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680)
을 위한 세계는 없다-680화(680/817)
EP.680 주인공을 위한 반란은 없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대한 민주주의 공화국은 기미 삼일 운동에서 시작된 위대한 독립 정신의 계승자 이승만 대통령님의 사상과 영도를 구현한 주체의 민주주의 국가이다.
『헌법 서문』
***
-한국은 유독 마법사가 많이 나오는 땅으로 유명한데요, 마탑의 대표로서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한국은…
-다음 상대부터는 연달아 한국인과 겨루게 되셨는데, 마탑 출신으로서 부담을 느끼십니까? 최근 한국의 약진이…
-왜 평소에 얼굴을 공개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혹시 마법적인 수련 같은 겁…
-천여명 선수를 어떻게 생각하십…
-töte sie alle!!!!
마음속 히틀러가 다 쏴 죽이라고 말할 정도로 길고, 지루한 인터뷰가 이어지길 한참.
살로메는 해가 저물 때가 돼서야 기자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터벅터벅 숙소로 돌아가는 그녀의 걸음에는 힘이 없었다. 차라리 연설을 하고 말지, 함정 섞인 질문에 시달리는 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히틀러가 왜 괴벨스를 아꼈는지 알 수 있을 정도.
그나마 선수촌 곳곳에 깔린 군인들 덕분에 기자들이 쫓아오지 않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뭐, 아무튼.
여성 숙소 건물로 들어선 살로메는 불현듯, 걸음을 돌렸다. 자신의 방이 아닌, 세티의 방이 있는 방향으로.
대단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여명이 없을 때는 세티가 용사 파티의 리더였고, 그녀는 계획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했…… 같은 건 다 핑계지.
사실, 잠옷 바람으로 여명을 찾아간 그날 이후 살로메는 세티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성녀처럼 뻔뻔하거나, 엘프처럼 일부다처제를 당연하게 생각할 수 없었으므로.
아샤에서 일부다처가 흔하다지만, 그녀의 가문은 그런 흔함과 거리가 멀었다. 당장 그녀의 아버지, 할머니, 심지어 증조할아버지까지 전부 지구식 일부일처를 고집하지 않았나.
그래서 살로메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하거나, 하더라도 일부일처로 살게 될 줄 알았다. 다시 말해, 그녀는 다른 아내(?)들을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 같은 남편을 둔 여자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지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짧은 시간을 쪼개 초대 용사님의 사례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아무 도움도 안 됐다. [용사님의 사랑은 하해와 같아서, 딸과 엄마를 모두 평등하게 대했다.] 같은 기막힌 문구만을 찾았을 뿐.
어쨌거나, 이렇게 눈치만 보는 건 그녀의 방식이 아니었다. 적어도 용사 파티의 방식이 아닌 건 확실했다.
그렇다면 남는 건 정공법뿐. 살로메는 자신의 부끄러움과 당당하게 마주하기로 했다. 솔직히 성녀 같은 인간도 당당한데, 자신이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있겠냐는 생각도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성녀보단 내가 낫지.’
그런 생각을 끝으로 세티의 숙소에 도착한 살로메는 자신의 볼을 짝! 때렸다. 좋아, 가는 거야. 그녀는 그대로 문을 두들겼다.
똑똑. “세티?” 똑똑. “저기요?” 똑똑. “큰 며느리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자리에 없나? 살로메가 마지막으로 문을 두들기려 하자, 스르륵, 문이 열렸다. 아니, 애초에 잠겨 있지도 않았다.
뭔가 싶어 문 너머를 들여다보자, 잠든 세티가 보였다.
노트북이 펼쳐진 탁자 앞, 여명에게 받은 용사의 망토를 이불 삼아 잠든 모습.
이렇게 대책 없이 문을 열고 잘 사람이 아닌데… 많이 피곤했나? 살로메는 숙소로 들어가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세티에게 다가가 보니, 새근새근 귀여운 숨소리가 들렸다. 살로메는 그녀를 깨우려다가, 그냥 옆 의자에 앉았다. 잘 자는 걸 굳이 깨울 필요가 없었고, 무엇보다 잠든 세티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 까닭이었다.
기다란 속눈썹, 완벽한 입술, 그리고 비단처럼 흘러내린 머리카락.
새삼 참 예쁜 얼굴이란 생각이 들었다. 같은 인조인간이라서 그런 걸까, 질투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긴, 이 정도는 돼야 용사와 성녀를 동시에 홀리지.’
성녀는 좀 안 좋은 쪽으로 홀리긴 했지만… 성녀를 떠올린 살로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히 깨우지 말고, 이대로 문을 잠그고 떠날 생각이었다.
