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681)
을 위한 세계는 없다-681화(681/817)
EP.681 주인공을 위한 반란은 없다. (2)
***
“혹시, 사탕 좋아하나?”
개인실로 여명을 부른 대통령의 첫마디는 그것이었다. 여명은 어떤 암호나 시험인가 싶어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전부 넘겨짚기에 불과했다. 대통령은 안주머니에서 진짜 사탕 상자를 꺼냈으니까.
옛날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왕사탕.
담배를 꺼내는 것처럼 상자에서 사탕을 꺼낸 대통령은 여명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어른이 주는 걸 함부로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기에, 여명은 별말 없이 사탕을 받았다. 혹시나 싶어 슬쩍 마나를 불어 넣어 봤으나, 옆에 서 있던 경호원이 몸을 흠칫할 뿐, 사탕 자체는 평범한 사탕이었다.
아무튼, 여명이 사탕을 입에 넣은 직후. 대통령은 사탕 대신 담배를 꺼내 물며 말했다.
“나는 싫어하네. 혈당 때문에.”
“….”
이 양반도 정상은 아니군. 여명이 딸기 맛 사탕에서 라쉬크를 떠올리는 사이, 탁- 탁- 경호원이 라이터를 꺼내 대통령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
익숙한 담배 냄새였다. 나이 든 청소부들이 종종 피곤하던, 산 이름을 따온 국산 담배의 향기. 특유의 뻑뻑한 코코아 향기가 코를 찔렀다.
대통령은 한 모금 더 담배를 피운 뒤, 여명에게 자리를 권했다.
“우선 앉게. 대화가 좀 길어질 거 같으니, 편하게 대화하지… 아, 혹시 담배 싫어하나?”
“아뇨, 전 딱히 신경 안 씁니다.”
그렇게 말했음에도, 대통령은 금세 담배를 비벼껐다. 아직 반이나 남은 담배가 재떨이 위로 찌그러졌다.
“내가 요즘 젊은이들은 담배를 싫어한다는 걸 가끔 까먹곤 하네. 이해해 주게.”
“….”
이해하고 말 것도 없었다. 여명은 더 이상 어른들의 연기에 속을 정도로 어수룩한 꼬맹이가 아니었고, 이 모든 행동이 대화를 이끌어가기 위한 대통령의 연기라는 걸 간파하고 있었다.
여명은 입 안에 있던 사탕을 콰직, 깨문 뒤며 말했다.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오신 겁니까? 따로 약속을 잡으셨으면….”
“…장만과 함께 만났겠지.”
“….”
여명의 말을 끊은 대통령은 의자 팔걸이에 손을 올리고 턱을 괴며 말했다.
“나는 말일세. 장만, 그 노괴가 없는 자리에서 직접 자네를 보고 싶었네.”
“…노괴라뇨.”
“모카 딕, 나라 하나를 무너뜨린 밀수꾼이 노괴가 아니면 또 누가 노괴인가?”
“….”
“그런 표정 짓지 말게. 난 정치인일세. 사람을 믿기 위해선 그만한 증거가 있어야 하는 정치인. 나는 장만이 자네를 도와주는 이유도 모르고, 무엇보다 그 노괴에게는 전적이 있지 않나. 나로서는 그의 진심을 의심할 수밖에 없네.”
변명이었다. 그럴싸하고, 진심이 담긴 변명. 덕분에 여명은 그 속에서 쉽사리 숨겨진 뜻을 찾을 수 있었다.
‘…너의 진심 또한 의심하고 있다.’
저런 마음을 대놓고 드러내는 건, 역시 믿고 싶다는 걸까? 정치인의 화법은 너무 복잡하고, 애매했다. 스탈린이 어째서 그렇게 숙청을 좋아했는지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까득. 여명은 한 번 더 사탕을 씹으며 대답했다.
“장만 어르신의 진심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분께선 그저 절 도와주시는 겁니다.”
“그저 도와준다… 이만한 일을 그저 도와준다고 표현할 수 있다니. 참 꿈같은 이야기로군.”
“….”
“내가 도와달라고 싹싹 빌 때는 은퇴했다며 무시하던 양반이…… 아, 설마, 자네가 그 양반 아들이라도 되는 건가?”
여명은 고개를 저었다.
“핏줄도 아니라면, 대체 왜-”
대통령의 말꼬리가 길어지기 전에, 여명이 그의 말을 끊었다.
