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583)
을 위한 세계는 없다-583화(583/817)
EP.583 목멱에는 바다가 없다. (8)
* * *
***
하얀 양.
세티 자매들의 큰 언니이자, 중등부 올림피아 실패를 이유로 한국 정부에게 ‘폐기’ 된 희생양.
지난번 가축우리를 습격 후 그녀가 살아 있단 사실을 알아냈지만, 세티와 자매들은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었다.
-희생양은 쓸모가 많으니까.
당장 같은 곳에서 하얀 양의 복제된 육체 쪼가리를 발견하지 않았던가?
죽은 줄 알았던 언니의 육체가 복제되고 있다….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았음에도, 자매들은 최악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리고 하얀 양이 적으로 나오는 건 최악 축에도 못 들었다.
-언니… 아니, 하얀 양이 나타나면, 망설이지 마.
세티의 조언은 진심이었다. 잠깐의 망설임이 얼마나 큰 문제로 이어지는지 알고 있는 여명은 그러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래서 하얀 양의 머리를 가진 양치기와 마주한 순간.
여명은 망설이지 않고 인민의 망치를 내려찍었다. 망치는 흉포하게 공기를 찢어발기며 하얀 양의 머리로 향했다.
다분히 감정적인 일격이었다. 그도 사람인지라, 구역질이 나는 걸 보면 자신도 모르게 힘이 실릴 수밖에 없었다.
까앙 – !!!
하얀 양은 아슬아슬하게 검을 휘둘러 망치를 막았다. 날카로운 충돌음 사이로, 여명은 상대의 전력을 읽어냈다.
‘…강하다.’
조금 전에 목을 벤 호랑이보다 두 끗발은 높은 수준.
10강급은 아니었지만, 쉽게 볼 수 없는 강자는 분명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뿐이었다.
‘빠르게 죽인다.’
여명은 짧은 분노와 함께 검을 휘둘렀다. 이런 게 눈앞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세티와 처제들을 향한 모욕처럼 느껴졌다.
번뜩이는 산의 눈물과 인민의 망치가 가속하고, 마치 폭풍처럼 양 머리를 압박했다.
환골탈태한 육체, 쌓아온 무술, 그리고 주가시빌리 속에서 불타는 푸른 귀화.
그 모든 것과 정면으로 마주한 양 머리는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검술에 대해 아는 자라면 감탄을 내뱉을 정도로 힘과 속도의 균형이 완벽한 검술이었다.
하지만 여명은 잘난 검술만으로 막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쩌엉, 쩌엉, 쩌엉 – !
양 머리는 반격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필사적으로 망치와 검을 쳐냈다. 조국이 특별히 하사한 특별한 검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목이 날아갔으리라.
-양을 도와라!!
아직 살아 있는 양치기들과 그녀를 따라온 양치기들이 죽음을 각오한 채 여명에게 뛰어들었다.
그리고 죽었다. 채 1초가 안 되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
하지만 그 모든 죽음이 무용한 것은 아니었다.
여명의 검에 양 머리가 토막 나기 직전, 간신히 재생을 끝마친 호랑이 머리가 싸움에 끼어들 수 있었으니까.
어흐흥 – !
머리뿐만 아니라 몸마저 인간을 벗어난 호랑이 머리는 포효와 함께 여명에게 달려들었다.
뒤틀린 마나와 함께 양복이 찢어질 정도로 부풀어 오른 몸, 핏발 선 눈, 번뜩이는 환두대도.
여명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그는 망치로 환두대도를 막고 양 머리의 검을 힘껏 차 날려버린 뒤, 달려드는 호랑이를 향해 허리를 꺾었다.
상체의 회전을 따라 검이 회전하고, 기다란 불씨가 꼬리를 이었다.
약식 화산쇄설.
불씨를 본 호랑이 머리는 이를 악물고 왼팔로 상체를 보호했다. 기사단장의 한국 비밀 기지 습격으로 불씨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뜻.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야말로 여명이 노림수였다.
푹! 그의 팔을 찌른 여명의 검은 폭발하지 않았다. 그 대신 차갑디차가운 급속 냉각 주문이 그의 혈관과 근육 사이로 파고 들었다.
그렇게 녀석의 몸이 냉동실의 수입육처럼 꽁꽁 얼어붙은 직후.
화산쇄설이 폭발했다.
!!!!
충격음과 함께 녀석의 상반신 왼쪽이 통째로 날아갔다. 마치 포탄에 직격 당한 것처럼 뼈와 내장을 드러낸 녀석은 끝까지 환두대도를 휘둘렀다.
커허헝!
호랑이 머리의 마지막 발악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었다. 여명이 녀석을 끝내지 못한 건, 그새 검을 휘두른 양 머리 때문이었다.
“개나 소나 변신질이군.”
