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43)
을 위한 세계는 없다-743화(743/817)
EP.743 비극의 죽음 (4)
***
쇠똥구리는 멍하니 반장님을 바라보았다.
땀에 흠뻑 젖은 반장님의 모습은 그가 추억하던 얼굴과 똑같았다.
“이놈아, 갑자기 눈물은 왜 흘려? 또 성장통이 온 게냐?”
“아뇨, 그게… 저는….”
쇠똥구리는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울컥, 눈물이 터진 까닭이었다.
그러자 주섬주섬 위생복을 벗던 작업반장님이 놀라 쇠똥구리에게 다가왔다.
“덕배, 그놈이 또 청소부를 때려치우라고 한 게야?”
“그게….”
“녀석 말에 괜히 마음 상하지 말거라.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 쇠똥구리야, 나도 마음 같아서는 네가 청소부 일을 배우기보단 학교에 갔으면 한다.”
어깨를 덮는 따스한 손길. 쇠똥구리는 당장이라도 양손을 펼쳐 작업반장님을 끌어안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움직일 수 있는 손은 하나뿐이었다.
조금 전에 붙잡은 시간 선을 놓으면, 또다시 도돌이표가 움직일 테니까.
그리고 그런 사정을 모르는 작업반장님께선, 조심스레 여명이 뻗은 손을 맞잡으셨다.
“손 떨림이… 이런, 정말로 아픈 거로구나.”
“….”
“병원이… 이 시간이면 일단 응급실로 가야겠구나. 자, 옷부터 갈아입자꾸나. 어이! 덕배! 제임스! 옷 갈아입은 녀석은 누구라도 좋으니 가서 차에 시동 걸어라!”
작업반장님이 소리치는 가운데, 여명은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반장님. 죄송해요.”
“어허… 이놈아, 아픈 건 죄가 아니야. 어린놈이 그런 걸로 미안해할 필요 없다.”
“그게 아니라… 제가… 그….”
떨리는 감정을 따라, 목이 멨다. 막힌 말문 사이로 흐느낌에 가까운 말들이 흘러나왔다.
“…지켜드리지 못해서… 그게… 죄송, 해요.”
“….”
“제가, 조금만… 더… 빨리… 힘을… 얻, 었으면… 모두… 지킬, 수… 있었을 텐데…”
머리로는 이런 말을 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는 걸, 그저 감정을 쏟아내는 것에 불과하다는 걸 이해했다. 하지만 어려진 몸뚱이 때문일까? 그는 넘쳐흐르는 감정을 막지 못했다.
그렇게 쇠똥구리가 왈칵, 울음을 쏟아내려는 순간.
작업반장님께서 허리를 굽혀 쇠똥구리와 눈을 마주했다.
“쇠똥구리야.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다.”
“….”
“이 세상 누구도, 모든 불행을 막을 수는 없어.”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그냥 불행을 견뎌야만 하나요?”
“아니, 힘껏 맞서 싸워야지. 불행이 남기고 간 상처를 치유하고, 그 상처조차 사랑하면서.”
예? 쇠똥구리가 이해하지 못한 듯 눈을 깜빡이자, 작업반장님이 그의 볼을 어루만졌다.
그는 자상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쇠똥구리야, 저번에 우리가 풀어줬던 갈매기. 기억나니?”
“…갈매기요?”
“그래, 쓰레기차 위에 떨어진 그 갈매기 말이다. 너나, 덕배나 그 갈매기에게 날지 않았으면 떨어질 일도 없었다고 말했느냐?”
“아뇨….”
“그러면 쓰레기통에 버렸느냐?”
여명은 옛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안 버렸어요… 잘… 치료해서, 다시 날려 보냈어요.”
“왜 그랬느냐?”
“그건… 갈매기가 다시, 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 우리의 삶도 그와 같단다. 힘껏 날고, 힘껏 먹이를 찾다가… 떨어질 때도 있지. 하지만 다시 날아오를 수도 있단다.”
쇠똥구리는 반론했다.
“다시는 날 수 없다면요? 영원히 날개를 접어야 한다면요?”
