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11)
을 위한 세계는 없다-711화(711/817)
EP.711 막간 – 조각들 (4) (수정)
***
“…끝으로, 시민 여러분 모두 안전을 위해 가까운 벙커나 대피시설로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설문에 없던 마지막 말을 끝으로, 대통령의 계엄 방송이 끝났다.
그리고 카메라 멈추기 무섭게, 김규원 대통령은 맥이 탁 풀린 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대통령님?! 괜찮으세요!?”
놀란 네티가 대통령을 부축하기 위해 다가갔다. 김규원은 괜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걱정할 필요 없네. 그냥 당이 떨어져서 그러네.”
“예? 그러면 어디 음료수라도 구해 올….”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대통령은 보란 듯 주머니에서 싸구려 왕사탕을 꺼냈다.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자네도 하나 먹겠나?”
슬쩍 주변 눈치를 본 네티가 냉큼 사탕을 받아먹는 사이, 기자회견실 구석에서 상처를 재생하고 있던 김강혁 장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 묻은 검을 지팡이처럼 짚고 일어난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닌, 홍세티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걸로 첫 단계는 넘었다. 다음 단계는 언제 시작할 거지?”
그러자 쇠미리와 뭔가를 진지하게 상의하고 있던 세티가 고개를 돌렸다.
“통신 시설 장악은 끝났고… 다른 준비가 끝나면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생각이에요. 몸은 좀 어떠세요?”
“…문제없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장관의 몸 곳곳에 남은 상처들은 가볍지 않았다. 물약으로도 치유되지 않는 상처가 적어도 두 곳 이상.
그러나 세티는 장관에게 후방으로 물러나라고 말하지 않았다. 목숨을 건 군인에게 필요한 건, 연민이 아니라 싸울 적이었으므로.
“좋아요. 그러면 일단 자리부터 옮기죠. 일의 진행은…”
세티가 휴대폰을 꺼내던 그때, 대통령이 끼어들었다.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말일세, 이후의 계획에 대해서 나도 좀 들을 수 있겠나?”
“….”
“뭐, 처음부터 모든 계획을 설명해 주지 않은 건 이해할 수 있네. 기밀이라는 게 원래 다 그런 거니까. 하지만 이 이후의 계획에 대해선… 내 조언이 필요할지도 모르잖나.”
세티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전차를 몰고 온 민간인들을 바라봤다. 그러자 쇠미리의 호위인 은발의 엘프, 리메가 기다렸다는 듯 기절한 총리를 둘러메고, 민간인과 제압된 경비원들을 불러들였다.
“모두 저를 따라오시죠. 안전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역사의 증인이 되는 건 여기까지인가… 전차 운전수가 필요하면 또 부르게!”
미하일이란 외국인의 인사를 끝으로, 민간인들이 모두 기자회견실을 떠났다. 그렇게 믿을 만한 사람들만 남고 나서야, 세티는 대통령을 향해 입을 열었다.
“각하가 회귀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 이미 알고 계시죠?”
“알고 있네.”
엘프가 말해줬으니. 힐끗 쇠미리를 보며 뒷말을 삼킨 대통령이 물었다.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네. 각하가 정말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이 짓거리가 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가 성공한다고 해도, 시간을 되돌리면 그만 아닌가?”
직설적인 질문이었다. 세티는 망치 손잡이, 그러니까 유니콘의 뿔을 잡으며 대답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각하는 멋대로 시간을 되돌릴 수 없어요. 적어도 지금은 되돌리지 않은 게 확실해요.”
“…그걸 어떻게 확신하나?”
“여명이 아닌, 대통령님과 장관님을 노렸으니까.”
“…?”
만약 각하가 지금 이 계획에 당해 회귀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여명을 노렸을 것이다. 그가 가진 영향력이나, 힘 때문에? 아니.
여명이 회귀 바깥에서 왔기 때문에.
쇠똥구리는 미그니움을 봉인 하기 위해 반복되는 시간 저편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가 봉인된 지하에서 풀려난 건 이번 회차가 최초였다.
그게 운명을 비틀고, 전용섭의 도돌이표에 면역인 이유가 아닐까 싶었지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여명이 각하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명백한 이레귤러라는 사실뿐.
세티는 굳이 그 사실을 설명하는 대신, 말머리를 돌렸다.
“아무튼, 장만 어르신과 여명은 각하가 회귀자인 게 사실이라고 가정한 뒤 계획을 세웠어요. 문제는 각하가 언제, 어떤 식으로 회귀하는지 알 수 없다는 거였죠.”
눈치 빠른 대통령은 자세히 묻지 않고 대화를 받았다.
“그래, 그래서 판을 크게 키웠다는 것까진 알고 있네. 그다음은 뭔가?”
