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62)
을 위한 세계는 없다-762화(762/817)
EP.762 황금, 꿀, 달러, 그리고 샷건.(11)
***
-이 미친 말 새끼, 그걸 왜 말하고 있어!?
익숙한 목소리가 문을 뚫고 들려온 바로 다음 순간, 덜컹! 마구간 바닥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뽑히는 것처럼 우드득- 소리가 울리더니, 마구간이 붕 떠오르기 시작했다.
습격? 함정? 어느 쪽이건 미리는 곧바로 완드를 꺼내 들었고, 시리 또한 마나를 끌어 올렸다.
여명과 함께 쿠데타를 겪은 두 사람은 프로 용병 뺨칠 정도로 빠르게 준비를 끝냈고, 당장이라도 마구간을 박살 내고 밖으로 나갈 기세였다. 그럴 기세였는데….
“잠깐만.”
여명이 손을 들어 두 사람을 막았다.
왜? 콧김을 푸르릉거리던 유니콘조차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는 가운데, 벽에 박혀 있던 못들이 우르르 튀어나오고, 문과 벽 틈 사이사이로 검은 액체… 아니, 검은 가루들이 파스스 소리를 내며 마구간 안으로 파고들었다.
마나를 머금은 가루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마구간 내부를 휘몰아치다가, 갑자기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뭉치고, 구부러지고, 꺾이고, 휘어지고, 늘어난다. 마치 전문가가 찰흙으로 조형을 하는 것처럼.
하지만 결과물은 찰흙 공예 따위와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가시는 순식간에 해골과 가시로 가득한 금속판이 되어 마구간 벽을 빼곡하게 채웠고, 닫힌 창틀과 정문에는 두꺼운 쇠창살이 솟아났다.
‘그냥 가루가 아니라 쇳가루였나.’
여명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순간, 쿵!! 마구간 전체가 떨렸다. 마치, 높은 곳에서 추락한 것처럼.
누군가 마구간을 통째로 들고 어디론가 옮겨왔다. 초인이 아니라도 알 수 있을 만큼 노골적인 감각을 느낀 일행들이 긴장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명은 여전히 무사태평했다. 일행들에게 긴장할 필요가 없다며 연신 손짓한 뒤, 마구간에 솟아난 가시를 툭툭 만지기까지 했다.
“금속 조종… 이런 능력이었구나.”
금속 조종? 그 말을 유니콘이 뭔가 깨달을 때쯤, 마구간의 문이 벌컥 열리며 한 흑인 여성이 안으로 들어섰다.
손에 살벌한 전기톱 검을 든, 매력적인 흑인 미녀.
여명은 갑작스러운 만남에도 놀라지 않았다. 그녀와는 이미 안면이 있는 사이였으니까.
“불법 침입자 새끼들, 전부 꼼짝…! 어?”
미국의 빅 쓰리 중 한 명이자 장만 어르신의 지인.
“…메이커, 오랜만에 뵙습니다.”
여명이 그녀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메이커의 눈동자가 커졌다.
“여명 동생? 네가 왜 여기 있니?”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다고 말하면… 안 믿으시겠죠?”
그러자 메이커는 살벌한 전기톱에 시동을 걸며 대답했다.
“당연히 안 믿지.”
***
다행히, 메이커의 전기톱이 여명을 덮치는 일은 없었다. 그녀는 상식인이었고, 상식인답게 질문부터 했으니까.
“그래서, 동생, 여기서 뭐 하고 있던 거니?”
“제가 왜 동생입니까?”
여명은 너도 모카 딕 아래에서 자랐으니까- 라는 대답을 예상했으나, 메이커는 훨씬 담백한 여성이었다.
“그야, 아직 목이 붙어있으니까?”
다음 순간, 그녀의 전기톱이 마치 강아지처럼 으르렁댔다. 괜한 말로 시간을 끌려던 여명의 계획이 박살 나는 소리였다.
어쩔 수 없이, 여명은 마구간이 비행하는 과정에서 생각하고 있던 거짓말을 내뱉었다. 살짝 진실이 섞인 거짓말.
“전당 대회를 구경하러 왔습니다.”
“이렇게 음흉하고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공개적으로 오면 시선을 끌게 될 테니까요. 아시다시피, 최근에 제가 좀… 유명해져서요.”
새로운 변경백에 관한 이야기였다. 메이커 또한 익히 알고 있는 듯, 눈썹을 씰룩였다.
“그러면 TV로 보면 되잖아?”
“직접 봐야만 보이는 것도 있죠.”
억지에 가까운 말이었으나, 메이커는 크게 따지지 않았다. 그가 왜 이곳에 있는 것보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유니콘한테 비밀을 들은 이유는?”
