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16)
을 위한 세계는 없다-716화(716/817)
EP.716 Hi There! Dear John.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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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두드리소서, 삼위일체의 신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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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벤토리가 열리고, 다시는 꺼내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물건이 얼굴을 내밀었다.
인류가 만든 죽음과 파괴의 신.
핵탄두와 디코이, 마나 채프로 이루어진 그것은 변덕스러운 신들이나 창조자들과 달리 성실했다.
별의 바다 사이로 고개를 돌린 그것은 위치, 차원, 시간과 상관없이 묵묵히- 인민의 적을 조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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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호소합니다! 정의나 양심이 아닌, 오직 여러분!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살로메는 소리쳤다. 한때 얼굴을 가리고 다닌 여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당당하게.
곧 그녀의 어깨 위로 펄럭이는 영화 소품을 따라, 산사태처럼 몰려오던 군대가 움찔! 멈추어 섰다.
시작은 괴수군의 군용 차량이었다. 이미 인간을 벗어난 군인들이 홀린 듯 브레이크를 밟자, 그 뒤를 따라오던 괴수와 초인군 또한 발을 멈춰야 했다.
-비정상적인 자들에게, 괴수의 지성과 마음을 가진 압제자들에게 굴복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은 괴물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사람입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사소한 일에 울고 웃던 바로 그 사람이요!!
마법과 음향기기가 동시에 증폭하는 목소리를 따라, 몇몇 괴수 군인들의 눈동자가 선명해졌다. 심지어 검은 차원문에서 흘러나온 괴수들조차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듯 발을 멈췄다.
-저 또한 같은 사람으로서 호소합니다! 여러분들이 품고 있는 애국심에! 가족애와 사랑에! 만약 이것으로도 부족하다면, 여러분들 마음속에 있는 무언가를 향해서! 애타는 마음으로 호소합니다!
아까 전 경기장에서 방송으로 고백했던 연설의 연장선. 한국인들의 마음을 울렸던 연설이었지만, 그게 괴수의 마음까지 울릴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로메는 계속 호소했다. 진심으로 호소했다.
-저와 함께 해주세요! 함께 이 광기를 멈추고, 일상으로 돌아갑시다!
괴수들을 휘어잡는 마왕의 힘도, 독일어도 없었다. 영화 속 찰리 채플린의 그것처럼, 절절한 진심뿐.
-제발! 제가 여러분을 도울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다음 순간, 멈춰 있던 괴수군 하나가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 !
살로메가 아닌, 앞서가던 괴수의 등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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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께서는 지금껏 두드리시고, 풀무질하고, 다듬어 나를 고치려고만 하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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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가 도시가 아닌 인류 문명 전체를 불사를 수 있을 만큼 쌓였을 시절.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각국의 국민들은 핵무기를 조절하길 원했다.
두 강대국은 그 의견을 받아들여 핵무기의 양을 동결하고, 사용할 수 있는 비행기, 잠수함, 미사일의 수를 제한했다.
지구인들은 종말이 멀어졌다며 안심했으나, 의미 없는 일이었다. 냉전의 광기는 이미 조약 따위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으므로.
두 나라는 조약에 ‘핵탄두 숫자’를 제한하는 규정이 없다는 걸 핑계로 다탄두 미사일, 그러니까 미사일 하나에 여러 발의 핵탄두를 떨어트릴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냈다.
다탄두 각개 목표설정 재돌입 비행체(Multiple Independently-targetable Reentry Vehicle). 통칭, MIRV.
지금 여명의 인벤토리를 떠나 땅으로 추락하는 탄도체가 바로 그런 무기였다.
곧 조준을 끝마친 탄두는 조용히 땅으로 낙하를 시작하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탄도체에서 탄두가 분리됐다.
미국의 10강, 브라우닝조차 요격할 수 없도록 마나 채프와 디코이가 흩뿌려졌다. 번쩍이는 가짜들 사이, 탄두가 자유 낙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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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성수 대교 위에는 패닉이 가득했다.
불타는 차량 사이로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시민들, 엄마를 잃고 우는 아이, 필사적으로 사람들을 옮기는 초인과 군인들, 그리고 쩌적, 쩌적, 마지막 숨결을 토해내는 다리까지.
이대로 다리가 끊어지면 조금 전 서울 포격보다도 더한 사망자가 나올 게 분명했다. 박철은 애타는 마음으로 휴대폰을 꺼내 도움을 청했다.
천여명, 장관, 장만, 성녀…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하지만 아무리 휴대폰 통화를 돌려도,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박철의 어깨에 절망이 깃들었다. 카메라를 들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가 진실을 마주하는 기자라 할 지라도, 본질은 사람이었다. 무력감에 숨이 턱 막히고, 하나 남은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압도적인 재앙을 마주한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 박철은 기도했다.
