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691)
을 위한 세계는 없다-691화(691/817)
EP.691 세상에 부럼없어라 (2)
***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천여명 이름 세 글자는 안다.]최근 천여명의 위세를 표현하는데 이보다 적절한 말이 없었다.
외국 사람들은 너무 과장된 게 아니냐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한국 현지의 분위기는 압도적이었다.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피아라는 특수성, 한국인들이 목말라하던 강력한 초인이란 상징성, 그리고 정부의 끝없는 언론 플레이까지.
국민들에게 있어 천여명은 하늘이 한국을 위해 내린 존재나 다름없었다.
오죽하면 여명의 원활한 결승전을 위해 그 전에 만나는 한국 선수들 모두 알아서 기권해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 정도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여명의 위세가 높아질수록 그에게 빌붙는 사람들의 위세 또한 높아졌다.
대표적으로 조웅찬 장관의 사생아, 박진수의 경우가 그랬다.
그는 한국에 돌아오고 며칠 되지 않아 아버지의 자리를 꿰찼다. 형제의 난이나, 권력 투쟁 같은 건 없었다. 그가 천여명과 긴밀한 관계라는 소문 하나만으로도 명문 조씨 가문은 사생아를 인정해야 했으니까.
멍청한 가문의 일원들은 나중에 사생아의 뒤통수를 칠 생각이겠지만, 의미 없는 짓이었다.
아버지의 유산을 차지한 박진수가 ‘성녀의 눈’을 각하께 바치고, 가문을 물려받아도 된다는 허락을 인정받아서?
아니, 그전에 여명이 이 나라를 끝장낼 테니까.
하지만 그건 박진수가 알 필요 없는 일이었다. 여명은 사생아를 동료로 여기지도 않았고, 동료로 삼을 생각도 없었다. 그가 박진수에게 바라는 건 조웅찬 장관 세력의 약화와…
-정부에… 가짜 성녀의 눈을 전달했다.
“좋아, 각하는?”
-직접 알현하진 못했다.
예상하던 일이지만, 그렇다고 실망감이 줄어든 건 아니었다. 보안 휴대폰을 들고 있던 여명은 팍 눈살을 찌푸렸다.
“…시작부터 실망스러운걸. 그러면 성녀의 눈은 누구에게 전달했지?”
여명이 노골적으로 감정을 담아 말하자, 휴대폰 너머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눈물을 흘리는 자. 아야톨라가 직접 약속 장소로 나와서 받아 갔다. 그는 마치… 나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
-그리고 실망하기엔 아직 이르다. 내가 아버지의 정보망으로 얻어낸 정보를 들으면 생각이 달라질 거라고 장담하지.
사생아는 자신만만하게 말을 이었다.
-우선 첫 번째, 외교부는 현재 붉은 별과 모카 딕이란 자를 찾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
“…”
흠칫, 여명은 모카 딕이란 단어에 반응했다. 그건 장만 어르신이 밀수꾼이던 시절의 이명이었으니까.
꼬리가 잡힌 건가? 아니면 예지의 힘?
의문을 삼킨 여명은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물었다.
“외교부에서 두 사람을 찾는 이유는?”
-거기까진 알아낼 수 없었다. 김관형 장관 라인을 탄 사람들도 모르는 모양이더군. 아, 여기서 실망하지 마라.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으니.
한껏 목소리를 내리깐 박진수는 크흠, 헛기침한 뒤 말을 이었다.
-바로 어제, 각국 외교관들에게 마폭고를 터트릴 수 있는 주파수가 지급되었다.
“….”
그 순간, 여명은 브라우닝의 딸을 떠올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에 마폭고가 심겨 있던 소녀.
과연 마폭고를 심은 각국의 중요 인물이 그녀뿐일까? 그럴 리가. 여명은 아니라고 확신했다.
‘마폭고로 외국 중요 인물들을 협박할 생각인가.’
외교가 무슨 장난도 아니고… 끔찍한 계획이었다.
이 계획이 성공하건, 실패하건 상관없이, 마폭고에 당한 나라들은 한국을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라. 일본의 용이 그런 것처럼.
이건 외교가 아니라 자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폭고를 준비한다는 건….
‘…잠깐만 막으면 된다는 생각인가.’
