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53)
을 위한 세계는 없다-753화(753/817)
EP.753 황금, 꿀, 달러, 그리고 샷건.(2)
***
책명 발표를 끝낸 삼 황자는 도망치듯 회견장을 떠났다.
-변경백?? 새 변경백이라고???
-삼 황자님! 이, 인터뷰를!!
-천여명 선수! 이건 제국 측과 미리 이야기된 사항입니까?
뒤늦게 정신을 차린 기자들과 혼란을 수습하려는 직원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자회견은 난장판으로 끝났다.
회견장에 있던 프랑스 대사가 뒷목을 잡고 쓰러진 덕분이었다.
-주, 주와이외즈가 변경백에게…? Putain de merde…! 이, 미친… 커헉!
-프랑스 대사가 기절했다!!
-구급차! 구급차 불러!!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보던 여명은 ‘나 진짜 변경백의 아들인데?? 유전자 검사 한 번 해볼래??’ 라는 말을 애써 참았다.
지금은 경거망동할 때가 아니었다. 제국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미친 짓을 벌였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
여명은 제국 기사들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
제국이 진짜로 그가 변경백의 아들이라는 걸 알아챈 거라면? 그가 알지 못하는, 황족만의 혈통 감별법이 있는 거라면…
‘…곧 미국도 진실을 알게 되겠지.’
***
반나절 후, 인천의 청소부 아지트.
여명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있었다.
차라리 ‘이참에 뻐꾸기 새끼들을 싹 쓸어버리고 새 황제가 됩시다!’ 같은 말이라면 무시라도 하지.
그를 변경백에 책봉한다고? 왜??
현재 제국은 황태자가 납치되고, 북부에서 빨갱이가 날뛰는 상황 아닌가.
황태자를 구하는데 전력을 다해도 모자랄 판에, 새로운 변경백이라니?
처음에는 다른 나라처럼 자신을 탐내서 저지른 일인가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다.
그가 대놓고 황제의 책명을 거부한다면 이보다 더한 굴욕이 없지 않나.
몰락했어도 황제는 황제고, 제국은 제국이다. 그렇게 멍청할 리 없었다.
그렇다고 공격인가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정치적인 수작이라기엔 지나치게 투박했고, 바보짓이라기엔 스케일이 너무 컸으니까.
결론적으로, 제국의 행동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논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억측만 남는 법.
당장 언론과 정치판의 반응부터가 그것을 증명했다.
-새 시대에는 새로운 귀족이 필요한 법입니다! 한국이 키우고, 제국이 인정한 천여명!
-생각해보니 시베리아가 딱 변경 아닌가? 만주와 한반도를 새로운 변경백령으로!
-종말 교단을 무찌르고, 변경백이 태어난 지구 국가가 있다??
국뽕에 취해 미쳐버린 자들.
-황제가 치매에 걸린 거 아닐까요?
-황족은 질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거야 엘릭서 덕분이고… 이번 황제는 못 먹었잖습니까?
어떻게든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류.
-뭐가 됐든, 제국에 수출 길이 열리는 거 아닙니까?
-변경백을 상품화하면 돈이… 어우야, 코스피 지수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승만 시티에 더 많은 철도를 깔아야 합니다! 수출! 수출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일단 돈부터 보는 자들.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부터 확실히 해야 합니다! 프랑스랑 전쟁할 일 있어?!
-이번 일로 현대 문명의 발상지인 유럽과 사이가 틀어질까 두렵습니다.
-프랑스가 이번 일에 유감을 표했습니다. 이건 외교 문제입니다!
유럽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대주의자들.
-뭐가 됐든, 천여명이 잘 나간다는 게 중요하지.
-현시대의 최강이 변경백인 것처럼, 다음 시대의 최강이 천여명이라는 걸 황제도 인정한 거 아닐까?
-그래서 어느 지역구에 출마한답니까? 함흥? 인천?
마지막으로 천여명 찬양론자들까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요, 개판 5분 전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점은, 이것조차 전초전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새 변경백 책봉에 대한 소식이 국경과 차원문을 넘은 뒤에는 어떻게 될까?