청색 신이시여, 제가 한 번도 믿지 않았지만, 저를 선택한 신이시여. 제기랄, 부디! 정말로 에너지 생명체가 아니라 신이라면! 저 사람들을, 제발 저 사람들 좀 살려주소서!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신께선 응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를 보내주긴 했다.
지이잉 – !!
시작은 붉은 차원문이었다. 갑자기 성수 대교 머리 위에 열린 차원문에서는, 익숙한 소녀 둘이 튀어나왔다.
박네티와 이시스. 이름부터가 이상하고, 머리카락 색은 더 이상한 두 자매.
하늘색과 연두색의 두 자매는 성수 대교에 착지하자마자, 대뜸 주문을 엮기 시작했다. 주변이 일렁거릴 정도로 강력한 염동력 덩어리.
설마 무너지는 다리를 붙잡으려는 걸까? 박철과 주변 사람들의 예상대로, 두 소녀는 염동력으로 갈라지는 다리를 붙잡았다. 하지만 이어진 행동은 사람들의 생각과 조금 달랐다.
“초인이랑 군인, 누구라도 좋으니까, 와서 당겨요!!!”
성수 대교 위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 하지만 당기라니, 뭘??? 모두가 당황하는 가운데, 두 소녀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던 노인이 갑자기 그녀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노인은 보이지 않는 허공을 잡아끌었다.
그제야 초인과 군인들은 두 소녀가 뭘 만들었는지 깨달았다. 두 사람은 염동력으로 로프를 만든 것이다. 무너지는 다리를 붙잡을 줄을.
말도 안 되는 주문 정밀성이었지만, 감탄할 시간은 없었다. 누군가 ‘잡아!!”’ 라고 소리친 직후, 용감한 자들이 우르르 달려가 염동력 덩어리를 붙잡고 당기기 시작했다.
-차량!! 끈이나 갈고리 달린 차 전부 끌고 와!!
개중에는 버려진 견인차를 끌고 온 사람도 있었다. 염동력에 갈고리를 건 견인차의 엔진이 끼이익- ! 불을 뿜는 가운데, 박철이 타고 있던 헬기 조종사가 다리 교량 쪽으로 붙으며 말했다.
[기자님! 내려가서 줄 좀 걸어주십쇼!]박철은 자칫 헬기가 추락할 수 있다고 따지지 않았다. 카메라와 줄을 챙긴 그는 내려가 반투명한 염동력 덩어리에 헬기의 비상 로프를 연결했다.
그렇게 헬기와 차량, 그리고 무수한 사람들이 다리를 끌어당기자, 갈라지던 다리가 멈췄다. 그 순간을 놓칠세라, 시스가 소리쳤다.
“뭘 보고 있어?! 살고 싶으면 뛰어 인간들아!!!”
시민들은 기꺼이 그렇게 했다. 처음 달려든 노인의 가족들이 엉엉 울며 다리 반대편으로 달리는 걸 시작으로, 시민들의 대피 속도가 빨라졌다.
그리고 염동력을 끌어당기던 박철은 문뜩, 손이 하나만 남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손이 남아 있었다면 카메라로 이걸 찍을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아쉬움을 삼키며 얼굴이 빨개진 네티에게 다가가 물었다.
“네티 양!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지금 그딴 거 물어보지 말고 힘이나 주… 기자님! 기자님은 당기지 말고 사진이나 찍어요!!”
“아니, 이럴 때는 도와야-”
그러자 옆에서 염동력 주문을 유지하던 시스가 버럭 소리 질렀다.
“엄청 중요한 순간이니까, 당장 가서 찍으라고!!”
그녀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박철이 잡고 있던 염동력 덩어리를 놓칠 정도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스는 다리 저편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가서, 우리랑 다리 아래가 전부 나오게 사진 각 잡아요!”
다리 아래? 박철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후다닥 그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카메라를 들어 다리 아래를 찍는 순간- 그는 시스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했다.
성수 대교 아래, 한강에서 거대한 뭔가가 솟구쳐 올랐으므로.
[이 몸! 등장!!]녹색으로 반짝이는 비늘 위, 등허리를 따라 커다란 지느러미가 달린 수룡. 어딘가 애새끼 같은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한 용은 무려 17m짜리 성수 대교 교량만큼 몸을 부풀리더니-
쿵! 무너지는 다리를 받쳤다. 어마어마한 용의 육체와 마력을 따라 조금씩 갈라지던 다리가 수평을 되찾더니, 붕괴가 멈췄다. 도망치던 시민들 모두가 놀란 얼굴로 용을 바라봤다.
