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25)
을 위한 세계는 없다-725화(725/817)
EP.725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 (4)
***
오랜만에 듣는 스승의 목소리. 여명은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아뇨, 딱 맞춰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오셨냐는 질문은 필요 없었다. 다음 순간, 어둠을 꿰뚫고 튀어나온 순백의 검이 모든 걸 설명했으므로.
[성검…!]검을 알아본 이강석이 이를 갈았다.
[신의 힘을 가지고 출장 마사지나 다니는 우둔한 년이…!]-출장 마사지? 시발 어떤 새끼야?
촤악! 어둠을 베어낸 검 사이로 안대를 찬 여성의 얼굴이 보였다. 호주의 10강, 성검 프레아 칸.
그녀는 여명과 대치 중인 이강석을 보곤 하나뿐인 눈을 찌푸렸다.
-저건 또 누구야…?
[닥쳐라, 우둔한 년.]각하는 손을 휘저어 성검으로 벌어진 어둠을 움직였다. 콰악! 벌어진 어둠이 닫히기 시작하자, 성검에서 백색의 불씨가 튀었다.
[당장 내 영역에서 꺼져라!]성검이 파르르 떨리며 어둠을 밀어내려 했지만, 성검 하나로 몰려드는 모든 어둠을 막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성검은 혼자가 아니었다.
-어디서 명령질이오?
성검이 만들어낸 틈 사이로 어둠과 비교되는 새하얀 손가락이 파고 들었다. 그리고 마치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젖히는 것처럼, 콰악! 어둠이 쏟아지는 틈을 벌렸다.
당연하게도, 틈이 열린 시간은 길지 않았다. 기껏해야 사람 몇 명이 건너올 수 있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고, 실제로 건너 온 건 딱 두 명이었다.
프레아 칸과… 여명만큼이나 키가 큰 흑발의 여인.
길게 늘어트린 흑발에 검은 깃털로 몸 곳곳을 장식한 그녀와 성검이 탁!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아슬아슬하게 열려있던 어둠이 다시 닫혔다.
프레아 칸은 휘릭, 손목으로 성검을 돌리며 말했다.
“배달 완료.”
그녀가 배달한 게 무엇인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코르부스.
여명이 인간의 모습을 취한 스승을 보며 살짝 놀란 표정을 짓자, 그녀는 변명처럼 말했다.
“알다시피, 수인 모습으로는 국경이나 차원문을 넘는 게 쉽지 않소.”
“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스승님.”
“할 생각이었잖소.”
그렇게 톡 쏘아붙인 코르부스는 입을 합! 다물었다. 수인이었다면 부리를 부딪치는 소리가 났겠지만, 인간형에서는 헛바람 소리만 들렸다.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그녀는 무안한 듯 크흠, 헛기침하며 이강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제자는 또 이상한 것과 싸우고 있구려. 저게…”
“…저의 원수입니다.”
원수라, 코르부스가 녀석을 보며 손목을 푸는 사이, 프레아 칸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야, 애송… 아니, 이제 애송이는 아니지. 아무튼, 성검 말로는 저거 종말 교단의 수장이라는데? 맞아?”
여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마도 맞을 겁니다.”
프레아 칸은 황당하다는 듯 픽 웃었다.
“이런 상황을 한국에서 뭐라고 하더라? 가는 날이 장날이라던가? 거, 공짜로 남의 제자 좋은 일만 하게 생겼네.”
말은 그렇게하면서도, 그녀는 성검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수직으로 검을 든 전투 자세.
든든한 아군을 얻은 여명은 웃으며 그녀를 따라 자세를 잡고, 코르부스 또한 다시 수인형으로 변신하던 그때.
이강석이 입을 열었다.
[성검과 갈림길의 구도자… 운명이 관심조차 주지 않는 쓰지 않는 쓰레기들. 너희 따위가 개입했다고 달라질 건 없다.]녀석의 말을 따라, 다른 이강석들이 동시에 검은 연기를 쥐어 무기로 만들었다. 여명 또한 녀석과 맞춰 검을 들며 말했다.
“저 연기에 닿는 건 뭐든 다 분해됩니다. 조심하세요!”
성검과 코르부스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극에 다다른 초인들. 그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검을 빼든 여명은 가장 앞서서 이강석에게 달려들었다.
[달라질 게 없다고 말했을 텐데.]각하가 합장하며 뭔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민복의 이강석이 앞으로 나서서 여명을 막아서려는 순간.
번쩍! 성검의 빛이 녀석을 후려쳤다. 프레아 칸은 성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이 녀석은 내가 맡을 테니, 가!”
프레아 칸의 판단은 지극히 합리적이었다. 각자의 개성이 강한 것도 강한 거지만, 따로 합공을 연습한 적도 없는 사이 아닌가.
코르부스 또한 대머리 이강석에게 달려들어 상황을 일 대 일 대결로 끌고 갔다.
“가시오!”
여명은 그렇게 했다. 그는 나머지 이강석을 무시한 채 플레이어를 흡수한 ‘원본’ 각하를 향해 검을 내려쳤다.
플레이어의 손이 연기를 휘둘러 그의 검을 막았다. 찌르고, 베고, 막고- 짧고 격렬한 공방 사이로, 여명은 자연스럽게 용사의 무술을 펼쳤다.
!
코앞에서 터진 용사의 무술 1초식. 검기가 이강석의 목과 그 너머의 어둠을 반으로 자르려는 찰나, 이강석의 손이 뭔가를 ‘찢었다.’
그리고 세상의 일부가 사라졌다.