여명은 양 머리의 검을 쳐내며 중얼거렸다. 그의 말마따나, 양 머리는 처음 등장할 때와 다른 모습이 되어있었다.
어깨 위로 한 쌍의 팔이 추가되어 있었고, 구두였던 신발은 발굽으로 변해있었으며, 몸 곳곳에서 작은 촉수 다발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치 인간의 몸에 수인과 괴수를 뒤섞은 듯한 모습.
변신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없이, 그녀의 어깨 위로 돋아난 새로운 손이 손바닥을 펴고 합장했다. 곧 요동치는 뒤틀린 마나 속에서 그녀가 소리쳤다. 주문이었다.
“조국을 침범한 자에게 죽음을!”
주문은 짧았고, 결과는 확실했다. 곧 공기가 찢어지며 여명이 서 있던 자리의 공간에서 커다란 가시가 솟아올랐다.
촤르륵 – ! 섬뜩한 소리와 함께 피어난 가시가 아슬아슬하게 여명의 어깨와 옷자락을 스쳤다.
가시를 피한 여명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양 머리가 사용한 주문이 마법보다는 신성에 가깝게 느껴져서?
아니, 양 머리의 목소리가 네티와 너무 비슷한 까닭이었다.
‘…시발.’
순간적인 분노 때문인가, 여명의 검이 흔들렸다. 그리고 양 머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팔이 네 개가 된 덕분에 그녀는 주문을 사용하면서도 검을 휘두를 수 있었고, 적극적으로 여명을 압박했다.
빈공간에서 튀어나오는 가시와 일류 수준의 검술.
이 세상이 게임이라면, 엿 같은 중간 보스가 나왔다며 성질을 냈을 정도로 살벌한 조합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은 게임이 아니었고, 플레이어는 죽었다. 그리고 중간 보스는-
‘왜 여기서 싸우지?’
여명은 문뜩,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호랑이 머리와 양 머리는 어째서 이곳에서 자신과 싸우고 있는가?
지도를 기억하는 여명은 알고 있었다. 이곳은 지킬 것도, 그렇다고 전투를 도와줄 뭔가도 없는 평범한 통로에 불과하다는 걸.
중간 보스는커녕 일반적인 양치기들조차 목숨을 걸 이유가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왜-?
답은 쉽게 떠올랐다. 마지노선.
여기를 넘어가면 남산의 전 중앙정보국 건물 지하로 이어지는 중앙 통로까지 직통으로 내려갈 수 있다.
그런데 중앙 통로의 보안 시설을 포기하면서까지 여기서 그를 막는다? 그곳에 평소와 다른 뭔가 있다는 뜻.
답을 찾은 여명은 곧바로 자신의 이름을 되뇌었다.
‘여명.’
곧, 하늘 위의 태양신이 그에게 반응했다. 하늘과 땅의 문을 열고 갑작스레 신성력이 쏟아지고, 곧 주가시빌리 사이로 정오의 태양이 피어났다.
번쩍!
강렬한 빛을 마주한 양 머리는 비명을 내질렀다. 타버린 눈의 시신경 때문인지, 아니면 신성에 타버린 뒤틀린 마나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둘 다 일지도. 여명은 신경 쓰지 않고 눈을 막은 채 발작하는 양 머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대로 손을 뻗어, 콰지직! 그녀의 어깨 위에 돋아난 손을 통째로 뜯어냈다. 애써 얽히던 주문이 사라지고, 그 뒤로 고통이 차올랐다.
“꺄아아악!!!”
그것은 소리쳤다. 그를 사랑하는 처제들과 비슷한 목소리로.
여명은 원래 계획대로 팔 하나를 더 뽑아버릴까 하다가, 그냥 양 머리의 턱을 멱살을 붙잡고 들어 올렸다.
다른 자매들과 달리 가녀린 그것은 팔다리를 흔들며 그에게 저항했다.
“죽어, 조국의 적! 죽어!!!”
여명은 그녀가 휘두르는 주먹을 가만히 맞아주다가, 양손에 주와이외즈를 일으켰다.
화르륵!!! 양 머리는 눈코입에서 비명 대신 불길을 토해냈다. 살가죽이 까맣게 탄화되며 두개골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대로 양 머리를 태워버린 여명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두개골은 사람이 아니라 진짜 양의 그것이었으니까.
“….”
툭. 머리가 타버린 시체를 내려놓은 여명은 쓴디 쓴 침을 삼켰다. 언젠가 진짜 하얀 양을 만나게 될 거란 불길한 느낌이 그의 등허리를 쓸고 넘어갔으므로.
하지만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었다. 여명은 수십 양치기들의 시체를 뒤로한 채 다시 통로 아래로 내달렸다.
타버린 어둠 속으로 그의 발소리가 멀어지길 잠시.
