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646)
을 위한 세계는 없다-646화(646/817)
EP.646 당국의 정당한 요구에 대한 소비예트 계승자의 답변. (3)
진짜 신?
여명은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어 스탈린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금빛 눈동자가 이글거리는 독재자의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이 제안이 단순한 농담이나 빈말이 아니라는 걸.
스탈린은 진심이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은 그랬다.
그러나 독재자는 세상 모두에게 본심을 숨기는 법.
여명은 그의 속내를 조금이라도 확인하기 위해 되물었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립니까? 무슨 비유 같은 겁니까?”
『비유? 내가 경전 속 예언자로 보이나? 이건 비유가 아닌 문자 그대로의 의미일세.』
“그게 더 이해가 안 가는군요. 베리야의 신성을 제가 흡수하라니. 서기장께서 직접 흡수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자 스탈린이 하, 소리 나게 웃었다.
수십, 수백만 명을 숙청한 괴물의 미소치고는 너무나 인간적인, 그래서 더욱 섬뜩한 미소였다.
『참 새삼스러운 의문이로군. 천여명 동무, 자네는….』
그때, 베리야가 비명을 질렀다.
[각하! 살려주십시오!!]“….”
[저, 저는 각하와 조국을 위해 평생을 바쳤습니다! 이, 이 강림도 소비에트의 부활을 위해서였습니다!!]베리야의 목소리는 처절했다. 그가 신성을 두르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각하!! 제발, 제게 항변의 기회를 주십시오!! 저, 저는 무고합니다! 정말입니다!] [노멘클라투라들과 손잡은 건 그들을 관리하고 숙청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 손에 그들의 명단이 있습니다! 명만 내려주십시오!! 모스크바의 구더기들은 언제든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리와 스베틀리나, 제가 두 분을 구했습니다! 저, 저와 KGB가 각하의 핏줄을 지켜냈습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배신자들은 각하의 핏줄을 이용해 새로운 로마노프 황가를 세우려 했습니다! 제가! 제가 그분들을 구하고 당의 이념을 지켜냈습니다! 모두 제가 한 일입니다!!]스탈린은 베리야에게 핑계 대지 말라거나, 거짓말을 지껄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아예 베리야를 향해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직 소련을 지배하던 시기, 숙청의 대상을 정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침묵.
애걸복걸하던 베리야는 뒤늦게 침묵의 이유를 깨달았다. 곧 그의 목소리에 좌절과 분노가 뒤섞였다.
[왜… 어째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나는 평생 당신의 뒤를 닦으며 살았어!! 죽이라면 죽이고, 고문하라면 고문했다!!] [나보다 당신에게 충성스러웠던 자가 있던가? 없었다! 나는 평생 당신의 충복이었고, 충신이었다! 그런 나를 도구로 쓰고 버리다니!!] [당신을 저주한다!! 학살자! 폭군!! 너는 연방의 저주다!! 자신의 머리 위에 누가 있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정신병자! 권력 중독자, 인민의 배신자! 너는 히틀러의 거울이야! 차라리 트로츠키가 집권했다면-]그제야, 스탈린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뚱한 얼굴로 거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진부하군.』
[….]『더 들을 것도 없겠어.』
그것으로 끝이었다. 베리야는 더는 지껄이지 못했다.
[읍!! 읍, 으읍!!]그의 입에서 들리는 건 마치, 입마개를 당한 사냥개의 그것처럼 공허한 끙끙거림 뿐.
베리야가 닥치는 걸 본 스탈린은 고개를 돌려 다시 여명을 바라봤다.
『자, 이제 우리의 대화로 돌아가지. 천여명 동무.』
“….”
『조금 전의 질문에 답하자면, 안타깝게도 나는 저 신성을 흡수할 수 없네.』
여명은 몸을 짓누르는 압박을 떨쳐내기 위해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의 혈관 속으로 마나와 케프리의 신성이 뒤섞였다.
여명이 말했다.
“당신도 못 하는 걸 제가 할 수 있습니까?”
『물론이지. 자네의 혈관 속에는 무장 혈청이 흐르고 있지 않나?』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명은 남산에서 봤던 가짜 디미트리를 떠올렸다.
그에게서 뭔가를 훔쳐 가다가, 갑자기 무장 혈청으로 변해 도망친 녀석.
설마 그 무장 혈청 덩어리가 베리야였나? 아니, 그보다 그의 몸속에서 흐르는 무장 혈청은 베리야의 무장 혈청을 흡수할 수 있다고?
대체 어떻게? 라는 의문은 필요 없었다. 스탈린은 대답해주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여명은 다른 질문을 꺼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신성을 흡수할 수 있다고 해도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왜 제게 신성을 먹으라고 하시는 겁니까? 무슨 자격이 있어서요?”
그러자 스탈린은 뒷짐을 풀고 손을 들었다. 그는 거친 손가락 다섯 개를 활짝 펴며 말했다.
『우스운 이야기로군. 천여명 동무. 자네는 여태껏 자격이 있어서 소비에트의 유산을 계승했나?』
“….”
