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639)
을 위한 세계는 없다-639화(639/817)
EP.639 꺼지지 않는 해의 이야기 (3)
같은 시각, 성도 구석진 곳, 검은 집.
이름 없는 유골함으로 가득한 어둠 속에서, 변경백이 걸음을 멈췄다.
갑자기 왜 멈춰? 그와 함께 걷던 지르지스가 물으려는 순간.
땅이 울렸다.
쿠구궁…!
멀지 않은, 성도에서 시작된 진동. 지르지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지진? 아니, 역사상 성도에서 지진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변경백령 전쟁에 참여했던 그의 경험이 말하고 있었다.
“이건… 포탄 떨어지는 소리 같은데.”
변경백의 생각을 묻기 위해 꺼낸 말이었으나, 정작 돌아온 대답은 지르지스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지르지스. 이곳은 내가 맡을 테니 자네는 성녀님께 가게.”
“응? 성녀님은 이곳 지하에….”
“그녀 말고, 이번 대 성녀 말일세.”
“뭐?”
지르지스가 무슨 소리냐고 묻기도 전에, 끼이익-! 두 사람이 들어왔던 검은 집의 문이 열렸다.
천천히 열린 문 너머에는 달빛을 등진 남자가 서 있었다. 선명한 보랏빛 눈동자를 가진 남자.
그는 변경백과 지르지스를 보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덤덤한 표정을 되찾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귀한 손님들께서 이곳에 계실 줄이야.”
모르는 얼굴이었다. 지르지스는 붉은 성물을 뽑아 들며 물었다.
“누구냐? 감히 이곳이 어딘 줄 알고….”
그러자 남자는 빙그레 웃었다.
“여기가 어딘지는 잘 압니다. 저도 여러분과 똑같은 이유로 왔으니까요. 성묘.”
“성묘?”
교단의 사형수를 모아 놓은 곳에 성묘라고? 지르지스는 곧장 마나를 끌어 올렸다.
하지만 그가 앞으로 튀어 나가는 것보다도 먼저, 변경백이 입을 열었다.
“전대 허무의 시체는 여기에 없다.”
“그렇습니까? 전 당연히 이곳에 있을 줄 알았는데… 어디 가야 볼 수 있을까요?”
“남부 마경. 내가 직접 목을 베고 그곳에 묻어줬다.”
허무, 마경, 그리고 변경백에게 목이 베였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은 지르지스는 한 번 더 보랏빛 눈동자의 남자를 바라봤다.
“아야톨라… 허무를 흘리는 자?”
“예, 그게 제 이름인 동시에 성이지요. 반갑습니다. 성검 없는 성기사단의 단장, 지르지스 라크티.”
“….”
조롱 섞인 소개에 지르지스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서서히 차오르는 적의.
아야톨라는 그 적의에 호응하며 손을 들었다.
“사실 나중에 따로 뵐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만날 줄이야…. 이것도 운명의 계략일까요?”
“아니, 필연이다.”
“필연… 예, 필연이군요.”
그 순간, 열린 문 너머에서 또다시 진동이 날아왔다. 이번에는 섬뜩한 폭발음까지 섞여 있었다.
지르지스는 최악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네놈들… 성도를 침략한 거냐?”
“아뇨, 제가 한 일은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성녀님 덕분에 저희 교단이 좀 힘들어서요.”
“….”
성도가 공격 받는 것 자체는 긍정하는 말이었다. 지르지스는 어째서 변경백이 성녀에게 가보라고 했는지 깨닫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통했는지, 변경백이 말했다.
“가게. 이곳은 내가 맡을 테니.”
“아니, 내가 맡을 테니 네가 가라. 그편이-”
그때, 허무가 갑작스럽게 손바닥을 ‘겨눴다’ 그것이 천벌의 전조라는 걸 눈치챈 지르지스가 검을 휘둘렀다.
직후, 아야톨라가 손아귀를 쥐었다.
!!!!!
결과는 심플했다. 피가 튀고, 벽이 뒤틀렸다.
피는 잘린 아야톨라의 팔꿈치에서 흐른 피였고, 벽을 뒤튼 건 그럼에도 발사된 천벌의 결과였다.
지르지스는 뒤틀리다 못해 구멍이 뚫린 벽을 보며 말했다.
“단절의 천벌…!”
