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4)
을 위한 세계는 없다-74화(74/817)
〈 74화 〉 전학생을 위한 우연 (4)
* * *
***
로드 하우 아카데미의 제1회의장.
고급스러운 원목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원탁 앞,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서류를 펼쳐보고 있었다.
주요 학부 대표 교사들과 관리부, 입학처, 홍보처 등 중요 부서의 이사들까지.
아카데미의 실세라고 불릴만한 사람들이 전부 모인 가운데, 조용히 서류를 넘기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렇게 정적이 길어지려는 순간, 회의장의 문이 열리며 머리를 올려 묶은 중년의 여성이 회의장으로 들어섰다.
히메나 리베로.
로드 하우 아카데미 총장이라는 공식 직함보다, 교장이라는 비공식 직함으로 불리길 원하는 사람.
“오셨습니까. 총… 아니, 교장님.”
교직원들은 일제히 일어나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인사를 마주한 교장은 빙긋 웃더니, 가벼운 걸음으로 상석에 앉았다.
교직원들은그녀를 따라자리에 앉은 뒤, 상석으로 시선을 모았다.
“교직원 여러분. 늦은 시간에 미안합니다. 원탁에 놓인 서류를 보신 분은 이미 알겠지만, 이번 긴급회의는 니콜라이 이사의 요청으로 소집되었습니다.”
교장은 원탁 좌측에 앉아 있는 니콜라이 체르니 이사를 보며 말했다.
“회의 의제는… 편입생과 입학처장의 징계 관한 표결입니다.”
소문에 빠른 교직원들은 예상했다는 듯,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마법 학부의 가단 교수 같은 자들은 입학처장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엄격한 사람이 어쩌다가?
모두 제각각 생각을 떠올리는 가운데, 니콜라이가 손을 들었다. 교장은 가벼운 손짓으로 그에게 발언권을 허가했다.
“흠, 흠,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바로 오늘. 아카데미에서 참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니콜라이 이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원탁의 교직원들을 쓱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단 한 명의 선택과 단 한 명의 일탈로 인해, 아카데미는 막대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었습니다.”
기세등등한 목소리. 그의 시선이 메드가 입학처장을 향했다.
“가장 먼저, 공항의 제2번 활주로가 파손됐습니다. 시설관리처의 말로는 정상화까지 삼 일은 걸린다고 합니다.”
활주로가 파손됐다고? 몇몇 교사들이 ‘사실이냐’는 표정으로 시설관리처의 총무를 바라봤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무언의 긍정을 확인한 니콜라이가 계속 말했다.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편입생은 노골적으로 교직원들을 위협했습니다. 단순히 말로 협박한 게 아니라, 무기와 마나까지 사용했다는 증언을 다수 확보했습니다.”
“…허어.”
누군지 모를 교직원의 탄식이 울리고, 니콜라이는 더욱더 감정을 실어 말했다.
“이사회의 사무원인 페드로를 비롯해 27명의 교직원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몇몇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휴가를 요청한 상태입니다.”
“….”
“활주로에 있던 학생을 비롯해 총 19명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다행히 중상자는 없지만, 의료팀에서 공식적으로 자제를 부탁했습니다.”
격양된 표정과 몸짓. 모두의 시선이 모인 걸 확인한 니콜라이는 원탁을 쾅! 내려쳤다.
“심지어 부상자 중에는 성녀님께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스로 치료하셨으니 망정이지, 팔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으셨습니다! 다른 분도 아니고, 성녀님입니다. 입학 첫날부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요!”
메드가는 입을 꾹 다물고 니콜라이를 노려봤다. 니콜라이는 비웃음을 숨기며 말을 끝냈다.
“여러분! 저는 바로 이 자리에서 편입생의 징계와 메드가 입학처장의 직위 해제를 요청합니다.”
교내 정치에 최소한의 관심을 가진 교사들은 니콜라이의 수작을 알아채고 눈살을 찌푸렸으나, 그뿐이었다.
니콜라이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입학처장의 징계는 합당했다.
이번 편입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입학처장의 독단이었으니까.
“반박할 말이 있나, 메드가 입학처장?”
가만히 턱을 괴고 있던 교장이 물었다. 메드가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편입생만의 잘못이라고 보기에 어렵습니다. 고의로 편입을 비난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그의 설명이 이어지기도 전에, 니콜라이 이사가 끼어들었다.
“비난이라니! 그들의 행동은 정당한 의사 표현이었다! 입학처장의 월권행위를 보다 못해, 시위에 나선 사람들을 그렇게 표현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나?”
“…하.”
얄팍한 수작을 마주한 메드가는 한숨을 삼켰다.
아무리 외부에서 꽂아 넣은 낙하산이라도 그렇지. 이런 수준 떨어지는 수작질이라니?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다른 교직원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활주로의 피해는 그렇다 쳐도, 초인 학생이 일반인 교직원들을 협박했다는 사실, 그리고 성녀님의 부상은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니었으니까.
