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29)
을 위한 세계는 없다-729화(729/817)
EP.729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 (7)
***
각하는 싸웠다.
그 어느 때보다도 잔혹하게, 그 어떤 때보다도 집요하게.
그가 여명을 향해 휘두르는 연기는 분노로 가득한 공희였고.
그의 연기에 썰려 나가는 여명의 몸은 자신을 위한 제물이었다.
꽉 깨문 어금니, 뒤틀리는 마나, 점점 더 복잡해지는 생각.
검에 잘린 팔을 재생하면서, 각하는 확신했다. 이대로는 진다.
가까스로 천여명을 죽여도 운명이 그를 찾아올 것이다. 그래, 아슬아슬한 승리는 곧 패배다. 그에게 필요한 건 압도적인 승리였다.
하지만 어떻게?
천여명은 오직 그를 죽이기 위해 준비된 칼날이나 다름없었다. 천여명의 강함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녀석이 망가트린 계획이 문제였다.
천여명은 그가 준비한 모든 것을 망가트렸다.
남산 지하에서부터 공희, 반도 마법진, 쿠데타, 교단, 분신, 그리고 지맥까지.
수십 년, 아니, 수십 회차 동안 쌓아 온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그가 공들여 키운 1억의 한국인들, 마왕이 되기 위한 제물들이 손가락 사이 모래처럼 흘러내렸다.
당장이라도 천여명을 찢어 죽이고 싶었다. 녀석을 도운 대통령과 장관, 그리고 희생양을 전부 찢어 죽여도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분노가 피를 달굴수록, 그의 머리는 차갑게 식었다.
이제 1억 마리의 가축을 이용한 영광스러운 대관식은 불가능했다. 남은 건 아주 옛날에, 그가 운명과 정면에서 싸우던 시절의 무식한 방법뿐.
생각은 길었지만, 행동은 빨랐다.
각하는 페이지를 찢어 여명과 거리를 벌린 직후, 찰나의 시간을 이용해 수인을 만들었다.
왼손의 집게손가락을 펴서 오른손으로 감싸 쥔 수인.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고, 미혹과 깨달음이 둘이 아님을 뜻하는 불교의 수인이었으나, 그는 그 속에 담긴 뜻을 뒤틀었다.
‘주인과 부하는 다르지 않다. 노예의 목숨은 주인의 것이다.’
짝!
수인 이후 첫 번째 합장, 뒤틀린 마나가 호응하며 그에게 영혼이 묶인 자들이 연결됐다.
양치기, 괴수군, 종말 교단, 그리고… 애국자들.
애국자들은 알고 있었을까? 이 나라의 애국자가 된다는 게, 자신에게 충성이 무얼 의미하는지?
그가 왜 그들에게 축복을 베풀었는지, 어째서 그들에게 권력을 나눠주었는지 정녕 몰랐는가?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각하가 그렇게 유도했으니까.
멍청한 국민들과 희생양들을 보여주며, 그들 스스로가 특별하다 믿게 했으니까.
하지만 각하의 눈에 모두 똑같았다.
잔치에 쓰일 돼지들.
그리고 이제, 돼지를 잡을 때가 되었다.
짝!
두 번째, 그의 어깨에서 돋아난 플레이어의 손이 합장했다. 주문이 발동되고, 단 한 줄의 명령이 결계와 심상을 뚫고 한반도 전체로 퍼졌다.
종말 교단의 끄나풀들, 실시간으로 죽어 나가는 양치기들과 괴수군, 그리고 애국자들을 향해서.
[내놔라.]***
한국의 3대 언론사, 고려시보의 회의장.
“결판이 나는 대로, 우리 고려시보는 승자에게 붙… 음?”
언론사 임원들과 함께 회의를 주도하던 사장은 갑자기 말을 멈췄다. 갑자기 코에서 흘러나온 피 때문이었다.
“사장님? 괜찮으십니까?”
임원 중 하나가 급히 손수건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무의미한 일이었다. 다음 순간, 사장을 비롯한 몇몇 임원들의 머리가 폭발했으므로.
펑!
갑자기 피를 뒤집어쓴 임원은 멍하니 머리가 사라진 사장과 동료들을 바라봤다.
“으, 으아악!!”
살아남은 다른 임원들은 자신들의 머리도 터질까, 겁에 질린 비명을 지르며 회의장을 벗어났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놀란 경비와 직원들이 올 때가 돼서야, 손수건을 든 임원은 죽은 사람들이 박철 기자가 발표한 ‘애국자’들이라는 걸 깨달았다.
***
애국자는 국가를 위해 죽는 법이다.
그리고, 각하가 곧 국가다.
***
아아아- !!
각하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인간을 초월하는 영혼이 내지르는 환호성이자, 녹아내리는 인간성이 마지막으로 내지르는 단말마였다.