다른 놈도 아니고 허무가 꿈을 흘리는 자의 천벌을 사용하다니? 그것도 악몽이 아닌 현실에서.
지르지스가 놀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허무 또한 살짝 놀란 얼굴로 잘린 팔을 내려다봤다.
“진의 무술… 변경백씩이나 되시는 분이 시작부터 목을 노리실 줄은 몰랐습니다.”
변경백은 가뿐히 허무의 말을 무시했다. 그는 지르지스에게 눈짓했다.
“지르지스. 어서 가게.”
“변경백, 네가 가야….”
지르지스가 또다시 항변하려 했지만, 변경백은 한 마디로 그의 입을 막았다.
“아내의 무덤을 더럽히는 자를 어떻게 용서하겠나.”
“….”
아내의 무덤. 그 말을 들은 지르지스는 반론하지 못했다. 그는 허무를 한 번 노려본 뒤, 단절의 천벌로 뚫린 벽 구멍으로 몸을 날렸다.
허무는 그를 잡지 않았다. 정확히는, 잡지 못했다. 지르지스를 노리는 순간 변경백에게 목이 날아갈 테니까.
“…수적 우위를 포기하시다니. 너무 오만하신 거 아닙니까?”
“….”
변경백은 대답하지 않았다. 허무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우리가 한 세대 동안 가만히 숨어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당신을 죽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보면 놀라실 겁니다.”
“전대도 그랬지.”
변경백은 천천히 검을 들었다.
“…뭐요?”
“전대 허무도 너처럼 말이 많았다. 끝끝내 유언도 남기지 못했지만.”
“….”
허무는 한 방 먹은 표정으로 입술을 핥았다. 하지만 그 표정에 두려움은 없었다.
“아쉽게도, 전 오늘 죽을 운명이 아닙니다.”
자신만만한 목소리와 함께, 허무가 손을 들었다.
그놈의 잡신 소리.
“….”
마음 같아서는 한 대 때려주고 싶었으나, 그럴 틈이 없었다. 날아오는 피의 포탄들은 그에게 어떠한 여유도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콰아아 – !!!
포탄을 향해 재차 검기를 쏘아낸 여명은 재빨리 가까운 옥상에 착지했다.
“성녀, 내가 어떻게든 시간 끌고 있을 테니까, 넌 성기사단을 불-”
말을 끝낼 틈조차 없었다. 베리야가 전략을 바꿨으므로.
쾅, 쾅, 쾅!
피의 포탄들은 여명이 아닌 그가 펼친 불길 위로 떨어졌다. 섬뜩한 충격파가 불길을 밀어낸 틈으로, 괴수들이 밀려들었다.
이런 무식한 새끼가.
여명이 다시 불길을 조종하는 사이, 베리야가 낄낄 웃었다.
[감히, 고작 두 명으로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용사가 와도 불가능한 일을 너 따위가 할 수 있을 것 같으냐!]저열한 조롱에 넘어갈 여명이 아니었다. 그는 검을 들고 바로 불길을 넘은 괴수들에게 뛰-
그 순간, 골목 저편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신성도, 무술도 아닌 오색찬란한 마법의 빛.
융해 광선.
!!!!
광선에 닿은 괴수들은 물론이고, 오랜 역사를 품은 성도의 건물이 통째로 무너졌다.
“어?!”
놀란 성녀가 고개를 돌리는 것과 동시에, 바람을 탄 소녀가 옥상에 착지했다.
“용사 찾으신 분?”
“…살로메.”
“네, 네, 살로메랍니다. 세티가 보내서 왔어요. 지금 세티랑 미리가 KGB 요원들을 처리하는 중-”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피의 포탄이 날아왔다.
“포, 포탄? 우리 전쟁 중이었어요?!”
경악하는 살로메와 성녀를 붙잡은 채, 여명은 그대로 옥상 아래로 뛰어내렸다.
콰아앙 – !!!!
포탄에 맞은 건물이 무너지며 콘크리트와 철근이 비명을 질렀다. 땅에 착지한 살로메는 자신의 휴대폰을 여명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 일단 이거부터 보세요. 세티가 보낸 문자! 여명한테도 보냈는데, 못 볼 거 같아서 제가 직접 왔어요!”
“문자? 무슨 문자?”
“저도 정확히는 몰라요! 뭐 드레이테리얼하고, 붉은 파알- 악!”
