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30)
을 위한 세계는 없다-730화(730/817)
EP.730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 (8)
***
‘케프리. 필요하다면 청금석을 톤 단위로 바치겠습니다. 지금 당장 힘을 빌려주세요.’
피와 연기가 충돌하기 직전, 여명은 자신의 한 번 더 신명을 읊었다.
번쩍!
각하가 망토처럼 두른 검은 연기와 여명의 몸에서 피어난 검붉은 아지랑이가 폭풍처럼 얽히는 가운데, 신성이 여명의 몸을 감쌌다.
한층 강화된 여명과 각하는 폭풍의 눈 속에서 서로를 난타했다.
이번에도 우위를 점한 건 각하였다. 녀석은 매 순간 마왕의 무술을 완성해나갔다. 마치 드높은 탑을 쌓는 것처럼, 하나하나 실전 경험을 쌓으며 여명을 압박했다.
그리고 그런 마왕의 무술이 끝이 아니었다. 검은 연기에 그저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여명은 피부가 녹아내리는 걸 느꼈다.
이 불합리한 공방을 유지하는 건 주가시빌리와 무장 혈청이었다.
무한에 가까운 재생력과 피의 무기는 마치 마왕을 위한 맞춤 무기인 양, 순간을 버티고 있었다. 만에 하나 다른 무기를 꺼냈다면, 그대로 분해되어 사라졌으리라.
[뭐 하는 거냐, 청소부? 그 잘난 쓰레기통은 어디 갔지?]여명은 기꺼이 녀석의 목을 베어냈다. 그러나 녀석은 피를 흘리지도, 죽지도 않았다. 마왕은 목이 덜렁거리자마자 페이지를 ‘찢었다.’
!
상처가 재생되며, 마왕이 다시 완전한 육체를 되찾았다. 그에 비해 여명은 필사적으로 연기를 피해야 했다. 만에 하나 연기가 머리에 닿는 순간, 뇌가 분해될 게 분명했으므로.
[나를 죽이지 못하는 시련은 나를 강하게 할 뿐! 천여명!! 너에게 감사하마!!]마왕의 무술을 통한 압박, 검은 연기의 공격력, 비정상적인 재생력, 그리고 언제든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페이지 ‘찢기’.
그 모든 걸 다 가진 각하는 압도적으로 여명을 몰아붙였다.
여명은 이딴 걸 어떻게 이기냐고 말하지 않았다. 모든 투쟁이 그러하듯, 적응하지 못한 자는 죽을 뿐이니까.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순간부터, 두 사람 사이의 저울추가 수평을 맞추기 시작했다.
마왕의 무술이 점점 더 완성되는 것에 비례해, 여명의 검이 점점 더 정교해진 까닭이었다.
신성과 주가시빌리에 휩싸인 여명의 검은 공격과 방어의 구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마치, 성도에서 변경백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공격은 그 자체로 하나의 방어였으며, 방어가 곧 공격이었다.
단순히 일격을 쳐내고 다시 찔러 넣는 수준이 아니었다. 검을 찌르며 피하고, 물러나면서 베고, 내려찍는 반동으로 회전하고- 그의 육체는 물리법칙을 극한으로 몰아붙였다.
그리고 미처 극복하지 못한 빈틈은 주가시빌리가 메웠다. 빛에 휩싸인 채 순식간에 몸을 재생하는 여명의 모습은 각하만큼이나 비인간적이었다.
그쯤 되자, 마왕의 가능성을 꽃피우는 즐거움에 빠져있던 각하도 뭔가를 깨달았다.
청소부와 각하, 둘은 서로를 성장시키고 있었다. 처음 싸움을 시작할 때와 비교하면, 둘은 이미 몇 개의 계단을 올라선 상태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하는 증오, 고통, 투쟁, 그리고 각자의 재능이 만든 결과였다.
만약 두 사람이 선의의 라이벌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는 결과였겠지만… 둘은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었다.
불구대천.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 했다. 그리고 각하는 죽을 생각이 없었다.
