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5)
을 위한 세계는 없다-75화(75/817)
〈 75화 〉 전학생을 위한 우연 (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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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대중의 오해와 달리, 초인의 무술은 단순히 육체를 강화하는 기술이 아니다.
초인적인 힘과 속도는 그저 겉으로 드러난 결과일 뿐.
무술의 진정한 근본은, 마나를 다루기 위한 사상과 철학이다.
초인들이 흔히 진의라 불리는 그것.
책 속의 격언 한 줄, 단 한 명의 가슴속에 묻힌 깨달음, 혹은 누군가의 간절한 꿈…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무술이다. 그렇기에 무술은 정신수양을 위한 가르침이고, 육체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한 수련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무술의 목적 자체가 더 강한 힘과 더 빠른 속도를 추구하는 경우.
냉전 시기에 만들어진 군사용 초인 무술들은 대부분이 그러한 경향을 보였다.
현대에 이르러 그런 무술들은 자연스레 도태되었지만, 그것들 중 일부는 여전히 계승되고 있었다.
그리고 웨슬리가 익힌 무술은 바로 그런 무술이었다.
정식 명칭은 군사기밀이기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언론에서는 ‘에어 도미넌스’라 부르는 초고속의 무술.
웨슬리의 입에서 ‘간다’ 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몸이 여명의 코앞에 도달했다.
화악!
그의 주먹이 호쾌한 곡선을 그리고, 바람이 먼저 여명의 뺨에 닿았다.
여명은 그 주먹을 막거나 피하지 않았다. 그는 역으로 오른 주먹을 뻗었다.
뻔히 보이는 크로스 카운터. 웨슬리는 휘두르던 주먹을 회수하며 팔꿈치로 여명의 주먹과 부딪쳤다.
주먹을 튕겨내고, 추가타를 먹여주마.
콰직!
하지만 웨슬리의 생각과 달리, 주먹과 부딪힌 팔꿈치에선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났다.
끔찍한 통증이 웨슬리의 팔을 타고 올라왔지만, 그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무릎을 들어 하체를 노린다. 막힌다.
왼 주먹, 막힌다. 파고들며 어깨치기, 흘려낸다. 고개를 들어 박치기, 피한다.
순식간에 이어지는 공방 속에서, 웨슬리의 공격은 번번이 실패했다.
이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웨슬리가 이를 악물고 다시 공격을 이어나가려는 순간.
터엉!
여명의 발이 기습적으로 그의 복부를 후려쳤다. 웨슬리는 그대로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위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우지끈 소리와 함께 바닥재가 부서졌다.
그 광경을 본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학생들은 감탄을 내뱉었고, 사감들은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그런 감상들과 별개로, 웨슬리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썅… 봐준 거냐?”
퉤 피가 섞인 침을 뱉는 웨슬리를 보며, 여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 정도면 끝날 줄 알았지. 생각보다 튼튼한데.”
“하!”
웨슬리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충격이 가시지 않은 다리가 후들거리고,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음에도 그의 눈에는 투지가 가득했다.
“주먹이 아니라 발이 주력인 거 같은데. 봐주지 말고 써.”
“…음.”
그러면 죽을 텐데. 여명은 애써 말을 삼켰다.
도발로 들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정말로 죽이면 어쩌나 걱정이 더 컸다.
생각보다 힘 조절이 쉽지 않았다. 하긴, 그가 언제 힘 조절을 해봤겠나.
네크로맨서부터 용과 파순까지. 그간 여명이 상대한 적들은 힘 조절은커녕,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지 않으면 목숨이 오락가락할 정도로…
“싸움 중에 딴 생각이냐!?”
입을 다문 여명을 본 웨슬리가 버럭 소리 지르며 다시 달려들었다.
벼락처럼 빠르지만, 단순하기 짝이 없는 직선 공격. 순수한 힘을 추구하는 무술이 여명의 급소를 노리고 쏟아졌다.
목을 노리는 주먹을 시작으로, 이번에도 일방적인 공방이 오고 갔다. 연타와 강타, 반격과 흘리기.
하지만 공방은 오래가지 않았다.
누가 봐도 뚜렷하게 웨슬리의 마나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여명이 기습적으로 웨슬리의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컥!”
갑작스레 모가지를 붙잡힌 그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힘 조절이 힘들다면, 늘 하던 대로 기절이나 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잡은 목.
“커흐, 이… 이거, 놔…!”
여명의 노림수를 간파한 웨슬리가 발작적으로 주먹을 휘둘렀지만, 손아귀는 더욱더 그의 목을 조였다.
웨슬리의 손발에서 힘이 빠지고, 사감들이 싸움을 멈추려고 다가오는 그 순간.
