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587)
을 위한 세계는 없다-587화(587/817)
EP.587 목멱에는 바다가 없다. (12)
* * *
***
낙법을 잘못 친 박철 기자가 허리를 붙잡고 끙끙거리는 소리를 배경 삼아 침묵이 이어지길 잠시.
전 부장이 네티를 보며 중얼거렸다.
“푸른… 양? 형부…?”
아.
처제를 받아든 여명은 물론이고, 네티 또한 그제야 무슨 말실수를 했는지 깨달았다.
하나만 남은 전 부장의 머리가 여명을 향하길 찰나.
“너, 설마… 천여-”
아쉽게도 전 부장의 깨달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파지직!!붉게 물든 여명의 눈동자에서 한줄기 광선이 뿜어져 나와 그의 머리를 통째로 녹여버렸으니까.
자신의 말실수로 모든 게 탄로 난 줄 알았던 네티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여명은 짧게 말했다.
“목격자가 없으면, 유출도 없지.”
“….”
탁탁, 전 부장의 잿가루를 발로 밀어내는 여명을 보며 네티는 자기도 모르게 킥, 웃어 버렸다.
물론,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녀를 땅에 내려주자마자, 여명이 딱! 이마에 딱밤을 먹인 까닭이었다.
“내가 여기 들어오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네티는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
“아 그게….”
네티는 박 기자를 향해 도움의 시선을 보냈다. 여명이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아직도 허리를 문지르고 있는 박철이 보였다.
박철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내 기자 경력을 걸고, 이건 불의의 사고였네.”
“….”
쓴웃음을 삼킨 여명은 슬쩍 전 부장이 연 차원문을 확인했다. 검은 구멍들은 전 부장의 몸과 머리가 재가 되었음에도 계속 점액질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머리를 굴린 여명은, 두 사람에게 피눈물의 환상을 덮어주며 말했다.
“처제, 일단 이 복도를 따라서 나가. 가면 발에 대못이 박힌 전 대통령들이 있는 방이 있을 거야. 거기서 조금만 버티고 있어.”
“전 대통령들…?? 잠깐, 그러면 형부는요?”
“여기서 처리할 게 있어.”
여명은 흘러내리는 점액질 너머의 문을 보며 말했다. 네티는 그 이상 질문하지 않고 박철 기자를 염동력으로 띄우며 말했다.
“몸조심하세요.”
“처제도.”
그렇게 네티는 복도 저편으로 달려갔다. ‘염동력을 쓸 거면 떨어지기 전에 좀 써주지 그랬냐’ 는 박철의 투덜거림이 멀어지길 잠시.
여명은 황금 옥새를 꺼내 마지막 방의 문을 비췄다.
번쩍!
금빛 마법진은 철문을 휘감았으나, 평소처럼 문을 열진 못했다.
철문 위로 보랏빛 마법진들이 우수수 피어나더니, 옥새의 마법진을 밀어내려 했으니까.
역시, 평범한 방은 아니군.
여명은 옥새에 한껏 더 마나를 불어넣었다.
화아악-! 마법진이 크게 부풀어 오르고, 그가 약간의 탈진감을 느낄 정도로 많은 마나를 불어넣고 나서야, 문의 잠금이 열렸다.
그렇게 열린 문틈 너머로는 어둠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형광등조차 켜놓지 않은 건가?
여명은 어깨 위로 흘러내리는 점액질 사이를 뚫고 방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그를 반겨준 것은 건조한 먼지의 냄새였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을 때 나는 냄새였다.
‘…뭐 하는 방이지?’
의아함을 삼킨 여명은 곧바로 검을 들고 검기를 일으켰다.
번쩍! 빛이 어둠을 가르자, 그 사이로 복잡한 뭔가가 드러났다.
벽면을 가득 채운 마법진.
그건 마법에 능하지 않은 여명조차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고, 복잡한 마법진이었다.
대체 왜 벙커 깊숙한 곳에 이런 걸 만든 거지?
의문과 함께 마법진을 비추던 여명은 문뜩, 마법진의 어떤 ‘선’들이 방 밖으로 이어지는 걸 확인했다.
각각 남과 북으로 이어진 선들은 주변의 마법진들보다 더 진한 마나를 머금고 있었는데, 아마 외부의 마나를 끌어오는 역할인 듯했다.
외부의 마나를 끌어와서 대체 뭘—
선을 따라 검을 움직이던 여명은 움찔, 손을 멈췄다.
방의 중앙에 놓인 세 개의 보석 때문이었다.