그럴 생각이었는데… 세티의 노트북 화면이 그녀의 시선을 빼앗았다.
노트북 절반에는 여명이 저번에 말했던 내용과 관련된 계획이 빼곡히 들어 차 있었다. 언론과의 연계, 연설 장소, 박 기자의 발표 시간 등.
감탄이 나올 정도로 훌륭한 계획서였다. 하지만 진짜로 눈길을 끄는 건 나머지 절반을 채우고 있는 내용이었다.
개성과 서울 중심으로 소집된 한국군의 부대 배치도.
‘…뭐야 이거?’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는 묘한 본능을 따라, 살로메는 노트북으로 손을 뻗었다. 그녀는 꼼꼼하게 세티가 정리한 자료들을 읽어내렸다.
부대 배치도 이상의 자료들이 아래에 펼쳐져 있었다. 전투에 개입할 수 있는 공군과 만주군의 이동 경로, 출동 시간, 심지어 각하에게 충성하는 애국자 군인들의 목록까지.
거의 모든 자료를 눈에 담은 살로메는 이 자료들을 세티가 왜 보고 있는지 깨달았다. 한국군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그래, 이건 각하를 죽이는 데 실패하고, 한국 국민들이 진실을 거부했을 때를 대비한 자료였다. 계획이 실패했을 땐, 결국 한국군과 싸워야 할 테니까.
문제는, 한국군은 지구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현대군이라는 점이었다. 인도와 남미, 그리고 변경백의 사례가 증명하듯, 초인과 현대군의 전투는 언제나 현대군이 우위를 점하는 법이다.
그 현대군에 소수나마 초인이 섞여 있다면 더 말할 것도 없었고.
같은 의미에서 여명도 한국군과의 정면 대결은 최대한 피해야 했다. 물론, 여명의 힘이라면 사단급 병력도 쉽게 갈아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는? 연대 단위로 갈아버리고, 군사 기지를 터트리면 그걸로 끝인가?
여명에겐 한반도를 점령할 군대도, 점령지를 유지할 행정력도 없었다.
이 상황에서 세티가 내놓은 답은 참수 작전이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군 상층부를 몰살시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목이 잘린 군이 어영부영 바보가 된 동안 복수할 놈들을 싸그리 죽이고, 이 땅을 영원히 떠난다… 실현 가능성과 상관없이, 계획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미필, 그것도 군대에 대해 모르는 세티가 세운 계획치고는.
하지만 살로메는 달랐다. 그녀의 뱃속에는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겪고, 폭력과 선동으로 권력을 찬탈한 마왕이 소화되고 있었다.
그래, 그녀는 세티가 미처 보지 못한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었다.
쿠데타.
국방부 장관이 우리편 인 상황에서 군부의 속을 이렇게나 속속들이 알고 있다면, 나라를 뒤집는 건 어렵지 않았다.
수도에 모인 부대의 지휘관 대부분이 ‘애국자들’이란 사소한 문제가 있긴 했지만… 살로메는 뱃속의 히틀러가 가진 정보를 강제로 뽑아내며 답을 찾았다.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을 제압하면… 국방부 장관이 최종 명령권자지. 예하 부대가 반응하기 전에, 장관의 명령으로 애국자 지휘관들을 모아 일거에 쓸어버리면 돼.’
‘군 통신망은… 테러 전문가인 미리가 점령하고.’
‘그 외에 신경 써야 할 건… 만주군의 김삼허 중장 정도인가?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애국자들에 속하기 위해 홍용완에게 줄을 대던 야심가니까, 가능성이 있어.’
‘그렇게 군 수뇌부를 점령한 뒤, 행정부와 의회의 애국자들을 숙청하면….’
그때, 누군가 그녀의 생각을 끊었다.
『장검의 밤이라… 아니, 이 경우에는 지팡이의 밤이 되겠구나.』
장검의 밤. 힌덴부르크 대통령의 압박과 협력을 받던 히틀러가 나치 반대자들과 나치당 내부 좌익 인사를 숙청한 사건… 대통령까지 죽일 생각을 하고 있던 살로메는 흠칫 놀라며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침입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 비치는 건 잠든 세티와 그녀의 그림자뿐.
환청? 아니, 아니었다. 곧 그림자가 말했다.
『히틀러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모습을 기대했거늘, 역으로 그의 지식을 이용하는 단계까지 가다니. 장하구나. 장해.』
“….”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말거라. 악인의 지식이라도 나름의 쓸모가 있는 법… 먹는 것에서 만족하지 말고, 즈려밟고, 쥐어짜거라. 포도를 와인으로 만드는 것처럼.』
그것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살로메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얼음장 위에 내동댕이쳐진 생선처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 당신은 대, 대체 뭐….”