여명이 각하의 목을 베었다는 현실도, 성검의 빛이 어둠을 밀어내고 코르부스가 대머리 이강석의 복부를 걷어찼다는 사실도 없던 일이 되었다.
남은 건 텅 빈 시간의 공백뿐.
“염병, 이건 또 뭐야?”
놀란 프레아 칸의 고함소리 덕분인지, 여명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또 그 권능이다.’
여명이 고개를 돌리자, 바로 조금 전까지 검기에 목이 잘렸던 이강석이 멀찍이 거리를 벌린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몇 초짜리냐.”
[…뭐라?]“진실의 천벌은 13초짜리였지. 네 권능은 몇 초나 날려버릴 수 있지? 1초? 3초?”
다른 아야톨라의 권능과 마찬가지로, 녀석의 힘에도 제약이나 한계가 있다. 여명은 녀석을 도발할 생각으로 말을 이었다.
“연속으로 사용할 수도 없겠지. 그게 가능했다면 시작과 함께 내 목을 날리면 그만이었을 테니까.”
[….]“권능과 권능 사이의 재사용 시간은 어떻지? 길진 않겠지만, 짧지도 않겠지. 그렇지? 내가 재사용 시간 사이에 목을 자르면… 그것도 없던 일로 만들 수 있을까?”
각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녀석은 슬쩍 코르부스와 성검에게 붙잡힌 분신들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호각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검은 연기의 특수성 덕분이었다.
비록 쓰레기들이라지만 상대는 10강과 수인 최강자. 녀석들이 적응하는 순간, 균형은 무너지리라.
[이건… 짜증 나는군.]이강석은 싸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여명을 바라보았다. 도발하는 건 녀석이 아니라 자신이어야 했다.
저 도금된 인형은 저렇게 당당해선 안 됐다.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비명을 지르다가, 그의 승리를 위한 만찬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감히, 음식 따위가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다니.
자신을 향해 당당하게 달려드는 천여명을 보며 이강석은, 그리고 독자는 분노했다. 오랜 기간 지배자로 살아온 그의 본능 또한 분노했다.
그래서 이강석은 다음 패를 꺼냈다. 이제, 이곳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주리라.
[마음을 뒤틀어라.]그가 합장했다. 다음 순간, 주변의 어둠이 길게 늘어졌다.
***
시작은 거리감의 파괴였다.
“이런!”
대머리 이강석과 싸우던 코르부스는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여명과 네 팔의 이강석이 ‘멀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이상함을 깨달았을 땐 이미 거리가 꽤 벌어진 뒤였다. 마치 전력으로 달리는 스포츠카처럼, 두 사람은 순식간에 작은 점이 되었다.
퍼억! 대머리를 걷어찬 코르부스는 재빨리 여명을 쫓으려 했다. 하지만 성검의 목소리가 그녀를 막아 세웠다.
“결계와 녀석의 심상이 뒤섞이는 거야! 젠장, 저건 물리적으로 못 쫓아가! 내버려둬!”
“하지만, 제자가!”
“니 제자 못 믿어?!”
“….”
코르부스는 발을 멈췄다. 그녀는 제자를 믿으므로.
하지만 그녀의 믿음과 상관 없이, 주변의 어둠 사이에서 새로운 이강석들이 튀어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 둘, 다섯, 열, 스물….
도저히 눈대중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이강석이 주변을 둘러싼 직후. 성검이 쯧, 혀를 찼다.
“이 새끼, 쓰레기가 어쩌고 지껄이더니, 우리를 떨어트려 놓으려고 별짓을 다 하네.”
“….”
코르부스는 녀석들을 쓰윽 훑은 뒤, 손날을 펼치며 물었다.
“이제 내가 뭘 하면 되오?”
“우선은 다른 분신… 씁, 이게 분신이 맞는지 모르겠네. 아무튼, 이 새끼들 모조리 쓰러트리고 결계에 구멍 내야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푸확! 코르부스의 오른손이 대머리 이강석의 목을 날려버렸다. 위선과 오만. 가지런한 깃털 손날 사이로 피가 흐르는 가운데, 코르부스가 물었다.
“전부 죽이면 된다, 그 말이오?”
“뭐, 뜻은 그런데… 너 좀 변했다?”
“그대도 제자를 키우면 알게 될 것이오.”
“내가 먼저 침 발라놓은 거 가로챘으면서, 말은.”
프레아 칸은 한층 더 크게 성검의 빛을 키웠다. 신성한 빛이 어둠을 밀어낸 바로 다음 순간, 두 명의 여인과 수많은 이강석이 격돌했다.
***
찰나의 순간,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곧바로 공기가 뒤틀리고, 감각이 꼬였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중심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여명은 달랐다.
그는 이게 무아지경, 혹은 심상에 빠지던 순간에 으레 겪는 감각이라는 걸 금세 깨달았다.
방법은 알 수 없었지만, 아마 각하가 강제로 심상으로 끌고 들어온 듯했…
…거기까지 생각한 여명은 본능적으로 뒤로 굴렀다.
다음 순간, 촤악! 그가 서 있던 자리로 검은 연기가 쏟아졌다. 아슬아슬하게 연기를 피한 여명은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검은 연기를 쥔 이강석이었다. 녀석은 벌써 이기기라도 한 것처럼 비틀린 미소로 여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명은 눈살을 찌푸렸다. 녀석의 표정 때문이 아니라, 녀석이 등지고 있는 풍경 때문에.
‘…저건?’
쇠창살과 철판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계단 피라미드.
그건 미그니움이 봉인되어 있던 피라미드와 똑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