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10)
을 위한 세계는 없다-710화(710/817)
EP.710 삶은 콩으로 만든 부드러운 구조물 (6)
***
눈물을 흘리는 자는 몸에 처박힌 신성한 총알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복부와 어깨.
그중 복부의 총알은 치명적이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아야톨라는 그나마 몸을 유지했지만, 허공에서 균형을 잃고 추락하는 것까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그나마 마지막 힘을 쥐어짜 가까운 상가 건물과 충돌했다.
“커헉!”
오른쪽 눈 부분이 깨진 그의 가면 아래로 피가 흘러내렸다. 입으로 역류한 피였다. 그러나 아야톨라는 피를 닦는 대신, 벽을 차고 다시 날아올랐다.
터- 엉- !
성녀의 총알이 조금 전까지 그가 있던 벽에 구멍을 뚫었다. 성녀는 반동 따윈 신경 쓰지 않는 듯 연달아 사격을 이어갔지만, 아야톨라는 건물을 방패 삼아 아슬아슬하게 사격을 피했다.
“성녀, 너의 천박함은 도를 넘었구나.”
틈을 노리기 위한 도발. 그러나 성녀에게 도발은 먹히지 않았다.
“아 진짜, 말 존나 많네. 눈물을 흘리는 자가 아니라 아가리를 터는 자였어?”
“….”
“내려와 새꺄! 주둥이에 총알구멍 나고도 그렇게 지껄일 수 있는지 보자고!”
아야톨라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도망치는 시이나와 장만을 바라봤다. 성녀만 떨쳐내면 충분히 쫓을 수 있는 거리였다.
후우- 숨과 함께 뒤틀린 마나를 삼킨 그는 그대로 목소리를 내질렀다.
아- 우- 우-!!
주변의 괴수군들을 불러 모으는 하울링. 성녀가 눈살을 찌푸렸지만, 몇몇 괴수들이 그의 신호를 받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아야톨라는 성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성녀, 너는 모카 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손에서 천벌이 발사됐다. 성녀의 바이크가 아니라, 그녀가 내달리는 도로를 향해서.
끼이익! 바이크가 뒤집어지는 도로를 피해 급 선회하는 가운데, 아야톨라가 계속 말했다.
“그가 어떻게 전설적인 밀수꾼이 되었는지 아느냐? 그가 무엇을 팔아 그 자리에 올라갔는지 아느냔 말이다.”
“…뭘 팔았어도, 사람을 잡아먹는 너희만 할까!”
“하, 하하하!!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그래, 사람을 잡아먹었지!”
그 순간, 아야톨라는 허공을 박찼다. 그의 몸이 빠르게 시아나와 장만을 향해 날아갔다.
부아앙-! 성녀의 바이크가 곧바로 그의 뒤를 따랐다. 거칠어진 도로를 내달리는 바이크. 아야톨라는 오른쪽 도로에서 다가오는 괴수군의 군용 차량을 확인하며 지껄였다.
“성녀여, 그렇다면 묻겠노라. 사람을 잡아먹은 자와, 그에게 잡아먹을 사람을 팔아먹은 사람 중 누가 더 악한가!”
“둘 다 역겨워 새꺄!”
터엉! 아야톨라는 총알에 맞아 발목이 날아가는 와중에도 광소했다.
“그래! 둘 다 악이다! 아주 잘 알고 있군!”
다음 순간, 도로를 꺽어 다가온 군용 차량이 바이크를 덮… 치지 못했다. 타앙! 호아나의 붉은 차량이 괴수군의 차량을 저격한 까닭이었다.
운전사의 머리가 날아간 차량은 끼이익!! 도로를 긁으며 쓰러졌다. 내부에 있던 괴수군들은 핏물이 되었지만, 시간을 끌기엔 충분했다.
차량에 길이 막힌 성녀는 바이크 속도를 줄이며 아슬아슬하게 곡예 운전을 해야 했으니까.
그렇게 간격이 벌어지는 사이, 아야톨라는 시아나를 거의 다 따라잡았다.
그는 장만이 들으라는 듯 소리쳤다.
“생각해 봐라. 일개 밀수꾼이, 어떻게 모카 섬이란 영토를 지배했을 것 같으냐? 그것도 독재자가 지배하는 나라 바로 앞에서!”
시아나에게 업혀 있던 장만이 뒤돌아봤다. 가면 위로 드러난 아야톨라의 오른 눈동자가 그의 얼굴을 노려봤다.