장담은 못 하겠지만, 아마 이보다 더한 개판이 벌어지리라.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그나마 다행인 건, 여명의 주변인들이 침착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
“삼 황자를 죽이면 이 사건도 다 묻히지 않을까?”
…아니, 침착한 건 아닌가.
여명은 TV 속 삼 황자를 노려보는 세티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성녀,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러자 자칭 ‘아샤 정치 전문가’인 성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왜 자꾸 상황을 이해하려고만 해? 사람은 뻐꾸기를 이해 못 하는 게 당연하잖아?”
“….”
여명은 기자회견장에 성녀가 없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성녀의 지병 때문에 삼 황자가 죽는 참사가 벌어졌을 테니까.
아무튼, 그나마 맨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쇠미리가 말을 돌렸다.
“모두 진정하고, 우선… 제국의 목적부터 생각해보죠. 대체 이 책봉으로 제국이 얻을 수 있는 게 뭘까요?”
세티가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바꾸며 대답했다.
“여명 그 자체.”
“그거야 여명이 순순히 책봉을 받을 때 이야기죠. 안 받으면 어쩌게요? 억지로 변경백을 만들 수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 경우에는…”
이번에는 여명이 대답했다.
“…내가 변경백이 될 거라고 확신하는 거지.”
“예, 문제는 확신의 이유죠. 혹시, 제국 측에서 여명이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가지고 있는 걸까요? 예를 들자면… 전대 성녀님과의 관계라든지.”
성녀는 고개를 저었다.
“총대주교도 몰랐던 일을 황제가 어떻게 알겠어?”
“그러면 남은 건 혈통인데… 혈통을 추적할 수 있는 마법 같은 게 있는 걸까요? 총대주교가 그랬던 것처럼요.”
“똑같이 총대주교로 반박할 수 있어. 뻐꾸기들은 총대주교가 방계 황족인지도 모르고 용사의 무구를 성도에 기부했잖아? 그런 놈들이 여명의 정체를 밝힐 수 있을 리 없지.”
“그러면 대체 왜?”
모두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 오르는 가운데, 이번에는 뭔가를 고민하고 있던 살로메가 슬쩍 손을 들었다.
“제 생각에는, 황제가 하사하는 영지를 봐야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영지?”
“예, 아샤에서 귀족이라는 건 모름지기 영지를 가져야 하거든요. 심지어 이런 격언도 있다니까요? 영지 없는 귀족은 귀족이 아니며, 귀족이 아닌 자에겐 의무도 없다… 그런데 삼 황자의 책명에서는 어느 영지를 하사할 건지 말 안 했잖아요?”
그런가? 여명이 관심을 보이자, 살로메는 활짝 양손을 펼치며 말했다.
“영지를 나중에 주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렇게 생각해보죠. 만약 프랑스에 준 옛 변경백의 영지를 여명에게 하사하면, 어떻게 될까요?”
“프랑스와 관계가 파탄 나겠지.”
지금도 딱히 좋지는 않지만, 아예 적이 되는 것과 데면데면한 건 다르다.
살로메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여명이 영지를 먹으면 프랑스와 준 전시 상태에 들어갈 테고… 반대로 여명이 프랑스와 싸우지 않고 영지와 작위를 거부하면? 아샤인들이 여명을 어떻게 볼까요?”
“….”
잘 해야 비호감, 극단적으로는 황제와 의무를 무시한 개자식으로 보지 않을까? 여명의 미간이 좁아지는 사이, 살로메가 왼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자, 이제 여기서 한 번 더 꼬아볼까요? 만약 황제가 공산주의자들에게 빼앗긴 북부 영토를 여명에게 하사한다면 어떨까요?”
“…북부는 변경이 아니잖아.”
“제국과 황실을 위협하는 땅은 전부 변경이죠. 황제가 옛 변경백령을 프랑스에 넘긴 이유가 뭔지 아세요? 프랑스와 차원문이 연결됐으니 이제 더 이상 위협적인 땅이 아니란 논리였어요.”