각성의 물약처럼 영롱한 보랏빛을 머금은 구슬과 창백한 빛을 머금은 다이아몬드, 그리고…
“…세계수의 조각.”
한데, 세계수의 조각은 여명과 공명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럽혀져 있었다.
원래 반투명한 민트색으로 빛나야 할 조각 곳곳에는 먹물처럼 검은 물이 들어 있었다.
대체 이게 뭐지? 보석들은 확인하던 여명은 문뜩, 작은 홈 하나를 더 발견했다.
익숙한 홈이었다. 그래,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호주에서 ‘피를 흘리는 자’가 만들었던 검붉은 보석이 딱 들어맞는 크기의 홈이었으니까.
그때, 인벤토리 내부에 잠든 보석이 꿈틀거렸다. 마치, 저 홈이 자신의 자리라는 것처럼.
딱 봐도 심상치 않은 물건이었다.
애국단이 이걸 처리해 달라고 한 걸 보면 녀석들은 이것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뜻인데….
여명은 일단 보석을 챙기기로 했다. 우선 구슬을 챙겨 인벤토리에 쑤셔 넣은 뒤, 다이아몬드를 집-
-지 못했다.
누군가의 손이 먼저 턱-! 다이아몬드를 집은 까닭이었다. 어리고 창백한 손이었다. 여명은 검을 들어 상대를 확인했다.
“….”
그의 맞은편에는 사람 대신 작은 차원문이 열려 있었다. 성인이 겨우 팔을 꺼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기껏해야 찌개 냄비만 한 차원문.
그리고 그 차원문 너머에는, 안대를 찬 새하얀 소년이 손을 뻗고 있었다.
진실을 흘리는 자.
다이아몬드를 꽉 쥔 녀석은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붉은 별. 저는….”
여명은 주저하지 않고 검을 찔렀다. 녀석에게 지껄일 시간을 주지 않을 생각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다이아몬드를 빼앗기 위해서였다.
“어이쿠, 도둑이 아니라 강도셨네.”
그러나 여명의 검은 녀석을 꿰뚫지 못했다. 아니, 찔렀지만 찔리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진실은 공격을 무효화 하는 뭔가를 사용했다.
분명 살을 찌른 여명의 검은 허공에서 멈췄고, 진실은 다이아몬드를 챙긴 채 차원문 너머로 쏙 손을 집어넣었다.
“저기, 빨갱이 씨? 될 수 있으면 가져간 보석도 돌려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저희에게는 중요한 물건이라서요.”
녀석의 말과 동시에, 방 곳곳에서 작은 차원문들이 우수수 열렸다. 전 부장이 열었던 차원문과 비교해서 확연히 작은 차원문들.
여명은 차원문 사이로 흐릿하게 지나가는 아야톨라를 보며 말했다.
“글쎄, 네놈 모가지를 내놓으면 생각해 보지.”
“하하, 그건 안 됩니다. 제 목은 비싸거든요.”
“그래? 그럼 팔은 별로 안 비싼가 보지? 마탑의 처형관들에게 그렇게 쉽게 내어준 걸 보면.”
여명은 오염된 세계수의 결정을 힐끗거리며 말했다. 조금 전 격돌의 충격으로 떨어진 결정은 대략 1미터 정도 떨어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그의 조롱이 잘 먹힌 건지, 진실을 흘리는 자의 목소리가 격해졌다.
“…지금 뭐라고 했냐?”
“팔만 없는 줄 알았는데, 사실 귀도 막혔었나?”
“….”
슬쩍 염동력을 일으키고, 세계수의 결정을 겨눴다. 짧은 심호흡, 은밀히 움직이는 마나.
여명은 마지막 조롱을 던졌다.
“개성이 그리도 강해서야. 이제 성녀 짝퉁 소리도 못 하겠군.”
“뭐? 누구 짝퉁? 이 엿 같은 빨갱이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못 하는 소리가 없….”
녀석이 대답하는 찰나, 여명은 염동력을 사용해 세계수의 결정을 붙잡았다.
그리고 결정을 끌어당기려는 순간.
턱-작원 차원문 사이로 누군가 팔을 내밀어 결정을 붙잡았다.
“이런 간단한 도발에 넘어가지 마라. 진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속을 들끓게하는 권능이 담긴 목소리.
눈물을 흘리는 자.
비록 팔만 내밀 수 있다지만, 아야톨라가 둘이나 나타나다니.
녀석들이 오기 전에 벙커에서 탈출한다는 계획이 어그러진 걸 확신한 여명이 눈살을 찌푸리는 사이, 눈물이 말했다.