“모카 딕은! 인신매매범이었다. 단순히 아샤인을 납치하거나, 전쟁 난민을 팔아먹는 쓰레기들과는 수준이 달랐지!”
아야톨라의 손바닥이 장만을 겨눴다.
“그는 오직! 어린아이만을 전문적으로 납품했다! 남미의 독재자들에게, 아샤인과 지구인을 가리지 않고 아이를 팔았다!”
아야톨라의 손바닥이 쥐어진다. 공기가 떨리며 눈물의 천벌이 장전되고, 장만이 눈을 감은 그 순간.
부아아앙 – !!!!!!
바이크 엔진의 비명 소리가 밤하늘을 울렸다. 다른 곳도 아닌, 아야톨라의 바로 뒤통수에서.
어떻게? 거리는 충분히 벌렸을 텐데?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린 아야톨라의 눈에 들어온 건, 정체 모를 신성을 휘감은 채 날아오는 바이크와 땅으로 떨어지는 성녀였다.
날렸다고? 바이크를?
“이 미친ㄴ-”
당황한 아야톨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녀의 마총이 불을 뿜었다. 바이크 엔진과 그의 몸을 동시에 꿰뚫는 각도였다.
!!!!!
장렬한 폭발음과 동시에, 아야톨라의 몸이 추락했다. 조각난 바이크 파편, 불타는 바퀴, 그리고 깨진 가면이 비처럼 흩뿌려졌다.
쿵!!
직후, 성녀와 아야톨라가 동시에 바닥과 충돌했다. 버려진 자동차 지붕에 떨어진 성녀와 달리, 아야톨라는 아스팔트 위에 그대로 추락했다. 그걸 본 시아나가 비명을 질렀다.
“성녀님!”
그녀는 고민했다. 이대로 성녀님의 명령을 따라 장만을 업고 도망칠 지, 아니면 자동차 위에 추락한 성녀님에게 달려 갈지.
다행히 시아나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녀의 등에 업혀 있던 장만이 이렇게 말했으므로.
“성녀에게 가자꾸나.”
시이나는 기꺼이 그렇게 했다. 그녀는 바닥에 처박혀 불타는 아야톨라를 지나, 소형차 위에서 꿈틀거리는 성녀에게 다가갔다.
“으아아으….”
다행히 자동차 지붕이 충격을 흡수해 준 건지, 성녀는 스스로 일어났다. 시아나는 업고 있던 장만을 내려놓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성녀님!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아… 여명이 호- 해줬으면 좋겠어….”
“….”
주접을 떠는 걸 보니 괜찮으신 듯했다. 시아나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가운데, 성녀가 벌떡 일어나 차 지붕에서 내려왔다.
“어르신은?”
성녀는 땅에 발을 올리자마자 장만부터 찾았다. 시이나 또한 조금 전 장만을 내려놓은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한데, 장만은 그곳에 없었다. 그는 불타는 아야톨라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성녀는 화들짝 놀라 그를 쫓아갔다.
“다가가시면 안 돼요!”
주가시빌리만큼은 아니라도, 아야톨라의 육체 또한 정상을 벗어나긴 마찬가지였다. 콘크리트를 뚫어버릴 마총을 맞고도 구멍만 나는 괴물이라면 언제 다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자칫 어르신이 해코지라도 당하면 어쩌나 싶어 달려가던 성녀는, 아야톨라의 얼굴을 보자마자 움찔 발을 멈췄다.
가면이 벗겨진 아야톨라의 얼굴은, 너무나 익숙했으므로.
“김관형… 장관?”
각하 휘하의 삼 장관 중, 외교부 장관. 한때 개성 시장이기도 했던 그는 울컥, 피를 토하며 장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장만은 그와 눈을 마주할 수 있는 거리에서 말했다.
“날 아나?”
“…안다.”
“모카 섬에… 있었나?”
“있었다면, 큭, 결과가… 달라지나?”
“….”
김관형 장관은 입매를 비틀었다. 반쯤 타버리고, 피가 묻은 입가는 광대의 미소처럼 섬뜩했다.
“역으로, 커흑, 묻겠다… 장만… 왜… 다시, 세상으로 나왔지?”
“….”
“어떻게… 분노를 참았지?”
장만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까 전에 대답한 질문이라서? 아니, 아야톨라의 말을 경청하기 위해서.