마왕을 강림시킬 잠깐의 시간을 벌기 위한 작전. 여명은 지끈거리는 미간을 주물렀다.
개자식들. 어떻게 나라 전체를 걸고 그런 짓을 벌일 수가 있단 말인가? 국민 전체를 가축으로 보지 않고서야, 상상도 못 할 미친 짓이었다.
그때, 휴대폰 너머에서 사생아가 여명의 상념을 끊었다.
-그쪽은 이유를 알고 있나 보군. 내게도 좀 알려주겠나? 동업자로서 정보를 공유받고 싶-
“동업자? 선 넘지 마. 박진수.”
이번에는 여명이 그의 말을 끊었다.
“가문을 접수했다고 벌써 잊었나 본데, 우리가 널 살려준 이유를 증명하기 전까지 넌 우리에게 있어 아무것도 아니야. 알겠어?”
-….
“그리고 정보는 고작 이게 끝이야? 쓰읍, 정말로 이게 최선이야? 거들먹거린 거치고는 별 영양가가 없는데?”
여명은 과거, 청소부들에게 갑질하던 상인들의 말투를 따라 하며 말했다. 의외로 효과가 있었는지, 사생아는 조금 더 무거워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 당연히 여기서 끝이 아니지. 국방부 쪽 정보가 더 있다.
국방부? 여명은 휴대폰에는 들리지 않게 쯧, 혀를 찼다. 당장 국방부 장관 김강혁이 그의 편인데, 조웅찬 라인이 캐낸 정보가 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그리고 이어진 말은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원문 방위 사령부와 수도 방위 사령부가 포탄과 총알 등 대규모 전쟁 물자를 옮기고 있다. 당장 내일 전쟁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을 양이야. 이건… 대규모 군사 작전의 전조다.
역시, 올림피아 보안은 그냥 핑계에 불과했나. 여명은 올림피아 숙소를 에워싼 군대를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군이 움직이는 목적이 뭘까? 관광객들을 인질로 잡는 것? 아니면 대량 학살 그 자체? 확신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장만 어르신과 의견을 나눠봐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여명이 통화를 끊으려는데, 사생아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자, 잠깐! 하나 더 있다. 군부 내부의 김만일파가 만주군 사령관인 김 삼허 중장 암살을 계획하고 있다. 사고사로 위장해 김 중장을 제거한 뒤, 만주군을 손에 넣을 생각이라더군.
“…김만일파?”
-전 대통령 김만일, 그 김일성 아들놈이 제 아비를 따라 군부에 심어 놓은 사조직이다. 김강혁 장관이 얼마 전 김만일을 밀어낸 뒤로 닭 쫓던 개가 된 놈들이지.
“….”
김만일이 죽는 걸 눈앞에서 직접 본 여명이 묘한 감상을 느끼는 가운데, 사생아가 필사적으로 덧붙였다.
-아주, 아주 어렵게 얻어낸 정보다. 장담하는데, 이건 국방부 장관도 모를 거다.
“흐음. 그래?”
그거야 장관한테 직접 물어보면 될 일이고. 여명은 부드럽게 되물었다.
“좋아, 암살 예상 날짜는?”
-거기까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
일부러 이러는 건가? 심상 속 예카테리나의 한숨 소리를 들은 여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가운데, 사생아가 변명처럼 덧붙였다.
-그, 그래도 예상이라면 할 수 있다. 만주 기지 한가운데서 사령관을 암살할 수는 없으니, 아마 사고사를 위장하겠지. 옛 기무사 시절 녀석들이 자주 쓰던 방법….
“짧게, 요약만.”
-서울로 내려오는 날을 노릴 거다.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김 중장이 서울로 내려오는 날이라. 아직 여유가 있었다. 여명은 녀석에게 짧은 칭찬을 해준 뒤 통화를 끊었다.
한데… 꺼진 휴대폰 위로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염병할 장인어른, 홍용완이 보낸 문자였다.
[사위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저희 따님께서 부탁하신 일을 처리했습니다.]정치인의 어법으로 쓰인 문자는 화려하지만 쓸모없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기사는 내일 나갈 거고, 김 삼허의 첩이랑 모낙랑이랑 친하고, 사위님의 전설이 시작된 만주 기지는 참으로 웅장하다는 둥… 뭐 그딴 쓰레기 같은 이야기들.
