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649)
을 위한 세계는 없다-649화(649/817)
EP.649 당국의 정당한 요구에 대한 소비예트 계승자의 답변. (6)
기도하고 있던 성녀의 시야로 뭔가 이상한 것이 보였다. 그녀는 모으고 있던 두 손을 풀고 하늘을 바라봤다.
“어, 어… 저거?”
부풀어 오른 붉은 거인의 앞뒤로 불씨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먼 거리였음에도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불씨였다.
화산쇄설.
성녀는 살로메와 지르지스의 뒷덜미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엎드려!!”
체력이 바닥나 축복으로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고 있던 살로메와 이미 반쯤 기절해있던 지르지스는 맥없이 그녀의 손에 끌려왔다.
두 사람을 잡은 성녀는 그대로 건물 잔해 뒤편으로 몸을 날렸다. 삐쭉 솟아난 잔해가 옆구리를 찔렀지만, 아프다고 징징거릴 순간이 아니었다.
“가, 갑자기 뭐야?! 조종 풀릴 뻔했잖아!”
뒤늦게 정신을 차린 살로메가 항의했다. 성녀는 대답 대신 귀를 막으며 소리쳤다.
“터진다!”
다행스럽게도, 살로메는 뭐가 터지냐고 되물을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그녀는 허겁지겁 성녀를 따라 귀를 막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
폭발이 대기를 강타했다. 살로메는 가장 먼저 자신과 연결된 괴수들이 쓸려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다음으로 땅의 진동을 느꼈고, 마지막으로 공기의 비명을 느꼈다.
그렇게 1시간 같은 찰나가 지난 뒤.
후폭풍이 그녀가 숨은 장소를 후려쳤다. 후두둑! 꽤 괜찮은 찻집이었던 건물의 잔해가 흔들리며 돌가루가 떨어졌다.
“서, 성녀님? 살아 있어요?”
충격이 그친 걸 확인한 살로메가 물었다. 성녀가 대답했다.
“난 괜찮아. 너는?”
“저, 저도 괜찮아요.”
“저도, 괜찮습니다. 성녀님.”
충격 덕분에 정신을 차린 건지, 지르지스 단장이 끼어들었다. 다행이었다. 살로메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잔해 너머를 확인했다.
폭발이 터진 자리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폭발은 상실로써 자신을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흉물스러운 잔해들과 그보다 더 혐오스러운 괴수들, 그리고 거대한 피의 거인까지.
모든 게 쓸려나가 있었다. 그 광경이 어찌나 충격적인지, 살로메는 몇 번이고 눈을 비볐다.
“사람이 어떻게 저만한 폭발을….”
그때, 그녀와 같은 곳을 보던 지르지스가 중얼거렸다.
“…자폭을 시도했군. 지독한 빨갱이 새끼 같으니.”
“네?”
“저건 폭발로 폭발을 상쇄한 거다. 둘이 막지 않았으면 자칫 성도에 큰 비극이 닥칠 뻔했어….”
지르지스의 설명을 들은 살로메는 그제야 폭발의 위력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제야,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여명은?
뒤늦게 여명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떠올린 살로메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보다 먼저 일어나 있던 성녀가 무너진 중앙 신전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찾았다! 저기!”
살로메는 성녀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았다. 무너진 잔해 사이에서 주섬주섬 기어 나오는 여명을.
“…아.”
그래, 저 사람이 이런 걸로 죽을 리가 없지. 살로메가 왈칵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는 사이, 지르지스가 다른 방향을 보며 말했다.
“변경백은… 당연히 살아 있고.”
그의 말마따나, 금빛 마나를 두른 변경백이 폭심지 중앙에서 걸어 나왔다. 모든 공격을 무효로 돌리는 가전 무술로 폭발을 피한 게 틀림없었다.
두 사람이 모두 무사한 걸 확인한 성녀는 리볼버를 높이 들었다.
“이겼다! 지르지스! 봤죠? 내가 그랬잖아! 여명이 해결할 거라고!”
살로메가 그녀를 따라 실실 미소지었지만, 정작 지르지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입니다. 성녀님.”
“응? 뭐가 또 남았어?”
지르지스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붉은 신의 성물을 지팡이 삼아 일어난 뒤에야 입을 열었다.
“저만한 신성이 그리 쉽게 사라질 리 없습니다. 가서 도와야겠습니다.”
“하지만 본체는 이미….”
지르지스는 성녀의 뒷말을 가로챘다.
“본체가 사라졌으니, 이 땅에 내려온 신성이 길을 잃고 뿌려질 겁니다.”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폭발이 솟구친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피처럼 붉은… 아니, 진짜 피로 이루어진 비.
심지어 쏟아지는 핏속에는 신성이 잠들어 있었다.
그것도 새로운 피의 신을 만들고도 남을만한, 막대한 양의 신성이.
“저게 무슨…?”
당황하는 성녀를 향해, 지르지스가 덧붙였다.
“지구에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저게 딱 그런 겁니다.”
듣고 있던 살로메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신의 죽음을 본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그러자 지르지스는 힘겹게 웃었다.