“그래, 언젠가 다시는 날 수 없게 되는 날이 오겠지. 그게 삶의 슬픈 점이란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단다. 녀석에겐 여태껏 날아다닌 삶의 기억이 남아 있잖니.”
아들에게 교훈을 알려주는 아버지의 목소리. 작업반장님은 여명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덧붙였다.
“같은 의미에서, 나도 괜찮단다. 이렇게 너와 함께한 시간이 이렇게 남아 있으니.”
“….”
“그러니 쇠똥구리야. 미안해하지 말거라. 네가 진정으로 날 위한다면… 여기서 멈추지 말고, 다시 날아가거라.”
그제야 여명은 옅은 이질감을 느꼈다. 작업반장님의 말은 어린 쇠똥구리를 향한 게 아니었다. 이건…
그때, 탁!
작업반장님이 갑자기 그의 등을 밀었다.
“자, 이제 가거라. 오래 있어 봐야 떠나는 발만 무거워진다.”
“예? 반장님, 그게 무슨?”
“방법까진 나도 알려 줄 수 없구나. 미안하다. 하지만… 모든 해답은 네 안에 있단다.”
시간의 선을 붙잡고 있던 손이 풀리고, 도돌이표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명은 놀란 얼굴로 반장님을 바라보았다.
“반장님, 잠깐! 저는-!”
완성되지 못한 말과 되감기는 시간 속에서, 작업 반장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그래, 나도 널 사랑한단다.
***
가속하는 도돌이표 속에서, 여명은 또 한 번 선으로 변한 시간을 마주했다.
작업반장님과 만난 덕분일까? 그의 마음은 어떤 때보다도 가벼웠다. 실패의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었다.
여명은 손아귀에 진의를 덧씌운 뒤, 시간의 선을 붙잡았다. 또다시 시간을 멈추기 위해서? 아니, 이번에는 그 이상이었다.
시간이 다시 멈추기 전에, 여명은 힘껏 선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끼기긱!
악보를 거꾸로 연주하는 곡처럼 기괴한 소리가 울리고, 도돌이표가 역류하기 시작했다.
그래, 여명은 되감긴 시간을, 도돌이표를 역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악보를 되짚어가는 음표처럼.
힘겹게 선을 당길 때마다,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른다. 어린 쇠똥구리가 소년이 되고, 비싼 장비를 두 개나 말아먹고,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당구를 배우는 시간을 되짚어가다가…
…이윽고, 플레이어와 마주했다. 그것도 녀석이 청소부들을 학살하려는 바로 그 순간에.
여명은 정지된 시간 속 플레이어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얼마 후 그에게 잘리고 태워질 머리.
만약 이 사건을 바꿀 수 있었다면… 하다못해 도돌이표가 이곳에서 멈췄다면. 여명은 모든 걸 포기하고 여기에 머물렀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도돌이표는 그런 자비로운 존재가 아니었고, 세상에는 바꿀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었다.
애써 눈물을 참은 여명은 고개를 돌려 한 명 한 명 청소부들을 바라보았다.
나의 형제, 나의 가족들.
‘절대로 잊지 않을게요.’
마지막으로 청소부들을 눈에 담은 그는 다시 도돌이표를 당기기 시작했다. 시간이 역류하고, 청소부들의 죽음 뒤로 여명의 복수극이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인천, 만주, 아카데미, 마경, 드레이테리얼, 제미니 시티, LA, 시카고….
모든 여행이 이어진 장소를 보던 여명은, 새삼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실감했다. 타고난 재능이나, 힘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의 행운은 사람이었다.
흔하디흔한 인신매매범들 대신 친절한 청소부들에게 거둬진 것도.
남들이 천하다 여겨지는 청소부 일을 하며 온갖 진상들을 만났지만, 그만큼 좋은 어른들과 만난 것도.
복수심에 불타는 길을 걸으면서도 좋은 연인을, 좋은 가족을, 그리고 좋은 스승을 만난 것도… 모든 게 행운이었다. 몇 번을 감사해도 모자랄 행운.
그래서 그는 계속 선을 당겼다. 과거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를 되찾기 위해 당겼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을 되짚어 올라갔을까?