『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단다. 다섯째야.』
“….”
『나의 간택자에게는 네가 필요하고, 너에겐 나의 간택자가 필요하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
목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마주할 때와 마찬가지로 정신이 흐려지고, 몸이 균형을 잃었다.
뱃속의 히틀러가 끔찍한 비명을 질렀으나, 그녀에게는 닿지 않았다.
아픔이나, 두려움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그 이상의 무언가였다. 이대로 기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녀는 필사적으로 정신줄을 붙잡았다.
질문을 위해서.
“와, 와인을… 만들려면, 어떻게-”
『히틀러가 가장 싫어하는 게 뭔지 떠올려 보거라.』
질문에는 질문으로. 살로메는 경험을 통해 질문의 답을 떠올렸다.
‘…빨갱이의 체액?’
하지만 그 답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보다, 살로메의 정신줄이 끊어지는 게 조금 더 빨랐다. 살로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무너지듯 쓰러졌다.
침묵이 찾아오는 가운데, 소리 없는 웃음소리가 방을 울렸다.
***
다음날, 아침.
올림피아 선수촌은 평소보다도 더욱 바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사진을 찍기 위해 모인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건 물론이고, 검문소 군인들이 배로 늘어나 있었다.
오늘이 대진표를 확인하고 다시 경기를 시작하는 날이라서? 아니, 아니었다. 선수촌의 혼란은, 갑작스러운 대통령의 방문 소식 때문이었다.
오늘은 제2의 개막식이나 다름없으니, 본인이 직접 와야 한다나?
관련자들과 기자들, 심지어 선수들조차 원하지 않는 방문이었지만, 대통령은 뻔뻔한 태도로 방문을 강행했다. 아침 출근길에 도로를 통제한 덕분에 지지율에 악영향이 있을 거란 비서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뭐, 여명 일행에게는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투명 망토나 별다른 핑계 없이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으니까.
특히 세티 방에서 기절했던 살로메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깨어나자마자 어버버 세티의 방에서 도망친 일을 만회하고, 여명에게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
[친애하는 올림피아 선수단 여러분! 오늘 세계의 평화와 명예를 빛낼 서울 올림피아의 재개를 축하하며 여러분의 장도에 행운이 있기를 온 국민과 함께 기원합니다.우리 국민은 이번 서울 올림피아에서 지난 애틀란타 올림피아의 영광이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선수 여러분이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여 개인적 영광은 물론, 나라의 명예를 크게 빛내 주기 바랍….]
대통령의 연설이 시작되는 가운데, 살로메는 우선 세티와 여명 사이로 파고들었다. 대외적인 이미지 때문에 멀찍이 떨어져 있던 성녀가 살기 어린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지만, 살로메는 개의치 않았다.
세티와 여명에게 어엿한 가족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한순간이라도 빨리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했으므로.
물론, 여명과 세티는 이미 그녀를 인정하고 있었다. 평생을 타인을 위한 그릇으로 살아온 살로메는 그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
아무튼, 살로메는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도록 마법까지 써가며 자신이 떠올린 계획을 늘어놨다.
여명의 계획이 실패했을 때를 노린 세티의 보조 계획과 달리, 훨씬 스케일이 큰 계획.
그 커다란 계획을 쉽게 줄이자면 이러했다. 각하를 제압하는 동시에 대통령을 억류하고, 군부를 숙청해서 이 나라를 통째로 먹어버리자.
아무리 군의 기밀 자료를 봤다고 해도, 하룻밤 만에 떠올린 계획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세세하고 과감한 계획이었다. 그 완성도가 어찌나 높은지, 대통령의 연설을 듣던 세티가 이렇게 물을 정도였다.
“…지금 말하는 거, 살로메 맞지?”
“으, 응? 당연히 나지. 왜 그런 걸 물어봐?”
“아니, 혹시라도 히틀러가 세운 계획이면 큰일이잖아.”
“….”
의심의 눈초리를 견디지 못한 살로메는 후다닥 변명을 내뱉었다. 히틀러를 소화한 지식이 들어가긴 했지만, 이건 나치식의 방식이 아니다. 그냥…
“…쿠데타지.”
여명이 한 줄로 계획을 정리하자, 살로메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 쿠데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여명의 복수를 돕기 위해…”
“…한국의 총통으로 만들려고?”
“….”
아니, 말이 그렇게 되나? 살로메는 서기장으로 만들려는 엘프보다는 낫지 않냐고 말하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진짜 그런 거 아니야. 총통이라니. 나는 어디까지나, 용사를 돕는 것뿐이야. 어차피 쓸어버릴 거, 조금 더 안전한 방식으로 쓸어버리잔 거지.”
