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66)
을 위한 세계는 없다-766화(766/817)
EP.766 도금의 도시, 약탈의 길. (3)
***
아덴만.
유럽에서 출발한 배가 지중해와 수에즈 운하를 거쳐 인도양으로 나가기 위한 관문.
아라비아 반도와 동아프리카 사이, 바브엘만데브 해협 너머에 위치한 이 좁은 바다는 유럽-아시아를 잇는 가장 빠른 뱃길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건 뱃길이나, 지리적 특성이 아니었다.
해적.
먹고 살길이 막막한 아프리카와 중동의 인민들, 본토에서 밀려난 군벌들, 그리고 종말 교단을 섬기는 소말리아의 광신도들까지.
총을 들 줄 아는 자라면 너도나도 배를 타고 아덴만으로 나와 상선을 노렸다. 그 수가 어찌나 많은지, 아덴만을 지나는 배 중 20퍼센트에 달하는 배가 해적을 마주할 정도였다.
이 무역로에 이권이 걸린 프랑스와 필리핀이 군함과 용병 등 군대를 파병했지만, 해적은 여전히 기승을 부렸다.
아무리 좁은 바다라지만 바다는 바다. 아무리 많은 군대가 있어도, 410,000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청색의 무법 지대를 모두 커버하는 건 불가능했으므로.
거기에 더해, 해적들의 무장 수준도 문제였다.
녹색 지옥이라 불리는 남아메리카만큼이나 많은 용병과 군벌이 유입된 끝에, 이곳에는 수많은 총기는 물론이고, 대전차 미사일 같은 중화기, 심지어 초인을 보는 게 어렵지 않았다.
어찌나 전투력이 높은지, 종종 정규군이 해적에게 패배하는 일이 있을 정도였고… 마침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바게트들이 당했습니다.
관측병의 통신이 들려옴과 동시에, 미 해군 5함대 소속 군함의 선두에 서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확인했다.”
남자는 초인을 위해 제작된 망원경을 들어 해적선과 불타는 프랑스 군함을 확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군함을 침몰 시킨 해적선의 크기가 프랑스 군함보다 두 배는 커 보였다.
“해적선치고는 너무 고급스럽군. 함선 분석은 끝났나?”
-예, 방금 식별 완료했습니다. 침몰 중인 프랑스의 배는 프로레알급 호위함, 해적들의 배는 우달로이 II급 구축함으로 보입니다.
“우달로이?”
남자는 팍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소련이 냉전 시절에 만든 군함이었으니까. 소련 해체 이후 온갖 소련제 무기가 민간에 나돌았다지만… 군함이라니. 일개 해적이 운용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다.
“내가 아는 것과 외형이 다른데.”
-위성과 마나 관측을 피하는 특수처리 장갑판을 달아서 그렇습니다.
최신예 장갑판까지 달았다고?
“해적이 소련에서 샀다고 하면… 말이 안 되겠지.”
-예, 아무래도 모스크바가 해적에게 무기를 지원하는 것 같습니다.
미친 빨갱이 새끼들. 이제 와서 냉전을 다시 시작하기라도 할 생각인가?
짜증 나는 일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못할 것도 없었다. 모스크바는 스탈린을 잃었을 뿐, 여전히 강대한 힘을 품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냉전이라니. 서로에게 핵을 겨눈 채 으르렁거리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걸 대체 누가 바란다고.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간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사이, 관측병이 재차 말했다.
-해군 측에서 해적 기지의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서남쪽, 소말리아 연안입니다.
가까웠다. 미 해군 5함대가 이제야 찾아낸 게 이상할 정도로.
남자는 쯧, 혀를 차며 말했다.
“우리 해군 친구들이 평소보다 눈이 느리군. 꼭, 피해가 생길 때까지 기다린 것처럼 말이지.”
-중장님, 이 통신은 5함대 측에서도 듣고 있습니다.
중장이라 불린 남자는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마음에 있는 소리를 그대로 내뱉기엔, 그가 군대에서 지내온 시절이 너무 길었다.
그래서 그는 조금 더 세련된 방식으로 엿을 날렸다.
“그거 알고 있나? 대선 후보 둘 모두가 군축을 주요 정책으로 내놨더군.”
-….
“내 생각에, 고작 해적과 드잡이질 벌인다고 워싱턴의 지엄하신 예산 감축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중장님… 제발.
관측병이 앓는 소리를 하건 말건, 남자는 쿨하게 대답했다.
“전투 시작은 이쪽에서 하겠다. 해군 측의 요구는?”
관측병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저 멀리 배를 버린 프랑스 군인들이 해적을 피해 도망치는 게 보일 때가 돼서야 대답이 돌아왔다.
-프랑스군 구조를 위해 화력을 자제해 주시길 바란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해군 기지는 온전히 해군의 힘으로만 해결하겠다고 했겠지. 안 그런가?”