“저는 천 반장님의 복수를 하고 있습니다.”
“…천 반장? 천부명 박사?”
“제게는 청소부 길드 작업반장님입니다.”
“청소부… 아니, 복수? 복수라니. 설마, 천 박사가….”
“돌아가셨습니다.”
“….”
그래서 천 씨인가… 대통령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무어라 말하려다가,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지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번에도 경호원이 다가와 그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잠시 후, 담배 연기를 한껏 머금은 대통령이 물었다.
“천부명 박사는 왜… 아니, 어떻게 죽었나?”
“청소부 길드가 인천 도살자에게 반장님을 비롯한 저희 청소부팀을 팔았습니다.”
대통령은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가 떨리는 다리를 억누르고 있다는 걸 눈치챈 여명은 아무 말 없이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짙은 담배 연기가 주변을 채우길 잠시. 생각을 정리한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천 박사가… 실수한 건가? 몰래 자네 같은 초인을 키우다가, 하필 애국자들에게 걸려서-”
“-아뇨, 저는 박사님이 죽은 뒤에 초인이 되었습니다.”
“….”
이번에 놀란 건 대통령이 아닌, 그의 경호원이었다. 담배 연기 뒤에 시립해 있던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여명의 위아래를 훑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여명의 성장 속도는 여러모로 비정상적이었으니까.
아무튼, 여명은 대통령을 향해 말을 이었다.
“더 궁금하신 게 있으십니까?”
“왜 하필 빨갱이로 변장한 건가? 혹시 노동 운동을… 하지는 않았겠군. 자네는 전태일도 모르니.”
“….”
또다시 침묵.
고요한 담배 연기 속에서 순식간에 두 번째 담배를 다 피운 대통령은 세 번째 담배를 꺼내 물며 말했다.
“복수심은 강력한 동기지. 특히나 그게 가족의 죽음이라면야… 자네의 말을 믿겠네.”
믿지 않는다는 둥 거창하게 시작한 것치고는 담담한 결론이었다. 작업반장과의 인연이 깊었던 걸까? 아니면 따로 뒷조사할 생각인 걸까?
여명이 그의 행보에 대해 고민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대통령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미워하는 것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네. 복수심 또한 그렇지. 혹시… 복수 이후 이 나라를 생각한 적 있나?”
“예, 있습니다.”
대답을 들은 대통령은 곧장 자세를 고쳐 앉았다.
“좋아, 그렇다면 말이 빠르겠군.”
…계획이 뭔지 물어보려는 건가. 여명은 저도 아직 당신의 진심을 못 믿겠습니다- 라는 대답을 준비했다.
하지만 이어진 대통령의 말은 그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내게 좋은 계획이 하나 있네. 장만에게도 아직 말하지 않은 계획이지. 아직 자네의 계획이 뭔지 모르지만, 분명 자네 계획에도 도움이 될걸세. ”
이게 본심이었나. 여명은 이글거리는 대통령의 눈동자 속에서 그가 처음부터 이 순간을 위해 자신을 만나러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꿀꺽, 여명은 대통령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침을 삼켰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쿠데타.”
***
“…예?”
본인이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인데, 쿠데타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황망한 여명의 얼굴을 본 대통령은 빠르게 설명했다.
“친위 쿠데타라는 말을 알고 있나? 권력자가 더 큰 권력을 위해 내부를 숙청하는 일을 말하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히틀러가 나치당 내부를 정리한 장검의 밤이나, 모택동이 일으킨 문화대혁명을 생각하면 되네.”
“….”
“어쨌거나, 중요한 건 자네와 내가 함께 쿠데타를 일으키는 걸세.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애국자에 충성하는 수뇌부를 쓸어버리자는 것이지.”
“….”
“아, 혹시라도 오해하지 말게. 자네에게 군부대와 싸우고, 의원들을 죽이란 말은 아니니. 자네는 딱 한 사람… 한 사람만 제거해 주면 되네.”
거기까지 말한 대통령은 짧게 숨을 돌렸다. 담배 냄새나는 방에는 단 세 사람만 있었건만, 대통령은 누가 들을세라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김강혁 국방부 장관… 단 한 사람.”
“….”
