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604)
을 위한 세계는 없다-604화(604/817)
EP.604 어두운 진실, 화려한 거짓. (9)
서울.
예카테리나는 이 도시가 마음에 들었다. 한때 그녀의 동족들이 사랑했던 도시와 닮았으므로.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
인간들의 고혈을 짜낼 줄 아는 유쾌한 지도자들이 지배하던 그곳에는 언제나 향기가 가득했었다.
코가 썩어버릴 정도로 감미롭고 잔혹한 피의 향기가.
축제에 취한 서울에서도 그런 피의 향기가 풍기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이런 하찮은 땅에서, 이만한 향기라니.
이런 일로 찾아온 게 아니었다면, 기쁘게 도시를 관광했을 텐데.
아쉬움을 삼킨 그녀는 창을 들었다. 지금은 일할 시간이었다.
“읍, 읍!!!”
그녀 앞에 묶여 있던 인간은 창을 보자마자 몸을 비틀었다. 입에 물린 재갈이 침에 젖을 정도로 입을 부들거리는 건 덤이었다.
“넌 말 안 해도 돼. 어차피 네 옆에 있는 녀석이 말할 테니까.”
예카테리나는 그대로 창을 내려찍었다.
푸욱! 피가 터져 나오며 인간의 몸부림이 심해졌다. 도마 위에 올라간 생선이 그런 것처럼.
잠시 후, 몸부림이 멈췄다. 예카테리나는 창을 뽑았다. 도시 뒷골목에 고인 피는 싸구려 와인처럼 달큰한 향기를 풍겼다.
“자, 이제 말해보렴. 붉은 별이 남산을 습격한 게 정말이니?”
그녀는 입에 물린 재갈을 내리며 물었다. 곧 눈물과 콧물이 뒤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저, 저희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확실하진 않다?”
“그, 그게, 이 나라 정부는 워낙 감추는 게 많아서… 극소수의 생존자 증언과 감청한 통신 말고는 제외하면 증거가 거의 없어서….”
흐음- 예카테리나는 창을 지팡이 삼아 몸을 삐딱하게 기울이며 물었다.
“하지만 너희는 붉은 별이 습격했다고 확신하고 있었잖아?”
“나, 남산의 이승만 기념관에서 이승만 동상이 가, 감쪽같이 사라져서 그렇습니다.”
“…뭐?”
“전 대통령 동상을 훔쳐 간 사람이… 둘이나 있을 리 없잖습니까?”
“….”
가축우리의 이야기인가. 예카테리나는 붉은 별을 추적하며 얻은 정보들을 떠올리며 입술을 씹었다.
“그래서, 남산 이후 붉은 별의 행보는?”
“그, 그게… 그 이후는 저희 쪽도 잘….”
푹! 예카테리나는 시체에 박힌 창을 뽑았다. 그걸 본 인간은 벌벌 떨면서 말했다.
“위, 윗 대가리가 갑자기 인력을 주, 줄여서 그렇습니다! 씨발, 갑자기 만주인들을 동원해서 마법진인가 뭔가를 확인하겠다고… 아악!!!”
혓바닥이 길어지는 병에는 폭력이 약인 법.
예카테리나가 창으로 허벅지를 찌르자, 녀석은 곧장 아는 걸 실토했다.
“박철! 아으으! 바, 박철이 현장에 있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박철?”
“으, 으… 최, 최근 베눌의 성물의 주인이 된 기자입니다.”
“그래? 그놈은 어딨어?”
“모, 모릅니다. 정부의 눈을 피해 도망치는 건 확실한데… 아악! 성녀! 성녀라면 알고 있을 겁니다! 녀석을 직접 인정해 준 게 그녀니까요!!”
녀석의 심박수가 치솟는 걸 느낀 예카테리나는 한숨을 쉬었다. 거짓말은 아니네.
“귀찮게 꼬였네….”
붉은 별을 찾기 위해 박철을 찾고, 박철을 찾기 위해 성녀에게 가야 하다니. 무슨 게임 퀘스트도 아니고.
그녀가 짜증스레 창을 뽑자, 인간이 그녀에게 애걸했다.
“구, 구급차 좀 불러주십쇼. 이, 이대로라면 과다 출혈로 죽을 겁니다.”
“응? 그건 안 되지.”
녀석의 얼굴에 희망이 떠오른 순간, 푹! 예카테리나의 손가락의 녀석의 미간을 꿰뚫었다.
“아까운 피를 낭비해서야 쓰나. 피를 버리는 건 한 명으로 충분해.”