“빨갱이들이 시도한 일을, 종말 교단이 시도하지 않았을까.”
“….”
“질문은 여기까지 하고… 성녀님? 가시지요. 신성을 하늘로 돌려보내기 위해선 전문가가 필요할 테니.”
“응!”
그렇게 세 사람이 피가 쏟아지는 폭심지로 향하던 순간.
변경백과 무어라 대화를 나누던 여명이 세 사람을 향해 날아왔다.
케프리의 신성을 타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그는, 반갑게 양팔을 벌리는 성녀의 곁에 착지하며 말했다.
“단장님. 아버… 아니, 변경백께서 도움을 요청하셨습니다.”
“기꺼이 돕지. 그러면 우선… 다른 추기경들을 불러야겠군.”
그러나 여명은 고개를 저었다.
“당분간 비전투 인원은 부르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끝나지 않았다고? 하지만 붉은 거인은….”
지르지스는 그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발아래에서 느껴지는 묘한 진동을 감지한 까닭이었다.
“지하 통로에 침입자들이…? 대체 어디까지 기밀이 뚫린 건지 모르겠군. 아, 설마, 빨갱이들이 양동 작전을 펼친 건가?”
“그것까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제가 직접 내려갈 생각입니다.”
지르지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당장 가봐. 쏟아지는 신성은 변경백과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
그러자 여명의 팔에 매달려있던 성녀가 말했다.
“나는? 난 뭘 할까?”
“용사의 동료는 용사와 함께 해야 하는 법입니다.”
픽 미소 지은 성녀는 지르지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적색의 레독스시여. 당신의 총이 바라나이다. 이자에게 당신의 용기를 주시옵고, 만용을 거둬가소서.”
만주에서 여명에게 걸어준 축복만큼이나 진한 축복이 지르지스의 몸을 덮었다. 한숨 돌린 그는 따스한 눈으로 성녀를 바라봤다.
“이걸로 화염병 던지신 건 모른 척하겠습니다.”
“….”
성녀가 뜨끔한 표정을 짓는 사이, 지르지스는 여명과 살로메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자, 이제 가라. 나는 변경백과 신성을 정리하고 있을 테니.”
“예. 나중에 뵙겠습니다.”
지르지스는 그대로 변경백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뒷모습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한 여명은 곧바로 염동력을 펼쳐 살로메와 성녀를 들어 올렸다.
살로메는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자, 잠깐! 지하 통로로 내려간다는 게 설마-”
그 설마가 맞았다. 여명은 오랜만에 오른발 뒤꿈치를 들었다.
비각술의 오의, 진각.
!!!
여명의 뒤꿈치가 바닥을 강타하자, 바닥이 그대로 무너졌다.
쿠궁!
후방 경계를 서고 있던 사바칸의 귀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일직선으로 이어진 통로 저편에서 천장이 무너지고 누군가 착지하는 게 보였다.
사바칸은 곧바로 총을 들고 경계 태세를 취했다. 군인의 자세였다.
“누, 누구냐!”
통로의 어둠과 흙먼지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통로에 착지한 녀석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사바칸은 방아쇠에 손을 걸치며 소리쳤다.
“정지! 그 이상 다가오면 쏜다!”
그러나 상대는 멈추지 않았고, 사바칸은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무너진 통로 사이로 떨어진 민간인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머, 멈추라니까!”
탕! 바닥에 위협 사격을 해봤지만 상대는 이미 코앞까지 다가온 뒤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통로 너머에서 등장한 건 민간인이 아니었다.
“부, 붉은 별?”
신문에서 봤던 그 얼굴 그대로였다. 사바칸은 환상인가 싶어 눈을 깜빡이다가, 붉은 별의 가슴에 달린 금색 별을 보고 이게 현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진짜 금성 메달이잖아?
사바칸이 감격하건 말건, 붉은 별이 물었다.
“동무, 혹시 아샤 공산당 소속인가?”
“네, 넵! 아샤 공산당 소속 사바칸이라고 합니다! 붉은 별님, 혹시 저희를 지원하러 오셨습니까?”
붉은 별은 대답 대신 뒤를 바라봤다. 곧, 두 명의 소녀가 붉은 별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낯선 소녀와 너무나 익숙한 얼굴의 소녀.
“서, 성녀님?”
사바칸은 안대를 찬 소녀를 보며 비명처럼 크게 말했다.
“설마, 성녀님도 공산당이셨습니까?”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질문이었지만, 붉은 별의 등장부터가 상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이어진 성녀의 말은 아예 상식을 박살 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허, 허억!”
성녀의 입에서 공산당 선언이 나오다니! 그건 그 어떤 말보다 확실한 말이었다.
사바칸은 놀라 숨을 삼켰다. 덕분에 낯선 소녀가 오만상을 찌푸리는 걸 보지 못했지만 뭐, 중요한 건 아니었다.
아무튼, 붉은 별이 그에게 물었다.
“사바칸 동무, 우리는 비코프 동무를 지원하러 왔네. 비코프 동무가 어디로 갔는지 말해주겠나?”
사바칸은 손을 벌벌 떨며 통로 저편을 가리켰다.