-예, 그러겠답니다.
이 새끼들은 숨길 생각도 없나. 남자는 푹 한숨을 내쉰 뒤, 마나를 끌어 올렸다.
“30초 후 공격을 시작하겠다. 프랑스 생존 장병들에게 통신을 보내라.”
-예, 중장님.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관측병의 통신을 끝으로, 남자는 거칠게 마이크를 뜯어냈다.
바로 여기 있었군. 냉전 시절로 돌아가길 바라는 놈들이.
짜증을 삼킨 남자는 각도를 설정하고, 무술을 시전했다.
어릴 적, 인상 깊게 읽은 마크 트웨인의 소설에서 따온 진의를 따라 마나가 요동쳤다. 직후, 일렁이는 마나가 머나먼 무기고와 아덴만의 허공을 연결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망원경 너머로 보이던 러시아 군함… 아니, 해적선 바로 위로 미사일이 튀어나왔다.
피터 오스틴 중장, 코드네임 브라우닝답지 않은 거친 공격이었다.
***
엘릭서의 핵심 재료가 표시된 지도.
아폴로 시티 공산당의 대표인 리보프는 그 이상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여명에게 도와줄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떠날 것인지만을 물었다.
여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동료들과 상의해야 한다는 핑계를 댄 뒤, 동료들을 이끌고 공산당 비밀 기지를 떠났다.
-바로 가시는 겁니까?
-여기, 아폴로 시티의 명물인 스팸 파이라도 한 입 드시고 가시죠.
작전 성공 파티를 준비하던 공산당원들이 아쉬움을 표했지만, 여명은 정중한 거절과 함께 당을 떠났다.
어쩔 수 없었다. 엘릭서라니. 그건 미국의 앞마당, 그것도 일개 지역당에서 나올만한 단어가 아니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지?
의문을 품은 여명은 창고 구역에서 멀지 않은 여관을 빌렸다. 낡은 군용 건물을 개조한 곳이었는데, 편리함은 몰라도 보안은 확실해 보이는 곳이었다.
아무튼, 여명은 여관 방문을 닫고 방음 마법까지 친 뒤에야 리보프와 나눈 대화를 일행에게 설명했다.
동료들의 반응은 여명과 다르지 않았다. 모두가 고민하는 가운데, 미리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북부의 비코프와 관계된 거 아닐까요? 피눈물의 환상과 주가시빌리를 모두 가진 그가 엘릭서를 마시면… 제2의 스탈린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여명은 고개를 저었다.
“비코프는 아니야.”
그가 엘릭서를 노렸다면, 성도에서 다른 보물을 챙겼을 것이다. 애초에 동궁정백은 엘릭서보다 병력과 무기를 바랄 확률이 높았다.
“KGB는 아닐 테고, 그러면… 남는 건 모스크바밖에 없네요.”
“….”
소련, 소비에트 연방은 붕괴했지만, 그 시절의 힘을 가진 모스크바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의문이 따랐다. 지난 십수 년간 잠들어 있던 자들이 왜 하필 지금 움직이기 시작했는가?
여명이 운명을 바꾼 탓일까? 아니면 누군가 소련의 재기를 노리나?
알 수 없었다. 이 자리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고.
그래서 여명은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그러니까, 조용히 쭈그러져 있는 라쉬크에게 물었다.
“라쉬크.”
“….”
라쉬크는 사고 친 강아지처럼 슬쩍, 시선을 돌렸다. 여명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며 재차 물었다.
“연금술사로서 말해주세요. 공산주의자가 진짜 엘릭서를 만들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까?”
“어… 잘 모르겠….”
“지도 보자마자 표정 변하는 거 봤어요.”
“…나도 봤소.”
코르부스가 다시 까마귀 모습으로 돌아가며 덧붙였다. 라쉬크는 핑계를 떠올리려는 듯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푹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마 맞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라쉬크는 곧바로 정답을 말하는 대신, 좀 빙 둘러서 말했다.
“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아, 우선은, 엘릭서가 모든 연금술사들이 꿈꾸는 영약인 건 알고 있지?”
“예, 알고 있습니다.”
“수명을 늘리고, 모든 상처를 치유하고, 질병을 예방하고, 심지어 마나까지 늘려주는 영약…. 수천 년 전에 그런 영약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현대 제약회사들은 비슷한 효과를 가진 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 그러니까, 제조법을 알기 위해 이런저런 등신짓을 시도했지.”
“…등신짓이라면?”
“황족한테 레시피를 내놓으라고 협박하거나, 황족을 섬기던 연금술사의 손자를 납치하거나, 스탈린과 엘릭서를 나눠마신 고위 공산당 간부의 피를 뽑아서 연구하거나… 뭐, 그런 짓들.”
“….”
