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47)
을 위한 세계는 없다-747화(747/817)
EP.747 복수 너머에서 (4)
***
‘천여명은 미친놈이다.’
보고서를 받은 김규원 대통령은 문뜩, 홍가놈의 말을 떠올렸다.
‘천여명은 미친놈입니다.’
홍용완 그놈이 사람 보는 눈이 없다지만, 미친놈이라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위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거기다 그가 직접 만나본 천여명은 조심스러우면서도 어딘가 날카로운 청년이었을 뿐, 미친놈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지금, 만탑산이 사라졌다는 보고서를 든 대통령은 홍가놈이 옳았던 게 아닐까 고민했다.
아니, 진짜 미친 새끼라니까요?
좀 닥쳐. 대통령은 머릿속 속 홍가놈에게 그렇게 쏘아준 뒤, 보고서를 가져온 장관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만탑산이 사라졌다? 그 안에 있던 자원이랑 무기까지 싹 다?”
“예.”
장관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고, 대통령은 고민에 빠졌다.
군부를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장관의 면상에 주먹을 날려도 괜찮을까? 회복된 후에는 다시는 못 때릴 것 같… 아니, 이게 아니지.
탁! 소리 나게 보고서를 내려놓은 대통령은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김강혁 장관. 지금 외교부의 상태가 심히 안 좋은 건 자네도 잘 알 걸세.”
“예,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아는 사람이 이딴 보고서를 써와!?”
버럭 소리 지른 대통령은 외교부 직원들을 떠올렸다. 장관과 차관을 비롯한 수뇌부 모두가 종말 교단의 끄나풀이었던 외교부는 현재 빈말로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갑자기 머리가 사라진 상태에서 이 난리 통을 정리하라니… 진실을 밝히라는 UN의 압박은 고사하고 땍땍거리는 프랑스 외교관들도 감당 못하는 상태였다.
그런데, 뭐? 만탑산이 사라졌다고?
고생하는 외교관들에게 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 군부대가 둘러싼 거대한 산이 통째로 사라졌으니, 외국에 솔직하게 말하라고?
현대 외교란 신뢰가 아닌 의심 위에 지어진 정글이다.
이놈이 저놈을 의심하고, 저놈이 이놈 의심하는 게 당연한 세계.
만탑산이 갑자기 사라진 게 사실이라 해도, 먹이가 사라진 각국 정부와 외교관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저 새끼들이 교단의 유산을 혼자 다 처먹으려 한다!’ 고 생각하리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그렇게 생각하는 척 할 테고.
특히 프랑스 놈들. 한국인이 주와이외즈를 계승한 탓에 뿔이 단단히 난 녀석들이 이번 일을 조용히 넘어갈 리 없었…
거기까지 생각하던 대통령은 불현듯, 주와이외즈와 만탑산 모두 한 사람에게서 비롯되었단 사실을 상기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은 지금 장관 뒤에서 대통령의 사탕 통을 열고 있었다.
“…천여명. 자네는 뭐, 따로 할 말 없나?”
대통령이 대뜸 그를 부르자, 여명은 통에서 왕사탕 하나를 꺼내며 대답했다.
“UN에서 합동 조사단을 보낸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정치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냥 조사관들에게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요?”
“보여주라고?”
“수많은 군인 앞에서 산이 통째로 뿅, 사라진 거요. 한국이 직접 한 일도 아닌데, 꿀릴 거 없잖습니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여명은 어깨를 으쓱인 뒤, 사탕을 입에 넣었다. 대통령은 뒷골을 주무르며 말했다.
“옛말에, 혼자 다 먹으면 탈 난다는 말이 있네. 알고 있나?”
“아직 탈은 안 났습니다. 꺼낼 때 마나가 뭉텅뭉텅 줄어들긴 하지만. 아, 혹시 이 사탕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나눠드릴까요?”
“….”
이 자식이? 대통령이 정색하는 가운데, 여명은 느긋하게 덧붙였다.
“종말 교단의 본진이 사라진 것과 핵 확산 금지 조약에 어긋나는 핵 개발. 둘 중 어느 게 더 나쁘다고 생각하십니까?”
“…뭐??”
“모르고 계셨겠지만, 각하와 교단은 몰래 핵을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꽤 여러 발을. 제가 핵 전문가는 아니지만… 아마 원전에서 재료도 빼먹고 이것저것 증거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을까요?”
“….”
“그런데 짜잔, 교단 본진에서 핵이 나왔다? UN 합동 조사단 대신 빅 쓰리가 올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핵 개발하겠다고 나서다가 CIA에 박살 난 뭄바이 정부나, 주가시빌리에게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파키스탄을 떠올릴 필요도 없었다.
냉전의 두 괴물들은 UN 상임이사국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핵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기조는 미국이 홀로 우뚝 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만탑산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우리 정부도 모른다고 UN에 말해두겠네. 정국이 안정되는 대로, 합동조사단도 받아들여야겠지.”
여명은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애초에 정치인도 아닌 여명이 진짜 정답을 어찌 알겠는가? 그냥 최악을 피하고, 잘나신 분들이 알아서 하라고 판이나 까는 거지.
아무튼, 만탑산 사건이 일단락되자마자 장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천여명이 받을 보상에 대해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보상… 그렇지. 보상 문제가 있었군.”
다행히 대통령은 ‘만탑산 처먹었으면 다른 건 바라지 마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어디 말해보라는 듯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러면 훈장에 대해….”
직후, 대통령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훈장? 그딴 걸 어디다 써먹으라고?”
“…예?”