요약하면 죽는 병이라도 걸렸나? 속독으로 휙휙 문자를 넘기던 여명은, ‘진짜’ 문자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눈을 찌푸렸다.
[김 삼허 중장은 아주 기쁜 마음으로 사위님과 만나기로 했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오늘 당장 김 삼허 중장과 함께 서울로 내려가겠습니다.]“….”
[비밀스러운 만남을 위해 의전 차량이 아닌 일반 차량으로 이동할 생각입니다. 약속 장소는 모낙랑이 자주 들락거리는….]여명은 더 이상 읽지 못하고 문자를 껐다.
‘홍용완, 이 양반은 일이 잘 풀려도 문제가 되네.’
이를 간 여명은 세티와 장만 어르신에게 전화를 걸면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 만주가 있는 방향이었다.
***
-요즘 한국인들,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천여명 이름 세 글자는 안다니까요?
개성과 서울 외곽, 고양시의 한 고급 호텔.
한국은 물론이고 아샤까지 진출한 외국 유명 브랜드 호텔의 라운지에서, 두 여자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게 울렸다.
-호호호, 정말로 부러워요. 그렇게나 대단한 사위를 두시다니.
-아유, 부러워할 필요 없어요. 우리 사위가 꼭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어머, 천여명 선수에게 단점이 있나요?
-어휴, 말도 마도 마세요. 글쎄, 사위가 딸보다 저를 더 좋아한다니까요?
-어머, 어머. 정말요?
-네, 그렇다니까요? 아마 엄마가 없이 자라서 그런 거 같은데… 제가 우리 사위의 모성애를 충족시켜 주나 봐요.
-어머, 어머.
두 여자의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라운지에 있는 모두가 그 대화를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라운지에 모인 손님 중 누구도 두 사람에게 목소리를 줄이라고 요구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저 여자에게 말이라도 붙이러 온 유력자거나, 귀동냥하러 온 기자였으니까.
홍세티의 어머니이자, 천여명의 장모, 모낙랑.
그녀가 자주 출몰(?)하는 이 라운지는 기자와 천여명에게 줄을 대고 싶어 하는 인간들이 우글거리는 아지트로 변해버린 지 오래였다.
당장 저기, 스포츠 신문 기자가 재빨리 ‘천여명은 모성애에 끌림’ 같은 내용을 수첩에 적고 있는 게 그 증거였다.
-내가 십 년만 젊었어도, 제가 사위를 얻는 게 아니라, 우리 딸이 새아빠를 얻었을걸요?
-호호호, 농담도 잘하셔라.
모낙랑이 내뱉는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개소리가 아닌 게 없었지만, 대외적으로 알려진 ‘장모’란 타이틀은 사람들에게 묘한 설득력을 부여했다.
물론, 천여명을 아는 사람이 듣기엔 그냥 개소리였지만.
‘천여명이 직접 봤으면 전부 팔을 잘라버렸겠지.’
푸른 신의 성물에게 선택받은 기자, 박철은 얼굴을 덮은 변장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한국 정부의 1급 현상 수배범인 그가 이 라운지에서 모낙랑의 지랄을 듣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모낙랑의 옆에서 맞장구를 치는 중년 여성을 찍기 위해서.
군인 출신 특유의 다부진 육체가 인상적인 그녀는 만주 기지의 사령관 김 삼허 중장의 첩이었다.
뭐, 말이 첩이지 사실상 아내나 다름없었다. 본처는 빨갱이 마누라가 되기 싫다며 외국으로 도망간 지 오래였으니까.
하지만 김 중장은 이혼 경력조차 승진에 악영향을 준다며 본처와 이혼하지 않았고, 멀쩡한 여자를 첩으로 만들어 버렸다.
김 중장의 승진욕도 승진욕이지만, 그걸 참고 첩으로 사는 저 여자도 참 독한 여자였다.
모낙랑, 저 미친 여자의 말에 하나하나 맞장구를 치는 것만 봐도…
-이 목걸이 보이세요? 사위가 저번에 사준 거랍니다? 자기한테는 장신구 하나 선물 안 한 사위가 엄마한테 먼저 선물했다고, 딸아이가 어찌나 질투를 하던지.
-딸보다 장모한테 먼저 선물하다니… 호호, 이게 전부 여사님의 매력 덕분인가 봐요.