“반대하시는 분이 없다면, 바로 표결에 들어가겠습니다.”
니콜라이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회의장 뒷문이 열리며 투표함과 용지를 든 비서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미리 준비해놨다고 광고를 하는 꼴이었다. 긴급회의부터 표결까지, 적당히 노골적이어야지.
교직원들이 불편한 표정을 짓건 말건, 니콜라이는 원탁을 둘러보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표결에 반대하시는 분?”
반대표를 던지면 던졌지, 표결 자체를 막을만한 사람은 없다는 걸 알고 지껄이는 말.
“그럼 표결을 시작…”
니콜라이가 의기양양하게 선언하려는 그 순간. 교장이 손을 들었다.
“…총장님?”
“교장.”
“예, 교장님. 그, 어째서… 거수하신 건지요?”
“표결에 반대하는 사람 있냐며?”
교장은 뚱한 눈빛을 마주한 니콜라이의 표정이 굳었다.
“반대라니요. 제 설명을 전부 들으셨잖습니까. 이번 편입은 입학처장의 월권…”
“입학처장이 아니라, 내가 명령한 거야.”
“…예?”
니콜라이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교장은 원탁을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천여명. 그 용병의 편입은 내가 허가한 일이라고.”
“….”
탁, 탁, 탁. 교장의 손가락이 원탁을 두들기는 소리가 싸늘하게 회의장을 울렸다.
“그러니 이번 일에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있다면, 내가 지는 게 맞겠지. 안 그래? 니콜라이 이사.”
교장은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직위 해제라고 했지? 일개 학생이 친 사고의 뒷수습치고는 너무 무겁다고 생각하는데.”
“교… 교장님. 저는…”
“알아, 알아. 이번 일에 나름 공들였다는 거.”
“….”
“근데, 선은 지켜야지. 공항에 모여있던 학생들이 바보도 아니고, 뻔히 보이는 수작에 교직원들이 놀아나면 학생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돌아가는 분위기가 묘했다. 니콜라이 이사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횡설수설 대답했다.
“저는 이게 아카데미의 위상이 걸린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성녀님과 관련된 일은 가볍게 여기시면…”
“…성녀 때문이라.”
교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돌렸다.
한데, 그녀의 시선은 니콜라이 이사가 아닌, 원탁의 뒤편을 향하고 있었다.
“저 여자도 그렇게 생각할까?”
그제야, 교사들의 시선이 뒤편으로 향했다.
회의실 끝자락, 비서들과 서기관들이 나란히 앉아있는 자리.
그곳에는 푸른 코트를 입고, 밋밋한 푸른 가면을 쓴 여자가 다리를 꼬고 앉아 원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정체를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눈썰미가 좋은 몇몇이 그녀가 입은 코트가 푸른 쥐의 대표 복장이라는 걸 깨달았을 뿐.
그러나 니콜라이는 달랐다. 그는 푸른 가면을 보자마자 짧게 숨을 삼켰다.
모스크바 출생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그 모습.
“저… 저 여자가 대체 왜 아카데미에…”
니콜라이는 말까지 더듬으며 뒷걸음질 쳤다.
그녀의 정체를 짐작하지 못한 교직원들이 의아함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교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학부모가 딸 입학하는 거 보러오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
***
로드 하우 아카데미의 1학년 남자 기숙사는 혼란으로 가득했다.
언제는 안 그랬냐마는, 오늘은 특히 더했다.
소문의 편입생이 입소하는 날이 바로 오늘인 탓이었다.
기숙사 사감들이 시계를 보며 이를 갈건 말건, 학생들은 삼삼오오 창문에 모여 기숙사로 오는 길목을 살폈다.
오늘 입소하는 거 맞아?
아까 규율부에서 풀려났다는데?
어느 방으로 갈 거 같냐?
그렇게 기다리기를 한참, 전등이 밝히는 길목으로 걸어오는 두 사람이 보였다.
앞장서서 길 안내를 하는 건 모두에게 익숙한 기숙사 사감장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오는 건…
용병 출신이라더니, 교복 입으니 큰 차이 없는데?
편입생을 처음 보는 학생들은 실망을 숨기지 않았다. 깔끔한 교복 차림의 편입생에게선 딱히 특별함을 찾을 수 없었으니까.
그건 니가 저 사람 싸우는 걸 못 봐서 하는 소리고.
물론, 공항에서 그를 지켜봤던 학생들의 반응은 달랐다.
그들은 편입생이 선동꾼들의 팔다리를 잘라버린다고 협박하던 모습을, 검기를 쏘아내던 전투를 똑똑히 지켜봤다.
질투, 경탄, 순수한 흥미.
수많은 남학생들의 시선이 쏟아지는 사이, 편입생은 어느새 기숙사 바로 앞까지 도착했다.
