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56)
을 위한 세계는 없다-756화(756/817)
EP.756 황금, 꿀, 달러, 그리고 샷건.(5)
***
여명이 황녀의 사소한 오해(?)를 풀어준 바로 다음 날.
변경백 책봉 사건의 후폭풍은 여명의 예상보다 훨씬 더 크게, 그리고 멀리 몰아치고 있었다.
시작은 오귀스트였다.
-이제 내 조국을 벌하기로 마음먹은 겐가?
꼭두새벽부터 전화를 걸어온 프랑스 10강의 첫마디는 그것이었다.
여명은 대체 어떤 오해를 해야 그런 결론이 나오는지 궁금했지만, 자신의 궁금증보단 어르신의 오해를 푸는 쪽에 초점을 두기로 했다.
“어르신, 그게 아니고요….”
그는 말할 수 없는 부분을 제외한, 알려드릴 수 있는 모든 걸 설명했다. 황녀, 오해, 현재 황족 내부의 혼란까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야기를 모두 들은 오귀스트의 반응은 둘로 갈렸다.
-이래서 봉건 국가들이 망한 걸세. 자고로 국가란 국민이 운영해야 하는 법이지.
왕의 목을 자른 프랑스인다운 말. 그리고-
-그것과 상관없이, 변경백 자리는 받게.
다분히 정치적인 말. 여명은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예? 그게 무슨…?”
-단순히 변경백이나, 프랑스 문제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닐세. 진짜 변경백이 되는 순간, 자네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될 거야.
“다른 존재라면…?”
-외교적으로도, 대외적으로도… 지금 자네는 그냥 강한 초인 중 하나일세.
“….”
-그 틀을 벗어나려면 데메론드나 호세처럼 집단을 쥐락펴락할 권력과 영향력을 가지거나, 변경백처럼 규격 외의 힘이 필요하지. 미래라면 모를까, 지금 자네에게는 둘 다 힘든 일이고. 하지만…
짧게 뜸을 들인 오귀스트는 진지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변경백 작위를 받는 건 달라. 그건 자네가 단순히 아샤의 귀족이 된다는 걸 넘어서, 한 국가의 수장이 된다는 말일세.
국가의 수장… 여명은 변경백은 변경백령에서 만큼은 왕에 준하는 권력을 가진다- 는 말속에 숨겨진 무게를 느꼈다.
당장 변경백령 전쟁부터가 그랬다. 제국 기사단이 후퇴하고 황제가 바뀌는 와중에도 변경백은 독자적으로 전쟁을 이어 나갔다. 만약 변경백이 황제의 항복을 끝까지 거부했다면, 전쟁은 더욱 길어졌으리라.
어쨌거나, 오귀스트는 계속 말했다.
-공산주의자들과의 전투가 걱정이라면, 내가 도와주겠네.
“어르신….”
-고마워하지 말게. 자네가 내게 해준 일에 비하면 별것도 아닌 일이니. 아, 그리고… 지금 프랑스 내부에서 자네를 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네.
프랑스에서? 여명은 기자회견장에서 뒷골을 잡고 쓰러진 프랑스 대사를 떠올리며 물었다.
“혹시, 절 죽여야 한다는 말도 나옵니까?”
-국민전선의 정치인들은 예전부터 그런 이야기를 떠들고 다녔지.
“….”
국민전선이 프랑스 내부의 극우파 정당이었던가? 아니, 그보다, 예전부터 그랬구나….
여명이 프랑스의 정치판에 대해 생각하는 가운데, 오귀스트가 덧붙였다.
-그에 비해 국민들의 여론은 호의적일세. 심지어 나와 자네의 관계를 두둔하며 정부에서 새로운 변경백국을 지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오늘 신문 사설로 실렸을 정도지.
“….”
새로운 변경백국을 지지해? 듣기엔 좋은 말이었으나, 실상은 자기들이 처먹은 옛 변경백령의 이권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양심도 챙기는 방법에 불과했다.
하지만 속뜻이 무엇이건 간에, 중요한 건 그런 말을 언론에서 노골적으로 떠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정치도, 여론도 극단적이군요.”
-이 나라의 몇 없는 장점 중 하나지.
“….”
장점이라니. 여명이 정색하건 말건, 오귀스트는 계속 말했다.
-어쨌거나, 아샤에 가거든 내 조국을 조심하게. 현재 아샤에 꽤 많은 외인부대가 파병되어 있으니.
“저를 상대로 군사 작전을 펼칠 거란 말씀이십니까?”
-확신할 순 없지만, 대비해서 나쁠 건 없네. 자네도 알다시피 극과 극은 대립을 부르고, 대립은…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죠.”
그것으로 중요한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여명은 걱정해준 오귀스트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고, 오귀스트는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만나자는 훈훈한 말을 끝으로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후폭풍이 왔다.