다음 순간, 도저히 말을 끝낼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포탄들이 떨어졌다. 여명과 일행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포탄을 피해 달리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누가 그랬더라, 포병은 현대전의 신이라고? 그 말이 맞았다.
설마 상대가 진짜 포격을 날리는 신일 줄은 몰랐지만… 휴대폰을 인벤토리로 회수한 여명은 스멀스멀 주와이외즈의 불길을 넘기 시작하는 괴수를 보며 말했다.
“둘 다 일단 후퇴해! 여기는 내가 어떻게든 막고 있을 테니까!”
포탄 소리에 묻히지 않을 정도로 큰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은 성녀와 살로메는 달리는 와중에도 고개를 저었다.
“혼자서는 안 돼요!”
“안 돼! 죽어도 같이 죽어!”
여명은 날아오는 포탄을 향해 검기를 쏘아내며 대답했다.
“고집부리지 말고 물러나! 너희가 다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빈말이 아니었다. 네티를 잃을 뻔하면서 절실히 느꼈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험으로 몰고 가느니, 자신이 모든 걸 짊어지는 게 낫다고.
하지만 그런 마음은 그녀들도 마찬가지.
살로메는 저 골목을 넘어가는 괴수들을 보며 말했다.
“방법이 있어요! 여명이 괴수는 신경 쓰지 않고 싸울 방법!”
“뭐?”
“그, 그! 저번에 발막이 넘긴 괴수들 있죠? 우선 그거 주세요!”
마탑의 에케모가 특별히 제작한 정예 괴수들. 여명은 그 괴수들이 들어있는 베리야의 구슬을 넘겼다.
구슬을 받아든 살로메는 대뜸 뒤틀린 마나를 구슬 속에 흘려보냈다.
잠시 뭔가를 확인하듯 구슬 속 마나를 움직이던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여명, 나 책임질 거죠?”
“뭐?”
“수염 나면 책임질 거냐고요!!”
“….”
살로메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은 여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책임질게.”
“그, 그렇게 간단히 대답하지 말고! 아, 그래, 우리 증조할아버지를 걸고 맹세해요!”
“전대 가주님은 물론이고, 나와 내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해.”
“그, 그렇게 많이 걸 필요는 없는데….”
살로메는 쑥스러운 듯 말끝을 흐리다가, 쾅! 포탄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손에 쥔 구슬을 꽉 쥐며 말했다.
“아, 그리고 성녀님이 놀리는 것도 막아주세요.”
“…그건 좀 힘들겠는데.”
장인 어른 말씀도 안 듣는 애를 내가 무슨 수로? 여명이 성녀를 곁눈질하며 덧붙이자, 살로메가 버럭 소리 질렀다.
“이럴 땐 빈말로라도 그러겠다고 해야죠!!”
다음 순간, 그녀의 내면에서 마나가 솟구쳤다.
저 멀리 괴수들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진하고, 끈적거리는 뒤틀린 마나.
“어? 어? 너, 설마?”
그제야 살로메가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깨달은 성녀가 놀란 바로 다음 순간.
살로메는 포탄으로 망가진 건물 위로 올라서서 외쳤다.
“Es geht nicht, ihr dürft nicht handeln, ihr müßt ja beugen!!”
뒤틀린 마나와 그녀의 마나가 뒤섞인 목소리는 하나의 파장이 되어 괴수들 사이로 퍼졌다.
살로메에겐 수염도 없었고, 총통 자리는 더더욱 없었지만, 그 목소리는 불길을 넘어 민가로 달려들던 괴수들을 붙잡기에 충분했다.
일부… 아니, 거의 절반에 가까운 괴수들이 살로메를 바라봤다.
여명이 나서서 살로메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포탄을 쳐낸 직후, 그녀는 한 번 더 소리쳤다.
“Ihr müßt euch fügen, ihr müßt euch diesem mühsam zwang folgen!!!”
독일어를 모르는 성녀는 살로메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얘는 절대 정치하면 안 되겠다.’
그녀의 생각을 증명하듯, 살로메는 들고 있던 베리야의 구슬을 던지며 말했다.
“Attacke!!”
다음 순간, 구슬에서 튀어나온 정예 괴수와 그녀를 바라보던 괴수들이 일제히 다른 괴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