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52)
을 위한 세계는 없다-752화(752/817)
EP.752 황금, 꿀, 달러, 그리고 샷건.
타고난 피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전대 황제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한 질병으로 사망한 직후, 뱌체슬라프 몰로토프가.]***
천여명의 기자회견이 열리기로 예정된 국회 소통관.
아슬아슬하게 쿠데타의 피해를 면한 이곳은 현재 천여명의 인기를 증명하듯, 기자들과 각계각층의 인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카메라 삼각대를 세울 곳은 고사하고 사람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지경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아무튼,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시계를 확인하며 천여명에 대한 이야기를 지껄이고 있었다.
-기자회견까지 할 일이 뭐가 있어? 그냥 아카데미로 돌아가면 되지 않나?
-예끼, 이 사람아. 그만한 실력이 있는데, 자네 같으면 아카데미로 돌아가겠나?
천여명의 미래에 대해 떠드는 사람들.
-당연히 한국에 남겠지? 천여명은 애국자잖아.
-남아야지. 한국이 해준 게 얼만데.
-그 뭣이냐, 빨간 용 잡아다가 뼈랑 비늘 국방부에 기부해주면 안 되나?
뻔뻔하기 그지없는 자칭 애국자들.
-저기, 프랑스 대사 표정 좀 봐라. 저러다가 천여명 칼로 찌르는 거 아냐?
-모스크바에서도 사람이 왔다는데….
-또 미국이 데려가겠지.
국제 정세에 관심을 둔 사람들.
-혹시, 깜짝 결혼 발표하는 거 아닐까?
-결혼은 무슨, 당연히 정치 출마 연설이지.
-정치 출마하면… 최연소 대통령 확정인가? 관련 주식이 뭐가 있지?
살짝 정신이 이상한 부류까지.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입을 다물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천여명이 약속 시간보다 3분 일찍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덕분이었다.
그가 소통관 내부로 들어서자, 내부를 채운 사람들이 홍해처럼 갈라졌다. 저벅저벅, 여명의 걸음 앞에서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침묵.
기나긴 침묵은 그가 단상에 오른 뒤에야 깨졌다. 카메라가 준비되는 소음이 이어지는 가운데, 천여명이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천여명입니다.”
찰칵찰칵, 대답 대신 카메라 셔터 소리가 소통관을 채웠다. 여명은 무수한 카메라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오늘, 저는 저를 둘러싼 오해와 억측, 그리고 질문에 답변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그때, 맨 앞에 있던 기자 하나가 말을 끊었다.
-천여명! 정말로 이 시대의 용사가 맞습니까?
“그 소문에 관해서도 설명하겠습니다. 질문은 나중에 받을 테니, 우선….”
여명이 그를 막았지만, 병원에서 ‘질문권’을 받지 못한 기자들은 이때다 싶어 언성을 높였다.
-주와이외즈를 받는 대가로 프랑스인이 되기로 했다는데, 정말입니까?
-천여명 선수가 종말 교단이 만든 인조인간이란 소문이 있습니다! 답변 부탁드립니다!
-최근 수인들의 대규모 이동에 천여명 선수가 관련됐다는 믿을 만한 정보가 있습니다! 해명할 수 있으십니까?
-이번 복구 사업의 복구비를 빼돌렸다는 게 사실입니까?
-만주족들이 한반도를 지배하려고 한다!! 저놈이 앞잡이다!!
-천여명 선수와 처제들 사이에 불미스러운 소문이 돌고 있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대답하세요!
영웅이란 관심을 끄는 법이고, 관심은 탐욕스러운 기자들을 끌어들이는 법.
기자들을 꽉 쥐고 언론을 통제하던 정부가 사라지자마자, 한국의 기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그 기세가 얼마나 큰지, 눈을 부라리던 프랑스 대사는 물론이고, 소통관 주변에 있던 경비원들조차 당황할 정도였다.
하지만 여명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아귀처럼 주둥이를 뻐끔거리는 기자들을 빤히 바라보다가, 슬쩍 뒤꿈치를 들었다.
그리고- 쿵!
비각술의 진각. 단상에 쩌적-! 금이 가는 동시에, 기자들이 우르르 넘어졌다.
쓰러진 누군가 ‘이게 갑자기 무슨 짓이냐!’ 며 언성을 높였으나, 여명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제가 말하고 있잖습니까. 정숙 부탁드립니다.”
기자들은 그제야, 천여명이 쿠데타 최전선에서 검을 휘두르던 초인이라는 걸 실감했다. 아직 증명되진 않았지만, 소문 중에서는 그가 홀로 개성 방위 사령부를 함락시켰다는 믿기 어려운 소문도 있었다.