누군가의 발이, 중앙계단 난간 위에서 내리꽂혔다.
쿵!
목을 붙잡은 여명의 팔을 정확히 노리고 떨어진 공격.
여명이 반사적으로 웨슬리를 집어 던져서 망정이지, 그대로 맞았으면 팔이 부러질만한 위력이었다.
그 위력을 증명하듯, 로비의 바닥재에 쩌억 갈라지며 먼지를 토해냈다.
여명은 먼지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기습 공격이 당황스러워서? 아니, 아니다. 조금 전 그를 노린 것이 무슨 기술인지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진각.
세티의 말을 떠올리자면, 비각술의 오의라고 할만한 기술.
잠시 후 로비의 먼지가 걷히며 익숙한 미남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윤성?”
한국에서 가장 혐오 받는 외국인임과 동시에, 가장 잘생긴 한국혈통으로 꼽히는 바로 그 녀석.
여명과는 얼굴도 마주한 적 없는 사이건만, 녀석은 험악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비각술! 너 설마, 한국에서 보낸…”
전윤성이 무어라 말하려는 찰나, 그새 정신을 차린 웨슬리가 녀석을 향해 소리쳤다.
“야, 전윤성! 왜 끼어드는 거냐!”
“아니, 그, 나는 널 구하려고…”
“구해? 왜? 방 쟁탈전에서 살인이라도 날 것 같아서?”
웨슬리의 말을 시작으로, 다른 학생들의 시선이 동시에 전윤성을 향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를 향하는 시선에 호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단순히 쟁탈전에 끼어들어서 저러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설마 왕따라도 당하는 건가?’
눈치가 좋지 않은 여명이 보기에도 학생들이 전윤성을 보는 눈빛은 이상했다. 마치 공공의 적을 보는 것 같은 눈빛 아닌가.
그리고 그렇게 느끼는 건 여명뿐만이 아닌 듯, 전윤성은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 내가 오해했어.”
“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정말 미안해. 쟁탈전을 망칠 생각은 아니었어.”
웨슬리에게 고개를 숙이는 전윤성, 차가운 학생들의 눈빛과 당황하는 사감들.
그 꼴을 잠시 지켜보던 여명은 옷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전윤성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장난은 이 정도면 충분했으니까.
“사감장님, 이런 경우에 방 쟁탈전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보통은, 무승부지.”
“그렇습니까? 그러면… 원래 배정된 방으로 가야겠군요. 314호였던가요?”
그 대화를 듣던 웨슬리가 깜짝 놀라 끼어들었다.
“무승부라니, 아직 안 끝났습니다!”
“…그건 네 생각이고.”
“아니! 난 아직 싸울 수…”
여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그시 웨슬리를 바라봤다. 웨슬리는 입술을 씰룩이다가, 휙 고개를 돌리고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진짜 애새끼네.’
감정에 솔직한 것도 정도가 있지. 외관만 보면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날 거 같은 놈이 저러고 있는 걸 보니, 정말로 학교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 등교하는 학교의 첫날이 이런 식이라니.
여명은 한숨을 참으며 짐을 챙겼다. 그리고 아직도 주먹을 부들거리고 있는 웨슬리에게 말했다.
“…쟁탈전이건 대련이건, 원한다면 얼마든 또 해주마.”
“…뭐? 또 한 판 하자고?”
“그래, 내일…… 은 일이 있어서 안 될 거 같고. 이번 주 내로 다시 한 판 하자.”
그럼 다음에는 제발 대련장에서 싸워다오. 사감장이 작게 덧붙이는 사이, 웨슬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웃음을 터트렸다.
“하, 실력에서도 지고, 인성에서도 졌네.”
“….”
“용병 출신이라더니, 생각보다 제대로 된 놈이었잖아?”
성큼성큼 다가와 손을 내미는 웨슬리를 보며, 여명은 필사적으로 일그러지는 얼굴 근육을 붙잡았다.
‘…성녀랑 비슷한 과인가?’
설마 이런 녀석들이 아카데미에 흔한 건 아니겠지. 여명은 불길한 예감을 애써 밀어내고, 웨슬리의 손을 붙잡았다.
두 사람의 악수를 바라보는 반응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학생들은 대부분 즐거운 볼거리를 본 것에 만족한듯했고, 사감들은 무너진 로비 바닥을 보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해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는 학생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좋은 게 좋은 거란 느낌으로 해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편입 첫날의 해프닝이 끝나고, 여명이 사감의 안내를 따라 걸음을 옮기는 사이.
그는 로비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윤성과 짧게 눈을 마주쳤다.
부러움과 아쉬움, 그리고 진한 경계심.
감정을 읽힌 전윤성이 뒤늦게 눈을 돌렸으나, 여명은 그의 눈빛을 기억하기로 했다.