이어서, 쭈우욱-! 머리에 파고든 손가락을 따라 녀석의 피가 빨려들었다.
흡혈… 지구인들의 상상처럼 목덜미를 물어 피를 빠는 것과는 달랐다. 그녀가 짐승도 아니고, 왜 굳이 이빨을 쓰겠는가?
뭐, 좋았던 시절에는 지구인들의 취향에 맞춰준답시고 목을 물어뜯는 놈들도 있긴 했지만….
그런 녀석들은 이미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는 애통함을 느끼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피를 흡수했다.
털석. 곧 쥐어짠 걸레처럼 말라버린 녀석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시체에서 손가락을 뽑은 예카테리나는 쯧, 혀를 찼다. 피 맛이 더러웠다.
술과 담배, 그리고 아샤인 특유의 비릿함이 느껴지는 피.
‘시크릿 소사이어티 놈들은 하나 같이 피 맛이 엉망이라니까.’
쉽게 정보를 캐낼 수 있다는 장점이 없었다면 진즉에 없애버렸을 텐데. 예카테리나는 시체를 잘근잘근 밟아 흔적을 없애버린 뒤, 몸을 돌렸다.
선수촌 숙소가 있는 방향.
목표는 당연히 성녀였다. 이렇게 준비 없이 습격하기엔 너무 큰 거물이었지만, 그녀는 거침없었다.
간단한 이유였다. 지금이 보안이 가장 약하니까.
이것저것 준비하며 시간을 끌었다가, 성도에서 빌어먹을 성기사 녀석들이 오면 죽도 밥도 안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에겐 믿을 만한(?) 아군이 있었다.
파순.
그 병신 같은 쾌락주의자 놈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자신을 죽인 천여명과 어울리고 있었다.
진짜 답 없는 병신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써먹을 일이 생기다니.
‘우연이란 참 오묘하다니까.’
그런 생각을 끝으로 골목에서 벗어난 그녀는 도시의 야경 속으로 파고들었다.
축제 중인 도시는 그녀를 완벽하게 숨겨 주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발아래에서 풍기는 향기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이 순간을 즐겼다.
그리고 채 한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예카테리나는 선수촌에서 불과 2km 미터 정도 떨어진 상가 건물 지붕에 올라섰다.
선수촌은 멀지 않았다. 깔끔하게 경비 한 명을 잡아먹은 그녀는 선수촌을 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지붕 난간에 서서 점프를-
“예카테리나 님! 잠깐, 잠깐만!”
그때, 누군가 그녀를 불러세웠다.
고개를 돌려보니, 웬 안경잡이 동양인 하나가 지붕 문에 매달려 숨을 헐떡대고 있었다. 뭐지?
“저, 저는 조웅찬 장관님의 비서인 조ㅎ….”
“네 이름은 관심 없어. 누가 보냈는지 말해.”
창을 겨누며 말하자, 그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별내장! 별내장께서 보냈습니다.”
별내장. 그 단어를 듣자마자 예카테리나의 손이 멈췄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되물었다.
“그 양반이 왜? 바쁜 거 아니었어?”
“바, 바쁘십니다. 하지만 예카테리나 님께 반드시 말을 전하라고 하셔서… 이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예지자란 것들은 늘 이런 식이지. 예카테리나는 한숨을 쉬었다.
“무슨 말?”
비서는 뭔가 대단한 말을 전하는 것처럼 크흠, 헛기침한 뒤 말했다.
“지르지스가 왔다. 한 걸음만 더 앞으로 가면 탐지될 거다.”
“…성기사단의 단장이 직접 왔다고? 아니 시발, 지금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저, 전 그저 들은 말을 전할 뿐입니다.”
움찔, 예카테리나는 다시 선수촌을 바라봤다.
동포들이 지구로 도망쳐야 했던 이유가 저곳에 있다고 생각하니, 창을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그래서, 전할 말은 그게 다야?”
“한 줄 더 있습니다. 그… 지금 쫓고 있는 건 성도에서 만날 수 있을 테니, 조웅찬 장관님을 따라가시라고….”
“….”
예카테리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창을 회수하고 지붕 난간에서 한 걸음 떨어졌다.
“좋아, 네 말을 믿지. 성도에서 큰일이 벌어지는 걸 놓칠 순 없으니까.”
“예, 예! 아래로 내려가시죠. 차량과 루마니아산 와인을 준비해 뒀습니다.”
“하, 별내장이 여기까지 예지했어?”
“아뇨. 그분께선 말을 전하라고만 하셨습니다. 하지만 공녀님을 모시는데 어찌 소홀함이 있겠습니까?”