『주가시빌리를 훔칠 때, 자격을 떠올렸나? 피눈물의 환상을 배울 때는?』
새끼손가락부터 차례대로 접히는 손가락. 스탈린은 계속 말을 이었다.
『무장 혈청은 또 어떤가? 무장 혈청을 흡수하기 전에 우리 당의 낫과 망치를 보았으면서도, 동무는 그걸 손에 넣었지. 그리고 아주 잘 써먹었고.』
여명은 무어라 반박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스탈린이 검지를 접었다.
『수소 폭탄은?』
“….”
『그 무기에는 소비에트의 상징이 새겨져 있지. 주인 없는 물건이라고 주장할 생각이라면 집어치우게. 수소 폭탄을 가질 수 있는 자격 같은 건 세상에 없으니.』
거기까지 말한 스탈린은 마지막으로 남은 엄지를 위로 향했다.
『정의, 선의, 힘, 욕망, 복수… 이유가 무엇이건, 동무는 꾸준히 소비에트의 유산을 모아왔네. 신성이라고 다를 게 있는가?』
여명은 반론하지 못했다. 이유와 변명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와 마주한 스탈린의 눈동자 때문에.
미국과 맞서 수억 명의 빨갱이들을 지배하던 자의 눈.
인류 역사상 가장 강대한 권력을 가졌던 자가 그의 귀에 속삭였다.
『자, 어서 흡수하게.』
“저는….”
『천여명 동무, 난 동무가 힘을 위해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지 알고 있네. 힘, 적을 쓰러트리고, 내 사람을 지키기 위한 힘! 정말로 이런 기회를 놓칠 생각인가?』
그는 마지막 엄지를 접어 주먹을 만들었다. 꽈악 쥔 주먹에서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힘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여명은 취한 사람처럼 멍하니 그가 내민 주먹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음 순간, 스탈린이 주먹을 펴고 손을 내밀었다. 여명은 자신도 모르게 그 손을 붙잡았다.
대화는 필요 없었다. 스탈린은 망설임 없이 그를 하늘 위로 이끌었다.
이윽고, 피의 신의 얼굴과 마주한 순간.
여명의 몸이, 정확히는 혈관 속 무장 혈청이 공명하듯 부르르 떨렸다.
변화에 겁을 먹은 짐승처럼, 혹은 식사를 기대하는 아귀처럼.
스탈린은 그와 맞잡고 있던 손바닥으로 여명의 등을 밀었다.
『동무, 때가 되었네. 신이 되게. 이 땅에 피를 가져올 진정한 신이.』
그렇게 여명의 몸이 천천히 붉은 거인의 얼굴로 다가가자, 거인의 얼굴로 두려움이 치솟았다.
두려움은 고통으로, 고통은 허무로.
거인의 얼굴을 이루고 있던 피가 우르르 무너졌다.
망가진 진흙 조각처럼 뭉개진 얼굴에서 피가 쏟아졌다.
중력의 방향이 아닌, 여명을 향해서.
다가오는 피를 본 여명은 멍한 눈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마침내 여명의 손가락이 피와 연결되려는 순간.
여명의 머릿속으로 어떤 말들이 떠올랐다.
-복수는 수단이야. 억울함을 풀고 행복한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수단. 그게 목적이 되어선 안 돼.
드레이테리얼을 떠나, 우연히 만난 데메론드의 말.
-만선비아, 부득타구(萬善備我, 不待他求)라. 만 가지 선이 모두 내게 갖춰져 있으니, 남에게 구할 필요가 없구나.
분신술로 야한 걸 계획하던 그에게 건넨 만박불통의 조언.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답지 않다…. 재밌군, 그 깨달음. 절대로 잊지 말게.
히틀러와 싸우던 때, 스탈린이 그에게 해줬던 말까지.
그 모든 말들이 떠오른 건 찰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여명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무언가에서 깨어나는 건 그 찰나만로도 충분했다.
흠칫.
정신을 차린 여명이 뻗었던 손을 거둬들이기 무섭게, 다가오던 핏덩어리들이 정지했다.
『오.』
여명은 감탄인지, 아니면 의외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 그를 밀어낸 스탈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제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망설이는 것 같아 용기를 줬지. 조금 전에 말했듯, 시간이 많지 않아서 말일세.』
“….”
여명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스탈린을 노려봤다.
“저를 키워주신 작업 반장님께서는, 뭔가를 공짜로 주는 사람을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대가를 가져갈 사기꾼이라고.”
『현명한 분이셨군.』
“….”
부정도 안 하는 건가. 여명은 스탈린의 뻔뻔함에 놀라야 할지, 아니면 검부터 뽑아야 할지 고민했다.
답은 나오지 않았고, 여명은 스스로와 타협했다.
그러니까, 검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전, 이 신성을 흡수하지 않겠습니다.”
『힘을 거부하겠단 말인가? 자네의 복수는 어쩌고?』
“저를 대신해 복수해줄 신 따윈 필요 없습니다. 특히, 대가로 뭘 가져갈지 모르는 신이라면.”