여명은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유니콘을 바라보았다. 이건 아무래도 당사자가 직접 대답하는 편이 나았으므로.
갑자기 시선을 받은 유니콘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말했다.
“마, 마거릿. 이건 오해다! 내가 다 설명할 수 있다….”
“이름으로 부르지 마 새끼야.”
“넵.”
메이커의 본명이 마거릿이었나? 영국의 마지막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동생과 이름이 똑같네? 여명이 그런 생각을 삼키는 사이, 유니콘이 혀를 떨며 설명을 시작했다.
메이커가 처녀라서 그런가, 녀석은 뭐 하나 숨기는 거 하나 없이 조금 전에 있던 이야기를 전부 토했다.
사소한 오해, 구토, 녹색 신, 등등.
그렇게 길다면 긴 설명이 끝난 직후, 메이커가 말했다.
“혼혈 유니콘이 토할 정도라고…?”
여명은 저 녀석이 이상한 거라고 둘러대는 대신, 다른 방향으로 말꼬리를 돌렸다.
“혼혈이요?”
“저 녀석, 젤레 프랑세즈와 유니콘의 혼혈이야.”
“….”
젤레 프랑세즈? 여명은 아마 프랑스 말 품종일 거라고 예상했다. 이름이 불어인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조금 전 유니콘이 한 자기소개 덕분이었다.
-밀랍 산맥 혈족의 요한나 다크가 귀한 분을 뵙습니다…
그녀의 혈족이 언급한 밀랍 산맥은 프랑스가 점령한 변경백령 바로 뒤에 있는 산맥 이름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여명은 고개를 숙인 유니콘을 바라보았다. 자연스럽게 혼혈로 태어난 걸까, 아니면 프랑스의 실험으로 태어난 걸까? 알 수 없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당장 그의 연인들 대부분이 인체 실험으로 태어난 실험실 태생이었고, 무엇보다 태생을 따지는 건 봉건주의의 잔재였다. 현대인이라면 현재의 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해야 하는 법이다.
물론, 그런 여명의 마음을 모르는 유니콘은 뿔을 기울이며 항변했다.
“귀한 분이여. 오해하실까 드리는 말이지만, 저는 호, 혼혈이지만 순혈과 큰 차이는 없습니다…!”
“….”
여명이 자신은 혼혈이어도 별 상관없다고 말하려는 순간, 또 다른 유니콘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처녀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만 빼면 말이지.]시리의 손에 들린 우라간의 손잡이가 그렇게 말하자, 요한나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아, 그런 거였나?’
여명은 그제야 정치인이 유니콘을 타고 다닐 수 있던 비밀을 깨달았다.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유니콘을 데리고 다니면서 깨끗한 척을 했던 거구만.
‘…론이란 양반,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음흉한데.’
여명이 마음속으로 그에 대한 평가를 깎아 먹는 사이, 우라간의 손잡이가 덧붙였다.
[하지만 밀랍 산맥의 요한나여. 부끄러워하지 말라. 유니콘에게 중요한 건 사소한 거짓과 진실이 아닌, 정절을 구분하는 능력 그 자체 일지니…!]내용은 살짝 맛이 가 있었지만, 왕자의 목소리는 근엄하다 못해 위엄으로 가득했다.
“와, 왕자님….”
[요한나. 그대는 정절을 배신한 여성을 처녀라 속인 적 있는가?]“없습니다! 맹세코 없습니다! 저는 10강이 처녀란 사실을 숨겨 달라고 했을 때조차 진실을 말했습니다!”
여명은 메이커 방향으로 돌아가려는 고개를 억지로 붙잡았다. 지금 눈을 마주치면 전기톱에 맞을 거라고, 본능이 말하고 있었으므로.
아무튼, 눈치 없는 유니콘들은 계속 자기들만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렇다면, 그대는 앞으로도 정절을 수호하겠다 약속하겠는가?]“예, 맹세합니다! 저와 어머니의 뿔에 맹세합니다!”
[좋다. 밀랍 산맥의 요한나여. 본인이 직접 그대의 맹세를 보증하겠노라. 그대가 정절을 수호하는 한, 그대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일족이니라!]다음 순간, 번쩍! 우라간의 손잡이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요한나의 뿔을 비췄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신성하고 영롱한 빛이었다.
“아아, 왕자님…!”
요한나는 영롱하게 빛나는 자신의 뿔을 보며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지켜보는 메이커의 표정은 황당 그 자체였지만.
“…내가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여명은 재차 메이커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꾹꾹 관자놀이를 누르다가, 뭔가를 떠올린 듯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여명 동생, 저번에 경매장에서 바이콘의 뿔도 챙겨갔었지…?”