아아아아 – !!
그 비명이 어찌나 큰지, 심상이 쩌적- 갈라졌다. 여명이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검은 연기가 각하의 몸을 휘감았다. 피부와 근육이 분해되며 사라지고, 검은 연기가 육체를 대신했다.
‘마왕.’
여명이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그러니까 고작 눈 한 번 깜빡할 시간이 흘렀을 땐 이미 변신이 끝난 뒤였다.
마치 먹물로만 그린 인물화처럼 검게 물든 존재가 여명을 마주했다. 그것이 각하였단 사실을 알려주는 건 플레이어를 흡수해 만든 네 개의 팔뿐.
눈코입 하나 없는 그것의 얼굴을 향해, 여명이 덤덤하게 말했다.
“마지막에 변신이라… 고전적인걸.”
[….]“하지만 동시에 실망스럽기도 해. 거대한 방사능 마왕은 어디 갔지? 응? 지구 종말 시계를 움직이려던 마왕은 어디 가고… 어린아이 낙서가 서 있는 거냐?”
각하는 어떻게 자신의 계획에 대해 알고 있냐고 묻지 않았다. 그저 몸을 풀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자리를 박찼다.
그리고- 쾅!! 마왕의 주먹이 여명의 얼굴을 후려쳤다.
***
…?
이질감을 느낀 남자는 걸음을 멈췄다.
“마왕?”
벌써? 그는 허리에 찬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저 멀리, 승만 시티 방향을 바라봤다. 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은 그의 생각이 사실이라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남자가 방향을 돌리려는 순간.
콰아앙 – !! 그가 원래 향하던 방향에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프랑스가 극비리에 개발한 대 초인용 미사일의 불꽃이었다. 경제 위기로 10년 넘게 군축하면서 잘도 저딴 물건에 예산을 들였다 싶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
꽤나 먼 거리에 있음에도, 마나가 섞인 열풍이 불어와 후욱- 그의 얼굴을 훑었다. 이 정도면 10강인 맥팔레인도 무시하기 어려운 화력이었다.
하지만…
“…레토를 죽이기엔 모자라지. 수폭이라면 모를까.”
그 혼잣말에 반박하듯, 한 번 더 불길이 치솟았다. 프랑스의 어리석음을 증명하는 것처럼, 크고 화려하게.
남자는 잠시 그 불길을 바라보다가, 걸음을 돌렸다.
***
여명은 검을 휘둘렀다.
그 어느 때보다도 경건하게, 그 어떤 때보다도 정성스럽게.
그가 각하를 향해 휘두르는 검은 죽은 청소부들을 위한 제사였고.
그의 검을 타고 흐르는 각하의 검은 피는 떠나간 이들을 위로하는 공물이었다.
거칠어지는 호흡, 넘실거리는 마나, 점점 더 격렬해지는 공방.
여명과 각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서로의 급소를 노렸다. 공기가 달궈지며 비명을 지르고, 두 사람은 일격을 나누는 순간마다 서로를 깎아내렸다.
마왕의 위엄이나, 용사의 정의는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건 원색적인 증오뿐이었다.
[죽어!! 죽으란 말이다!!! 천여명!!]각하는 방어적으로 사용하던 권능을 공세로 돌렸다. 마왕의 육체에 방어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이.
연기로 이루어진 몸이 거칠게 여명을 몰아쳤다. 무엇이건 분해하는 연기는 스치는 것만으로도 여명의 피와 살을 게걸스레 먹어 치웠다.
그래, 이 공방에서 밀리는 쪽은 여명이었다. 각하의 연기는 그저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여명의 피부를 녹였다. 만약 주가시빌리가 없었다면, 그저 근접전을 펼친 것만으로 몸이 녹아내려 죽었을 정도였다.
거기다 각하의 공격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었다. 손에 들린 네 자루의 검은 연기가 거미줄처럼 휘어지고, 그 사이로 비각술이 날아왔다.
여명은 피하고, 막고, 반격하며 생각했다.
‘…실시간으로 강해지고 있다.’
당장 녀석의 검술부터가 그랬다. 마왕으로 변신하기 전 각하의 검술은 별 볼 일 없었다. 일반적인 수준보다는 강했지만, 딱 그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여명과 싸우는 마왕의 검술은 이미 그를 압도하고 있었다.
허리가 360도로 회전하고, 다리가 기괴하게 꺾이고, 네 개의 팔이 늘어나고, 줄어들었다가, 휘어지는 마왕의 육체 때문에?
물론 그런 것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건 마나였다. 마치 공간을 점령하는 것처럼, 주변을 장악한 강대한 뒤틀린 마나.