어쨌거나, 여명은 천천히 준비한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국민 여러분의 걱정과 달리, 저는 종말 교단과 어떠한 관계도 없습니다.”
“엘프의 참전 여부는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저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며, 이 나라의 공산화를 지지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쿠데타에서 김규원 대통령의 편에 선 것은 어디까지나 사회 정의와 보편타당한 도덕에 따른 행동이었으며….”
“저의 장인 어른이신 홍용완 의원을 비호할 생각 없습니다. 또한 법원의 정당한 처분을 거부하거나 방해할 어떠한 의사도 없음을 재차 말씀드립….”
그건 지루하다면 지루하고, 정석적이라면 정석적인 기자회견이었다.
눈치 빠른 기자들은 여명이 일부러 기자들이 질문할 만한 부분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 진짜 기자회견은 대본을 모두 읽은 뒤가 되리라.
“마지막으로, 저는 한동안 한국을 떠나 잠시 수련의 시간을 가질 생각입니다. 이번 쿠데타 진압에서 제 부족함을 실감한 까닭입니다. 물론, 영영 한국을 떠나는 것은 아니며, 정치적인 이유가 아닌, 초인으로서 개인의 성장을 위한 선택임을….”
그렇게 여명의 연설이 끝을 향하고, 베아트리체를 비롯해 ‘질문권’을 가진 기자들이 숨 죽이며 무슨 질문을 할까 고민하던 순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기자회견장의 문을 열어 젖혔다.
***
같은 시각.
시카고에서 멀지 않은 교외 지역.
드워프 운전사가 모는 고급 승용차 한 대가 감시탑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문 앞에 멈추어 섰다.
[둔간 종합 연구단지.]커다란 이름이 새겨진 문 뒤편의 경계는 한층 더 삼엄했다.
최신예 CCTV와 고급 마법진들이 눈을 부라리는 가운데, 승용차는 문 두 개를 더 통과하고 나서야 멈췄다.
역시 미국에서 손에 꼽히는 거대 재벌 기업의 연구단지라고 해야 할까.
뒷좌석에서 내린 올턴 주지사는 커다란 연구소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멋진 곳이군. 우리 주 방위군 본부보다 시설이 좋은데.”
곧, 연구소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드워프가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주지사님.”
“칭찬하는 거 아닐세. 다룰마.”
“….”
“재작년에 깎아준 세금이 아까워서 하는 말이야.”
다룰마 둔. 여명의 후원자이자, 둔간 중공업의 후계자인 드워프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합법적인 절세였습니다. 거기다 우리 기업은 아낀 세금을 시카고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지역 주민들과의 상생….”
주지사는 지루하다는 듯 그의 말을 끊었다.
“재투자는 염병, 그 돈으로 공화당 후원한 걸 내가 모를 줄 아나?”
“….”
“합법적으로 뜯기고 싶지 않으면, 적어도 내 앞에서는 솔직해지게. 알겠나?”
다룰마는 너희 민주당 놈들 똥구멍으로 들어간 돈이 더 많다고 반박하지 않았다. 기업가란 그런 거였으니까.
그는 아무 말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태연자약하게 주지사를 건물 안으로 이끌었다.
“현재 둔간 의료 기기는 신제품 개발보다는 기존 제품 개선에 힘쓰고 있습니다. 저희 측 조사에 따르면, 최근 아샤에서 지구식 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치유 기적만으로 모든 병자를 치료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블루밍턴의 응용 연구소가 곧 완성될 예정입니다. 일리노이 주립대학교 측에서 주지사님이 직접 협약식에 참여해 주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무너졌던 차원문 유통은 이번 달 중으로 완벽히 재개될 예정입니다. 무너졌던 둔간 중공업 본사 또한 내년에 완공될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게 주지사님의 배려 덕분….”
다룰마가 은근히 주지사의 비위를 맞추던 그때, 주지사가 갑자기 발을 멈췄다.
건물 구석에 서 있는 유니콘 때문이었다.
그것도 뚱한 표정으로 당근을 우물거리고 있는, 살아있는 유니콘.
클린턴 대통령이 유해 마수로 지정한 동물이 이곳에 있는 것부터 황당한 일이었지만, 올턴 주지사가 당황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저 멍청한 면상의 유니콘은… 그가 아는 사람의 애완동물이었으니까.
“론 후보가 여기 있나?”
“예, 먼저 오셔서 손님과 대화 중이십니다. 설마, 모르고 계셨습니까?”
“이런 좆 같은 새끼가….”
주지사가 욕설을 내뱉었지만, 다룰마는 이번에도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권력자들을 상대할 때는, 한 귀로 흘려야 하는 말도 있는 법이었다.
아무튼, 다룰마는 재빨리 연구소 깊은 곳에 준비된 방으로 주지사를 안내했다. 인공위성도, 감시 마법도 통하지 않는 완벽한 밀실.
