안기부 벙커가 개미굴처럼 얽혀있는 지하로 들어갈 수 있는 몇 없는 길목에는, 세 명의 경비가 지키는 작은 초소가 있었다.
지하 벙커에 무슨 초소인가 싶었지만, 적의 침입을 알리는데 이보다 적절한 시설이 없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따로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게 아니고서야, 지하로 들어가기 위해선 여기를 꼭 거쳐야 했으니까.
시설도 그리 가볍지 않았다.
투명 망토조차 감지할 수 있는 각종 감지 시설과 침입을 감지하자마자 내려오는 육중한 차단벽, 그리고 기관포로 무장한 3명의 초인까지.
정상적인 방법으로 절대 알 수도, 뚫을 수도 없는 철벽의 초소.
세티와 쇠미리가 차라리 연구원으로 변장해서 정문으로 들어가자고 할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하지만 그럼에도 여명은 이곳을 뚫기로 했다. 상대가 차단벽을 내리기도 전에 침투할 자신이 있는 까닭이었다.
저벅.
여명의 발소리를 따라, 초소의 초인 중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다년간의 경험 탓일까. 그는 또 어떤 멍청이가 남산 지하를 탐사하다가 이 통로로 들어왔다고 확신했다.
“오랜만에 피를 볼 수 있겠군.”
여자면 좋을 텐데. 그의 기대와 달리, 상대는 건장한 남자였다. 그것도 이상한 옷을 입은 남자.
끄트머리에 흰색 털이 가득한 빨간 옷과 고깔모자, 마르크스를 떠올리게 하는 풍성하고 새하얀 가짜 콧수염과… 손에 들린 상자까지.
“산타클로스?”
지하에 무슨 산타야? 미친놈인가? 기관포를 든 초인이 멍하니 다가오는 산타를 바라보는 사이, 다른 초인이 말했다.
“개인 방송인가 뭔가 하는 새끼 아냐?”
“…아.”
요즘 너튜브인가 뭔가가 유행한다고 했었지.
처음 산타를 발견한 초인은 쯧쯧 혀를 찼다. 여긴 특정 주파수 외에 모든 통신을 차단하는 곳이라 찍어봤자 아무 의미도 없을 텐데.
방송 욕심이 명을 재촉했군. 그는 초소를 발견한 산타가 부랴부랴 달려오는 걸 보며 한 번 더 혀를 찼다.
“반갑습니다!”
산타는 자기가 어디에 온 건지도 모르고 인사했다. 휴대폰이나 카메라가 없는 걸 보니 촬영 시작도 안 한 모양.
평소라면 경보를 눌렀을 초인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여기가, 그, 도시 전설로 존재하는 남산의 지하 벙커 입구인가요?”
“아닌데.”
“그러면 안기부의 비밀 아지트?”
“아닌데.”
“어… 그러면, 그냥 알려진 대로 지하 탄약 창고인가요?”
초인들은 대답 대신 피식 웃으며 산타를 비웃었다. 대답을 듣지 못한 산타는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다가, 뭔가 떠오른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 퀴즈 하나 낼 테니, 맞춰보시겠습니까?”
“퀴즈?”
“경품도 있습니다! 대신 제 촬영 참가 동의를….”
초인 중 하나가 그의 말을 끊었다.
“참가 동의 할 테니, 어디 퀴즈란 것 좀 내봐.”
산타는 제 명이 여기까지인 것도 모른 채, 활짝 웃으며 말했다.
“빨간 옷을 입고, 계급에 상관없이, 오직 선악에 따라 평등하게 재산을 나눠주는 사람을 뭐라고 할까요?”
“….”
뭐 대단한 퀴즈인 줄 알고 기대했건만, 고작 이런 거였나. 초인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산타클로스.”
“땡! 틀렸습니다.”
“…?”
“조금 더 쉽게 생각해 보세요.”
“어… 음… 빨간 옷에… 재산을… 야, 이거 정답 아는 사람?”
초인이 다른 초인들에게 묻자, 피식거리며 구경하던 녀석이 말했다.
“산타 할머니?”
“땡! 틀렸습니다.”
“이런 씨, 진짜 모르겠는데? 야, 그냥 정답 알려….”
탕!
그 순간, 정답을 말하던 초인의 머리에 구멍이 뚫렸다. 통로 저편에서 날아온 저격이었다.
“이런 씨-!”
경보를 눌러! 라고 말하려던 초인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산타가 갑자기 상자에서 붉은 칼을 꺼내 그의 머리를 날려버린 탓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초인이 반사적으로 경보를 누르려던 순간.
탕! 탕!
통로 저편의 어둠 속에서 두 발의 총알이 더 날아왔다. 총알은 마치 샤프슈터로 쏜 것처럼 정확하게 초인의 팔과 머리를 날려버렸다.
그렇게 순식간에 초소를 지키던 초인들이 사망하고, 어둠 속에서 발소리가 들려오길 잠시.
어둠 속에서 투명 마법 특유의 일렁거림과 함께 다섯 명의 침입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 같이 태극기가 새겨진 매끈한 가면을 쓰고, 새하얀 최신 전투복을 입은 다섯 명의 남자들.
애국단.
각자 환도와 소총, 수류탄 등으로 무장한 그들은 아무 발소리도 없이 여명의 사정거리로 들어왔다.
조금 전 정확한 사격으로 초인을 제거한 애국단이 말했다.
“빨간 옷을 입고, 계급에 상관없이, 오직 선악에 따라 평등하게 재산을 나눠주는 사람… 퀴즈의 답은, 빨갱이군. 맞나?”
효창 공원에서 들었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변조된 목소리가 울린 다음 순간, 산타클로스로 변장한 빨갱이는 가면과 수염을 벗어 던졌다.
“정답이다.”
뻥 뚫린 남산의 지하 통로 앞에서, 붉은 별과 애국단이 서로를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