온몸이 땀에 젖고, 그 땀보다 무거운 피곤이 몸을 뒤덮을 때가 돼서야, 여명은 각하를 쓰러트린 순간에 도달했다.
닉슨을 속이고, 도돌이표에 저항하면서까지 그가 돌아와야 했던 순간.
그런 순간에도 도돌이표는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계속 시간을 되돌아가기 위해 힘을 주고 있었다. 여명이 시간의 선을 놓는 순간, 도돌이표는 다시 한번 과거로 돌아가리라.
하지만 여명이라고 아무 대책도 없이 이곳까지 돌아온 건 아니었다. 그는 시간의 선을 붙잡은 채, 운명의 구슬에 대해 생각했다.
‘모든 해답은 네 안에 있단다.’
작업 반장님의 조언.
『운명이 깨어났다.』
『모든 운명의 주인들 또한 깨어났음이니.』
『그대는 마땅히 그들의 운명을 빼앗아라.』
만주에서 미그니움이 그에게 했던 말.
그리고 마지막으로-
[운명의 주인이라는 건, 이 조약돌과 같은 존재들이다.] [시간이라는 시냇물 바깥에서 온, 시냇물의 방향을 바꿔버릴 수 있는 자들.]마하간이 그에게 해주었던 설명까지.
그 모든 것이 여명의 머릿속에서 하나로 연결됐다.
이해와 깨달음, 그리고 상식을 벗어난 해답.
여명은 그 해답을 증명하기 위해, 시간의 선을 잡지 않은 손을 들어 푹! 자신의 배를 찔렀다.
조금 전 닉슨이 작가의 구슬을 찾기 위해 찔렀던 위치보다 조금 더 아래쪽.
그곳을 찌르고 있자니, 묵직한 뭔가가 여명의 손에 걸렸다. 실제로 존재하는 살이나 피는 아니었다. 이건 그보다 훨씬 형이상적인, 신성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여명은 망설임 없이 그것을 붙잡고 손을 뽑았다. 고통이나 상처 하나 없이 뽑힌 그에 손에 잡힌 건… 거대한 구슬이었다.
반투명한 황금빛 구슬.
‘이게… 내 운명의 구슬.’
구슬을 본 여명은 조금 놀랐다. 구슬의 크기가 예상보다 훨씬 큰 까닭이었다.
엄지 손톱보다 조금 큰 독자의 구슬과 확연히 비교되는, 주먹만 한 크기.
거기다 단순히 크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그의 구슬의 내부에는 다른 구슬들을 가득 품고 있었다.
이집트 그림이 새겨진 아름다운 청금색 구슬, 세 가지 색이 휘몰아치는 섬뜩한 구슬, 눈 그림이 그려진 다섯 색깔의 구슬 등… 여섯 개의 구슬이 꽉꽉 들어차 있는 모습이라니.
‘청금색 구슬은 세티의 구슬인 거 같고… 절반만 들어있는 건 작가의 구슬인가?’
여명은 쓰읍, 짧게 혀를 찼다. 다른 사람의 운명을 빼앗으라는 미그니움의 명을 착실히도 지켰다 싶었다.
누군지 몰라도 나중에 돌려줘야겠지.
여명은 다른 운명의 주인들에게 마음속으로 사과한 뒤, 운명의 구슬을 시간의 선이 있는 위치에 내려놨다.
시간을 시냇물로, 그리고 운명의 주인을 조약돌로 비교한 마하간의 말을 떠올리고 한 행동.
운명의 구슬은 지이잉-!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시간의 선 위에 올라섰다.
구슬을 확인한 여명이 조심스럽게 선을 놓은 직후, 자유를 되찾은 도돌이표가 움직이며 다시 시간이 되돌아가… 지 못했다.
그 대신- 끼기긱! 도돌이표가 비명을 내질렀다.
설마 조약돌이 아니라 주먹만 한 돌덩이라서 저런 소리가 나는 건가? 실없는 생각을 떠올린 여명은 조심스레 툭. 시간의 선을 건드려봤다.