“연금도 안 나오고, 명예도 별로 없고… 당장 무궁화 대훈장부터가 대통령과 고위 공무원들이 은퇴하기 전에 받아 챙기는 귀금속 취급 아닌가?”
당선되자마자 셀프 수훈하신 분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지만… 여명이 사탕으로 입을 봉인한 사이, 대통령이 덧붙였다.
“건국 훈장은 애초에 줄 수가 없고. 그렇다고 국민 훈장은… 주고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겠군.”
“….”
“훈장 말고, 그냥 돈으로 주겠네. 마침 쿠데타로 무너진 건물과 도로도 복구해야 하니… 적당한 건설 회사 이사로 들어가게. 나랏돈으로 통장을 가득 채워주지.”
당당하게 복구비를 빼 먹겠다는 말. 여명은 황당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거, 나랏돈이 아니라 검은돈 아닙니까?”
“내가 정치인으로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둘은 그리 다르지 않네. 재벌들이 너도 나도 건설 회사 세우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다 뒷돈 챙기려….”
여명과 장관이 동시에 정색하자, 대통령이 크흠, 헛기침했다.
“물론, 앞으로는 줄여나갈 걸세.”
“….”
“거, 표정 좀 피게.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방식이 아니고선 자네에게 합당한 보상을 줄 방법이 없어. 이 나라는… 나라를 위해 죽은 군인에게도 줄 보상조차 아끼는 나라일세.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는 훈장과 몇 푼의 보상금이 한계지.”
정치인의 말은 원래 가식으로 가득한 법이었지만, 대통령의 목소리에는 그보다 깊은 진심이 담겨 있었다.
“자네 같은 초인을 붙잡아 두기 위해 특혜를 주겠다면 국회나 국민들도 동의하겠지만… 그래봤자 푼돈이지.”
대통령은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천여명 정도의 초인을 돈으로 잡아둘 수 없다. 설사 잡아둘 수 있다고 해도, 한국이 가진 돈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애국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정에 호소할 수도 있었지만, 그래선 안 됐다.
적어도 새로 태어날 한국은 강력한 개인에 의한 나라가 아니라, 온 국민이 진정으로 주인이 되는 나라여야 했으니까.
크흠.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대통령이 다른 방안을 떠올리려는 순간.
여명이 말했다.
“역시, 훈장이 좋겠습니다.”
“…정말?”
“예, 대신 기존의 훈장 대신, 새로운 훈장을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자네 이름을 딴 여명 영웅 훈장을 만들자는 사람이 있긴 했는데… 너무 노골적이라 반대했었지. 내가 실수했군.”
“….”
어떤 미친놈이 그런 제안을? 여명은 곧바로 정색하며 대답했다.
“아뇨, 제 이름 말고, 애국단의 이름을 붙인 훈장이면 좋겠습니다.”
“…애국단?”
대통령 시선이 장관에게 꽂혔다. 김강혁 장관은 미처 듣지 못한 듯, 붕대로 칭칭 감은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천여명, 자네 지금 그게 무슨….”
“문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
“대통령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훈장 이름 앞에 도산, 마미, 매헌을 붙여서 도산 애국 훈장, 마미 애국 훈장, 매헌 애국 훈장… 이름부터 괜찮지 않습니까? 각하와 교단이 묻어버린 우리 역사를 되살리고… 또….”
말끝을 흐린 여명은 장관을 보며 말했다.
“…국민들이 모르는 곳에서, 국민들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추모하기에, 이만한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애국단에 대해 전부 아는 건 아니었지만,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김규원 대통령은 픽 웃었다.
“자네가 원하는 게 그거라면, 내 어찌 거부할 수 있… 잠깐, 김강혁이, 자네 지금 우나?”
“…아뇨, 이건 땀입니다.”
그렇게 대답한 장관은 얼굴을 숨기려는 듯 고개를 위로 들었다.
그의 눈가 주변에 감긴 붕대가 축축하게 젖어있었지만… 여명과 대통령 모두 그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
개성, 중앙 병원에서 멀지 않은 다섯 신 교단의 교회.
병원이 감당하지 못한 환자가 몰려들어 이미 반쯤 야전 병원이나 다름없는 교회 내부 깊숙한 곳에서, 은밀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성녀, 엘프, 살로메, 세티를 제외한 희생양 자매 셋, 코르부스, 딜라, 그리고 라날까지.
여명과 관련된 여성들만이 모인 회의.
“제1회! 용사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회의의 주체는 누가 뭐라 해도 성녀였다. 안대를 쓴 그녀는 방에 모인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높이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첫 번째 안건은 앞으로 용사가 어떻게 할-”
안타깝게도, 그녀의 첫 발언은 시작부터 방해 받았다.
[이게 왜 용사 회의야? 첩실 회의 아냐?]성녀는 획! 고개를 돌려 방구석에 드러누운 시조새, 정확히는 시조새로 변신한 용을 노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록색 깃털과 비늘로 덮인 새는 벅벅, 꼬리로 엉덩이를 긁으며 말했다.
[뭐, 하렘 회의라고 해줘?]성녀는 리볼버를 놓고 왔단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그녀가 허리춤에 마총이 남아있다는 걸 상기한 순간, 적절하게 엘프가 시조새의 입을 틀어막았다.
“라날. 계속 나쁜 말 쓰면, 오빠 따라 아샤로 보내버릴 거예요.”
[…용사 회의 만세!]콜라도, DVD도 없는 아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라날은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용용이가 짝짝짝- 손뼉을 치는 가운데, 성녀가 크흠, 헛기침하며 시선을 모았다.
“아무튼, 복수를 끝낸 여명이 앞으로 어떻게 할 지, 모두 의견을 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