“어쨌거나, 그런 등신짓 끝에 꽤 그럴싸한 제조법을 만들 수 있었어. 별부리미 꽃이나, 세계수 결정처럼 핵심 재료도 밝혀냈고… 물론, 밝혀내지 못한 것도 있는 만큼 완벽한 제조법은 아니었지만.”
여명은 불현듯, 카를로스와 칠레가 만들던 유사 엘릭서를 떠올렸다. 살아있는 엘프를 재료로 삼아 만든 극악한 영약.
미리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서로를 비추는 가운데, 라쉬크가 계속 설명을 이어 나갔다.
“어쨌거나, 밝혀진 재료 중에… 알고도 못 구하는 재료가 하나 있어.”
“알고도 못 구한다? 별부리미 꽃처럼요?”
여명이 10년에 한 번꼴로 꽃을 피우는 영약을 운운하자, 라쉬크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별부리미 꽃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물건이야.”
“대체 그게 뭔데요?”
“생긴 건 평범한 과일이야. 아샤의 언어로는 땅의 기쁨, 지구의 언어로는 서왕모 복숭아라고 불리는 붉은 과일.”
서왕모의 복숭아? 그건 중국 도교 신화에 나오는 과일이었다.
신화 속 서왕모는 불로장생을 관장하는 여신이었는데, 그녀가 키우는 복숭아는 하나를 먹으면 천 년에 가까운 수명을 늘려준다는 전승이 존재했다.
그렇다고 진짜 신화 속 나무를 뜻하는 건 아닐 테고… 여명은 설명을 바라는 눈으로 라쉬크를 바라보았다.
“중요한 건, 그 과일이 300년에 한 번 열릴까 말까 한다는 점이지.”
“300년?”
“뭐, 아샤 쪽 기록에 의하면 그래. 애초에 나무부터가 특정 나무가 지맥의 마나를 흡수해 생긴 변종이거든.”
“그럼 설마, 그 지도에 표시된 게….”
“아마 열매가 열리는 나무일 가능성이 높지. 전부는 몰라도, 엘프 숲에 있는 나무 두 개는 내가 아는 위치랑 똑같았거든.”
라쉬크는 맞지? 라는 감정이 담긴 표정으로 미리를 바라봤다. 그러나 정작 미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긴 한데…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지구인들이 워낙 많은 영약을 도둑질해 가서.”
“….”
괜스레 할 말이 없어진 라쉬크는 크흠, 헛기침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아무튼, 공산주의자들이 엘릭서를 만들려는 건 사실일 거야. 그리고 그 지도를 미국 세관에서 빼앗았다는 건….”
“미국도 이미 만들고 있다고 봐야겠죠.”
미국과 소련이 모두 엘릭서 제조에 관심이 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당장 현대의 부자들이 영약을 밥처럼 처먹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다 오래 살자고 하는 짓이었다.
그리고 엘릭서는 그 정점에 있는 물건이었다. 그 증거로, 스탈린과 엘릭서를 나눠마신 소련의 고위층들은 소련의 붕괴까지 살아남았다.
겸사겸사, 매번 정권이 바뀌는 미국과 자신들을 비교하며 체제의 우월성을 뽐냈고.
어쨌거나, 여기서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여명이 빨갱이들이 엘릭서를 만드는 걸 도와야 하나?
정답은 ‘아니오’였다.
엘릭서가 있으면 좋기야 하겠지. 하나쯤 장만하면 드레이테리얼에서 엘릭서로 세티를 살렸던 때처럼,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게 미국과 싸우고, 진짜 공산주의자들과 손잡을 정도로 가치 있는 일인가 하느냐면, 그건 아니었다.
애초에 여명이 차원문을 넘어온 이유와도 상반됐다. 그는 미국과 싸울 힘을 얻기 위해 엘프 숲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 힘을 얻기도 전에 미국과 대립각을 세운다고? 왜?
훌륭한 장수는 이길 때를 아는 법. 여명이 훌륭한 장수는 아니었지만, 지금이 미국과 싸울 때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뭐, 그래도 굳이 엘릭서 쟁탈전에 참여할 이유가 있다면….
“…라쉬크, 엘릭서 만들어 보고 싶어요?”
여명이 대뜸 그렇게 묻자, 라쉬크가 놀라서 고개를 저었다. 어찌나 빠르게 고개를 내저었는지, 그녀의 분홍색 머리가 물결쳤다.
“만들기 싫어요? 그러면 왜 지도 보자마자 표정이 변했어요?”
“그야…네가 나보고 엘릭서 만들라고 하면 어쩌나 해서….”
“…?”
그녀는 변명처럼 덧붙였다.
“그, 그게, 엘릭서는 한 병 만드는데 아무리 빨라도 7년, 늦으면 20년은 걸리거든. 엘릭서를 제작하는 건 연금술사로서 비할 바 없는 영광이지만… 내 목표는 호문쿨루스 제조잖아?”