“….”
공녀라. 오랜만에 듣는 동시에, 앞으로 영원히 들을 일 없다고 생각한 단어를 들은 예카테리나는 웃었다. 서글픈 웃음이었다.
“좋아, 앞장서.”
[성기사단은 한국에 있다.]박철이 올린 투박한 제목의 인터넷 기사가 뉴스란을 장악하기까지, 불과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당황한 한국 정부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만에, 성녀의 옆에 서 있는 대머리 성기사의 사진이 모든 걸 뒤집어 버렸다.
사진의 주인공이 일평생 전대 성녀를 호위한 파롤 경이란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 정부의 체면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국민들의 반응은 둘로 갈렸다.
‘감히 우리 조국을 모욕한’ 성기사들을 비난하는 쪽과, ‘이것도 못 알아챈’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는 쪽.
어느 쪽이건 쉽게 결론이 나는 일이 아니었기에, 뉴스는 곧바로 성기사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찼다.
웨슬리에게는 참 다행인 일이었다.
덕분에 한국인 참가자를 잔혹하게 몰아붙인 미국인에 관한 기사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으므로.
물론, 아예 관심을 안 받은 건 아니었다. 그의 다음 상대는 바로 그 천여명 아닌가.
당연히 그에 대한 기사도 몇 개 뉴스에 올라왔다. 올라왔는데…
[천여명 뿔났다! 처제의 복수전!] [사실은 이미 졌다? 로드 하우 아카데미의 기숙사 전통, 방 빼앗기란?] [미국이 한국의 발전을 두려워하는 이유? 미국 선수들의 내면 전격 해부!]그 내용이라는 게 참… 노골적이었다.
신문을 보던 웨슬리와 코치 모두 웃음을 참지 못할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평소였다면 천여명과 단둘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 뒤, 기자들을 마음껏 비웃어 줬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평소였다면.
하지만 지금 그의 손에는 도핑 물약이 들려 있었다. 사랑하는 조국이 직접 그에게 강요한 물약.
웨슬리는 뉴스가 끝나고, 해가 저물 때까지 혼자 조용히 물약을 만지작거렸다.
‘이걸 어떻게 버려야 잘 버렸다고 소문이 날까.’
한참을 고민하던 웨슬리에게, 코치가 한마디 조언을 던졌다.
‘머리가 어지러우면 바깥 구경이라도 하고 와라.’
놀 시간에 훈련해야 한다는 코치의 평소 지론과는 다른 이야기였으나, 웨슬리는 그 조언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축제를 구경하고 싶다’는 핑계를 대며 선수촌 바깥으로 향했다.
물론, 혼자 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선수촌 경호원들은 물론이고, 어디 숨어 있던 건지 알 수 없는 미군 경호원들까지 그를 따라왔다.
선수 안전이 최우선이라나 뭐라나.
화장실까지 따라오는 경호원들을 본 웨슬리는 한강에 물약을 부어버리려던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숙소에서 버릴걸. 괜히 나왔다고 생각한 웨슬리는 혀를 차며 한적한 카페에 들어갔다.
커피나 한잔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경호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카페를 봉쇄했다.
나보다 약한 것들이 무슨 호위야.
혀를 찬 웨슬리는 커피를 기다렸다. 그의 머릿속에는 FBI와 천여명에 관한 가설들이 무수히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뭐가 됐든, 웨슬리가 알 바 아니었다. 그는 자신에게 떳떳했고, 앞으로도 떳떳하게 살 생각이었다. 그것이 그의 애국이었다…
그렇게 한 번 더 물약을 마시지 않을 걸 다짐할 때쯤, 웨슬리는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주변이 너무 조용했다. 아까 전에 시킨 커피가 나오지 않는 건 덤이었고.
설마 FBI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채고 찾아온 걸까? 그가 조용히 카페 바깥을 확인하며 마나를 끌어 올린 순간.
“웨슬리, 맞나?”
두 개의 커피 잔을 든 정체불명의 남자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구릿빛 피부에 기다란 코, 그리고 바다처럼 깊은 눈동자를 가진 남자.
누가 봐도 히스패닉 혈통인 걸 알 수 있는 그는 자신과 웨슬리 앞에 각각 커피잔을 내려놨다.
웨슬리가 물었다.
“…누구십니까?”
남자는 당당하게 말했다.
“내 이름은 포시스다.”
“…?”
“…모르냐? 그럼 베르나르도라고 하면 알까? 일단 이쪽 이름이 더 유명하긴 한데.”