한순간이지만, 메이커의 눈빛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이상한 생각 하고 계시네.
여명은 굳이 반박하는 대신 입을 다물었다. 옳은 행동이었다. 메이커는 특유의 털털함으로 금세 이상한 생각을 털어냈으니까.
“뭐, 됐어. 모카 딕도 생각이 있으니 내버려 둔 걸 테니까.”
“….”
“아무튼, 이 모든 게 우리 동생의 은밀한 잠입 덕분에 생긴 사소한 오해라는 건 알겠어.”
굳이 은밀이란 단어를 강조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여명이 어색하게 웃자, 메이커가 전기톱을 팍! 마구간 바닥에 박아 넣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건 동생이 더 잘 알겠지?”
“예.”
고개를 끄덕인 여명은 역으로 물었다.
“그런데, 이모님이야말로 괜찮으신 겁니까? 엘프를 끌어들인 자작극이라니….”
“아니, 동생, 그러면 안 되지.”
“…죄송합니다. 함부로 입 밖에 내면 안 되는 건데.”
“아니, 그거 말고, 이모. 우리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난다고 이모야?”
“….”
아, 그쪽인가. 여명은 그녀의 활동기간이 자신의 나이보다 길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칭호를 바꿨다.
“예, 누님. 그… 너무 과한 거 아닙니까? 전당 대회에서 테러라니요.”
“그건 정치인 양반이 판단할 일이고. 난 인원 보호만 하면 돼.”
“….”
“같은 의미에서, 동생 처우는 정치인 양반이 판단할 거야. 자, 따라와.”
그렇게 말한 메이커는 마구간의 문을 활짝 열었다. 여명은 물론이고, 경계심 많은 미리조차 그녀를 따라 마구간 밖으로 나섰다.
목소리 속에 담긴 메이커의 호의 때문이기도 했지만, 마구간이 날아온 곳이 어딘지 궁금한 까닭이었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거대한 빌딩 옥상.
호텔인지, 아니면 단순히 사무용 빌딩인지 옥상 풍경만 봐서는 알기 어려웠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보안이 상당하다는 것.
옥상 입구에서부터 군인… 아니, 요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차례차례 메이커에게 경례를 올렸다.
방탄복과 소총으로 무장한 병력이 계단에만 마흔 명. 그중에서 절반 이상이 초인이었다.
거기에 10강까지? 삼 황자조차 이만한 병력의 호위를 받지 못했다. 미국 대통령도 아니고, 고작 사람 하나를 보호하는 것치곤 과했다.
그래, 너무 과했다. 미리와 여명이 메이커가 말한 정치인 양반이 누군지 바로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여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미리 또한 말을 아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건물 복도를 한참 가로지른 메이커는 평범한 방문 앞에서 멈추어 섰다. 쿵쿵! 그녀는 거칠게 문을 두들기며 소리쳤다.
“늦은 시간에 미안한데, 당신 유니콘이 사고를 쳤어.”
곧, 문 너머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요한나가? 들어오게.
메이커는 바로 문을 열었다. 부드럽게 열리는 문 너머에는 한 남자가 거울 앞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끝이 살짝 쳐졌지만 굳건한 눈과 고집이 강해 보이는 눈썹과 코, 그리고 언젠가 사막이 될 걸 암시하는 드넓은 이마와 듬성듬성한 머리카락까지.
남자의 실물을 본 여명은 살짝 주먹을 쥐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외모적으로 아버지보다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평가받는 정치인이자, 현 애리조나 상원의원, 그리고 미래의 미국 대통령이 될지 모르는 남자, 론 매케인이었으니까.
마찬가지로 여명을 마주한 그의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어떤 색의 양복이 어울릴 거 같나? 민주당을 대표하는 파랑색? 아니면 무난하게 검은색?”
“….”
메이커는 이런 헛소리에 익숙한 듯 크흠, 헛기침했다. 그런 메이커의 반응을 확인한 시리가 대답했다.
“저희보다는 스타일리스트의 추천을 받는 게 나으실 거 같아요.”
“당에서 붙여준 스타일리스트는 군인 출신이라는 걸 어필하기 위해 밀랍 산맥 파병군과 똑같은 흰색 양복을 입으라더군.”
“미친놈이네요.”
“동의하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일세. 상대방 후보가 붙여준 스타일리스트거든.”
이건 또 뭔 대화야? 여명의 눈썹이 까딱거리는 가운데, 유니콘의 고삐를 잡고 있던 시리가 살짝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난하게 검은 양복에, 넥타이를 청색, 셔츠를 흰색으로 입으세요.”
“액세서리는?”