“조롱의 대가는 구슬을 회수한 뒤에 돌려줘도 늦지 않으니….”
“….”
“…어디, 피를 죽인 실력을 보지. 붉은 별.”
다음 순간, 녀석이 차원문 너머로 내민 손을 쥐었다.
***
“안 좋은 예감이 드는군.”
애국단원 중 하나가 괴수 군인을 베며 중얼거렸다. 곧 그의 옆에서 검을 휘두르던 다른 애국단이 맞받아쳤다.
“당연히 안 좋은 예감이 들지. 대장이 전 부장을 놓치지 않았나.”
“….”
그러자 소총의 탄창을 갈고 있던 ‘대장’이 변명처럼 중얼거렸다.
“괴수 세포를 이식했을 거라곤 생각 못 했다. 설마 심장이 뚫려도 살아남을 줄이야.”
“그건 그렇….”
그때, 그들의 머리 위로 쩌억-검은 차원문이 열렸다. 처음 말을 꺼냈던 애국단원이 허탈하게 말했다.
“진짜 안 좋은 일이 생기네.”
“괜찮다. 벙커 내부를 연결하는 차원문이다. 기껏해야 점액질이나-”
대장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차원문 저편에서 들려온 작은 울음소리들 때문에.
꿀꿀, 메에에—
브레멘 음악대가 떠오르는 두억시니의 목소리. 애국단원은 피식 웃었다.
“하, 인생 진짜.”
“투덜거릴 시간에 준비나 해라!”
그렇게 소리친 대장은 허리춤에서 신호탄을 꺼내 터트렸다.
푸쉬이이-펑!
붉은 아지랑이에 휩싸인 벙커 내부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하얀 섬광.
그 섬광을 본 KGB 요원들은 대통령 경호원과 안기부 요원 등 한국인과 싸우던 일을 그만두고 뒤로 물러났다.
후퇴? 아니, 인공 성물을 발동하기 위해서.
“전원! 성물을 사용해라!”
성물의 힘을 개방한 그들의 몸에서 촉수가 우수수 솟아나는 가운데, 차원문에서 점액질의 폭포가 흘러내렸다.
시체와 양치기의 머리를 가득 단 점액질, 두억시니였다.
“한국은 진짜 전장에서 써먹지도 못할 물건들을 참 많이도 만들어 냈군.”
킴 필비는 두억시니를 보며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레닌 훈장을 개방해 대통령 경호원을 단번에 때려죽인 그가 보기에, 두억시니고 괴물 군인이고 전부 인공 성물의 조잡한 모방품에 불과했으니까.
군대의 첫 번째 적은 누가 뭐래도 예산인 법이거늘.
이렇게 돈값 못하는 것들을 왜 찍어냈을까?
검색
다른 무언가를 개발하다가 곁다리로 만든 게 아니고서야, 이게 낭비라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그의 의문이 길어지려는 찰나, 두억시니 여섯 마리와 아지랑이로 이루어진 괴물들이 차원문 아래 착지했다.
-아악!
-저리가! 저리 가라고!
-시발, 시발!
두억시니와 아지랑이 괴물들은 피아구분 따윈 하지 않았다. 녀석들은 가장 가까운 한국군과 애국단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며 벙커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전부 모여! 한 마리씩 화력을 집중해 수를 줄인다!”
킴 필비의 명령을 따라 KGB 요원들이 애국단 곁으로 집결했다. 머릿수는 고작 열두 명에 불과했지만, 그들에게 패배의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능숙하게 두억시니와 아지랑이 괴물들을 상대했다.
인공 성물을 장착한 요원들 또한… 아니, 그 이상의 괴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두억시니 두 마리를 처치할 때쯤.
애국단 대장과 킴 필비는 동시에 멈칫, 정지했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뒤로 물러난 뒤,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시선 끝에 있는 건 조금 전에 열린 작디작은 차원문이었다.
정확히는, 얼굴의 반밖에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차원문 너머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보랏빛 눈동자를 가진 그는 덤덤하게 킴 필비와 애국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쯧.”
그가 혀를 찬 순간. 숨 막힐 정도로 섬뜩한 침묵이 벙커를 휘감았다.
두억시니도, 애국단도, 아직 살아있는 한국군도-벙커에 있는 모두가 입을 다물고 보랏빛 눈동자를 바라봤다.
그리고 침묵이 모두의 심장을 갈가리 찢어버리기 직전- ‘대장’이 입을 열었다.
“허무를… 흘리는 자?”
보랏빛 눈동자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얼굴을 뒤로 하고, 차원문 너머로 팔을 내밀었을 뿐.