-천여명! 오랜만이로구먼. 나 다룰마일세.
“….”
-다른 게 아니라, 새 변경백이 된 기념으로 우리 기업 지지 선언 한 번 해주면 안 되겠나? 요즘 아샤에서 판매량이 시원치 않아서….
“다룰마, 미쳤습니까?”
-돈이라면 얼마든지 줌세. 기왕이면 빨갱이 사냥에 써주…
“끊습니다.”
안타깝게도, 전화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천여명, 나 대통령일세.
-어젯밤 내각 회의에서 자네를 위해 변경백령에 한국군을 파병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네. 이렇게 된 거, 쿠데타각이 보이는 장교들 데려가서 전부 빨갱이 밥으로….
은근슬쩍 짬처리를 시도하는 김규원 대통령.
-야, 출장비 언제 주냐? 총리한테 깨졌다.
-총리가 같이 사진 한 번 찍으면 출장비 안 내도 된다는데, 와서 사진 한 장 찍어주면 안 되냐?
-아카데미 교장이 연락 한 번 달라더라.
불쌍한 공무원 프레아 칸.
[서기장 용사 변경백 ㅋㅋㅋ] [존나 웃기네 ㅋㅋㅋㅋㅋ]그리고 파순이 보낸 게 확실한 문자까지.
“아, 제발.”
그 외에도 전화가 이어지는 걸 본 여명은 휴대폰 전원을 꺼버렸다.
한숨을 삼키며 고개를 돌려 보니, 어느새 창문 밖으로 해가 뜨고 있었다.
새로운 아침이었다.
***
몇 시간 뒤, 회의 겸 점심 식사를 위해 일행들이 모인 거실.
“서기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성녀의 첫마디는 그것이었다.
샌드위치가 가득 담긴 접시를 옮기던 여명은 자신도 모르게 발을 뚝, 멈췄다.
성녀는 접시 위의 샌드위치 하나를 집으며 덧붙였다.
“…아니, 이 경우에는 황녀도 속인 연기의 귀재라고 해야 하나?”
여명은 킥킥 웃는 성녀에게 대답하는 대신, 처제들을 바라봤다.
웃음을 참는 네티의 뒤편으로, 시선을 돌리는 시리와 시스가 보였다.
그새 다 불었어?
한숨을 삼킨 여명은 한탄 조로 말했다.
“빨갱이 연기를 너무 오래 했어.”
“어? 그러면 이제 연기 그만하고 진짜 빨갱이가 되는 거야?”
탁자에 접시를 내려놓은 여명은 곧바로 성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 성녀가 에베베- 미소 짓는 가운데, 컵을 나르던 쇠미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서기장.”
“….”
꿈의 시련에서 그녀의 은밀한 욕망을 본 적 있던 여명은 곧장 정색했다.
“…이것들이 진짜.”
분노한 여명이 두 명에게 샌드위치를 집어 던질 때쯤.
그 개판을 보고 있던 네티가 대화의 방향을 틀었다.
“그래서, 황녀는 어땠어요?”
“멍청하고, 성급한 여자였어.”
“아니, 그런 거 말고요. 이뻐요?”
“….”
나야 모르지.
대외적으로 활동하는 황태자를 제외한 황족들은 사진조차 찍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나 뉴스에도 얼굴이 나오지 않았고, 여명은 이 황자와 황녀의 얼굴은커녕 체형조차 본 적 없었다.
딱히 보고 싶지도 않았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일행 중에 본 사람이 있었다.
“예뻐. 엄청나게.”
다른 누구도 아닌, 성녀의 증언.
“황궁에서 황녀를 보고 상사병에 걸린 사람이 한둘이 아닐 정도야.”
“…그 정도야?”
“응, 그 누구냐… 우리 아카데미에 있던 대통령 손자도 황녀한테 반해서 정식으로 청혼한 적 있을걸? 물론, 그래봤자 나랑 세티가 더 예쁘지만.”
“….”
“아, 그리고 미리 말하지만, 나는 하렘 회… 아니, 용사 회의에 황녀 끼는 거 반대야. 엘프까진 참을 수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뻐꾸기는 좀….”
이게 뭐라는 거야. 여명은 성녀의 볼을 한 번 더 꼬집었다.
아무튼, 볼이 빨개진 성녀가 자리에 앉고, 일행 모두가 샌드위치를 집어 먹기 시작하고 나서야, 세티가 본격적인 의제를 꺼낼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장인어른을 만나러 같이 갈 사람?”
여기서 말하는 장인어른은 세계수 혁명단의 데메론드 입 맑스를 뜻했다. 일행들은 올 게 왔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이번에도 성녀였다.
“난 못가.”
“…뭐? 왜?”
“아직 한국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잖아. 성도는 베리야 사건의 뒷정리 때문에 사제를 보내줄 여력도 없고… 나라도 있어야지.”
