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09)
을 위한 세계는 없다-709화(709/817)
EP.709 삶은 콩으로 만든 부드러운 구조물 (5)
***
어둠이 밀물처럼 차오른 서울의 밤.
부아앙 – !!! 오토바이를 탄 성녀가 도심 외곽 지역을 질주하고 있었다.
포탄의 불길, 무너진 건물, 타오르는 도로, 그리고 깨진 가로등의 깜박거림.
흡사 지옥과도 같은 풍경을 가로지르는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뒤에는 상처 입은 노인이 앉아 있었다. 여명에게 가족만큼이나 소중한 노인, 장만이었다.
“여명은… 작전은 잘 돌아가고 있을지 모르겠군.”
의자를 꽉 붙잡은 장만은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손녀 나이대 소녀의 뒤에 탄 게 어색한 건지, 아니면 출혈 때문에 흐려지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무거웠다.
성녀는 그를 위로하는 대신, 길 너머에서 보이는 괴수군을 보며 소리쳤다.
“꽉 잡으세요!”
곧, 두두두 – !! 괴수군의 소총 사격이 두 사람과 오토바이를 덮쳤다. 성녀는 끼이익!! 오토바이 핸들을 꺾어 총알을 피했다. 그리고 한 손으로 마총을 꺼내- 사격.
터- 엉 – !!
백색의 축복이 휘감긴 총알이 밤을 꿰뚫었다. 마치 별똥별처럼 아름다운 빛이었지만, 목표에 도달한 총알은 오직 죽음만을 낳았다.
“커헝!”
도로 위에 있던 괴수군 두 마리가 동시에 바닥을 굴렀다. 총알 한 발에 두 놈. 감탄이 나올 만큼 화려한 솜씨였으나, 정작 총을 쏜 성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오! 이놈의 반동.”
마총을 쥔 손은 물론이고, 반동을 받아낸 오토바이가 파르르 떨렸다. 전대 용사 파티가 남긴 유물이라서 그런가? 마총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만한 대구경 탄을 권총으로 쏘는 것부터가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축복을 너무 잘 받는다는 점이었다.
축복이 잘 받는 게 왜 문제냐? 퀴니의 마총은 축복을 두르는 게 아니라 아예 흡수했다. 다른 총에 거는 축복이 대충 코팅과 비교할 수 있다면, 퀴니의 마총은 흠뻑 물을 머금는 스폰지 같았다.
덕분에 한 발로 콘크리트 벽을 뚫고, 괴수 두세 명을 동시에 날려버릴 수 있었지만… 그러면 뭐 하나. 반동 때문에 쏠 때마다 팔은 물론이고 온몸이 출렁거리는데!
터엉 – !
아무튼, 그건 그거고. 성녀는 다른 괴수군을 향해 한 번 더 방아쇠를 당기며 생각했다.
퀴니 코완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총을 만든 걸까? 전대 성녀님의 축복을 잘 받기 위해서? 하지만 용사 파티가 활약하던 시절에는 총기에 거는 축복이 발견되기 전이었을 텐데?
그녀는 스스로 답을 찾았다.
어쩌면… 퀴니 코완은 전대 성녀님의 축복을 받을 걸 기대하며 마총을 개조한 게 아닐까?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아쉽게도, 상념은 거기까지였다. 머리 위에서 날아온 음파가 그녀의 고민을 끊어낸 까닭이었다.
꺄아아악!!
섬뜩한 비명이 조금 전까지 오토바이가 서 있던 자리를 강타했다. 애꿎은 아스팔트 도로가 파괴되며 파편이 튀었다.
“거참, 겁나게 땍땍거리네.”
오토바이를 급 가속한 성녀는 음파가 날아온 방향을 노려봤다. 어두운 하늘 위, 불타는 도시를 등진 아야톨라가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는 자.
아까 그녀의 총에 맞아 깨진 녀석의 가면 사이로, 피에 젖은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성녀여! 지금 네가 구하고 있는 게 누구인지, 그가 무슨 죄악을 저질렀는지 아느냐?!”
성녀는 대답 대신 방아쇠를 당겼다. 터엉!! 코끼리 사냥용 탄환을 개조한 대구경 탄환과 눈물의 천벌이 교차하며 서울의 밤하늘을 찢어발겼다.
‘칫.’
오토바이를 모느라 조준이 어려웠다. 성녀는 아슬아슬하게 총알을 피한 아야톨라를 보며 아쉬움을 삼켰다.
그에 비해 아야톨라는 몹시 분노한 모습이었다. 녀석은 성큼성큼 하늘을 밟으며 소리쳤다.
“성녀여, 수치를 알아라!! 너는 역대 모든 성녀 중 가장 죄스럽고, 수치스럽다!”