어느 방에 배정될까? 남는 곳? 아니면 전통대로?
당연히 전통대로 해야지.
입학시험도 안 봤는데 어떻게 전통을 지키냐? 그냥 남는 곳 줄 듯.
기숙사의 전통.
그것은 입학 순위에 따라 좋은 방을 배정해주는 오래된 관습을 말했다.
기껏해야 햇볕이 잘 드는 방이니, 계단과 가까우니 하는 정도의 차이밖에 없었지만…
이 나이 또래의 소년들이란, 그런 사소한 차이에도 경쟁심을 불태우는 법 아닌가.
야 근데, 전통대로 한다고 치면, 전윤성이 방을 비워야 하는 건가?
중앙계단을 타고 우르르 내려가는 학생들 사이로, 누군가 질문을 던졌다.
단순한 질문이었으나, 소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기엔 충분한 질문이었다
누가 더 강할까? 1학년 최강이자, 미국의 자랑인 전윤성? 아니면 용을 쓰러트렸다는 편입생?
에이, 그래도 전윤성이 더 강하지 않겠냐? 3학년 선배들도 함부로 못 덤비잖아.
야! 편입생은 실전에서 용도 잡았다는데 윤성이가 어떻게 비비냐?
그거 성녀님 축복 덕분이라며. 맨몸으로 싸우면 또 모르지.
편입생이 1층 로비에 들어설 때쯤에는, 모두가 그 이야기만 하고 있을 정도였다.
저벅.
그러나 편입생이 기숙사에 들어선 순간.학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음….”
차갑게 가라앉은 금색의 눈동자가 로비와 중앙계단에 가득 모인 학생들을 훑었다.
잠시 학생들을 바라보던 편입생은, 고개를 돌려 사감장을 향해 물었다.
“…사감님. 환영식이라도 열리는 겁니까?”
“어… 그건…”
사감은 난감한 듯 말끝을 흐렸다.
그도 어째서 이렇게나 많은 학생들이 로비에 모여있는 건지 몰랐으니까.
다행히 그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짧은 정적을 참지 못한 누군가가 진실을 고백한 덕분이었다.
“환영식은 아니고, 전부 너 구경하겠다고 모인 거다.”
“…구경?”
학생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우락부락한 체구의 소년이었다. 그는 이제 막 변성기가 지난 듯한 걸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천여명, 요즘 한참 뉴스를 달구는 유명인이잖아. 연예인 보는 느낌으로 모인 거지.”
“….”
“그리고 또 어쩌면… 우리 기숙사 1등하고 붙을지도 모르니까.”
기숙사 1등하고… 뭐?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여명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아, 그런가. 아직 모르겠네. 1학년 남자 기숙사 전통.”
여명의 시원찮은 반응을 본 소년은 다급히 기숙사의 전통을 설명했다.
말재주가 좋지 않아 횡설수설했지만,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입학 순위대로 좋은 방을 주는 전통.
그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여명이 평했다.
“멍청한 전통이군.”
반응은 다양했다. 동의하듯 피식거리는 녀석,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리는 녀석 등…
학생들의 반응이 어떻건, 여명은 신경 쓰지 않고 사감에게 말했다.
“사감님. 제방은 어딥니까?”
“어… 314호. 내가 안내해 주마.”
혹시라도 방 쟁탈전이 벌어질까 걱정하던 사감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방을 안내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조금 전까지 전통을 설명하던 덩치가 위로 뛰어올랐다.
쿵!
로비의 정중앙, 사감과 여명 앞에 착지한 녀석은 이글거리는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천여명. 나는 입학 순위 4위, 웨슬리다. 이 기숙사에서 두 번째로 좋은 방을 쓰고 있지.”
그 뒤에 덧붙일 말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 방을 걸고 한판 붙자.
거부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싸우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눈에 띄는 게 싫었다면, 공항에서 그렇게 하지도 않았겠지.
‘…어째 용병 때보다 더 자주 싸우는 거 같은데.’
여명은 가방을 열어 검을 꺼내려다가, 그냥 가방을 땅에 내려놓고 주먹을 쥐었다.
‘애들 상대로 무슨 칼씩이나.’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웨슬리도 주먹을 들었다. 불쾌해하긴커녕, 웃음기가 가득한 표정이었다.
“…맨손으로 할 거냐?”
“맨손으로 하지. 룰은 있나?”
“한쪽이 항복할 때까지.”
지켜보던 사감들이 두 사람을 막으려 했으나, 사감장이 그들을 향해 손사래를 쳤다.
그냥 내버려 두라는 의미의 손짓.
여명과 웨슬리의 싸움이 정식 방 쟁탈전이 되는 순간이었다.
야! 위에 있는 놈들 전부 내려와! 웨슬리랑 편입생이랑 붙는다!
사감들이 한숨을 내쉬고, 남학생들이 환호하는 그때.
“간다.”
웨슬리가 땅을 박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