“신발은 새것보다 헌 게 좋고, 배지는 딱 민주당 배지 정도만 다세요. 시계는 없거나 싸구려 국내 브랜드로 차시고요.”
“이유는?”
“상대방 후보가 유명한 부자잖아요. 그쪽은 은근히 부유해 보이는 물건만 입고 올 텐데, 의원님 센스랑… 여기 있는 물건들로 비기는 것도 힘들어요. 그러니 아예 승부를 보지 않고, 평소대로 입고 가는 게 낫죠.”
“쓰레기 무장으로 싸우느니, 아예 무장해제하고 나가란 건가. 좋은 조언이군. 새겨듣지.”
“….”
두 사람의 대화를 따라가지 못한 여명이 새삼스레 처제의 얼굴을 바라봤다. 시리가 쑥스러운 듯 볼을 긁적이건 말건, 론 후보는 계속 말을 이었다.
“저번 기자회견 때, 새 변경백이 입던 옷도 자네 작품이었나?”
“예, 저랑 언니가 같이 코디했어요.”
“언니…? 이거, 새 변경백에게는 여자가 많군. 이번 변경백이 아니라, 초대 용사와 닮은 점을 어필하는 전략인가?”
이 대화에서 건질 단어는 딱 하나, 새 변경백이란 단어뿐이었다. 여명이 다시 고개를 돌리자, 단단한 눈동자가 그를 마주했다.
침묵.
서로의 마주 보는 눈동자 속에서 흘러내리던 침묵을 깬 건, 여명이 아닌 론이었다.
“이게 황녀와 제국이 내게 보내는 메세지인가? 왜 그리 허겁지겁 새 변경백 책봉을 서두르나 했더니… 머리 좀 썼군.”
“…?”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샤인이야. 이곳은 미국일세. 내게 접근하려면 요한나가 아니라, 후원회나 인맥을 통했어야지.”
까딱거리는 손가락, 정치인 특유의 자신만만한 미소.
뭔가 오해하는 게 분명한 제스처였다. 여명이 무어라 할 말을 떠올리지 못하는 가운데, 메이커가 푹 한숨을 쉬며 말했다.
“론, 연기 중에 미안한데, 시간 낭비야. 당신 유니콘이 다 불었으니까.”
“…?”
여명은 정치인의 미소가 그렇게 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론 후보는 마치 벼락에 맞은 사람처럼 눈을 크게 떴다가, 허겁지겁 원래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거 참… 인상적이군. 황녀가 똑똑하긴 하다니까.”
“….”
이제 와서 태연한 척해도 늦지 않았나요? 여명 일행 모두가 그런 말을 삼키는 가운데, 론 후보는 계속 말했다.
“총각 하나에 처녀 둘… 거기에 마법이라도 사용한 건가? 요한나가 꼼짝 없이 당할만하군.”
틀린 예측은 또 다른 틀린 예측을 낳았다. 보다 못한 메이커가 말했다.
“아, 다 불었다니까? 혼혈 유니콘이란 사실도 이미 알아.”
“그건 니가 불었잖아!!”
유니콘이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지만, 론 후보의 표정에 금이 가는 건 막지 못했다.
여명은 이때다 싶어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전 황녀의 명령으로 온 게 아닙니다.”
“그러면 뭐, 새 변경백의 입장으로 왔나?”
“변경백 책봉은 아직 안 받았습니다. 정확히는, 받을지 말지 고민하는 중이죠.”
“….”
예상이 다 틀렸다는 걸 깨달은 론은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쉰 뒤, 곧바로 원래 표정으로 돌아왔다. 뻔뻔할 정도의 당당함이었다.
“제국도, 변경백도 아니라면… 자네는 왜 왔지?”
단순히 당신을 보기 위해서- 라고 말할 수 없었던 여명은 살짝 수위가 낮은 말로 대답했다.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 전당대회를 둘러싼 음모가 있다는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왔습니다.”
미리가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괜찮은 대답이었다.
문제는, 론 상원의원이 올턴 주지사와 아는 사이라는 점, 그리고 올턴이 비밀을 말해줄 정도로 친한 사이라는 점이었다.
시카고 차원문을 둘러싼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던 그는, 여명의 말을 곡해했다.
“아, 제국이 아니라 공산주의 때문에 온 거였군.”
“…?”
“그런 거라면 이야기가 쉽지. 빙빙 돌리지 말고 처음부터 그리 말하지 그랬나. 자, 와서 앉게. 미국의 유력 대통령 후보로서, 자네의 말을 경청하도록 하지.”
잠시 말끝을 흐린 론 후보의 눈동자가 차갑게 여명의 얼굴을 꿰뚫었다.
“붉은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