“뭐래, 이단 새끼가.”
성녀는 한 발 더 마탄을 쏘아낸 뒤, 그 반동을 이용해 피난민들이 버리고 간 자동차 사이로 곡예 운전을 계속했다. 아야톨라가 악을 쓰며 천벌을 쏘아내려 했지만, 저 멀리서 날아 온 붉은 탄환이 아야톨라의 보호막을 두들겼다.
“호아나!! 저주받을 레독스여!”
그 사이, 아야톨라에게 이끌린 괴수군이 도로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이성을 잃은 녀석들은 진짜 괴수처럼 오토바이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들었다.
“꺼져!”
성녀는 가장 앞서오는 놈을 쏴버렸다. 정확한 헤드샷으로 머리가 날아갔지만, 괴수군의 몸은 멈추지 않고 그녀의 오토바이를 덮쳤다.
그냥 몸통을 쏠걸. 혀를 찬 성녀는 앞바퀴를 들어 달려드는 몸통을 박아버렸다. 중심을 잃은 장만이 어이쿠- 앓는 소리를 냈지만, 그녀는 장만의 몸을 붙잡고 멋들어지게 오토바이의 균형을 잡았다.
하지만 오토바이는 거기서 정지했다. 도로 저편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튀어나왔으니까.
“시이나!”
총대주교가 그녀 몰래 아카데미에 보낸 호위. 여명에게 허리가 끊어졌던 그녀는 성녀를 보자마자 달려왔다. 호아나의 저격을 피하는 아야톨라보다 빠르게.
“성기사 시이나, 성녀님의 부름을 받아 이렇게 왔-.”
성녀는 무릎을 꿇으려는 그녀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
“시이나, 오토바이 운전할 줄 알아?”
“예?”
“알아요, 몰라요?”
“죄송합니다. 지구의 물건은 쓸 줄 모릅….”
날아오는 아야톨라를 본 성녀는 한 번 더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러면 당장 이 어르신 업고 달려!”
“하, 하오나 저는 성녀님을 보호하러-”
“이 어르신은 우리 아빠… 아니, 나 만큼이나 중요하니까, 당장 달려!”
박력 넘치는 성녀의 목소리. 시이나는 반문을 멈추고 곧장 오토바이 위에 앉아있던 장만을 업었다.
“달려요!”
시이나가 내달리기 무섭게, 성녀는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반대 방향으로 핸들을 돌렸다. 그러니까, 날아오는 아야톨라를 향해 똑바로 질주했다.
그걸 본 눈물을 흘리는 자는 손바닥을 겨누며 고함쳤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성녀!! 네가 살리려는 저 인간은…!”
성녀는 마총을 겨누며 녀석의 말을 끊었다.
“시아버지다! 씹새야!”
“…뭐?”
너무 황당한 대답이었던 걸까, 아야톨라가 멈칫 몸을 멈췄다. 그리고 그 순간, 백색과 적색의 총알이 동시에 녀석의 몸을 후려쳤다.
!!!
신의 축복으로 강화된 마총과 저격총 앞에서 아야톨라의 보호막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었다. 아야톨라의 어깨가 한 움큼 날아가고, 배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
옛 선인들은 바둑을 인생에 비유하곤 했다.
그들은 바둑판 위 361개의 바둑돌과 사람을 비교하며, 둘의 닮은 점을 설파했다.
돌이 스스로 자리를 정할 수 없듯, 사람 또한 자신이 태어날 시대와 장소를 결정할 수 없다고.
돌이 적을 죽여야만 살 수 있듯, 사람 또한 죽여야만 살 수 있다고.
돌이 내려선 자리가 오직 그 돌만의 것이듯, 삶에 내던져진 인간 또한 유일무이하다고.
모든 돌이 평등하듯, 사람 또한 평등하다고.
…하지만, 허무를 흘리는 자는 그 설교에 동의하지 않았다. 마지막 구절, 평등 때문이었다.
정말로 우리는 평등한가?
어떤 돌은 승리를 위해 죽는다. 어떤 돌은 패배해 죽는다. 모든 돌은 버려지고, 던져지고, 미끼로 이용당한 끝에, 승리하고, 패배한다.
그것이 평등인가? 승리를 위해 버려진 돌과 승리한 돌은 정말로 평등한가?
평생을 행복의 발판 위를 노닐던 인간과, 불행을 짊어진 끝에 짓눌려 죽은 인간이 평등한가?
그들은 평등하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가 존귀하다 주장하며 삶을 사랑하라 말한다.
아니다. 그건 거짓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평등한 건 죽음뿐이므로.