그건 ‘천벌’을 펼치기 위한 준비 자세였다. 킴 필비와 대장은 동시에 외쳤다.
“제기랄, 피해!”
“반마법장! 최대로!!”
***
네티와 박 기자는 VIP룸에 도착하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얇은 천 하나만 입은 젊은 여자들과 파이프로 연결된 노인들이 곳곳에서 신음하는 광경이라니.
어우, 시발.
초현실주의 작가가 그린 최악의 포르노 같은 풍경이었다. 눈살을 잔뜩 찌푸린 네티는 박철 기자를 내려놓고 노인네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이승백 전 대통령과 김만일 전 대통령, 정두박 전 총리, 전 국방부 장관 등등…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알아볼 노인네들이 거기에 있었다. 파이프가 연결된 자리를 보면 이번이 한 번도 아닌 듯했다.
사회의 쓰레기들 같으니.
네티는 당장이라도 때려죽이고 싶은 욕망을 참은 채 노인들에게 다가갔다. 끙끙거리던 노인들은 그녀를 보자마자 살려달라고 아우성쳤다.
“어, 어서 이 못을 뽑아라! 미친 빨갱이가 도, 돌아오기 전에 날 구해!”
“나부터 구해! 손바닥에 못이 박힌 나랑 달리 저 노인네는 어차피 발에 박혀서 걷지도 못해!”
그중에서 이승백 대통령과 김만일 대통령의 목소리가 제일 컸다.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무례한 어린놈이니,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느니 싸우는 꼴을 보던 네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부르주아지들이 싸우는 꼴이 우습기 그지없군 기래.”
“…뭐, 뭣?”
“국민의 피를 빤 흡혈귀들! 너희는 스탈린 동지가 흡혈귀들에게 그러했듯 인민의 심판을 받을 기야! 알갔서?”
네티의 빨갱이 연기가 잘 먹힌 것일까. 이승백 대통령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이년! 감히 빨갱이가 나를 능욕해?! 내 반드시 네년을 돼지 우리에 처넣을 것이다!!”
“하!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보시지! 이 부르주아 돼지야!”
그녀가 이승백의 대못을 뽑으며 대답하자, 이승백이 비명을 질렀다.
‘이거 재밌네.’
하지만 안타깝게도, 네티의 소소한 빨갱이 놀이는 거기까지였다.
여태껏 조용히 있던 박철 기자가, 몸을 벌벌 떨며 김만일에게 다가갔으니까.
“기, 김만일…?”
“내, 내게 다가오지 마!”
김만일 대통령이 손바닥에 박힌 대못을 쥐고 발악하길 잠시. 대통령 앞으로 다가간 박철은 대통령의 멱살을 콱! 붙잡았다.
“다, 당신이 왜 여깄어? 왜 여기서 이, 이 여자들의 피를 빨고 있어?”
“뭐, 뭣?”
“당신은 민주화 투사잖아! 가족까지 버려가며 민주화 운동을 이끈 정치인!! 아무리 정부가 타락했다지만, 당신은 거부했어야지! 어쩔 수 없이 정부에 협조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주는 피와 살을 받고 있어???”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김만일이 당황하건 말건, 박철은 더욱 크게 소리쳤다.
“개성 시위에서, 당신을 위해 수백 명이 죽었어!!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그제야 뭔가를 깨달은 걸까, 김만일은 미간을 구기며 대답했다.
“나, 난 그들을 위해 민주화를 가져다줬다. 뭘 더 바라는 거냐?”
“민주화? 이게 민주화냐??”
“투표로 지도자를 뽑는다! 이게 민주화가 아니면 무엇이냐? 고결함이나, 이상론을 말하는 거라면 때려치워라, 민주주의는 그렇게 고상한 물건이 아니니까!”
김만일의 일갈에 충격을 받은 걸까. 박철의 얼굴이 새하얗게 탈색되었다. 네티가 무어라 그를 막으려 했지만, 박철은 입술을 덜덜 떨며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박규철… 기억하나?”
“누구?”
“개성에서… 너, 너 대신 시위대에게 발포한 군인의 총알을 막은 청년 기자! 널 위해 가장 먼저 죽은 박규철! 기억하냐고!!”
그가 멱살을 흔들자, 김만일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른다. 몰라! 그날 나를 위해 죽은 사람이 족히 백 단위다. 그깟 학생 기자 이름 한 명까지 내가 어떻게 알겠-”
그의 대답은 그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퍼억!! 박철의 카메라가 그의 아구창을 후려친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