“여명이 각하의 시선을 끄는 동안… 각하가 준비한 마법진과, 대량 학살을 막는 거요.”
“…마법진? 대량 학살?”
대통령의 고개가 기울어지는 가운데, 세티는 탱크 주포에 뚫린 구멍 너머를 보며 말을 이었다.
“애국자들과 종말 교단은 아주 오랫동안, 한반도 전역에 마법진을 설치해 왔어요. 전 국민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 공양 마법진이죠. 그리고 대량 학살은… 음, 설명하기 어려운데, 쉽게 말해 사람을 죽일 수록 각하의 힘이 강해져요.”
“…그게, 무슨?”
사람을 죽일 수록 강해져? 전 국민을 인신 공양해?? 대통령은 저 말이 사실이냐는 듯 장관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김강혁도 살짝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학살로 강해진다는 건 무슨 소리지? 공희 마법진 말고도 다른 게 있었나?”
“아니, 김강혁이! 자네도 인신공양 마법진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대통령은 입에 문 사탕을 콱! 깨물며 소리쳤다.
“모두 미쳤나? 그러면 각하가 아니라 그 마법진부터…!”
다행히 대통령은 스스로 입을 다물었다. 마법진을 먼저 노리면 각하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는 걸 떠올린 까닭이었다.
한반도 전역에 걸친 마법진이라니, 대통령인 자신도 모르게 진행된 그 일을 먼저 막았다면… 시간을 되돌리는 것 이전에, 애국자들이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으리라.
염병. 대통령은 이마를 꾹꾹 누르며 진정하는 사이, 여태껏 입을 다물고 있던 쇠미리가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마법진과 대량 학살 양쪽 모두, 대응책을 준비해 뒀으니까요.”
“대응책? 무슨 대응책 말인가?”
미리는 대답 대신 킁킁, 냄새를 맡았다. 직후, 그녀는 모두를 향해 손짓했다.
“중요한 건 차차 설명하고… 가스도 다 사라진 거 같으니, 일단 지하 벙커로 돌아가죠.”
대통령은 그냥 여기서 말하면 안 되냐고 따지지 않았다. 테러리스트 엘프가 무서워서는 아니었고, 세티가 곧바로 미리의 뒤를 따른 까닭이었다.
휘릭- 탁! 망치를 어깨에 짊어진 세티가 미리와 함께 기자회견실을 나서는 가운데, 네티가 대통령과 장관을 부축하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
춘추관 밖으로 나온 일행은 경무대를 가로지르며 다시 본관 지하 벙커로 향했다.
김강혁 장관은 가는 길 곳곳에 깔린 총 자국과 핏자국을 살피다가, 쓰러진 경호원들, 특히 상처 하나 없이 쓰러진 경호원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독가스를 쓴 건가.”
바람 마법을 쓰는 엘프의 독가스라. 위력이야 확실하겠지만, 양심과 뒷감당이 문제였다.
엘프와 손을 잡은 것만으로도 국제적 지탄을 받기에 충분한데, 독가스까지 썼다면….
그렇게 김강혁의 눈매가 씁쓸해지는 순간, 누군가 그의 말에 대답했다.
“독가스가 아니다.”
“….”
일행이 고개를 돌리자, 지하 벙커 입구로 올라오는 엘프가 보였다. 판초우의 후드 아래 흉터가 가득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자.
“카란로르… 데메론드의 왼손….”
그를 알아본 김강혁이 신음하는 가운데, 카란로르가 탁! 손목을 털며 말했다.
“이건 수면 가스다. 내 마법으로 만들어낸 거지.”
그의 말마따나, 그의 손에서 송홧가루처럼 탁한 연노란색 가스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놀란 미리디스가 곧장 바람 마법으로 가스를 밀어버리는 가운데, 카란로르가 짧게 덧붙였다.
“오해하지 마라. 우리도 국제법은 지킨다.”
미리디스는 지하 벙커로 내려가며 덧붙였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은요.”
“….”
미친 엘프들을 잘도 끌어들였군. 김강혁은 속으로 뒷말을 삼키며 지하 벙커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벙커 아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한층 더 미친 광경이었다.
벙커 공터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제단.
그건 척 봐도 종말 교단의 제단이 분명했다. 돌과 뼈로 만들어지고, 피를 물감 삼아 칠해진 제단을 만들 놈들이 또 있을 거 같지는 않았으니까.
장관은 대통령에게 물었다.
“대통령 각하, 경무대 지하 벙커에 대체 왜 이런 게 있는 겁니까?”
“모르지. 아마 경무대에서 생활했던 역대 대통령들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네만, 이 늙은이가 굳이 예상해 보자면….”
