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593)
을 위한 세계는 없다-593화(593/817)
EP.593 목멱에는 바다가 없다. (17)
* * *
언제부터, 어떻게-
김강혁 장관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질문이 동시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조금 뒤, 그의 입에서 나온 질문은 이것이었다.
“어째서?”
너무나 많은 말과 뜻이 함축된 질문. 그러나 여명은 단 한마디로 대답했다.
“이 나라가 내 가족을 죽였습니다. 잔인하고, 추악하게.”
“….”
복수. 그건 누군가에겐 무엇보다도 중요한 동기였다. 부와 명예, 그리고 미래를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동기.
곧, 여명이 그의 가면을 보며 물었다.
“이번에는 제가 역으로 묻겠습니다. 당신은 왜 여기에 있습니까?”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많은 뜻이 함축된 질문이었다.
그는 한국 정부의 음지를 지배하는 삼 장관 중 하나였다. 모든 군인들이 고개를 조아리는 국방부 장관이었고, 원한다면 온갖 부귀영화와 그보다 더한 쾌락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왜.
그런 권력자가 태극기 가면을 쓰고 이런 곳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가?
장관은 대답 대신 머리 뒤로 손을 가져갔다. 달깍, 가면을 고정한 끈을 잡아 푼 그는 가면을 벗었다.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이 여명과 마주했다.
차가운 그의 눈동자 속에는 저번에 본 적 없는 감정이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불을 감싼 얼음처럼.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
“….”
너무나 짧고, 간략한 대답.
정의나, 애국심에 관한 일장 연설을 예상하고 있던 여명은 살짝 놀랐다. 그사이 장관은 자신의 태극기 가면을 네티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인식용 마이크로칩이 들어있는 가면이다. 가져가라.”
네티가 가면을 챙기며 물었다.
“마이크로칩? 무슨 용도죠?”
“국방부의 거의 모든 전자 보안을 무력화할 수 있는 칩이다.”
“….”
“이걸 어떻게 사용할지는 너의 자유지만, 일단은 도주용으로 사용해라. 지금 당장 벙커 바깥으로 나가 매봉산 방향으로 내려가면, 대기 중인 소형 청소 트럭이 있을 거다. 운전석에 청소부 복이 준비되어 있으니, 옷을 갈아입고 칩을 이용해 군의 포위망을 넘어라. 알겠나?”
그렇게 자기 가면을 넘긴 김강혁 장관은 등을 돌리며 덧붙였다.
“천여명, 너에게 일어난 일은 유감이다. 부디, 합당한 복수를 이룰 수 있기를 바라마.”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김강혁은 어떠한 요구도 없이 애국단원들을 이끌고 다시 공희가 진행 중인 마법진으로 향했다.
하지만 몇 걸음 가기도 전에, 여명의 목소리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방금, 마미에게 남은 방법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
“실패할 걸 알면서도, 죽으러 가는 겁니까?”
그러자 발을 멈춘 장관은 점점 더 진해지는 마법진의 보랏빛과 여명을 번갈아 보며 대답했다.
“아니, 가능성은 있다. 네가 조금 전에 말해준 정보 덕분에 방법을 찾았다.”
정보? 여명은 설마 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고, 장관은 그 설마를 입에 담았다.
“한 번 시작된 공희는 희생 없이 멈출 수 없다… 다시 말하자면, 희생이 있다면 멈출 수 있다는 뜻이지.”
“….”
죽음을 각오한 말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오만한 말이기도 했다.
상식적으로, 백만 명의 목숨이 걸린 마법진을 고작 다섯 명의 희생으로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장관이라고 그걸 모르지는 않을 터. 여명이 답답한 마음으로 무어라 말하려는데, 느닷없이 박 기자가 끼어들었다.
“장관! 그러지 말고 우리랑 같이 후퇴합시다.”
“너는…?”
“나는 박철입니다. 멍청하게나마 기자로 밥 벌어먹고 있는 인간입죠. 하지만 장관, 내가 아무리 멍청해도 한 가지는 알겠습니다. 당신은 여기서 이렇게 죽으면 안 되는 사람입니다.”
박철은 카메라를 꽉 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당신 대신 희생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살아서 나갑시다. 이 나라에 필요한 건 당신처럼 뜻있는 정치인입니다!”
그러자 장관은 웃는 건지, 인상을 찌푸리는 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여명을 바라봤다.
“그렇다는군, 어떻게 생각하나?”
여명은 대답 대신 염동력을 일으켜 짝! 박철의 뺨을 때렸다.
졸지에 고개가 돌아간 박철이 놀란 눈을 하건 말건, 여명은 장관을 향해 다른 말을 꺼냈다.