“혀, 현재 동물 머리를 뒤집어쓴 적들과 교전 중이십니다!”
동물 머리. 붉은 별의 눈이 가늘어졌다.
“당장 비코프 동무를 도우러 가야겠군.”
그렇게 붉은 별이 사바칸을 지나치려는데, 성녀가 대뜸 이런 질문을 꺼냈다.
“사바칸 동무? 혹시 혹시 비코프 동무가 뭘 찾는지 알고 있나요?”
“그… 저, 저도 정확한 건 못 들었습니다. 그저 성물지기를 찾아야… 아! 그렇군요! 성녀님의 아버지를 구출하려는 거였군요!”
사바칸의 상상이 옳았는지 모르겠지만, 성물지기의 이름을 들은 성녀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녀는 사바칸이 의심하기 전에 그의 손등을 두들겨주며 말했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동무.”
“벼, 별것 아닙니다! 같은 당의 동무를 돕는 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그러면 저희는 먼저 가볼게요. 후방 감시 잘 부탁드려요.”
“마, 맡겨만 주십시오!”
자신도 모르게 경례한 사바칸을 뒤로한 채, 세 사람은 통로 저편으로 떠났다.
그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통로를 바라보던 사바칸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경계에 들어갔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자신의 뒤통수에 얼음송곳이 겨눠지고 있었다는 걸 끝까지 알아채지 못했다.
“이놈들은… 귀찮군.”
비코프는 말머리 괴인의 몸과 머리를 분리하며 중얼거렸다.
콰직! 뒤틀린 마나와 더러운 피가 바닥을 적시고, 저편에서는 쉴 새 없이 총알이 날아오고 있었지만, 그는 괘념치 않았다.
“동무들, 성물지기 추적은?”
목 없는 시체를 집어던진 그가 묻자, 복도 저편으로 사격하던 공산당원 하나가 대답했다.
“계속 멀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거리 23미터!”
아직까지 성물의 방으로 도망치지 않은 건가. 비코프는 턱을 쓸었다.
“아무래도 병력을 나눠야겠군. 동무, 내가 성물지기를 잡아 오는 동안 최대한 녀석들을 붙잡아 놓고 있게. 알겠나?”
공산당원은 병력이 모자라거나, 자칫 자신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든가 하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예! 따르겠습니다!”
곧바로 경례를 올린 군인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당원들을 가리켰다.
“팔다, 조바리오, 바클! 쥐를 꺼내라. 비코프 동지가 올 때까지 우리는 지연전으로 간다.”
그 말을 들은 당원들은 곧바로 교전을 멈추고 품에서 작은 구슬들을 꺼냈다.
베리야의 구슬과 닮았으나, 그보다 훨씬 정교한 구슬.
공산당원들은 비코프가 떠나는 걸 보자마자 적들을 향해 힘껏 구슬을 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구슬들은 반으로 갈라지며 붉은빛 차원문을 열어 재꼈다. 고작 사람 한 사람 통과하기도 빠듯한 작은 차원문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차원문을 넘어오는 녀석들은 크기에 연연하는 놈들이 아니었으니까.
-찌, 찍! 적! 적이다!
-싸워, 싸워라!
-전쟁!! 결코 다시 전쟁!!
각종 화기로 무장한 쥐 수인들. 비코프가 드레이테리얼에서 키워낸 녀석들은 우르르 차원문 밖으로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통로를 가득 채운 쥐 수인들.
하지만 한국 정부의 양치기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들 또한 숨겨둔 수를 풀어놓고 있었으므로.
[장관님께서 허가하셨다! 전원, 껍질을 벗어라!]말 머리급 이상 양치기들은 물론이고, 괴수 군인들의 육체가 뒤틀리며 변신을 시작했다.
피부가 녹아내리고, 몸 곳곳에서 새로운 촉수와 부속지가 돋아나는 모습.
산전수전 다 겪은 공산당원들조차 흠칫 놀랄 정도로 혐오스러운 광경이었으나, 공포를 모르는 쥐 수인들은 개의치 않고 녀석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라!! 우라!!
[전부 죽여라!! 장관님을 위한 길을 뚫어라!]그렇게 빨갱이와 썩은 정부 사이의 교전이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이어졌다.
흩뿌려지는 총알과 넘쳐나는 적의가 통로를 가득 채우는 가운데, 조웅찬 장관이 소리 질렀다.
“제기랄, 당장 희생양 자매와 천여명에게 연락해라! 결계를 펼치기 전에 한 명이라도 전력을 모아야한다!”
“하, 하지만 그들이 연관되면 자칫 꼬리가 밟힐지도 모릅니다.”
양치기의 상식적인 조언은 통하지 않았다. 이미 그럴 단계를 넘은 지 오래였다.
“일단 부르란 말이다! 어차피 이 작전 실패하면 너나 나나 전부 죽는다!”
“하지만….”
“닥쳐! 각하의 명령은 국가보다도 위에 있다! 당장 연락해라!”
장관이 각하까지 운운하자, 양치기는 더는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천여명에게 통화했다.
한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의 통화음을 따라, 통로 저편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마치, 천여명이 저기 있기라도 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