여명은 물론이고, 자리에 있는 모두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얘 성녀였지.
새삼 모두가 그 사실을 상기하는 가운데, 성녀가 정색했다.
“반응이 왜 이래?”
“…성녀님의 따스한 마음에 감동해서요?”
오랜만에 성녀에게 반격한 살로메가 말을 이었다.
“죄송하지만, 저도 못 가요. 마탑을 대표해서 정부와 괴수군 문제를 논할 사람이 저뿐이라서.”
어쩔 수 없는, 정치적인 이유였다. 여명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성녀가 덧붙였다.
“히틀러도 자기 말고 다른 정치인은 믿지 않았….”
“야!!”
그렇게 성녀와 살로메가 드잡이질을 벌이는 사이, 여명은 세티를 바라보았다.
조용히 있던 세티는 어깨를 으쓱였다.
“난 남아 있을게.”
“왜?”
“홍용완 의원이 남긴 세력도 흡수 못 했고… 아직 한국에서 챙길 게 있으니까.”
거기까지 말한 세티는 슬쩍, 성녀에게 두들겨 맞는 살로메를 보며 덧붙였다.
“그리고, 쟤들이랑 라날을 도와줄 사람도 있어야지.”
“….”
같은 꼴을 보고 있던 여명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는 사이, 세티가 덧붙였다.
“샌드위치 중독녀는 데리고 가. 괜히 합동 조사단에게 걸리면 죽을 테니까.”
아무 말 없이 우걱우걱 샌드위치를 먹고 있던 네크로맨서, 딜라가 움찔, 몸을 떨었다.
여명은 그녀를 목록에 넣은 뒤, 마찬가지로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엘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리는… 당연히 가야 하고.”
장인어른 보러 가는 건데, 빠질 수는 없지. 쇠미리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제가 가야죠. 아, 근데 지금 아버지가 계신 곳 말인데요… 쿠데타때 도와줬던 동무들 말로는, 현재 미국에 계신다고 해요.”
“…뭐?”
반미 테러리스트가 미국에 있다고?? 그것도 선거가 코앞인데?? 일행들이 당황하건 말건, 미리는 자신이 아는 바를 담담하게 늘어놨다.
“정확히는 시카고에 계신다는데… 저번처럼 배를 타고 가야 할까요?”
“배나 비행기나, 다른 나라를 경유해서 가야 하니까 상관없는데… 시카고에서 뭐 하고 계신 있는 거야? 혹시….”
테러를 준비하는 건 아니겠지. 여명이 뒷말을 삼키는 가운데, 미리디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전당대회 보러 가셨데요.”
“…??”
“그런 눈으로 보셔도 소용없어요. 무슨 생각이신지 저도 잘 모르니까.”
“….”
여명은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쓸었다. 아무리 그래도 테러에 휩쓸리지는 않겠지.
어쨌거나, 남은 인원은….
그때, 네티를 비롯한 처제들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
“저 갈래요!”
“저도.”
“저요!”
세 명 모두 자신이 가겠다고 어필했다. 여명이 살짝 기가 죽을 정도로, 열성적으로.
하지만 세 자매의 욕망은 결실을 보지 못했는데, 세티가 동생들의 엉덩이를 후려 차며 이렇게 쏘아붙인 까닭이었다.
“둘은 남아서 날 도와야지. 가더라도 한 명만 따라가.”
처제들은 각자 ‘폭거다’ ‘우- 우-’ ‘부르주아지 같으니’ 라는 말로 항변했으나, 세티가 한 대씩 더 때리자 곧바로 굴복했다.
역시 강한 힘을 가진 권력자 앞에서 민중 반란은 무의미했다… 아무튼, 처제들의 제비뽑기 끝에 뽑힌 건 붉은 양, 오시리였다.
“잘 부탁드려요. 형부.”
시리의 인사, 그리고 막내의 ‘까비-’ 라는 말을 끝으로, 최종 인원이 정해졌다.
쇠미리, 딜라, 시리, 그리고 코르부스.
여명을 필두로 한 다섯 명이 세티의 도움을 받아 미국으로 떠날 준비를 시작한 바로 그때.
숙취와 밤샘으로 일행 회의에 지각한 분홍 머리 연금술사가 끼어들었다.
“야!! 나도 데려가!!!”
“….”
“내 고향이 미국인 거 알지? 응? 나 요즘 막 머리도 아프고… 다크서클도 진해지고… 이거, 향수병이 분명해. 그, 어디냐. 그래! 웨스트 버지니아, 내 고향에 가면 다 나을 거 같아!”
라쉬크 고향은 터스키기 아니었어요? 애써 쓴웃음을 삼킨 여명은 라쉬크가 그저 노동에서 벗어날 생각으로 고향을 운운한다는 걸 눈치챘지만, 어쩌겠나.