“가서 정확히 뭘 하실 겁니까?”
“오염된 세계수 결정에 제물을 바칠 거다.”
“…제물??”
“확실하진 않지만, 저 마법진을 발동한 건 교단의 희생 주술일 거다. 직접 제물을 먹이는 순간에 마법진의 방어가 약해지는 타입이지.”
“….”
“충분히 약해진다면, 남은 사람들이 공희를 멈출 수 있을 거다.”
“만약… 충분히 약해지지 않는다면요?”
“실패하겠지.”
자신과 동료를 제물로 사용하겠다는 것치고는 너무나 덤덤한 말투였다.
네티가 여명의 팔뚝을 꽉 붙잡는 가운데, 여명은 참고 있던 물음을 꺼냈다.
“다섯 명으로… 백만 명을 먹어 치우는 마법진을 막을 수 있긴 합니까?”
“막아야지.”
막을 수 있다, 없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가능성 따윈 이미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하긴, 그러니 장관 자리에서 반역을 준비할 수 있는 거겠지.
어째서일까, 여명은 장관에게서 기사단장과 산초, 그리고 두메아 가주가 지니고 있던 무언가를 느꼈다.
어쩌면 그가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니, 하다못해 각하를 위해 키워진 인간이 아니었다면?
음울한 상상이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음이니, 되돌릴 수 있는 건 없었다.
역사와 시간은 인간의 감정을 모르고, 그저 앞으로 향해 착실히 나아갈 뿐.
하지만 적어도, 사람은 나아갈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그래, 지금의 여명은 개죽음이 아닌 다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다.
애국단의 면면을 바라보던 여명은,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바꾸기로 인벤토리를 열며 물었다.
“공희를 막기 위한 제물… 사람 말고 다른 것도 넣을 수 있습니까?”
“다른 것?”
여명은 대답 대신 손을 펼쳤다. 그의 손에는 번뜩이는 검은 보석이 들려 있었다.
***
타락석.
교단이 사람들을 제물로 바쳐 만든다고 알려진 뒤틀린 마나의 결정.
강령술과 흑마법 등 온갖 사악한 마법을 발동하는데 최고의 촉매로 불리는 그것은, 제물로 사용한 사람의 숫자에 따라 크기가 결정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여명이 그동안 모아온 타락석 조각에 들어간 사람은 얼마나 될까?
황금 씨족의 수인, 이복순에게 빼앗은 타락석을 시작으로 자잘한 타락석 조각을 모두 합치면 적어도-
“…천 명 이상.”
장관의 계산을 들은 여명은 눈살을 찌푸려야했다. 고작 이만한 타락석들을 만드는데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희생됐다고?
하지만 충격은 충격이고, 현실은 현실이었다.
천명 분의 타락석은, 백만 명분의 공희를 막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장관과 애국단의 생각은 달랐다. 처음부터 목숨을 걸고 있던 그들에겐 성공 확률이 올라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잠시 후,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법진 앞으로 돌아온 마미가 말했다.
“제물로 쓸 타락석과 아홉 명, 그리고 10강급 초인이라, 해볼 만하겠소.”
그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법진 정중앙의 오염된 결정이 보랏빛으로 번뜩였다.
그때, 뭔가 이상함을 느낀 네티가 물었다.
“아홉이요?”
애국단은 다섯 아닌가? 그러자 여태껏 한 번도 입을 연 적 없는 애국단이 무언가를 질질 끌고 오며 말했다.
“전 대통령을 비롯한 쓰레기 VIP 넷.”
그의 손에는 김만일을 비롯한 전 대통령들이 붙잡혀 있었다. 그들이 살려달라고 빌건 말건, 네티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연결된 여자들은… 어떻게 하죠?”
전 대통령들의 몸에 연결되어 젊은 피와 담즙을 빨리고 있는 여자들.
여태껏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그녀들을 보며 네티의 눈이 착잡해졌으나, 이어진 애국단의 설명은 그녀의 상상보다 훨씬 더 잔인했다.
“이 여인들은 약물 생산용으로 개조되는 과정에서 전두엽을 비롯한 뇌의 중요 부분이 제거되었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그녀들에게 줄 수 있는 건 안식뿐이다.”
“….”
“하지만 그전에, 자신들의 피를 빨아먹은 개새끼들이 죽는 모습은 보여줄 수 있겠지.”
그렇게 말한 애국단원은 여인들의 몸에서 파이프를 뽑아낸 뒤, 전 대통령들만 따로 질질 끌고 마법진으로 향했다.
“김 장관! 천여명! 제발 살려주게! 내, 내 전 재산을 주겠네! 비자금을 싹싹 긁어모으면 자네들도 아쉽지 않을 걸세! 도, 돈 말고 다른 게 필요하다면 뭐든 들어주겠네!”