연구소의 기밀을 지키기 위해서 만든 방이었지만, 정작 방 내부에 있는 건 연구 물품이 아닌 사람이었다.
두꺼운 면사로 얼굴을 가린 드레스 차림의 여성.
방문을 열고 들어온 주지사의 눈썹이 씰룩이는 가운데, 다룰마가 조심스레 두 사람을 소개했다.
“황녀님, 이분은 일리노이의 주지사이신 올턴 파이사 링컨이십니다.”
“….”
“그리고 주지사님? 저분은….”
올턴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이니마 히라리아.”
“…예, 위대한 황금 혈통을 이으신, 이니마 히라리아 황녀님이십니다.”
다룰마의 공손한 목소리와 달리, 주지사의 태도는 껄렁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황녀 앞에 놓인 두 개의 찻잔을 보며 말했다.
“황녀, 론은 어디 갔나?”
시작부터 반말이라. 무례 중의 무례였지만, 이곳은 제국이 아닌 미국이었다. 황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론 후보님께선 급한 일이 생겼다며, 바로 조금 전에 자리를 뜨셨습니다. 엇갈리셨나 보군요.”
“엇갈렸다… 혹시 급한 일이라는 게 나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저야 모를 일이지요.”
그렇게 대답한 황녀는 우아한 자세로 자리를 권했다. 주지사가 황녀의 맞은편에 앉는 가운데, 드워프는 주지사를 위해 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먼저 대화의 물꼬를 튼 건 황녀였다.
“우선, 올턴 주지사님. 갑작스러운 만남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렇게 주지사님을 찾아뵌 건…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입니다.”
“도움?”
“예, 현재의 제국은… 미국의 도움이 간절합니다.”
거기까지 말한 황녀는 무언가 각오한 듯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을 이었다.
“현재 제국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습니다. 경제는 나날이 악화하고 있고,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북쪽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이 날뛰고, 귀족들은 침묵하는 중이며, 이 혼란을 잠재울 황태자는 빨갱이들에게 납치되었습니다. 미국의 도움이 없다면… 제국은 커다란 혼란에 빠지고 말 겁니다.”
“…황제는 뭘 하고 있지?”
“아들을 납치 당한 아버지가 어찌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맛이 가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주지사는 흐음, 숨을 들이쉬었다.
“그래 뭐, 도와준다고 치고. 제국은 우리나라에 뭘 줄 수 있지?”
“…저희 황족의 지지와 공산주의자들을 처치하고, 제국의 평화를 지켜냈다는 정치적 재산을 드릴 수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써먹을 수 없는 재산이군. 거기다 내 귀에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죽이고 특권 계층을 구하라는 말로 들리는데.”
“…민주주의자와 공산주의자는 다르지요. 조지프 매카시께서 몸소 그 사실을 증명하지 않으셨습니까?”
“매카시는 공화당이다.”
“예, 하지만 미국인이시기도 하죠.”
“….”
“그 외에, 실리적인 부분도 약속 드릴 수 있습니다. 민주당이 원하면 언제든 아샤의 자원 판매 규제를 풀겠습니다. 예를 들어, 구리나 바나나 같은 것 말이지요.”
거의 항복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주지사는 면사에 가려진 황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론에게도 똑같이 말했나?”
“…예? 예, 그랬습니다.”
“흠. 그래서였군.”
“…?”
다음 순간, 쾅!!! 주지사가 탁자를 내려쳤다.
깨진 찻잔과 박살 난 책상이 떠오르고, 놀란 다룰마와 황녀가 동시에 기겁하는 찰나.
주지사가 황녀의 목을 붙잡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다룰마가 경비를 부르려 했지만, 주지사의 말이 조금 더 빨랐다.
“가만히 있어라, 드워프. 괜히 줄초상 나기 싫으면.”
“….”
그렇게 일갈한 주지사는 그대로 손을 뻗어, 황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면사를 벗겼다.
“주지사님! 여성 황족의 얼굴을 함부로 뜯어보시는 건…!”
다룰마가 뭐라고 지껄이건, 주지사는 단번에 면사를 찢어버렸다. 너덜너덜한 백색 천 너머로, 뚜렷한 노란 눈동자를 가진 여성의 얼굴이 드러났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선이 굵은 인상적인 외모였다. 그리고 다룰마는 그 얼굴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 황자의… 애인?”
황녀가 아니었다고? 드워프의 표정이 찌그러지는 가운데, 주지사의 손이 더 강하게 그녀의 목을 조였다.
“감히 황족을 사칭하다니. 간도 크군.”
“케, 케흑- 그, 그게 아니라….”