“그자만 제거하면, 그 뒤는 일사천리일세. 내가 계엄령을 내리고, 애국자들에게 충성하는 군 수뇌부를 모아 군권을 박탈한 뒤 전부 몰살하겠네. 애국자들이 금세 반격하겠지만… 적어도 자네가 종말 교단과 싸우는 동안 한국군을 묶어 놓을 수 있을 걸세.”
말을 끝낸 대통령은 마치 도박판에 판돈을 올인한 도박꾼처럼 긴장한 눈으로 여명을 바라봤다. 심지어 경호원에게도 미리 말하지 않은 비밀이었는지, 경호원 또한 놀라서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여명은 그 분위기에 맞춰줄 수 없었다.
“어… 대통령님?”
“그래, 알고 있네. 단번에 받아들이기엔 너무 스케일이 크겠지. 나중에 대답해 줘도 되네. 올림피아 결승전 이전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저… 그….”
“자세한 사항은 장만을 통해 계획서를 보내겠네. 검토 후에 대답해 주게.”
대통령의 목소리에는 조금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명은 그 간절함에 보답하긴커녕, 분위기를 망칠 수밖에 없었다.
“저… 대통령님, 김강혁 장관은 우리 편입니다.”
“…?”
“그, 애국단이라고 아십니까? 김강혁 장관께서 그 애국단의 단장입니다.”
“…??”
대통령은 여명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그대로 멈췄다. 마치 TV속 정지화면처럼.
그나마 그가 입에 문 담배가 타들어 가며 시간이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했지만, 그조차 오래가지 않았다.
“하하, 이 친구. 뭔가 했더니, 오해가 있었구만. 이 나라에 애국단은 두 개일세. 군부가 이용하려고 만든 용병단과, 한국 정부에 저항하는 테러리스트들. 자네가 착각한 건 아마 전자-”
“-가 아닌 후자입니다. 남산에서 그분들과 함께 싸웠습니다.”
“뭐…?”
“증명할 수 있습니다. 감시 때문에 두 분이 직접 만나는 건 어렵겠지만… 장관님이 직접 건넨 군의 기밀 자료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장만 어르신께서는 통화도 가능하실 겁니다.”
여명의 목소리는 확고했다. 할 말을 잃은 대통령은 필터까지 타들어 간 담배를 손가락에 끼운 채 손을 파르르 떨다가,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이런 씨발.”
대통령의 위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
삽 십분 뒤, 경무대로 돌아가는 대통령 전용차.
어느 정도 평정을 되찾은 김규원 대통령은 경호원이자 운전사에게 물었다.
“이보게, 주단. 자네는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나?”
주단이라 불린 경호원은 차량 정면을 보며 대답했다.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적? 웃기는 게 아니고?”
“예. 대통령 각하 말고도 이 나라를 바꾸려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하필이면 각하께서 몇 년간 죽이려고 준비하던 국방부 장관이었다는 사실이… 제게는 기적처럼 느껴집니다.”
그렇게 말한 주단은 은근슬쩍 다른 경호 차량들을 훑었다. 어쩔 수 없었다. 대통령경호처장부터가 ‘애국자’였으니까. 지금은 잘 숨기고 있었지만, 녀석들은 언제든 대통령을 노릴 수 있는 적이었다.
대통령은 그런 그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픽 웃었다.
“기적, 기적이라… 그렇다면 천여명, 그 친구가 기적을 내리는 성자인가 보군.”
“…외람되지만, 벌써 그를 믿으시면 안 됩니다. 고작 복수 때문이라기엔 그가 벌이는 일의 크기가 ….”
그때, 대통령이 말을 끊었다.
“어허, 이 친구가. 고작 복수라니? 누군가에게 복수가 인생의 전부일 수도 있는 법일세.”
“…실언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진지해질 필요도 없네. 다른 놈들에 비하면 그건 실언도 아니니.”
그렇게 말한 대통령은 창밖의 경호 차량을 바라봤다. 언제든 싸울 수 있도록 무장한 군인들과 대통령경호처의 초인들이 타고 있는 차량.
차량을 보던 대통령은 안도감 대신 답답함을 느꼈다. 대통령경호처는 그가 대통령이란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허락한 자가 그에게 걸어놓은 목줄이었으니까.
“…주단. 직접 본 천여명은 어느 정도로 강한가?”
주단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이 ‘솔직하게 대답해도 좋네’ 라는 말을 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명령하신다면, 30초는 잡아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 자네가 30초?”
“붉은 별의 활약과, 올림피아에서 보여준 실력만 두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만약 제가 모르는 수단이 있다면 10초도 어렵습니다.”