마하간의 말마따나, 돌에 막힌 물길처럼 시간 선이 출렁거렸지만, 그뿐이었다. 도돌이표는 움직이지 않았다.
‘운명의 구슬은 도돌이표를 막을 수 있다….’
마하간, 설마 도돌이표에 휩쓸릴 걸 예상하고 있었던 겁니까? 여명은 복잡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도돌이표를 멈췄으니, 이제 도돌이표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됐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어떻게 나가지?’
멈춘 시간은 다시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나를 끌어 올려 무술을 펼치거나, 무기를 휘둘러봤지만, 반응이 돌아오긴커녕 괜히 힘만 빠졌다.
여기까지 와서 나가는 법을 모르다니. 여명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물론,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그가 아니었다. 작업반장님께서 모든 해답이 그의 안에 있다고 하시지 않았나. 분명 뭔가 방법이….
그때, 문뜩 여명의 머리로 불사의 왕이 한 말을 떠올렸다.
‘각하는, 좋은 도구다.’
좋은 도구… 그는 망설임 없이 독자의 구슬을 꺼냈다. 운명의 구슬은 아니었지만, 운명의 구슬과 닮은 그것은 마치 자신의 미래를 예감한 것처럼 부르르 몸을 떨었다.
‘각하는, 좋은 도구다.’
한 번 더 불사의 왕의 말을 떠 올린 여명은 구슬을 만지작거리다가, 권능을 일으켰다.
닉슨이 먹물의 권능이라 불렀던, 작가의 검은 연기.
치이익! 조잡하게나마 구현된 독자의 검은 연기가 여명의 손가락을 분해했다.
제대로 쓰려면 훈련이 필요하겠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했다. 그렇게 여명이 권능을 움직여 구슬을 뒤덮은 순간.
구슬에서 각하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참 듣기 좋은 비명이었지만, 여명의 행동은 이미 죽은 독자를 괴롭히기 위한 게 아니었다.
물론, 그것을 모르는 독자는 비참하게 소리쳤다.
[아, 안 돼! 내 권능을 어떻게!]‘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워.’
여명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대답한 뒤, 구슬을 스윽- 허공에 그었다. 뭔가 대단한 무술이나, 이치가 담긴 행동은 아니었다.
그저 팔을 휘두르는 심플한 행동이었으나…
…구슬에 닿은 허공이 촤악! 종이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도돌이표가 그려진 음표가 찢어지는 소리였다.
‘도구라는 게 이런 뜻이었나?’
여명이 한 번 더 구슬을 휘둘러 도돌이표를 가르자, 각하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이어졌다.
[아아악! 그만! 그만!!]도돌이표를 찢어발기고, 심지어 복수의 기쁨까지 채워주다니! 정말로 각하는 참 좋은 도구였다.
***
하늘이 붉게 물드는 새벽, 함경남도의 해안가.
최신예 정찰 헬기 한 대가 두두두두-! 소리를 내며 만탑산이라 불리는 산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날아다니는 산과 헬기의 조합이 참 기묘했으나, 헬기에 탄 인물들의 조합보다 기묘하진 않았다.
신의 성물을 지닌 기자와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진압한 대통령, 그리고 용사 파티.
만에 하나 헬기가 추락하면 참사도 이런 참사가 없는 인물들이었다. 덕분에 헬기 조종사는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 긴장하며 헬기를 몰았다.
아무튼, 얼마나 더 날아갔을까? 만탑산 곳곳 널린 잿가루와 시체들이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쯤.
헬기 좌석에 앉아있던 성녀가 갑자기 소리쳤다.
“찾았다! 여기서 북동쪽으로 1.9km 방향!”
그녀는 흥분한 푸들만큼이나 안절부절못하며 말을 이었다.
“조종사님! 빨리! 빨리 머리 돌려요!”
안전벨트가 없었다면,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조종수를 밀어냈을 정도로 격렬한 목소리. 잔뜩 긴장한 조종수는 기겁하며 조종간을 돌렸다.