“….”
“같은 논리로, 빨갱이들과 싸우는 땅을 변경이라고 주장한다면?”
세티가 반박했다.
“너무 비약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황제가 그 정도로 뻔뻔할 리 없잖아.”
“그건 세티가 지구인이라서 하는 생각이죠. 아샤의 귀족들은 뻔뻔한 게 기본이에요.”
여명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그런 거 치곤, 내가 만나본 귀족들은 모두 괜찮았던 거 같은데…?”
“여명은 그런 귀족을 만나면 죽이거나, 기억에서 지워버려서 그래요. 다시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분명히 이상한 귀족들하고 만난 적 있을 테니까.”
살로메의 지적이 이어진 직후, 여명은 드레이테리얼에서 만난 궁정백들을 떠 올렸다.
한국에 빌붙던 놈, 핵을 황제에게 바치겠다고 옛 지배자들과 손잡은 놈… 사실 그런 놈들이 평균이고, 두메아 가문이 특이한 건가?
여명의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질 때쯤, 눈치만 보던 네티가 걱정스레 물었다.
“살로메 언니, 귀족들을 싫어하시는 건 아니죠?”
“응? 갑자기 그건 왜 물어봐?”
“아니, 히틀러도 귀족을 싫어했잖… 자, 잠깐! 언니! 전 진짜로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구요!”
“우리 동생, 히틀러가 융커를 숙청했던 것처럼 숙청해 줄까? 응?”
살로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눈치 빠른 네티는 의자에서 일어나 도망치기 시작했다. 우당탕! 그렇게 두 사람이 방 안을 헤집어 놓던 순간.
TV에서 긴급 속보가 흘러 나왔다.
[…이에 황자를 보내어 크게 고하였으니, 천여명에게 옛 북방 영토를 하사하여 그 땅을 수호하게 한다. 아울러 그에게 황궁 무기고의 무구와 영약 등의 물품을 하사할 것이니, 약속된 날짜까지 황궁으로 올 것을 명한다.…
…새로운 변경백은 의당 용맹하게 영지를 지킬 것을 맹세하고 백성들의 안녕에 힘쓸 것이며, 충정을 바쳐 황금 혈통의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
…변경백은 이를 잘 삼가하여, 짐이 실망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황제가 직접, 한국에 보내는 책명이었다.
***
밤이 깊었음에도, 여명은 잠들지 못했다.
삼 황자의 기자회견 난입 때문에? 아니면 소문이 무르익을 때쯤 날아온 황제의 추가타 때문에?
아니, 둘 다 아니었다. 그의 밤잠을 방해하는 건, 산초가 보내온 문자였다.
[단장님께서 사라지셨네.]언제, 어디서, 어떻게? 놀란 여명이 되묻자, 산초는 사진 한 장을 찍어 보냈다.
짧은 문구가 적힌 편지 사진.
-전대 단장님의 기일이 얼마 남지 않아, 잠시 황도에 다녀오겠다.
기사단장님이 남긴 게 분명한 편지를 본 여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납치된 건 아니셨구나. 하긴, 그렇게 강한 분을 누가 감히 납치하겠는가?
하지만 안도는 길지 않았다. 시기가 너무 공교로운 까닭이었다.
하필 그가 새 변경백에 책봉되는 날, 도망치듯 자리를 뜨시다니.
‘…뭔가 있다.’
그것도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뭔가가.
깊은 한숨을 삼킨 여명은 포식자를 발견한 초식동물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잔뜩 긴장한 근육을 따라, 실처럼 복잡한 생각이 따라온다.
황제는 그의 핏줄을 알고서 이런 짓을 벌이는 건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건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변경백과 자신을 엮는가?
그렇게 계속 질문의 답을 찾던 여명은… 문뜩, 머리가 차갑게 식는 걸 느꼈다.