“…허. 그 정도인가?”
“예. 그 정도 입니다.”
대통령은 턱을 쓸었다. 그가 비록 초인은 아니지만, 경호원이 얼마나 강한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10초라니. 여명의 강함은 비정상적이었다.
“초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그만한 힘이라… 마치 용사 같군.”
“…용사? 아샤의 전설 말입니까?”
“그래, 그 용사 말일세. 성도에서 다섯 신에게 성검을 받은 그가 마왕을 쓰러트리기까지 불과 2년도 걸리지 않았네. 천여명도 비슷하지 않나.”
“…그런 동화를 좋아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자 대통령이 고개를 저었다.
“동화라니? 초대 용사는 실존 인물이네. 그것도 고작 2년 만에 마왕을 쓰러트리고 여생을 아샤 통일에 쓴 정복 군주지. 뭐, 지구의 예수처럼 실제 역사와 신화가 뒤섞이고, 아샤의 제국 황실이 직접 역사를 조작했으니, 동화라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만….”
말끝을 흐린 대통령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천여명이 용사면 좋겠군.”
“정복 군주를 원하시는 겁니까?”
대통령은 무슨 그런 농담을 하냐는 듯 픽 웃은 뒤, 아련한 눈으로 대답했다.
“아니, 천 박사 때문일세.”
“….”
“용사를 만들기 위해 온갖 오물을 뒤집어썼던 그가… 추방되고 나서야 진짜 용사를 키워냈다면… 이 얼마나 역설적인 일이겠나.”
주단은 대통령의 목소리에 깃든 슬픔을 읽어냈지만, 그 이상의 감정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감정을 이해하기엔 그는 너무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살아왔으므로.
대통령 또한 그런 주단을 이해했는지, 더 이상 그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렇게 대통령 전용차를 둘러 싼 경호 차량들이 대통령을 감시하는 가운데, 대통령은 조용히 자신만의 추억으로 빠져들었다.
***
같은 시각, 올림피아 선수촌 휴게실.
여명에게 대통령의 이야기를 들은 미리디스의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이 정도면 세상이 여명보고 쿠데타를 일으키라고 부추기는 수준인데요?”
“….”
“까짓것, 그냥 뒤엎어 버리죠?”
성녀가 있었다면 이 미친 빨갱이가 뭐라는 거야! 라고 말했겠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몰려드는 교인과 기자들에게 끌려간 지 오래였다.
엘프를 제외하고 이곳에 있는 건 세티와 살로메, 그리고 여명뿐.
여명은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뒤엎는 건 뒤엎는 거지만… 쿠데타라니. 조금 고민이네.”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어차피 처음 계획하고 다르지도 않잖아요. 애국자를 전부 죽이는 거랑 쿠데타랑 뭐가 달라요?”
미리디스는 때마침 ‘기차’도 있으니 딱이라며 여명을 유혹했다. 옆에서 듣던 살로메와 세티가 묘한 위화감을 느끼건 말건, 미리디스는 여명의 손을 꽉 잡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의 전력은 줄일 수 있을 때 줄이는 게 맞아요. 군을 제압하면, 각하 휘하에 남는 건 교단과 양치기들뿐이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가 너무 커. 대통령과 계획을 조율해야 할 텐데, 금제에 걸린 대통령을 통해서 계획이 빠져나갈 가능성도 있고….”
“…그러면 우선 대통령의 금제부터 풀면 어떨까요? 여명에게는 황금 옥새가 있잖아요.”
“글쎄, 금제를 그렇게 쉽게 풀 수 있느냐 없느냐는 둘째치고… 애국자들이 알아채면? 세티와 처제들의 경우에는 아직 알아채지 못했지만, 대통령과 장관급 금제도 그럴까?”
“….”
“그 외에도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아. 한반도를 뒤덮은 마법진도 그렇고, 교단의 본거지도 그렇고… 당장 아야톨라가 언제 어디서 차원문을 타고 나타날지도 모르잖아.”
현실적인 반론이었다. 미리디스는 ‘모든 작전에는 그만한 위험이 뒤따른다’ 고 말하는 대신, 휴게실 소파 옆에 앉아 있는 살로메를 향해 상체를 돌렸다. 그리고 목을 쭉 빼더니,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직접 쿠데타 작전을 짰잖아요. 설득하는 거 도와줘요.’