-하, 한강의 용? 도시 전설 아니었어?
누군가 멍하니 그런 말을 지껄이는 가운데, 박철의 카메라를 발견한 용이 갑자기 이렇게 소리쳤다.
[펩시는 콜라가 아니다! 한국은 해군에 코카콜라를 보급하라!!]2함대 장교들이 들었다면, 당장 머리를 쥐어뜯고도 남을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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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어날 수 있도록, 저를 거꾸러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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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익-! 탄두의 가스 분사기를 따라, 궤도가 수정됐다.
목표물이 가까워지는 가운데, 다섯 개의 탄두는 기폭 준비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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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를 흘리는 자는 떨어지는 빛을 헤아렸다.
요격을 방해하는 마나 채프, 디코이를 제외한 핵탄두 다섯 발.
막을 수 있는가- 같은 고민은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어째서 천여명이 소련제 핵탄두를 가지고 있는가- 라는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그때, 여명의 몸에서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주가시빌리.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선명한 빨갱이 증거.
아, 그랬다. 천여명이 붉은 별이다.
모든 게 하나로 이어지면서, 아야톨라의 머릿속으로 벼락이 쳤다. 그는 에케모의 편을 들던 신들이 어째서 침묵하는지 깨달았다.
환하게 미소 지은 그는, 떨어지는 탄두를 향해 말했다.
“운명은 없다. 모든 것은… 우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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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부러뜨리고, 불어넣고, 불태워, 그렇게 새로이 만들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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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폭발은 서울도, 평양도 아닌 대전조차장역 위에서 시작됐다.
섬광, 열기, 충격파, 버섯구름.
핵탄두는 너무나 착실하게 창작물 속 묘사를 재현했다.
그렇다. 종말은 사람의 상상대로 이루어졌다.
***
인류 최초의 핵폭탄, 트리니티의 폭파 실험이 성공한 순간, 오펜하이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에서 인용한 이 말은, 많은 사람에게 핵폭탄 하면 떠오르는 구절이었다.
하지만 천여명은, 핵무기 다큐멘터리에서 본 다른 과학자의 말이 더 진실에 가까운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오펜하이머와 함께 트리니티 실험을 주도했던 물리학자 케네스 베인브리지가 실험 성공을 보고 남긴 한마디.
‘이제 우린 다 개새끼들이야.’
그 말이 맞았다
.
***
어린아이가 그린 삐뚤빼뚤한 낙서처럼, 서울과 평양 위로 엉성한 원이 생겨났다.
원의 범위 안에 있던 무수한 김일성 거인과 괴수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사라졌다.
이것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희생자 중 산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누구도 평가하지 못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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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땅 위로 버섯구름이 피어난다. 꽃처럼 아름다운 구름 아래로, 용의 복수심과 왕의 슬픔으로 뚫린 지하 터널이 흔들렸다.
곧, 터널 타고 흐른 핵폭발의 진동은 눈 덮인 시베리아를 깨웠다.
그리고 그곳에 잠들어 있던 어떤 기계도.
[비정상적인 지진과 방사능 확인, 지휘부 연결 시도.]핵탄두와 마찬가지로, 기계는 묵묵히 할 일을 했다. 모스크바를 비롯한 인민의 나라 전역의 지휘부와 비밀 벙커에 통신 연결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버려진 세상에서, 대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계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것은 그저 반복해서 통신을 보냈다.
그리고 정해진 횟수가 넘어간 직후.
그것은 소련에 존재하는 모든 대량 학살 무기와 핵무기를 활성화했다.
이미 인류가 모두 사라진 세상에서도, 지구 종말 기계는 성실하게 종말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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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시빌리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차가운 궤도 위에서, 여명은 보았다.
무수한 미사일들이 소련의 상공으로 피어오르는 것을.
어떤 것은 발사되지 못했고, 또 어떤 것은 발사되다가 폭발했다. 버려진 세상의 관리되지 못한 핵무기들은 전성기 시절의 반의반조차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핵무기는 핵무기였다. 여명이 날린 핵탄두와 비견되는 미사일들이 그와 같은 궤도를 가로질러 우랄산맥과 태평양을 넘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너머에서도 미사일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여명은 자신이 시작한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어딘지 모를 곳에서 섬광이 시작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이것이 각하가 바라는 세상의 결말.’
이미 버려진 세상이고, 의도한 바가 아니었지만… 자신이 먼저 핵전쟁을 일으키다니. 여명은 아이러니를 느끼는 동시에 확신했다.
‘각하는 죽어야 한다.’
그 각오를 엿들은 밤하늘이 소리 없이 웃는 가운데, 여명은 아직 남아 있는 풍계리의 검은 차원문을 향해 낙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