마왕이 된 각하는 그게 무엇인지 모르는 듯 그저 마구잡이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일견즉해, 한 번 보면 곧바로 해석하는 여명의 재능은 그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건 무술이다.
인간이 아닌… 마왕의 무술.
[하, 하하하!! 다시 한번 지껄여봐라!! 실망스러워? 어린아이의 낙서?!? 다시 한번 지껄여보란 말이다!!!]어째서 각하가 이런 무술을 사용하는지, 다른 마왕들은 왜 사용하지 못했는지- 의문을 떠올릴 새도 없었다. 마왕의 공격은 집중력을 낭비하면서 막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주변을 장악한 마왕의 무술은 깊은 바닷속 수압처럼 점점 더 강하게 여명의 몸을 압박했다.
‘케프리.’
압박을 견디다 못한 여명은 자신의 신명을 불렀다. 다음 순간, 번쩍! 찬란한 태양의 신성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모든 압박을 떨쳐내기엔 부족했다.
그는 검을 휘두르며 심장을 펌프질했다. 혈관이 확장되고, 피가 가속하며 뇌를 자극했다. 의식이 극한으로 압축되며 시간이 느리게 움직였… 아니, 거의 멈춘 거나 다름없는 상태까지 의식을 가속했다.
그제야, 간신히 각하의 움직임을 쫓을 수 있었다.
물론, 대가는 가볍지 않았다. 굳게 다문 이빨 사이로 거친 숨결이 오가고, 혈압이 올라가며 몸 곳곳의 실핏줄이 터지는 게 느껴졌다.
환골탈태하고, 신성으로 강화한 육체마저 비명을 지르는 극한.
여명은 그런 극한과 압박 속에서 각하와 손속을 나눴다. 연기로 이루어진 네 자루의 검을 피하고, 망토처럼 휘날리는 검은 연기를 베고-
[느려! 느리단 말이다!!]그때, 각하의 배에서 다섯 번째 손이 솟구쳤다. 예상하지 못한 일격이었고, 여명은 그대로 복부를 내어주고 말았다.
촤악!!
척추와 내장이 반으로 끊어지고,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며 바닥을 굴렀다. 각하가 머리를 노리고 한 번 더 팔을 휘둘렀으나, 여명은 아슬아슬하게 양팔로 바닥을 밀어 피했다.
각하는 추적하지 않았다. 녀석은 여명이 염동력으로 하반신을 다시 허리에 붙이는 걸 보며 씨익 웃었다.
[괴물이 따로 없군. 이게 어딜 봐서 용사와 마왕의 싸움이란 말이냐?]여명은 뚜둑- 어긋난 허리뼈를 맞추며 대답했다.
“난 용사의 자격으로 오지 않았다.”
[아, 그랬지. 이 모든 지랄이… 고작 복수 때문이라고 했었지. 그러면 뭐, 용사가 아니라 암살자인가?]지껄이는 이 순간에도, 주변을 압박하는 마왕의 힘이 강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여명은 대답했다.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천의 청소부.”
[…뭐?]“나는 청소부다. 너에게 가족을 잃은 청소부. 네가 애지중지하던 남산의 지하 벙커를 무너트린 것도, 박 기자를 도와 애국자들의 진실을 까발린 것도, 쿠데타를 망가트리고, 공희를 막은 것도… 전부, 청소부가 한 일이다.”
여명은 실핏줄이 돋아난 눈으로 덧붙였다.
“너 같은 쓰레기를 두고 볼 수 없어서, 네가 준비한 모든 걸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각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잠시 침묵하던 녀석은 이마를 탁, 짚으며 말했다.
[청소부…? 고작 청소부의 복수 때문에 내 수십 년… 아니, 수십 회차의 노력이 망가졌다고?]만약 얼굴이 남아 있었다면 황당한 표정을 지었을 법한 말투였다. 여명은 대답 대신 다시 심장을 펌프질했다. 무언의 긍정.
[하! 하하하!!]각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기 이마에 손을 푹! 찔러넣었다. 그리고 마치 뇌를 헤집는 것처럼 머리를 박박 긁다가, 우뚝 손을 멈추고 말했다.
[이건… 이건 시련이다… 나를 강하게 할 시련. 그래… 네 직업이 무엇이건 간에, 넌 시련에 불과해.]“….”
[아직 늦지 않았어. 모두 다시 시작하면 돼. 너를 추방된 신께 제물로 바치고… 가축들을 하나하나 죽이면… 아, 그래, 고통의 눈이 있었지. 그걸 되찾아서 다시 한국인들을 제물로 삼으면… 나는 온전한 마왕이 된다. 그러기 위해선….]녀석은 고개를 들었다.
[일단, 너부터 죽여야겠지.]그 이상의 신호는 필요 없었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땅을 박차며 서로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