살로메는 그보다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답으로 뭐 해줄 건데요?’
‘….’
‘없으면 안 해요.’
짧게 고민한 미리디스가 대답했다.
‘여명을 유혹할 방법을 알려줄게요.’
살로메는 거절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도 쿠데타를 바라고 있었다.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이 직접 저지르는 쿠데타? 이걸 어떻게 거부한단 말인가? 히틀러와 스탈린이 꿈꾸던 이상적인 내부 숙청 그 자체인데.
“저기, 여명. 걱정한 부분은 작전 계획을 잘 세우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
“그리고 쿠데타 쪽이 뒷수습 면에서도 좋아요. 대통령을 얼굴마담으로 세울 수 있잖아요.”
그러자 미리가 맞장구를 쳤다.
“맞네. 사악한 애국자들을 벌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손을 썼다고 알리면… 한국이 스스로 교단을 처리한 게 되잖아요? 그러면 UN이나 미국의 개입을 최소화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수십 년간의 죄악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겠지만요.”
“….”
그러자 여명은 고민하듯 입을 가렸다. 설득 됐나? 살로메는 다행이란 생각을 떠올리다가, 불현듯 이상한 점을 떠올렸다.
원래 미리디스가 이렇게 적극적이었나? 아니, 그보다-
‘미리 말인데… 지구와 엘프의 전쟁을 막기 위해 혁명단을 떠나 지구로 온 거 아니었어요?’
이번에는 살로메가 그녀의 귀에 대고 소곤소곤 물어봤다. 미리디스 또한 작게 대답했다.
‘네, 맞아요. 그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랍니다.’
‘뭐? 하지만 쿠데타는….’
‘쿠데타가 어때서요? 이게 다 정의로운 일인데. 그리고 무엇보다, 쿠데타 경험이 있으면 다음은 더 쉽잖아요.’
‘다음?’
미리디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 걸린 묘한 미소를 본 살로메는 자연스럽게 뒷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여명을 새로운 서기장으로 만들면, 엘프와 지구 사이의 전쟁은 벌어지지 않아요.]…살로메는 그제야, 성녀가 쇠미리를 볼 때마다 왜 빨갱이라고 말하는지 이해했다.
역시 빨갱이 딸이라 빨갱이를 알아본 건가? 성녀가 들었으면 총부터 뽑을 생각을 떠올린 살로메는 가장 중요한 주제로 대화를 돌렸다.
‘그래서, 여명을 유혹하는 비법이 뭔가요?’
살로메의 눈동자가 기대감으로 반짝였으나, 정작 돌아온 답은 실망스러웠다.
‘속옷 차림으로 밤에 쳐들어가세요. 여명은 밀어붙이는 거에 약하답니다?’
‘….’
아니, 그거 이미 해봤는데… 뱃속의 히틀러가 비웃기 전에 먼저 봉인을 강화한 살로메가 재차 물었다.
‘저, 그… 만약에 그 방법이 안 통하면요?’
그러자 미리디스는 뭔가 눈치챈 듯 귀와 눈썹을 쫑긋 세웠다.
‘아… 그러면 한 번 더 쳐들어가세요.’
‘….’
성녀가 옳았다. 모든 빨갱이가 나쁘진 않지만, 빨갱이 엘프는 반드시 나쁘다.
허탈하게 소파에 기댄 살로메는 투덜거리며 여명에게 엘프가 너를 붉게 물들이려고 한다! 고 고자질할까 고민했다. 물론, 실제로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미리디스가 뭐라고 하건… 선택은 여명의 몫이었으니까.
그래, 이 파티를 이끄는 건 결국 여명이었다. 자신은 그 선택을 믿고 지지해주면 충분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살로메는 여명의 옆에 앉아 있는 세티를 바라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평소에는 똑부러지게 조언을 하던 세티가 어째서 여태껏 조용히 있었는지.
세티는 그녀가 이제야 깨달은 사실을 이미 오래 전에 깨닫고 있었다. 여명을 믿기에, 그리고 여명이 선택해야 할 순간이기에 아무 말없이 그의 답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저, 저게 첫 번째의 품격…?’
엘프가 아니라 세티에게 물어야 했어. 살로메가 그렇게 세티를 보며 감탄하고, 뱃속의 히틀러가 지랄 좀 하지 말라며 비명을 지르길 잠시.
여명이 고민을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