[그만!! 이제 그만 죽으란 말이다!!]각하의 분노를 따라, 마왕의 무술이 본능적으로 여명의 몸을 옥죄였다. 무장 혈청은 그런 압박조차 반으로 베어 가르며 달려들었다.
이어지는 끔찍한 난타전. 이것이야말로 각하가 원하는 바였다. 그는 네 개의 팔을 동시에 휘두르며 소리쳤다.
[천여명! 어디 말해봐라! 내 손에 죽은 청소부들은 어떻게 죽었지? 벌레답게 짓밟혀 죽었나?]“….”
[총? 질식? 그것도 아니면, 칼에 토막 나 죽었나?]토막이란 단어를 말하는 순간, 미세하게나마 천여명의 호흡이 흐트러지는 게 느껴졌다. 이거다.
[토막 나 죽었군! 하하! 그랬군, 그랬어! 이 시체 창고! 여기가 네 심상에 있는 이유가 그거였어!]여명의 무장 혈청이 왼팔을 잘라냈지만, 각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쳤다.
[시체는 어떻게 했지? 훼손된 시체는 네크로맨서에게 주지 않고 바로 재료로 쓰이는 게 원칙인데 말이야!]천여명의 검이 한층 더 빨라졌다. 마왕의 몸에 상처가 늘어나는 만큼, 여명의 몸도 더 자주 녹아내리고, 재생했다.
각하는 눈이 없었지만, 그런 여명의 몸을 정확히 관찰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여명의 어깨에서 흘러나오던 주가시빌리의 아지랑이가 줄어든 순간.
[이제, 끝내자.]그는 네 개의 팔에서 검을 놓고 동시에 합장했다.
짝!
푸확!! 그의 전신에서 검은 연기가 터져 나왔다. 지속력을 생각하지 않은 폭발적인 분출. 여명은 당황하지 않고 연기를 피했지만, 각하는 네 자루의 검을 동시에 휘둘러 여명의 퇴로를 막았다.
푸확!
아슬아슬하게, 여명의 왼팔이 팔꿈치부터 잘려 나갔다. 주가시빌리로 순식간에 재생할 수 있는 상처였다. 상처였는데… 재생이 늦었다. 2초, 혹은 3초.
여명의 균형을 잃고 뒤로 밀려나는 가운데, 각하가 읊조렸다.
[주가시빌리가, 무적이라고 생각했겠지.]여명은 대답할 틈도 없는 듯, 필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왼팔이 재생되기 전에, 검은 연기가 옆구리를 쓸고 지나갔다.
괴수에게 뜯긴 것처럼 살이 뭉텅 사라졌다. 여명의 몸이 균형을 잃고 휘청였다.
[무한한 살기, 무한한 재생… 하지만 살기가 있을 때 이야기지. 살기를 내뿜지 않는 적을 상대할 때는, 자신의 살기만으로 버텨야 한다는 걸 몰랐나?]각하의 지적에 여명의 눈이 커진다. 이제야 진실을 깨달은 게 분명했다.
그가 마왕으로 각성한 뒤, 한 번도 살기를 흘리지 않았다는걸.
그래, 그게 각하의 노림수였다. 당연히 살기가 담겨 있을 법한 말을 던지면서, 천여명을 속이는 것.
그리고 이제 그 결과가 나왔다. 천여명의 마나는 바닥났다.
[주가시빌리들이란.]멍청한 빨갱이 새끼들은 언제나 그랬다. 무한한 힘에 취해서, 무모함과 용기를 구분하지 못했다. 그리고 천여명 또한 멍청한 빨갱이 새끼였다.
각하는 놀란 얼굴로 거리를 벌리는 천여명을 쫓았다.
[어딜 가는 거냐? 조금 전까지 날 죽이겠다고 하지 않았나?]천여명은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보려는 듯, 인벤토리에서 온갖 것들을 꺼내 던져댔다. 검, 수류탄, 총, 심지어 열차까지!
하지만 어느 것 하나 각하를 막을 수 없다. 그를 휘감은 마왕의 무술 때문에 가까이 다가오기는커녕, 허공에서 찌그러졌다.