“어떻게… 이 세상에 가득한 친절이… 너만, 피해간 걸, 알면서… 그 많고, 많은, 정의로운 자들이… 오직 너만을, 놓쳤, 다는 걸, 크흡, 알면서… 이, 세상에, 넘치는, 연민, 의… 마중물이… 바로 앞에서, 쿨럭! 말라, 버렸다는 걸… 알면… 서… 어, 어떻…게?”
“….”
“어, 어른 노릇… 같은, 큭, 핑계는… 집어, 치워… 라. 마거릿… 그, 아이도, 똑바로… 보지, 모, 못하는… 주제에….”
장만은 음울한 눈으로 아야톨라를 내려다봤다. 아야톨라는 오토바이 잔해 사이에서 허우적거렸다.
“뭐, 뭐가…널… 바, 바꾼 거냐. 대체… 뭐가….”
성녀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불타는 도심의 침묵이 귀를 간지럽히는 가운데, 장만이 아야톨라에게 다가갔다.
떨리는 수염, 그보다 더 떨리는 손.
장만이 김관형에게 손을 내미는 순간.
!!!
땅 깊숙한 곳에서부터 진동이 올라오고, 아야톨라의 육체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역시 안 뒤졌네!
놀란 성녀가 재빨리 장만의 뒷덜미를 잡고 시이나와 함께 뒤로 물러났지만, 반격은 없었다. 그 대신, 아야톨라의 주변으로 뒤틀린 마나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타앙!
저 멀리서 호아나의 저격이 김관형을 관통했으나, 그는 풍선이 아니었다. 오히려 멀쩡하게 상처를 재생하고, 찢어진 예복 사이로 커다란 타락석들이 튀어나왔다.
“역시, 뭔가 꿍꿍이가 있었구나! 어쩐지 결계를 안 쓰더라니!”
그렇게 소리친 성녀는 곧장 버려진 자동차 중 차키가 꽂힌 걸 찾아냈다. 그녀는 자동차에 일행을 태우고 시동을 걸었다.
“결계보다 빠르게 달릴 테니까! 모두 꽉 잡아요!”
기겁한 시이나가 안전벨트를 매기도 전에 끼이익! 차량이 급발진했다. 직후, 타락석과 아야톨라의 몸이 공명하며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녀의 예상은 틀렸다. 아야톨라의 몸에서 시작된 건 결계가 아니었다.
그건… 차원문이었다. 개성과 시카고에 열려 있던 찬란한 차원문과 대비되는 검은 차원문.
백미러로 차원문을 본 성녀가 히라리아에서 열렸던 그 차원문을 떠올리고, 장만과 아야톨라가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가운데-
고오오- ! 땅이 갈라지며 차원문이 열렸다.
***
-이야, 장관이구만.
두메아 가주는 만탑산 위로 열리는 검은 차원문을 보며 감탄했다. 황당함과 진심이 반반 담긴 목소리였다.
-그나마 히라리아에서 봤던 것보다는 작지만… 저게 하나 더 있다고?
여명은 저 멀리, 한반도 남쪽을 보며 대답했다.
“예상으로는 그렇습니다. 마법진이 두 개였거든요.”
두메아 가주는 허, 헛웃음을 흘렸다.
-예상… 에케모와 손을 잡은 놈들이니, 똑같은 짓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겐가?
“예. 정확하십니다.”
두메아 가주는 시시콜콜한 질문을 더 이어가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대화는 여기까지였다.
검은 차원문과 만탑산에서 동시에 역겨운 인기척이 우르르 밀려오는 게 느껴졌으므로.
여명은 곧장 번쩍! 발아래에 신성을 모으며 말했다.
“빠르게 끝내고 오겠습니다. 그동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량을 막는 거야, 우리 전문이지. 그리고 나는 증손녀가 입덧할 때까지 이 땅에 있을 생각이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게.
두메아 가주는 마지막까지 너스레를 떨었다. 이만한 적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자신감을 따라 다른 데스나이트들과 시리, 그리고 여명의 얼굴에도 미소가 고였다.
그리고 여명이 차원문을 향해 달려가려는 순간, 벨라디바의 목소리가 그를 멈춰 세웠다.
-야, 잠깐만. 히라리아 때처럼 괴수를 막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안 되면 어쩔 거야?
여명은 한 번 더 미소 지었다.
“그러면… 히라리아 때 쓰지 못했던 수를 쓰겠습니다.”
힘을 가진 자의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