아직 끈질긴 목숨을 부지하고 있던 호랑이 가면이 벌벌 떨며 손을 들었다.
“조국, 을… 위하, 여….”
그는 자신의 심장을 찔렀다. 삐이이-들리지 않는 이명과 함께, 그의 생체 신호가 끊긴 직후.
쿠구궁…!!!
남산 통로 전체가 전율했다. 코드0000이 발동되는 순간이었다.
***
남산, 전 중앙 정보국 건물이 보이는 나무 위.
투명 망토를 뒤집어쓴 박철은 입맛을 다셨다. 남산이 너무 조용한 까닭이었다.
작전이 시작된 지가 언제인데, 이리도 조용하단 말인가?
차라리 올림피아 경기장 쪽에서 들리는 응원 소리가 더 크게 들릴 정도였다.
‘역시 밖에서는 볼 게 없나.’
뭐,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은 알았다. 기사란 현장감이 가장 중요한 법.
지하 통로에서 벌어지는 참상이나 죄악을 밖에서 온전히 담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도 여명은 ‘도망 나오는 관련자들과 급파된 군인들을 찍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며 그를 위로했다.
정론이었다. 뭐라 반박할 수 없는 정론.
누구 아래에서 자란 건지, 가끔 녀석이 자신보다 어른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장만 어르신은 아니라는데, 대체 누구일까?
형이 살아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컸다면 딱 녀석만 한 나이일 텐데. 어쩌면 형과 비슷한 아버지 아래에서 자랐을 가능성이…
그때, 박철의 시야로 뭔가가 보였다. 그는 카메라를 들어 줌을 당겼다.
건물로 진입하는 검은 방탄 차량들… 문제는 그 방탄 차량에 새겨진 휘장이었다.
무궁화를 둘러싼 봉황.
그건 대통령과 전 대통령들을 경호하는 경무대 경찰서의 상징이었다.
설마, 저 지하에 대통령급 인물이 있는 건가? 아니면 단순히 긴급 출동한 병력인 걸까.
어느 쪽이건 알 수 없었다. 박철은 사진을 몇 장 찍은 뒤, 나무에서 내려와 촬영 장소를 바꿨다.
그리고 남산 숲길과 산자락을 거닐길 잠시.
그는 다른 통로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카메라를 들었다.
들려고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낯선 목소리가 그의 귀를 찔렀다.
-퇴로 확보는?
-현재 제2출입구는 완전히 막혔습니다.
-제기랄, 하필 VIP님들께서 ‘시술’을 받는 날에 이런 일이….
박철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총을 든 일단의 군인들이 보였다. 박철은 숨을 참았다. 다행히 그를 발견하지 못 한 군인들은 다른 통로가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살았… 아니, VIP?’
이쪽 분야에서 VIP라면 하나뿐이었다. 대통령. 그리고 조금 전 입구에서 본 경무대 경찰서를 떠올려 보면…
‘지하에 대통령이 있다?’
박철은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 만약 이 난리 속에서 대통령을 찍으면 어떨까?
두말할 것도 없이 대박이었다. 이 정부가 썩었다는 절대적인 증거가 되리라.
물론, 그렇다고 지하로 내려갈 생각은 없었다. 지하에서 내려오는 장면만 찍으면 충분했으니까.
문제는, 지하 통로 입구가 세 개나 된다는 건데…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미리 준비해 둔 군용 무전기를 꺼내 동료에게 무전을 보냈다.
“아, 아, 여기는 박 기자. 아가씨. 지금 연락 가능합니까?”
그러자 무전기 너머에서 앳된 소녀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여기는 루돌프. 연락 가능합니다.
“…루돌프?”
-산타 가는 길에는 당연히 루돌… 아니, 그냥 코드네임이에요. 아무튼,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박 기자는 당장 자신이 봤던 것과 계획을 설명했다. 대통령이 있는 거 같은데, 남산 통로 입구에 비밀리에 카메라 몇 개를 설치하고 싶다-검색
네티, 아니 루돌프의 대답은 긍정이었다.
-좋은 생각이네요. 첫 통로는 형부가 막아 놨을 거고, 옛날 중정 건물은 기자님이 직접 찍으시면 되니까… 한곳에만 설치하면 되죠?
“그래, 성물이 아니어도 대통령 얼굴을 못 알아볼 리는 없으니까… 와서 좀 도와줄래?”
무전을 끊고 잠시 후, 루돌프가 도착했다.
투명 망토를 벗은 그녀의 손에는 예비용 카메라와 뭐에 쓰는 건지 알 수 없는 파편 수류탄이 들려 있었다.
“…수류탄은 왜 가지고 왔니?”
“카메라가 걸렸을 경우도 대비해야죠.”