챙! 수류탄 하나를 튕겨낸 각하는 보란 듯 검은 연기를 휘둘렀다. 촤악! 채찍처럼 늘어난 연기가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내던 여명의 양 팔을 잘라버렸다.
팔이 재생되는 속도는 눈에 보일 정도로 느릿했다. 이제 한계에 도달한 게 분명했다. 도망칠 마나조차 거의 남지 않았으리라.
이윽고, 여명이 각하의 사거리에 들어온 순간.
여명이 검은 차원문을 열었다.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개새끼가 따로 없구나!]각하는 기쁨에 차서 소리쳤다. 그래, 지금이야말로 그가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여명이 도망치기 위해 바닥을 드러내는 순간.
그는 페이지를 ‘찢었다.’
시공간이 사라지며 두 사람의 사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지고, 마왕의 육체가 여명의 코앞에서 나타났다.
[이걸로, 끝이다.]각하는 네 개의 검을 그대로 쑤셔 박았다. 검은 연기로 이루어진 검이 정확하게 여명의 뇌, 목, 심장을 관통했다.
끝났다.
각하는 천여명의 최후를 확인하기 위해 검을 뽑았-
그 순간, 여명의 손이 재생됐다.
곧게 펴진 손날은 마왕이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선을 그렸다.
꽃씨를 머금은 바람처럼, 혹은 마른 땅에 내리는 비처럼 부드러운 선.
위선과 오만.
수인 최강 무술은 잔혹할 정도로 깔끔하게 마왕의 가슴을 갈랐다. 반으로 갈라진 연기 사이로, 맥동하는 심장이 드러났다.
마왕의 심장.
안 돼- 라는 말보다 먼저, 여명의 오른손이 검게 물들며 심장을 끌어당겼다. 만물을 끌어당기는 인력.
그리고 콱! 여명이 심장을 부여잡은 순간, 각하는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무릎 꿇었다.
주변을 압박하던 마왕의 무술도, 넘쳐나던 힘도 사라졌다. 남은 건 피처럼 검은 연기를 질질 흘리는 이강석의 육체뿐.
각하는 멍한 눈으로 여명을 올려다봤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금색 눈동자를 마주하자, 머리 위로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분명 심장과 뇌를 꿰뚫었는데. 살기는 바닥났잖아. 손을 재생할 마나는 없었잖아.
너무 많은 질문 때문일까, 그의 입에서 나온 건 고작 한 마디가 전부였다.
[어떻, 게…?]그 질문의 대답은 여명이 아닌, 그의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숨 막히는 고통도 뼈를 깎는 아픔도승리의 순간까지 버티고 버텨라.]
익숙한 한국군의 군가. 각하는 노래를 따라 고개를 돌렸지만,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한이 맺힌 원한도 피가 끓는 분노도사나이 가슴속에 새기고 새겨라.]
다음 구절을 듣고 나서야, 허공에 숨겨져 있던 검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파스스-! 흩날리는 마나 가루와 함께 투명 마법을 해제한 붉은 검… 그건 조금 전 여명이 인벤토리에서 마구잡이로 던지던 검 중 하나였다.
붉은 색인 걸 제외하면 대단한 장식도 없는 검이었으나, 문제는 그 검에서 흘러나오는 살기였다.
조금 전 두 사람이 뿜어내던 것보다도 많은 양의 살기.
각하는 우웩! 피를 토하면서도 멍하니 검을 바라봤다.
스스로 살기를 내뿜는 검이라니. 성물도 아니고, 저런 게 존재했다고?
저런 건 만화에서도 본 적 없었다. 게임에 있던 물건인가? 아니, 게임에도 저딴 건 없었다. 그런데 저런 게 왜, 하필 이 순간에.
그는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억지로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커헉! 심장을 잃은 반동이 그의 몸을 덮쳤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여명에게 다가가 발목을 붙잡았다.
하지만 발목은 잡히지 않았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의 손이 여명의 발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건 그도 알고 있는 무술이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놀라움이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각하는 살기의 검을 봤을 때보다도 더 크게 경악했다.
[변경백의… 무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