-그죠? 그에 비해 우리 딸은 여자구실을 못 해서… 어휴, 참 걱정이라니까요.
하하, 호호, 두 여자의 웃음소리가 커질 때마다 박철의 한숨도 깊어졌다.
처음 김 중장과 그 주변 인물들을 진심을 찍어 달란 부탁을 받았을 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만주군을 통솔하는 군인의 진심을 확인하는 임무… 남산 지하에 잠입하던 때만큼이나 막중한 임무일 줄 알았건만, 실상은 이따위였다.
그는 한숨을 쉬며 카메라 렌즈를, 정확히는 푸른 신의 성물을 닦았다. 당장이라도 두 사람을 찍고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빌어먹을 경호원들이 그를 비롯한 기자들을 매의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대놓고 찍었다가 괜히 카메라를 압수당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기에, 그는 조용히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모낙랑이 자기 자랑을 열 번쯤 반복하고, 천여명에 대한 거짓말을 스무 번 정도 반복했을 때쯤.
띠리링!
갑자기 모낙랑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평소의 알람과 다른 특별한 벨 소리.
누구지? 변장한 박철을 비롯한 주변인들의 귀가 쫑긋거리는 가운데, 모낙랑이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통화를 받았다.
-이 씨* * *같은 *아, 내가 ***에 가 있으라고, 했*? **년, 진짜 뒤* 봐야….
정확히 들리지 않았지만, 모낙랑의 표정만 봐도 좋은 내용이 아니란 건 예상할 수 있었다. 아마 홍용완 의원의 전화가 아닐까.
‘기회다.’
통화를 끊은 모낙랑은 첩을 데리고 부랴부랴 라운지 바깥으로 향했다. 어디로 가는 건진 모르겠지만, 박철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다른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천천히 모낙랑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모낙랑과 김 중장의 첩은 호텔 앞에 준비된 고급 승용차에 올라탔는데, 이쯤에서 그녀를 쫓던 승냥이 대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물론, 박철은 달랐다. 그는 소싯적 부패한 정치인과 기업인들의 뒤를 캐고, 분쟁지역을 돌아다녔던 기자였다. 당연히 이런 일이 있으리라 예상한 그는 자연스레 호텔 주변에 준비해 둔 오토바이에 몸을 실었다.
부아앙! 오토바이의 엔진이 울음을 토해내는 가운데, 박철은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고 모낙랑의 차량을 쫓았다.
한데, 따라갈수록 뭔가 이상했다. 모낙랑의 뒤를 쫓는 차량이 그 혼자가 아니었다. 적어도 다섯 대 이상, 전부 내부를 볼 수 없도록 선팅한 차량들이었다.
‘위험해.’
박철의 촉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뱃속에 히틀러를 품은 소녀를 봤을 때만큼이나 불길했다.
이대로 빠져야 하나?
아직 다른 차량들이 그를 눈치채지 못한 지금이 도망치기엔 최적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를 기자로 만들어준 옹고집이 고개를 저었다. 뭔가 사건이 생기는데, 자리를 떠나면 기자라 할 수 없었다. 적어도 푸른 신이 선택한 기자는 그래선 안 됐다.
박철은 계속 모낙랑을 추적했다. 이윽고, 모낙랑을 태운 차가 서울 외곽, 으슥한 곳에 자리한 고급스러운 요정집 앞에 멈췄다.
포장된 도로 주변으로 잘 정리된 정원과 나무가 우거진 이 요정집은, 박철도 익히 아는 곳이었다.
안 좋은 쪽으로 유명한 정치인들이 소위 ‘밀실 대화’를 위해 자주 들락거리던 곳이었으니까.
‘누굴 만나려는 거지?’
그는 요정집이 보이는 길에 구석탱이에 오토바이를 멈춰 세우고, 가로등이 없는 어둠 속 수풀로 숨어들었다. 물론, 장만과 김강혁 장관에게 이 상황을 보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차에서 내린 모낙랑과 김 중장의 첩이 요정집 안으로 사라지고, 두 사람을 쫓던 차량들이 멀찍이서 멈추는 사이.
의외의 인물이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
[거기 어딥니까?]다른 누구도 아닌, 천여명의 문자였다. 직접 문자를 받는 건 거의 처음 같은데, 역시 뭔가 있는 건가?