그때, 제단 뒤에서 후드를 깊게 눌러쓴 엘프가 앞으로 나서며 대통령의 뒷말을 가로챘다.
“…이곳이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기 때문이지.”
감기에 걸린 사람처럼 탁했으나, 여성인 게 분명한 목소리. 모두의 시선이 모이는 가운데, 후드를 눌러쓴 엘프가 제단 위에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지구의 동양인들이 좋아하는 풍수지리적 관점이지. 실제로 이곳은 이 나라 지맥의 마나를 모으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그러자 네티가 손을 들었다.
“풍수지리적으로 가장 좋은 곳은 여기가 아니라 왕궁인 경복궁이 아닌가요?”
“일반적인 마나라면 그렇겠지.”
다음 순간, 엘프가 제단을 내려쳤다. 쾅! 제단을 이루고 있던 돌과 뼈가 깨지며 그 사이로 막대한 마나가 흘러나왔다. 일반적인 마나와 전혀 다른, 뒤틀린 마나가.
장관은 물론이고,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대통령조차 섬뜩함을 느끼고 살짝 뒷걸음질 쳤다. 그럼에도 엘프는 태연하게 설명했다.
“고의로 이곳으로 마나의 길을 틀어 풍수지리를 망치고, 제단으로 지맥을 오염 시킨다… 이런 방법은 생각지도 못했어. 아주 똘똘한 놈들이야.”
“…똘똘하다뇨.”
네티가 기겁하자, 후드 아래로 드러난 엘프의 입술이 길게 휘어졌다.
“이런 방법을 알았다면, 우리도 진즉에 미국에 써먹는 건데… 괜히 원전을 건드려서는.”
다행히 소름 끼치는 말은 거기까지였다. 곧 미리디스가 뒤틀린 마나가 흘러나오는 제단을 쾅! 내려찍으며 말했다.
“보셨죠? 이곳이 타락한 지맥 마나의 핵이에요. 우리는 이곳을 무너트리고, 한반도 마법진에 보급되는 마나를 막을 생각입니다.”
대통령은 살짝 화색이 돈 얼굴로 물었다.
“그러면… 이것만 파괴되면 마법진은 정지하는 건가?”
“아뇨. 종말 교단이 그렇게 멍청할 리 없죠.”
“…?”
“이곳은 뒤틀린 마나를 공급하는 공급소에 불과해요. 이미 퍼진 뒤틀린 마나와 마법진의 핵은 하나하나 찾아서 파괴해야-”
그때, 제단이 부르르 떨리며 어마어마한 마나를 뿜어냈다. 대통령이 놀라 넘어지고, 장관은 울컥 피를 토할 정도로 커다란 마나.
그걸 본 세티는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말했다.
“시작됐네.”
“시작…? 뭐가 시작됐다는 건가?!”
대통령은 네티의 몸 뒤에 숨어 부들부들 몸을 떠는 와중에도 물었다.
“다음 단계요. 공희가 시작됐어요.”
“버, 벌써 시작됐다니. 우리가 늦은 겐가? 마법진의 핵은 전국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
“아뇨. 늦지 않았어요.”
이번에 말을 받은 건 쇠미리였다. 뒤틀린 마나를 받아낸 그녀는 후드를 눌러쓴 여 엘프에게 말했다.
“이리디스. 시작해.”
“공주님이 명하신다면야.”
그렇게 대답한 여 엘프는 아공간을 열더니, 기다란 나무 지팡이를 꺼냈다. 나무 줄기 여러 개를 엮어 만든 지팡이 끝에는, 보석이나 마석 대신 두 개의 금속 조각이 달려 있었다.
“…훈장?”
네티는 금속 조각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엘프가 훈장을 만들었을 리는 없고, 분명 소련의 훈장이 분명한 두 훈장은 여명이 가진 것과 달랐다.
앞에 걸린 훈장에는 C C C P라는 단어와 손을 든 남자와 여자가 새겨진 단순한 훈장이었지만, 뒤에 걸린 훈장은 여명이 가진 훈장만큼이나 화려했다.
삐쭉삐죽 황금 장식이 달린 붉은 별 안에 맞잡은 손과 월계관, 깃발, 별, 그리고 인민의 망치와 낫이 새겨진 복잡한 훈장.
지팡이 끝으로 두 훈장을 흔들거리던 엘프는 마나를 끌어 올리며 네티를 바라보았다.
“가장 어린 주가시빌리여, 아쉽게도 소련과는 연이 없나 보군요. 이건 소련의 인민우호훈장과 존경징표훈장이랍니다.”
“…예?”
“대장이 스탈린에게 직접 받은 인공 성물… 아, 인공 성물이 뭔지는 아시나요?”
네티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 엘프는 후드 아래로 미소 지었다.