포시스? 베르나르도? 이건 또 뭐 하는 새끼야? 웨슬리가 눈살을 찌푸리자, 자신을 포시스라 밝힌 남자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면 3번 대행… 씁, 이런,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이쪽’과는 별 관련이 없는 진짜 학생이었나…? 그럼 그냥 포시스라고 불러라.”
“미안하지만 팬 미팅 안 합니다. 인터뷰도 안 하고요.”
웨슬리가 이죽거리자, 포시스가 히죽 웃었다.
“하지만 물약을 넘기는 건 할 수 있겠지?”
“…!”
뭐? 웨슬리는 그제야 주변이 너무 조용하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카페를 둘러싸고 있던 경호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단 한 명도.
웨슬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자, 포시스는 자기 몫으로 가져온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죽이진 않았으니. 뭐, 한동안 감봉은 되겠지만.”
“….”
웨슬리가 마나를 끌어 올리며 벌떡 일어나자, 포시스가 손을 휘저었다.
“워, 워, 진정해. 난 싸우러 온 거 아니야. 네가 밖으로 나오길 기다리고 있긴 했지만.”
“…당신 뭐야.”
“뭐, 쉽게 말하자면 네가 FBI가 준 물약을 마시지 않게 도와줄 사람이지.”
“그딴 게 대답이 될 거라고 생각하나?”
“대답은 아니지만, 내 도움이 절실하지 않나? 난 지금 네가 그 물약을 마시지 않을 적절한 이유를 만들어 주고 있는 거라고..”
“하,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고?”
“믿음을 찾을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닐 텐데?”
포시스가 장난스레 대답했다. 웨슬리는 앞에 놓인 커피잔 속 라떼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커피도 제대로 못 가져오는 사람을 어떻게 믿지? 난 카페라떼 말고 아메리카노 시켰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웨슬리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포시스는 큭큭 웃으며 말했다.
“이런, 그걸 몰랐네… 그럼 믿지 말고, 그냥 뺏기는 걸로 하지.”
“뺏겨? 하지만 그러면 코치의 가족들이….”
그때, 포시스가 그의 말을 끊었다.
“천여명.”
“…?”
“너, 천여명이랑 친구지?”
“…걔는 몰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럼 됐어. 내일 경기가 끝나면, 녀석이랑 사진 존나게 찍어. 기자들이 좋아할 만 한 사진으로.”
“그게 뭔…?”
“FBI가 가장 무서워하는 게 언론이거든. 아마 코치와 가족들을 해외로 보낼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을 거다.”
“….”
“자, 그러면 잡담은 여기까지. 이제 물약을 빼앗아 가마.”
곧 포시스가 품에서 작은 포크… 아니, 삼지창을 꺼냈다. 뭔지 모르겠지만, 심상치 않은 물건은 확실했다.
“물약을 지키려고 했는데, 이거에 찔렸다고 해. 그럼 FBI놈들도 이해해 줄 테니까.”
“그게 무슨 개소….”
다음 순간, 웨슬리는 왜 경호원들이 소리도 없이 쓰러졌는지 이해했다. 어느새 포시스의 작은 삼지창이 그의 손등을 찌르고 있었으니까.
고작해야 포크만 한 삼지창에 찔린 게 뭔 대수인가 하는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창에 찔린 순간, 온몸에 무시무시한 압박이 쏟아진 까닭이었다.
마치 깊은 바닷속에 갇힌 것 같은 압박.
이건 무슨 무술이지? 아니, 무술은 맞나? 웨슬리가 기절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무는 가운데, 포시스는 여유롭게 그의 주머니에서 물약을 꺼냈다.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매국노의 볼처럼 진한 붉은색으로 반짝이는 물약.
포시스는 잠시 그 물약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주머니에 물약을 챙겼다.
“그럼, 웨슬리? 난 간다. 떳떳하고 당당한 경기를 치르길 비마.”
그렇게 그가 등을 돌려 떠나기 직전, 웨슬리가 그를 불렀다.
“자, 잠깐….”
“야, 괜히 버티지 마, 그대로 기절하면 편해질… 질문이 뭐지?”
웨슬리의 진지한 눈빛을 본 포시스의 말투가 변했다. 웨슬리는 주먹을 꽉 쥐며 물었다.
“다, 당신… 진짜 정체가 뭐지? 왜, 왜 날 돕는 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내 이름은 포시스… 음. 원하는 답은 그게 아니겠군. 미안, 내가 눈치가 좀 없어서.”
흠흠, 목을 가다듬은 조금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난 미국인이다. 헌법을 유린하는 가짜가 아닌, 진짜 미국인.”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웨슬리는 그대로 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