진정한 평등은 대국이 펼쳐지는 바둑돌이 아니라, 모두가 죽은 돌 통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이 거짓 세상에 진정한 죽음이란 없으니.
우리에게 남은 미덕은 불생뿐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선이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윤리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유일한 진리다.
그래서 그들은 종말을 섬긴다. 진실의 짐을 짊어졌기에 교단이고, 태어난 모든 것들을 동정하기에….
-아아악!!!
그 순간, 어디선가 소음이 들려왔다. 비명이었다.
허무를 흘리는 자는 상념을 멈추고 눈을 떴다.
보라색 눈동자가 소음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자, 쓸려나간 나무와 땅, 그리고 시체들이 보였다. 무자비한 무술… 그것도 검기가 남긴 흔적이었다.
수십 기사단이 동시에 검을 휘두르면 저럴까? 하지만 성기사들을 제외한 모든 기사들은 지구의 총포 앞에 무릎 꿇었다. 그래, 이건 단 한 명이 만들어낸 광경이었다.
대량 학살 개인.
어디 10강이 튀어나왔을 리는 없었다. 10강은 모두 배제했으니까.
성검은 만박불통을 쫓아 대초원으로 갔다. 변경백과 엮인 호세와 오귀스트는 아샤에 있고, 미국 선거와 엮인 데메론드와 미국의 빅3, 맥팔레인 또한 움직이지 못한다.
그렇다면 남는 건 하나… 이 대국을 시작한 범인이 직접 찾아온 게 틀림 없으리라.
허무를 흘리는 자는 몸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서 있는 곳은 만탑산 바로 위, 밤 구름과 마주 볼 정도로 드높은 허공이었다.
마나가 없는 사람은 추위 때문에 잠시도 있을 수 없는 곳이었으나, 그는 아무렇지 않게 허공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다음 순간, 기다렸다는 듯 어둠으로 가득 차 있던 만탑산이 환하게 타올랐다.
화르륵 – !!
함경북도의 차디찬 밤공기를 밀어낼 정도로 거대한 불길. 그건 마나로 만들어진 불길이었다.
엘랑의 불…? 허무를 흘리는 자는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봤다.
직후, 산 주변에 덮여있던 환상 마법이 해제되며 숨어 있던 여덟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덟 중 여섯은 살아 있지 않았다. 한 명 한 명 나이가 지긋한, 완전 무장한 데스나이트들이었다. 그의 동정을 받기엔 너무나 천박한 존재들이었기에, 아야톨라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산 사람을 바라보았다.
붉은 검을 쥔 금빛 눈동자의 청년. 그는 데스나이트의 중앙에 서 있었다.
“…천여명.”
허무를 흘리는 자는 살짝 실망하며 그의 이름을 읊조렸다. 붉은 별이 아니라니… 살짝 입맛을 다신 그는 한숨과 함께 자세를 잡았다.
침입자가 누구건 간에, 그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그는 염동력으로 주변에 둥둥 떠 있던 검은 세계수의 결정과 주먹보다도 큰 타락석 덩어리들을 끌어당겼다.
고통의 구슬 같은 촉매가 있었다면, 여기서 이러지 않고 아래로 내려가 삶의 고통을 끝내줄 수 있었을 텐데.
허공에서 자세를 잡은 아야톨라는 안타까움을 삼키며 눈을 감았다. 그의 양 어깨로 세계수의 결정과 타락석이 일자로 늘어서며 만탑산에 모인 뒤틀린 마나가 공명하기 시작했다.
교단이 오랜 기간 모은 저주와 악의, 고통과 적의, 그리고 시체가 뿜어내는 뒤틀린 마나.
쿠구궁… !!
산 전체… 아니, 땅 아래 깊숙이 잠들어 있던 마법진이 깨어나며 천지가 경악했다. 허무를 흘리는 자는 그 흔들림과 호응하며 기도하듯 손을 모았다.
“평화와 안식으로 향하는 길. 공희를, 시작하자.”
다음 순간, 한반도 땅 전체가 비명을 질렀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소리 없는 비명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허무를 흘리는 자는 이 비명을 음미할 수 없었다. 목덜미를 타고 오르는 불길함 때문에.
그건 저 아래, 그와 눈을 마주친 천여명의 금빛 눈동자 속에서 느껴지는 불길함이었다.
***
가장 먼저 이변을 감지한 건 살로메였다.
마왕의 뒤틀린 마나와 마탑 마법사 특유의 지맥 마나를 동시에 다룰 수 있는 그녀는, 땅을 타고 흘러가는 거대한 마나의 흐름을 느꼈다.
저절로 허리에 힘이 들어갈 정도로 거대하고,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징그러운 주문.
전 국토를 뒤덮은 마법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