복수에 녀석을 이용하자는 세티의 말을 떠올리면서.
***
작가는 숨을 죽이고 방문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전윤성이 어쩌고, 편입생과 웨슬리가 붙느니 어쩌고 하는 소리가 이어지다가, 갑작스레 침묵이 찾아왔다.
웨슬리와 편입생이 싸우기라도 하는 걸까? 그는 침묵 속에서 아까 전 공항에서 본 광경을 떠올렸다.
홍세티, 그 미친년과 싸우는 편입생의 모습.
옆에서 함께 구경하던 전윤성과 쇠미리는 감탄을 내뱉었지만… 그는 달랐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 무서웠다.
살기가 튀고, 마나가 터져 나오는 싸움을 직접 본 게 처음이라서?
물론 그런 점도 있었지만, 그를 두렵게 하는 건 편입생의 실력 그 자체였다.
검에 마나를 두르는 것도 모자라, 검기를 쏘아대다니.
‘검기를 쏜다는 건 적어도 적기경에 도달했다는 소리인데… 시발. 1장 시작부터 장난질이냐’
아직 초인의 경계선에 서 있는 그와 비교하자면 하늘과 땅 차이.
편입생이 정말로 현실에서 온 존재라면… 무슨 짓을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였다.
작가는 무릎 사이에 고개를 처박고 몸을 떨었다.
‘녀석에게 정체를 들키면 어쩌지?’
동맹이나 협력을 요청해야 하나? 그만이 알고 있는 기연을 미끼로 부하로 삼아달라고 한다던가…
‘시발 너라면 그러겠냐?’
역지사지였다. 당장 자신부터 이 세계는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현실에서 온 다른 사람?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멱을 따버렸으리라.
역시, 이대로 아카데미에 남느니 탈출해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
똑똑
그가 대책을 고민하는 사이, 누군가 방문을 두들겼다.작가는 화들짝 놀라 문을 바라봤다.
“누, 누구야?”
사감장이다. 들어가도 되겠니?
이 시간에 사감장이 왜? 작가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대답했다.
“아, 예, 사감장님. 괜찮습니다. 들어오세요.”
그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방문이 열렸다.
다음 순간, 작가는 비명을 참기 위해 입을 꾹 다물었다.
문을 연 사감장 뒤로, 바로 그 편입생… 천여명이 따라 들어오고 있는 것 아닌가.
설마, 아니, 아니겠지.
“천여명 군. 여기가 앞으로 네가 지낼 방이란다. 기숙사 규칙은 저기 책상 위에 있고, 이불과 베개는…”
그 설마가 맞았다. 작가는 베개 아래 숨겨둔 암살용 단검과 독침을 떠올렸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1학년 애송이들이라면 모를까, 저 정도 초인에게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는 수는 단 하나…
‘정체를 숨기자,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는 침을 삼키고, 억지로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작가가 필사적으로 떨리는 입꼬리를 억누르길 한참, 이런저런 설명을 끝낸 사감이 방 바깥으로 나갔다.
단둘이 방에 남게 되자, 작가는 떨리는 다리를 숨기기 위해 이불로 하체를 가렸다.
그러건 말건, 무덤덤하게 방을 훑는 금빛 눈동자.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녀석은 슬쩍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젠장.’
작가는 심호흡한 뒤, 가방을 내려놓는 여명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안녕? 우리 통성명부터 할까?”
“천여명.”
“…나, 나는 바오닉 레, 레락이라고 해. 바… 반갑다.”
시발, 혀가 안 움직여. 작가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는 찰나, 여명이 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레락? 설마 레락 가문 출신이냐?”
“어… 응. 우리 가문 알아?”
당연히 알겠지. 레락 가문은 웬만한 차원문 너머의 왕족보다도 유명한 가문이니까.
물론, 좋은 쪽으로 유명한 건 아니었지만.
“잘 알지. 다큐멘터리에서 몇 번 봤거든.”
“다, 다큐멘터리…?”
“차원문 너머의 가문 시리즈. 너희 가문이 두 번째로 나온 가문인데… 뭐, 모를 수도 있지.”
여명은 그렇게 대답하며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흠칫.
가방 사이로 비쭉 튀어나온 칼자루를 본 바오닉이 몸을 떨었으나, 여명이 칼 대신 다른 물건을 꺼냈다.
휴대용 빗자루와 쓰레받기. 바오닉이 예상조차 못 한 물건이었다.
“….”
그가 잠시 말을 잃은 사이, 여명이 물었다.
“방이 좀 더러워서. 청소 좀 해도 될까?”
작가는 천여명이란 녀석이 생각보다 친절하단 사실에 한번.
그리고 상상 이상으로 청소를 잘한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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