『하!』
스탈린은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수염을 들썩거리며 웃었다.
이미 신성을 품은 화신인 여명이 신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게 웃겨서? 아니, 아니었다. 그의 웃음은 감탄의 웃음이었다.
『그래, 신에 의지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공산주의자의 덕목이지… 나를 놀라게 하는 군. 좋아, 내 편견을 수정하지.』
“…무슨 편견을 가지고 절 보신 건지 모르겠지만, 한 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그건 자네가 정하는 게 아닐세.』
여명이 뭐라고 반박하건, 스탈린은 하늘을 걸어 터벅터벅 그에게 다가왔다. 불길함을 느낀 여명이 뒷걸음질 치려 했지만, 또다시 그의 몸이 정지했다.
『서기장이 정하는 거지.』
그렇게 말한 스탈린은 자신의 가슴에서 노란 별을 뗐다.
소비에트 연방 영웅을 상징하는 금성 메달.
메달을 쥔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여명의 가슴에 메달을 달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각도로.
이윽고, 여명의 가슴에서 반짝이는 메달을 본 스탈린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불만이 있으면 다른 서기장에게 부탁하게.』
“….”
아니면 직접 서기장이 되어서 취소하거나.
스탈린이 꺼내지 않은 뒷말을 읽어낸 여명이 오만상을 찌푸리건 말건, 그는 다시 뒷짐을 지며 물었다.
『마지막으로 묻지. 천여명 동무. 정말로 괜찮겠나? 이 기회를 놓치면 베리야는 다시 활개 칠 걸세.』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머리가 뭉개졌음에도, 베리야는 여전히 무시무시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으니까.
쓰러트릴 수 있다. 여명이 결의를 다지는 사이, 스탈린이 말을 이었다.
『동무야 신념을 위해 싸운다지만, 이 땅에 있는 동무의 연인들은 어쩔 거지?』
그 순간, 여명의 시야가 강제로 돌변했다.
선명한 시야 너머로 보인 건 세티였다.
그녀는 뭔가를 찾은 건지, 건물을 훌쩍 뛰어넘고 있었다.
『원수들은?』
한 번 더 시야가 변하며, 조웅찬 장관이 눈에 들어왔다.
양치기와 괴수 군인들의 호위를 받는 그는 어딘지 모를 땅굴에서, 누군가와 맞서고 있었다.
『소중한 사람들은?』
성물지기. 성녀의 아버지는 빛나는 검 한 자루로 조웅찬 장관과 한국인들을 틀어막고 있었다.
『정말로 베리야를 막고, 그들을 구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가?』
스탈린의 목소리에는 조롱도, 위엄도 없었다. 거기서 느껴지는 건 순수한 궁금증과 기대감뿐이었다.
여명은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할 수 있습니다.”
『대단한 자신감이군. 원하는 걸 다 가지겠다는 진의로 이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자신하나? 데메론드의 증오도 세상을 바꾸지는 못-』
여명은 그의 말을 끊었다.
“저는 제 진의를 믿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현실과 부딪혀 깨질 만큼 멍청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말한 여명이 눈을 뜨자, 그의 시야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정지되어 있었음에도, 그의 시선은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잠들어 계신 곳.
그의 시선을 따라간 스탈린은 덤덤히 말했다.
『그래, 그자가 있었군. 하지만… 정말로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나?』
“승리가 제 것인 것처럼, 후회 또한 제 것입니다.”
『….』
스탈린은 어떠한 평가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정지된 성도 곳곳을 훑어보다가, 조금 전 예카테리나가 뛰어온 방향을 보며 말했다.
『다시 만날 때, 동무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지 내 똑똑히 지켜보지.』
“죄송하지만, 다시 만날 일 없을 겁니다.”
『장담하지 말게. 동무가 직접 시나리오를 때려 부쉈으니, 더 이상 운명은 없네.』
“….”
여전히 제멋대로 지껄인 스탈린은 그대로 등을 돌렸다.
다시 하늘 위로 걸어 올라간 그의 뒷자리로, 마지막 말이 흩날렸다.
『다음에 보지. 천여명 동무. 나는 다섯 꼭짓점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겠네.』
그것을 끝으로, 스탈린의 모습이 사라졌다.
후우웁 – !
시간을 틀어막고 있던 기운이 사라지며 공기가 움직였다. 정지된 시간이 다시 흐르고, 뭉개졌던 피의 신이 소리쳤다.
[하, 하하하!! 살았다! 살았다고!! 천여명, 이 멍청한 놈! 너에게 감사하마!! 내가 특별히- 어?]그러나 베리야는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그의 무릎이 잘려나가며 거대한 육체가 기우뚱- 기울어졌으므로.
쿠구궁…!
거대한 육체가 땅에 처박혔다. 밤하늘 위로 피어오르는 흙먼지 사이로, 여명은 보았다.
무너진 중앙 신전 기둥 잔해 위에 선 금빛 눈동자의 남자.
변경백.
그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