부비트랩용이었나. 요즘 애들은 군사 지식이 참 뛰어나네-애써 현실에서 눈을 돌린 박 기자와 루돌프는 다시 투명 망토를 뒤집어쓰고 가까운 통로 입구로 향했다.
다행히 가는 길에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운이 좋네. 목적지에 도착한 박 기자는 통로가 잘 찍히는 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루돌프가 뒤이어 카메라 주변에 부비트랩을 설치했다.
“여기에 고리를 묶으면… 끝! 자,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죠.”
훌륭하게 설치를 마친 두 사람은 그대로 등을 돌렸다. 하지만 박 기자가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루돌프가 다시 걸음을 돌렸다.
“이런 젠장, 아저씨! 피해요!”
박철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지 못했다. 네티가 그의 투명 망토와 목덜미를 동시에 붙잡아 뒤로 날렸으므로.
허공에 붕-떠오른 박철의 시야로, 네티가 갑자기 그를 집어던진 이유가 보였다.
꿈틀거리는 검은 아지랑이.
마치 어린아이가 끄적거린 악몽처럼 꿈틀거리는 아지랑이 위로는 눈과 코, 그리고 흉측한 이빨이 달린 입이 계속 부글거리고 있었다.
시발, 저건 또 뭐야.
기겁한 박철이 땅에 추락한 시점에서, 네티가 허리춤에서 손바닥만 한 봉을 꺼냈다. 박철은 한 번 더 기겁했다.
[오, 처녀여! 내가 그대를 지키겠노라!]유니콘의 뿔은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네티의 앞에 보호막을 펼쳤다. 곧, 아지랑이의 이빨이 보호막을 깨물며 서걱서걱-소름 끼치는 마찰음을 냈다.
“이 호로 잡놈이!”
네티는 허리춤에서 기관단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 – !! 9×19mm 파라벨럼 탄에 맞은 아지랑이는 끔찍한 비명과 함께 흩어졌다.
“역시 현대 화기가 최고라니… 아, 젠장.”
탄창을 장전하던 네티의 앞으로, 조금 전과 똑같은 아지랑이 두 덩어리가 피어올랐다.
네티는 총알을 낭비하는 대신 염동력으로 두 아지랑이를 콱! 조여 터트려 버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열 개가 넘는 아지랑이가… 아니, 수십 개가 넘는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전세 역전이었다.
꺄아아아악!!!
하늘을 메운 아지랑이들은 끔찍한 비명과 함께 보호막을 두들겼다. 네티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며 중얼거렸다.
“젠장, 이게 대체 뭐야?”
그냥 투덜거림에 가까운 말이었으나, 의외로 대답이 돌아왔다.
[결계를 지키는 악령 같노라. 아마 저 지하 통로에 가까이에 온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듯하다.]“결계요? 하지만 지하 통로에 그런 건….”
그 순간, 지하 통로에서 한 번 더 울컥-아지랑이가 튀어나왔다. 네티는 박철과 아지랑이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잡는 방법은?”
[악령을 더 이상 만들 수 없을 정도로 파괴하거나, 결계로 침투하는 방법밖에 없노라.]“도망치는 건 안 돼요?”
[내가 아는 것과 같다면, 불가능하노라. 결계가 끝날 때까지 그대를 끝까지 쫓아올 것이다.]염병. 중화기를 놓고 온 게 실수였다. 남산 공원까지만 가면 되는데…
“저거 저 말고 다른 인간 보면 공격하죠?”
[저 동정이 공격당한 것을 보았잖느냐.]“알아요. 그냥 혹시 몰라서 물어본 거… 아, 박 기자님 동정 여부는 별로 알고 싶지 않았는데. 이혼남 아니었어요?”
쓰읍, 농담 같은 말을 꺼낸 네티는 침을 삼켰다. 이대로 남산 공원까지 가면 무수한 민간인들이 휘말려 죽으리라.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뿐.
“결계로 들어가면 안 쫓아오는 거 맞아요? 정상이면 못 들어오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저것의 목적은 목격자를 죽이는 것. 내부로 들어가는 건 막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저런 악령을 뿜어내는 결계 내부는… 지옥일 테니.]“이야, 진짜 힘이 되는 조언이네요.”
[처녀여, 아무리 끔찍해도 진실은 진실이다.]“이번 대 성녀랑 엘프 공주가 처녀가 아닌 것처럼?”
피를 토하는 것처럼 비명을 질렀음에도, 유니콘의 보호막은 아직 굳건했다. 얼마나 더 갈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떻게 할지 선택한 네티는 박 기자를 향해 소리쳤다.
“박 기자님! 지금 죽으실래요? 아니면 나중에 죽으실래요?”
“뭐?”
“나중에 죽겠다구요? 좋아요!”
“자, 잠깐!”
네티는 박 기자를 염동력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지하 통로 입구로 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