박철이 천여명에게 위치와 상황을 설명하는 답장을 보내고 잠시 후, 또 다른 차량이 요정집 앞에 멈췄다.
웬만한 집값과 맞먹는 고급 차량. 그 안에서 내린 두 남자를 본 박철은 자신의 입을 막았다.
홍용완 의원과 김 중장.
저 두 사람이 여기에 왜? 박철은 너무 놀란 나머지 사진 찍는 것도 잊고 두 사람이 안으로 사라지는 걸 구경만 했다.
뭐지, 설마 천여명이 김 중장을 포섭한 건가? 아니면 그것까지 다 계획하고 자신에게 사진을 찍어오라고 한 건가?
뭐가 뭔지 알 수 없었지만, 박철은 따로 답을 찾지 않았다. 잠시 후, 모낙랑을 쫓아왔던 차량보다도 많은 차량이 요정집을 포위하듯 몰려왔으니까.
한 대, 두 대, 세 대, 다섯, 일곱, 열….
두 자릿수가 넘는 검은 차량들이 자리 잡는 모습은 옛날 싸구려 깡패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차량 안에서 나온 건 깡패와는 전혀 달랐다.
총기로 무장한 군인들.
철컥, 각종 무기가 장전되는 소리와 함께 군화 소리가 척, 척 어둠 속을 울렸다. 박철은 숨을 참고 그들이 건물을 포위하는 걸 조용히 지켜만 봤다.
‘시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박철은 조심스레 성물 렌즈로 군인들을 비춰봤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애써 비명을 참았다. 푸른 신의 성물 너머로 보인 군인들의 본질은… 괴수였으므로.
‘남산 지하에서 마주했던 괴수 군인들…!’
목적이 뭔지 몰라도, 녀석들은 아주 철저하게 포위망을 만들고 있었다. 박철이 그 모든 순간들을 카메라에 담길 잠시.
두두두두- 어두운 하늘에서 세 대가 넘는 헬기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군인들이 요정집의 담을 넘기 시작했다.
그리고, 탕!! 총소리와 함께 요정집 돌담 너머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암살?!’
그것도 생존자 하나 남기지 않는 종류의 무자비한 암살. 본능적으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깨달은 박철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들어가서 사진을 찍어야 하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가야 하나?
그의 갈등은 오래가지 않았다. 잠시 후, 헬기가 어둠 속에 세워둔 그의 오토바이를 발견했으니까.
번쩍! 야간 헤드라이트가 그의 오토바이를 비추기 무섭게, 괴수 군인 하나가 달려가 오토바이의 엔진을 확인했다.
-아직 뜨겁습니다! 누가 있습니다!
이런 시발, 유능한 군인 같으니. 저걸로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치는 건 불가능해졌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괴수의 감각이 그를 찾을 테고, 달려서 도망가자니 일반인인 그가 괴수보다 빠를 리도 없고… 사면초가였다.
후우, 한숨과 함께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박철은 요정집을 노려봤다.
‘뒤지더라도 사진은 찍어야지.’
각오를 삼킨 그는 천천히 요정집을 향해 기어갔다. 숨소리마저 참은 박철이 요정집 담벼락에 도착한 순간.
-저, 저기!!
바깥을 포위하고 있던 괴수 군인이 소리쳤다. 걸린 건가? 박철이 눈을 질끈 감고 담벼락을 붙었으나, 괴수 군인은 그를 가리키지 않았다.
녀석이 가리키고 있는 건 저 하늘 위, 헬기보다도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있는 무언가였다.
-뭔가 떨어진다!
-아지랑이! 붉은 아지랑이다!!
-회피! 회피해!
누군가의 무전 너머에서 비명 같은 소리가 울린 직후.
콰앙!!!
무언가가 그대로 헬기를 관통하며 요정집 지붕 위로 ‘강하’ 했다.
!!!
구멍 난 헬기 한 대가 빙글빙글 땅으로 추락하고, 괴수 군인들의 으르렁거림이 밤하늘을 채우는 가운데, 박철은 놀란 눈으로 지붕 위에 선 그것을 바라봤다.
검붉은 아지랑이를 두른 채, 인민의 피처럼 붉은 검을 든 자.
-붉은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