헬기에게 1.9km는 멀지 않은 거리였고, 일행은 순식간에 성녀가 가리킨 위치에 도착했다. 착지할 공간이 없는 탓에 사다리를 내리려는데-
달깍! 여태껏 얌전히 있던 용사파티 전원이 안전벨트를 풀어버리는 게 아닌가.
“…초인들이란.”
그녀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지 깨달은 대통령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가운데, 네 명의 소녀들은 거의 동시에 헬기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냥 맨몸으로 뛰어내리는 홍세티와 그녀의 등에 업힌 성녀, 가볍게 허공의 바람을 밟으며 떨어지는 쇠미리, 그리고 상식적으로(?) 감속 마법을 쓰고 뛰어내린 살로메까지.
순식간에 만탑산 위에 착지한 네 소녀는, 산 중턱에 주저앉아 있는 남자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여명!”
“이길 줄 알았어!”
“야!! 끝났으면 연락부터 해야지!”
미식축구 선수 뺨칠 정도로 빠르게 달려든 성녀가 천여명에게 진짜 몸통 박치기를 하는 가운데, 헬기에 앉아 있던 박철 기자가 혀를 찼다.
“대외적인 애인에, 성녀에, 엘프에, 그릇까지… 씁, 이건 찍어 올리면 그대로 스캔들이겠구먼.”
저런 사진은 파파라치나 찍는 거지. 박철이 그렇게 카메라를 내리려는 순간, 경호원을 따라 안전벨트를 풀던 대통령이 말했다.
“뭐 하고 있나? 안 찍고.”
“예? 하지만 대통령 각하, 저건….”
“자네는 모든 사진을 신문에 올리려고 찍나? 기념 사진을 찍으란 말일세.”
“…아.”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박철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걸 본 대통령은 저러니까 꽃뱀한테 물렸지- 같은 말을 중얼거린 뒤 헬기에서 내렸다.
일반인, 그것도 다친 일반인인 그가 만탑산에 착지하기까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용사 파티… 특히 성녀의 애정 공세를 막아내고 있던 여명이 이렇게 말할 정도로.
“늦으시는군요. 기다리다 기절할 뻔했습니다.”
“그런 거 치곤 멀쩡해 보이네만?”
“겉모습만 그런 겁니다.”
여명은 목덜미에 파고드는 성녀의 이마에 꽁! 꿀밤을 먹인 뒤 나직하게 말했다.
“대통령님.”
“듣고 있네.”
“각하는 죽었고, 종말 교단은 끝났습니다. 만탑산 지하에 있는 핵무기는… 제가 처리했고요.”
“….”
처리? 대통령은 어떤 방식으로 처리했느냐고 묻지 않았다. 여명은 그의 배려에 감사해 하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며칠간 정치적으로 힘드실 겁니다. 되도록 변명으로 시간을 끄시고, 한국이 스스로 종말 교단을 처리했다는 사실만 발표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꼭 나만 일하라는 말로 들리는구먼. 해외 정부와 언론들은 내가 아니라 자네를 더 괴롭힐 텐데.”
여명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전 이틀 정도 기절해 있겠습니다.”
“…뭐?”
“기자회견은… 병원에서 하는 게 좋겠군요. 그러면 이틀 뒤에 뵙겠습니다.”
털썩. 여명은 자신의 말을 증명하려는 듯 뒤로 넘어갔다. 대통령은 어이가 없는 얼굴로 여명을 확인했지만, 그는 정말로 기절해 있었다.
이 자식이?
대통령은 한마디 쏘아주려다가, 너덜너덜한 여명의 옷을 보고 말을 삼켰다. 초인이 아닌 그라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최선을 다했다. 이대로 한국과 인연을 끊는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못난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이 고생하는구나….'”
어딘가 마음이 무거워진 대통령이 기절한 여명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순간.
기절했던 여명이 갑자기 상체를 벌떡 일으키더니, 못 다한 말을 추가했다.
“혹시라도, 파순이 병문안 오면 쏴버리십쇼.”
그리고, 털썩! 여명은 다시 기절했다.
그걸 본 대통령은 헛웃음을 흘렸다.
“끝까지 유머를 잃지 않는 젊은이로군.”
불과 1분 뒤에 파순이 온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