노동자에겐 휴식이 필요한 법이었다.
“좋아요. 같이 가요.”
그렇게 마지막으로 라쉬크가 합류한 일행은, 그날 밤 바로 한국을 떠났다.
***
이틀 뒤, 미합중국.
여명 일행은 무사히 시카고 미드웨이 공항에 도착했다.
부산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미국으로 오면서 두 번의 신분 세탁을 거친 덕분일까, 일행은 아무 문제 없이 미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아, 시카고! 사랑스러운 내 고향!!!”
비행기에 타고 있는 내내 코를 골며 자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라쉬크는 공항에서 벗어나자마자 포효했다.
언제는 웨스트 버지니아가 고향이라며.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은 여명은 공항 터미널에서 촐랑거리는 라쉬크의 목덜미를 붙잡은 뒤, 곧바로 목적지로 향했다.
지난번 시카고에 찾아왔을 때 공산주의자들과 싸웠던 네이비 피어 바로 앞에 있는 호텔.
미시간 호수와 차원문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호텔은 참으로 자본주의스러웠다. 그러니까, 돈을 바른 게 눈에 보였다.
고급스러운 로비, 조용하고 빠른 최신 엘리베이터, 그리고 철저한 보안까지.
세계 최악의 테러리스트이자 빨갱이가 묵고 있는 곳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곳이었고, 호텔 복도를 걷던 라쉬크는 잔뜩 기대감을 품은 채 물었다.
“야, 우리 누구 만나러 온 거야? 대체 누구길래 이렇게 화려한 곳에서 지내고 있어?”
“저번에 말하지 않았어요?”
“저번에는 엘프 대장만 언급했잖아.”
라쉬크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고, 여명은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그 엘프 대장 보러 왔는데요.”
“…?”
“몰랐어요?”
아니 시발, 미국에 엘프가 왜 있어- 라고 중얼거린 라쉬크가 도망치려는 찰나.
여명은 쇠미리가 알려준 방 문 앞에 도착했다.
아샤에서 넘어온 청색 돌과 흑단 나무로 만들어진, 고급스럽다 못해 사치스러운 문.
도저히 공산주의자가 있을 법한 곳이 아니었기에, 여명은 쇠미리를 바라보았다.
여기가 맞아?
네 맞아요.
눈빛으로 짧은 대화를 주고 받은 여명은 후웁- 크게 숨을 들이켠 뒤, 문을 두들겼다.
똑똑-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드럽게 문이 열렸다. 열린 문 너머로 고개를 내민 건 새하얗게 탈색된 머리카락과 가을 낙엽처럼 갈색으로 물든 피부, 그리고 무수한 흉터의 엘프였다.
데메론드 입 맑스.
TV 속에서나 보던 테러리스트를 직접 마주한 라쉬크가 뒷걸음질 치는 가운데, 데메론드가 여명과 눈을 마주했다.
“천여명.”
여명은 곧장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 오랜만이군. 내 예상보다는 빠르지만.”
그렇게 말한 데메론드는 쓰윽 일행의 면면을 훑었다.
“특이한 조합이군. 인조인간 둘에 네크로맨서, 갈림길의 수호자… 그리고 우리 따님까지.”
빈말로도 환영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뒤에 있던 미리디스가 무어라 입을 열려는 찰나, 데메론드가 먼저 여명에게 말했다.
“아샤에서 만났을 때, 내가 했던 질문 기억하고 있나?”
“진의에 관한 거라면….”
“아니, 그거 말고. 내 딸이 좋아하거나, 혹은 딸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지.”
“….”
“그때 자네는 분명 없다고 대답했고.”
“….”
“근데, 내 부하들이 말하기를… 그때 자네 대답이 거짓말이었다던데. 어떻게 생각하나?”
“저, 그게….”
설마 이 질문부터 나올 줄 몰랐던 여명은 말끝을 흐렸다. 살짝 당황스럽긴 했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그는 이미 세계수에게 직접 허락을 맡은 몸이었으니까.
“…그, 종종 나뭇가지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피는 것처럼, 사랑 또한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다가왔습니다.”
“흠, 그래서?”
“그, 갑작스러우시겠지만, 저와 미리는-”
여명의 언성이 살짝 높아지려는 그때, 데메론드가 말을 끊었다.
“굳이 핑계댈 필요 없네. 난 화나지 않았으니.”
“….”
정말요? 여명은 되묻지 못했다.
문 뒤에 있던 데메론드가 스윽- 몸을 내민 덕분에? 아니, 그에 손에 들린 무식한 크기의 샷건 때문에.
“하지만 이 녀석은 자네를 용서할 수 없다는군.”
기겁한 쇠미리가 무어라 소리치기도 전에, 데메론드가 방아쇠를 당겼다.
터엉!
참으로 정당하고 정의로운, 아버지의 분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