“그럼 이걸로 뭘 할 수 있는지도 아시겠군요.”
그 말이 신호였던 걸까? 준비하고 있던 세티가 콰앙! 망치로 제단을 내려쳤다. 직후, 문자 그대로 으스러진 제단에서 뒤틀린 마나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쏟아진 마나는 일행을 덮치는 대신, 지팡이에 달린 훈장으로 빨려 들었다.
지이잉!! 마나를 빨아들이는 훈장은 방울이라도 된 것처럼 부르르 떨렸다. 그걸 본 대통령이 하다 하다 빨갱이 훈장 춤추는 꼴까지 보는군- 이라고 생각한 순간.
경무대 지하 벙커 곳곳에 붉은 원이 생겨났다.
붉은 차원문.
차원문을 만들어낸 여 엘프는 주르륵- 코와 입에서 동시에 피를 흘리면서도 우아하게 허리를 숙였다.
“만주 이남,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의 13개도, 102개의 주요 지역과 전부 연결했습니다.”
***
강원도 평강군. 궁예가 왕건을 피해 도망치다가 살해당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땅.
그곳에 자리한 특수초인군 5군단 본부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시발, 당장 서울로 가서, 김강혁 그 새끼 목을 따고, 대통령 각하를 지켜야 한다니까! 육군참모총장께서 내린 명령 못 들었어?!”
누가 봐도 애국자 소속인 장교의 고함.
“지키긴 뭘 지킵니까? 납치나 안 하면 다행이지. 그리고 대통령께서 내린 계엄 방송 못 보셨습니까? 계엄 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국군통수권자의 명령을 따르자는 상식적인 말.
“거, 끝날 때까지 통신 다 꺼놓으면 안 되나? 어차피 이기는 쪽이 알아서 수습하겠지.”
그리고 누가 이기건 상관없는 회색분자의 중얼거림까지.
속절없이 상부의 명령을 들어야 하는 일반병과 달리, 초인이자 군인이라는 특수한 위치를 차지한 그들은 서로 언성을 높이며 시간을 낭비했다.
그리고 때를 놓친 모두가 그러하듯, 끝끝내 그들을 움직인 건 자의가 아닌 타의였다.
쿠구궁…!
땅 아래에서 솟구친 진동과 뒤틀린 마나.
무슨 일인지 파악하지 못한 초인군이 당황하는 사이, 땅에서 시작된 마나는 그대로 그들의 몸을 뒤덮었다.
다음 순간, 5군단의 초인군 전원의 머릿속에 있던 금제가 발동했다.
“커, 커헉!”
“김 중령!? 갑자기 왜 그러- 아악!!”
“비상! 비상! 마법 공격이다!”
금제가 발동한 초인군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개였다. 어마어마한 고통 속에서 금제에 저항하던가, 금제에 정신을 뺏긴 채 그대로 서울로 진격하던가.
전자를 선택한 군인들은 눈코입에서 피를 쏟으며 고통에 몸부림쳤고, 강제로 후자를 선택한 초인들은 좀비에게 물린 희생자처럼 통제를 잃었다.
-아아악!!
그렇게 5군단의 초인군이 비명과 고함을 지르며 서울을 향해 내달리려는 그때.
지이잉- ! 5군단 본부 연병장 바로 위로, 붉은색 차원문이 열렸다.
정신을 빼앗긴 군인들이 피 섞인 침을 질질 흘리며 차원문을 바라보길 잠시.
일렁이는 차원문 너머에서 후두둑! 뼛조각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공룡뼈에 버금갈 정도로 커다란 뼈.
“…??”
뭐지?? 붉게 충혈된 군인들의 눈동자 위로 물음표가 떠오를 때쯤, 마지막으로 쿵! 커다란 용의 두개골이 땅에 떨어졌다. 그랬다. 차원문 너머에서 쏟아진 건 용의 뼈였다.
카할 마그두의 뼈.
그리고 왕관처럼 높은 뿔이 돋아난 마그두의 머리 위에는 창백한 인상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아야야….”
잘못 착지한 듯 엉덩이를 문지르던 그녀는, 주섬주섬 뿔 사이에서 일어나 말했다.
“저기, 군인 여러분? 죄송하지만… 저 건물에 있는 핵을 파괴할 때까지만 가만히 있어 줄래요?”
초인군은 우어어! 이성을 잃은 괴성으로 대답했다.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내쉰 뒤, 커다란 용의 뼈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다음 순간, 그녀의 한숨을 따라 커다란 용의 뼈가 합쳐지더니, 거대한 몸체가 우뚝- 일어섰다.
“샌드위치만 아니면 다 죽여버리는 건데… 하, 이젠 하다하다 사람도 살리네.”
앞으로 시작될 내전을 알리는 첫 전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