“감히 미국의 주지사를 엿 먹이려고 한 대가가 뭔지 알려주마.”
주지사는 단번에 목을 뽑아버리려는 듯 손에 힘을 줬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가짜 황녀는 고통에 발버둥 칠 뿐 죽지 않았다.
힘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맨손으로 빌딩을 부숴버릴 수 있는 주지사 아닌가. 그래, 이건 정보를 캐내기 위한 협박이었다.
“이 황자는 무슨 생각이냐?”
“그, 그게- 커흑! 제, 제발 사, 살려주세요.”
“살고 싶다고? 그러면 아는 걸 전부 말해라. 이 황자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하는지, 그리고 진짜 황녀는 어디에 있는지…! 기회는 한 번뿐이다. 알겠나? 이번에도 거짓말로 날 우롱하면 너도! 이 황자도! 그리고 저 드워프도 다 같이 피떡으로 만들어주마.”
갑자기 나는 왜?? 다룰마가 기겁하는 사이, 가짜 황녀가 바들바들 몸을 떨며 입을 열었다.
“화, 황녀님께서는….”
***
쿵!
거칠게 문을 여는 소리를 따라, 기자 회견장에 모인 모두의 시선이 문으로 쏠렸다.
“이리 오너라!”
커다란 외침과 함께 소통관 내부로 들어선 건, 제국의 상징이 새겨진 비단 옷과 망토를 걸친 남자였다.
아샤 문화를 다루는 다큐멘터리에서나 볼법한 예복이었고,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만인의 존경을 받는 초대 용사와, 그분의 혈통에 경의를!”
갑자기 뭐라는 거야? 여명이 눈살을 찌푸리는 사이, 예복을 입은 남자 뒤로 낯선 사람들이 따라 들어왔다.
이번에는 허리에 검을 찬 기사들이었는데, 그들의 검이 몹시 익숙했다.
제국 기사단의 검.
수많은 기자들이 ‘설마?’ 라고 떠올리는 순간, 예복을 입은 남자가 그 설마를 현실로 만들었다.
“황자 전하 납시오!”
황자?? 눈치 빠른 기자들이 카메라를 뒤로 돌리고, 여명의 눈이 냉담해지는 가운데, 털가죽 망토를 뒤집어쓴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티에게 있는 용사의 망토와 닮은 털 망토를 걸친 그는, 여명도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도가탄 히라리아, 로드 하우 아카데미에 입학한 제국의 삼 황자.
아카데미로 돌아가야 할 양반이 여긴 왜 왔지? 여명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오르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경비원들이 황자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삼 황자는 망토 사이에서 돌돌 말린 종이를 꺼내 들며 말했다.
“들어라, 지구인들이여. 나, 도가탄 히라리아는 제국의 삼 황자로서 황제 폐하의 책명을 전하고자 이 자리에 왔다.”
책명? 번역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그건 황제가 제후나 세자 등 등 귀족을 봉할 때 쓰는 단어였다. 설마, 이곳에 새로이 제국 귀족이 될 사람이 있는 건가?
여명은 의아한 눈으로 기자들을 훑었다. 그러나 여명의 예상은 반만 맞았다.
이곳에 제국 귀족이 될 사람이 있는 건 맞았다.
하지만 그게 기자는 아니었다.
“나, 도가탄 히라리아는 혈통이 증명한 권위에 의거해, 황제 폐하의 책명을 전하노라!”
“…???”
“한국인 천여명! 그대는 일찍이 용을 구원하고 종말 교단과 싸우는 등 정의를 위해 싸웠다. 이는 초대 용사께서 이 땅에 퍼트린 선의에 부합하는 것인 바, 이에 황제께서 직접 그대를 굽어 살피셨다. 그분께서 보시기에 그대의 검은 머리는 용기로 가득하고, 아울러 금빛 눈동자에는 꿀이 가득했음이니. 초대 변경백의 모습과 같았다.”
잠깐, 뭐라고?
“황제 폐하께서 직접 위대한 혈통의 족보를 확인하신 바, 그대가 타고난 혈통의 비밀이 밝혀졌다. 천여명! 그대는 230년 전 변경백 가문을 떠난 폴 히라리아의 후손이다. 이것은 다섯 신과 초대 용사, 그리고 그분의 혈통을 이은 제국이 직접 보증하고 증명하는 바, 변경백을 덮친 불행에도 불구하고 꿀의 혈통은 이어졌노라!”
여명도, 기자들도 입을 다물었다. 충격이 모두를 후려치는 가운데, 삼 황자는 큰 목소리로 책명을 마무리했다.
“나, 도가탄 히라리아는 지구와 아샤 만방에 고한다. 황금 혈통과 황제의 이름으로, 천여명! 그대를 새로운 변경백에 책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