“….”
여명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새 연설을 끝낸 대통령을 향해 박수를 보내며 말했다.
“용사가 아니라 여명.”
“으, 응?”
“칭호로 부르지 말고, 앞으로는 무조건 이름으로 불러. 알겠지?”
“어… 으, 응. 알겠어. 그, 여, 여명.”
살로메가 새삼 부끄러운 듯 여명의 이름을 부르자, 여명과 세티가 동시에 픽 웃었다.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몇몇 선수와 관계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가운데, 여명은 다가오는 대통령 경호원들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네 계획을 진행하는 건 어려울 거 같아.”
“…왜? 혹시 총통 때문이라면 걱정 마. 진짜 그럴 생각으로 생각한 계획 아니니까. 나는 어디까지나 복수를 돕기 위해….”
“아니, 계획의 완성도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조금 더 다듬어야겠지만, 방향성 자체는 마음에 들어.”
“…그럼 왜? 왜 안 된다는 거야? 아, 그래, 조금 더 다듬어 올까? 장만 어르신과 연락망을 주면 내가 알아서….”
여명은 손가락을 들어 그녀의 말을 막았다. 살로메가 눈을 깜빡이며 그의 손을 바라보길 잠시. 여명은 다가온 양복쟁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계획의 골자부터 수정해야 해서 그래. 대통령을 억류하자니. 같은 편을 왜 억류해?”
“…뭐?”
“사실, 대통령하고 손잡았어.”
이게 무슨 소리야? 살로메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잠시 후, 다가온 경호원들이 이렇게 말했다.
“천여명 선수, 따라오시죠. 대통령 각하께서 개인적인 만남을 원하십니다.”
여명은 기꺼이 그들을 따라갔다. 살로메는 멍하니 떠나는 여명의 등을 바라보다가, 세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미리 들어서 알고 있었는지, 별로 놀란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에게 농담을 던질 정도로 여유로웠다.
“대통령의 인정을 받은 숙청이라… 진짜 장검의 밤이 따로 없네. 그렇지?”
“….”
살로메는 무어라 반박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여기서 잘못 대답하면, 미스 아돌프가 될 게 뻔했으므로.
***
같은 시각, 네티는 비상 연락망 속 메일을 확인하고 있었다. 시카고에 있는, 라쉬크의 호문쿨루스가 보낸 메일이었다.
자신의 호문쿨루스와는 차원문을 넘어 실시간 통신이 되는 건가? 놀라움 속에서 메일을 읽던 네티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아니 뭔…?”
어이가 없어서 다시 확인해 보고, 눈살을 찌푸리고, 미간을 주물러도 메일의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네티는 콜라를 홀짝이며 메일을 다시 읽어 내렸다.
인생 진짜 시발- 이란 문구로 시작하는 메일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성도에서 여명 일행보다 먼저 출발했지만, 갑자기 개성 차원문행 기차들이 실종돼서 아샤 한 가운데에 고립되었음. 집으로 보내줘. by 구더기 공주.]그러고 보니, 올림피아 선수단 때문에 성도-승만 시티 직항 항공기가 막혔었지. 아마 승만 시티와 가까운 곳으로 비행기를 타고 간 뒤 기차를 타고 올 생각이었나 본데… 갑자기 기차가 사라지다니, 이 무슨 기막힌 우연이란 말인가?
네티는 곧바로 비상 연락망을 사용해서 일행에게 연락했다. 그녀의 연락을 받은 건 미리디스 였는데, 그녀는 의외로 엄청나게 당황하며 어떻게든 라쉬크를 도와야 한다고 했다.
형부의 분신이라도 보내면 어떨까요- 시큰둥하게 의견을 내던 네티는 불현듯, 뭔가를 깨달았다.
‘이거 혹시… 구더기 공주님도 팔선녀가 되는 건가?’
이미 꽉 찼는데… 잠시 뜸을 들이던 네티는 불현듯, 더 좋은 계획을 떠올렸다. 분신이나, 비상 비행기를 보내는 것보다 더 좋은 생각.
그녀의 아이디어가 좋은 점은, 편지 한 통이면 충분하다는 점이었다. 네티는 곧바로 호문쿨루스에게 답장을 썼다.
[라쉬크, 오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지금 그곳에서 승만 시티 반대편으로 향하는 기차표를 사서 구봉 산맥으로 가세요. 그리고 아홉 봉우리 중 가장 높은 용 비늘 산맥으로 가시면…]거의 다섯 페이지가 넘는 답장을 보낸 네티는 라쉬크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반나절 뒤, 차원문 너머에서 네티의 답장을 받은 라쉬크는 온몸을 비틀었다.
제기랄, 또 용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