김만일이 애처로울 정도로 구걸한 덕분일까? 장관이 대통령을 끌고 오던 애국단을 멈췄다.
살았다고 생각한 김만일이 고맙다는 말을 꺼내려는 순간.
김강혁 장관이 여명에게 물었다.
“이제와서 묻기도 그렇지만, 제물로 써도 되겠나? 애써 잡은 걸 보면 따로 쓸모가 있던 모양인데….”
“괜찮습니다.”
어차피 정보를 뽑아낼 생각 반, 고문할 생각 반으로 살려둔 거였다.
하지만 정보는 이미 김강혁이 넘겨주기로 했고, 고문을 위해 제물을 낭비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뭐, 그래도 굳이 챙길 게 있다면…
서걱! 여명은 무장 혈청을 뽑아 김만일의 오른팔을 잘랐다.
“끄아아악!!!”
전 대통령의 비명을 따라, 여명은 떨어진 팔을 주워 인벤토리에 넣었다. 누가 알겠는가. 죽은 전 대통령의 영혼을 소환해야 할 순간이 올지.
만약 김만일이 그런 여명의 의도를 알았다면 더욱 크게 비명을 질렀겠지만, 아쉽게도 그는 살려달라는 말만 지껄였다.
애국단은 김만일과 이승백, 그리고 나머지 두 VIP들에게 마나를 주입한 뒤, 오염된 결정을 향해 집어 던졌다.
“아, 안 돼!! 나, 나는 이런 식으로 죽을 사람이 아니란 말이- 으아아악!!!”
결정 주변에 닿은 순간, 파스스!! VIP들의 몸이 그대로 분해됐다.
살벌한 마나와 함께 조금 전까지 사람이었을 가루가 흩날리는 가운데, 장관이 결정을 향해 환도를 휘둘렀다.
!!!
번뜩이는 마법진, 부러지는 환도.
희망은 절망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했던가? 대통령들로 끝낼 수 있지 않을까, 했던 여명은 자신이 너무 큰 희망을 품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애국단원들은 달랐다. 그들은 제물을 바치면 마법진이 흔들린다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여명이 준 타락석을 나눠 가지기 시작했다.
손톱만 한 보석들을 나눈 그들이 각자 마나를 모으며 마법진을 노려보길 잠시.
이름 모를 애국단 한 명이 앞으로 나선 순간, 박철이 또 한 번 끼어들었다.
“제, 제가 첫 번째로 가겠습니다.”
여명이 무어라 한마디 하기도 전에, 앞으로 나섰던 애국단원이 발걸음을 돌려 성큼성큼 박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대로 손을 들어-
짝!
박철의 뺨을 때렸다. 고개가 휙 돌아갈 정도로 강렬한 일격이었다.
“아저씨!”
놀란 네티가 소리를 지르건 말건, 애국단원은 볼을 붙잡은 박철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박철. 민주화 운동가를 사칭한 꽃뱀에게 걸려 십수 년간 종군 기자 활동으로 모은 돈을 다 날리고, 기사를 조작하라는 명령을 어긴 탓에 언론사에서도 쫓겨난 불쌍한 기자.”
꽃뱀? 여명의 미간이 구겨지는 가운데, 애국단원이 가면을 벗었다. 콧수염이 인상적인 그는 허리를 굽혀 박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무엇에 좌절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박철은 아무리 좆같은 일을 겪어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인간이었다.”
“나, 나를 어떻게 알고 있-”
백범은 그의 말을 끊었다.
“조금 전에 말했지. 나라에 필요한 건 장관처럼 뜻있는 정치인이라고. 그 말이 옳다. 그리고 틀렸다.”
“….”
“이 나라에는 정치인이 필요한 만큼, 너처럼 고집스러운 기자가 필요하다. 정의로운 경찰도 필요하고, 용기 있는 군인도 필요하다. 자유를 위해 목숨 바친 청년 기자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형의 이야기가 나오자, 박 기자의 표정이 변했다. 애국단은 어깨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말을 이었다.
“기자의 의무는 죽음이 아니다. 그렇지 않나?”
“….”
“내 이름은 도산이다. 우리를 기억해다오.”
애국단은 박철의 손에 들린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박철이 무어라 대답하기 전에, 그는 자신의 몫으로 나눈 타락석을 입에 물었다.
“전 먼저 가겠습니다.”
애국단원들 중 누구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여명과 장관, 그리고 나머지 애국단원들은 묵묵히 자세를 잡았다.
박철 기자는 조용히 카메라를 들고, 멀어지는 애국단원의 뒷모습을 찍었다.