‘내가 왜 뻐꾸기 새끼들의 수작질에 놀아나야 하지? 상대가 닉슨이나 미국도 아닌데.’
여명은 주먹을 꽉 쥐며 생각했다. 거기다 자신만 건드렸다면 모를까, 기사단장님까지 엮였다.
감히.
그는 더 이상 복수 때문에 숨을 죽이던 어린아이가 아니었고, 가만히 당하고 있는 성격도 아니었다.
여명은 움츠렸던 어깨를 쫙 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창문 위로 비치는 자신의 금색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봤다.
창문 속의 쇠똥구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고민할 게 뭐 있어? 삼 황자의 모가지를 비틀면 답이 나올 텐데.’
현명한 해법은 아니었다. 그동안 쌓아 온 이름값을 생각하면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에겐 써먹을 이름이 많았다.
특히, 붉은 별.
피눈물의 환상이 일렁거리고, 창문 위의 쇠똥구리가 냉혹한 빨갱이로 변했다.
잠시 그 얼굴을 마주 보던 여명은, 휴대폰을 꺼내 장관에게 연락했다.
“예, 장관님. 저 천여명입니다. 혹시 삼 황자가 지금 어디에 묵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황태자도 빨갱이에게 당했는데, 삼 황자라고 못 노릴 건 없지.
***
-삼 황자는 올림피아 선수촌 VIP룸에 묵고 있다. 자네가 쓰던 바로 그 방인데… 그건 왜 묻지?
“잠깐 얼굴 좀 보고 오게요.”
-…너무 큰 사고는 치지 말게. 외교부 직원들이 지금도 죽을 맛이니.
“예, 참고하겠습니다.”
장관과의 대화가 끝난 직후, 여명은 휴대폰을 끄고 방을 나섰다. 그리고 그대로 선수촌을 향해 날아가려는 순간-
“형부, 어디 가요?”
우연히도 방문 앞을 지나치던 두 소녀가 그의 앞길을 막아섰다.
시리와 시스.
그가 직접 목줄을 풀어준 붉은 양과 녹색 양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늦은 시간에, 변장까지 하고 외출이라… 언니한테 가세요?”
“….”
“아니면, 성녀님?”
차마 삼 황자의 모가지를 비틀러 간다고 말할 수 없던 여명은 적당한 핑곗거리를 떠올렸다.
…떠올리려 했다.
“아니면, 둘 다?”
하지만 이어진 막내 시스의 도발을 듣는 순간, 입에서 저절로 진실이 튀어나왔다.
“…삼 황자한테 가는 거야.”
“…예?!”
시리가 화들짝 놀랐으나, 여명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혼자 조용히 다녀올 테니까, 언니에게는 비밀로 해줄래?”
비밀. 그 단어를 듣자마자, 막내의 눈이 씨익- 휘어졌다.
“맨입으로요?”
“….”
여명은 차마 뭘 원하냐고 묻지 못했다. 그가 상상도 못 한 조건이 나올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여명은 이렇게 말했다.
“같이 갈까?”
여기까지는 예상 못 했는지, 시스와 시리는 놀란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잠깐이라고 할만한 시간이 지난 뒤, 두사람은 동시에 대답했다.
“네! 갈래요!”
“형부가 필요하시다면야.”
여명은 기꺼이 두 사람에게 피눈물의 환상을 덧씌웠다. 최대한 KGB 요원들과 비슷한 외모로.
시스는 변장한 자신의 모습이 신기한지, 요리조리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붉은 별 동지. 드디어 혁명의 때가 온 겁니까?”
“그래, 저 간악한 황족들에게 정의를 알려줄 때가 왔다. 무기를 들어라. 동지.”
“예! 공산주의 새 언덕을 위해, 이 목숨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두 사람이 그렇게 농담을 주고받기 무섭게, 시리가 정색했다.
“그런 장난하지 마세요. 진짜 같아서 무서우니까.”
“….”
어쨌거나, 인천 한복판에 등장한 세 빨갱이는 동시에 투명 망토를 뒤집어쓰고 하늘로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