찰칵, 찰칵. 셔터 소리를 따라 시간이 역사가 되는 순간.
애국단원이 오염된 결정을 향해 검을 들고 뛰어들었다.
!!!
그는 조금 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일렁거리는 마법진, 번쩍이는 결정.
애도할 틈은 없었다. 여명과 남은 애국단원들은 그 틈으로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쩌어- 엉 – !!!!
공기가 비명을 지르고, 검을 쥔 손아귀가 흔들릴 정도의 일격.
하지만 공격에 나가떨어지는 쪽은 단과 여명이었다.
!!!!
반발력에 밀린 일행은 우르르 쓰러지거나 날아갔다. 결정은 여전히 반짝이며 그들을 조롱했다.
곧 꾸역꾸역 자리에서 일어난 애국단원들은 다시 결정 앞으로 모였다.
이번에는 조금 전 충격으로 팔이 부러진 애국단원이 앞으로 나서 가면을 벗었다.
놀랍게도, 가면 아래에서 드러난 건 여명이 아는 얼굴이었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가축우리에서 만났던 용사 후보와 똑같은 얼굴을.
타락석 조각을 손에 쥔 그는 여명을 향해 말했다.
“…내 이름은 매헌 4호다. 가축우리에서 1호를 죽인 게 너인가?”
1호. 그 속에 담긴 뜻을 이해한 여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에게 안식을 주어 고맙다.”
여명에게 고개를 숙인 그는 애국단원들에게 마지막 작별을 날렸다.
“모두 슬퍼하지 마십시오. 장부가 검을 뽑았는데, 어찌 그냥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것으로 끝이었다. 매헌 4호는 그대로 결정을 향해 뛰어들었고, 일직선으로 떨어지는 검과 동시에 가루가 되었다.
이번에도 결정을 둘러싼 마법진이 일렁거렸고,
이제는 셋 만남은 애국단과 여명, 그리고 빈자리에 합류한 네티가 동시에 결정을 공격했다.
결과는, 이번에도 실패.
흠집은커녕, 반발력만 더 강해졌다. 마나에 휩쓸린 애국단 한 명의 옆구리가 통째로 찢어질 정도였다.
“이번에는 제가 가야겠군요.”
이번에 가면을 벗은 애국단 또한 아는 사람이었다. 백범. 여명과 드잡이질을 벌였던 장관의 오른팔이었다.
그는 별다른 말을 남기지 않았다. 그저 뜨거운 눈으로 남은 사람들을 차례대로 바라본 뒤, 짧게 말했다.
“대한민국 만세.”
타락석과 함께 뛰어드는 애국단, 흔들리는 결정, 피어나는 가루.
여명은 이를 악물고 용사의 무술을 펼쳤다. 여기서 끝낼 생각으로 펼친 공격이었으나, 결정은 오히려 더 큰 반발력으로 반격했다.
!!!!
나뒹구는 여명과 장관, 그리고 마지막 남은 애국단.
실패인가? 고개를 들어보니, 오염된 결정에 깊게 흠집이 난 게 보였다. 이대로 부서진다면 더 이상의 희생은-
여명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결정의 틈 사이로 뒤틀린 마나가 콸콸 흘러나와 흠집을 가렸다.
“….”
제기랄. 여명이 검을 꽉 붙잡는 사이, 마지막 남은 애국단이 벌떡, 일어났다.
마미. 피와 점액질을 뒤집어쓴 그는 반발력 때문에 깨진 가면을 벗으며 말했다.
“대장, 차례를 지키시요. 짬으로 보나, 부상으로 보나, 이번에는 내 차례 아니오?”
“….”
그렇게 말한 그는 남은 인원들을 싹 훑었다. 박 기자, 여명, 그리고… 푸른 양.
마미는 다른 사람과 달리 네티를 향해 유언을 읊었다.
“푸른 양.”
“네?”
“즐겁게 사시오.”
“….”
“그대가 미처 즐기지 못한 온갖 즐거움을 누리며 사시오. 맛있는 걸 먹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들으시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랑하고, 오늘이 끝인 것처럼 즐기시오.”
그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경쾌했기에, 네티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미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마지막 남은 타락석을 손에 쥐었다.
“자, 나는 먼저 영원한 즐거움을 즐기러 가겠소. 되도록 늦게 따라오시오.”
네티가 그러겠노란 뜻을 담아 마나를 끌어 올리는 사이, 장관과 여명은 각자 마지막 수를 준비했다.
천둔검법과 용사의 무술 2초식.
곧 마미가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결정 주변의 마법진이 눈에 보일 정도로 흔들린 순간.
여명과 장관의 검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