“그러면 그냥 안 만들면 되잖아요.”
“…?”
어? 그런가? 라쉬크는 스스로 당황하며 눈을 껌뻑거렸다. 여명은 픽 웃으며 말했다.
“제 부탁을 거절한다는 생각조차 못 한 겁니까? 이야, 완전 을이 다 되셨네.”
“…이런 시발.”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자각한 라쉬크가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명은 계속 그녀의 속을 긁었다.
“훌륭한 을의 자세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노력해 주세요.”
“뭐? 이놈이 진짜… 야! 너 요즘 너무 갑질하는 거 아니야?!”
“뭐, 문제 있어요? 우리 사이에서 제가 진짜로 갑 맞잖아요?”
“….”
라쉬크는 니가 그러고도 공산주의자냐고 소리치려다가, 자신이 여명에게 휩쓸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여명의 뒤통수를 후리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으며 말했다.
“크흠! 아무튼, 괜한 걱정이었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네가 엘릭서에 관심이 없는 건 의외네. 돈과 보물이라면 사족을 못 쓰잖아.”
“…누구요, 제가요?”
“아니야?”
“당연히 아니죠… 저는 가지고 싶은 것만 가져요. 그리고 엘릭서는… 이미 한 번 써본 적 있고요.”
“…뭐?”
라쉬크는 마치 화살에 맞은 사람처럼 움찔, 몸을 굳혔다.
“써본 적 있다고? 엘릭서를?”
“예, 저번에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드레이테리얼에서 세티를 살리기 위해 썼다고. 세티의 피에 엘릭서가 흐른다고 분명히 말씀드렸던 거 같….”
“키스로 엘릭서 먹인 게 농담이 아니고… 진짜였다고?? 야 이 미친놈아! 그걸 누가 진짜라고 생각하겠냐!?!”
“….”
못 믿을 건 또 뭐람.
“저한테는 엘릭서 백 병보다 세티가 중요해요.”
“백 병은 무슨, 이 미친 커플 같으니!! 사람 살릴 용도였으면 몇 방울만 넣어도 되는 건데!!”
아이고, 엘릭서야. 네가 주인을 잘못 만났구나- 라쉬크가 통곡하건 말건, 여명은 일행을 향해 목적을 정리했다.
“아무튼,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을 무시하고 엘프 숲으로 가겠습니다. 이곳 공산당들이야, 한 번 살려준 걸로 충분해요.”
반론은 없었다. 라쉬크가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덧붙이긴 했지만.
“그러면… 가는 길에 있는 땅의 기쁨은 우리가 챙기자. 지도에 표시된 거 다 외워놨어.”
“그새 그걸 다 외웠… 아니, 그걸 굳이 왜 챙겨요?”
“그럼 그런 보물을 보고 그냥 지나쳐? 하나만 암시장에 팔아도 수십 년 치 연구비가 나온다고!”
“….”
누가 돈과 보물을 밝힌다고? 여명은 뚱한 눈으로 라쉬크를 바라보다가, 이내 긴장을 풀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론이 났으니, 최대한 빠르게 엘프 숲으로 떠나면 되리라….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여유는 오래가지 못했다.
똑똑, 여관 문을 두들기는 불청객 덕분이었다.
-저…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여명은 곧장 문을 열고 불청객의 얼굴을 확인했다. 조금 전 공산당 아지트로 그들을 안내했던 젊은 빨갱이 오크. 이름이 펠로였던가.
작은 상자를 들고 온 그는 조심스레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여명은 그에게 문을 내어주는 대신, 냉담하게 물었다.
“우리를 미행한 거냐?”
“미, 미행이라뇨? 제가 무슨 재주로 용사님을 미행하겠습니까? 이곳은 저희 당원이 운영하는 여관입니다. 알고 오신 거 아니었습니까?”
“….”
이놈의 빨갱이들은 대체 어디까지 뻗어있… 아니, 잠깐.
“…용사?”
그걸 어떻게 알지? 여명이 공산당 아지트에서 밝힌 정체는 붉은 별이었지, 용사가 아니었다.
‘이 오크, 뭔가 있다.’
여명은 곧장 혈관 속 무장 혈청을 깨웠다. 일단 팔 하나부터 자르고 비밀을 캐낼 생각이었는데… 그걸 모르는 오크는 아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용사님, 발라구. 기억하십니까?”
“…뭐?”
발라구? 그건 여명과 함께 드레이테리얼에서 싸운 오크의 이름이었다. 설마?
“역시 기억하시는군요. 사실, 제 이름은 펠로가 아니라 페로루입니다. 기억 못 하시겠지만, 마경에서 용사님에게 두 번째 기회를 받았던 부족의 오크입니다.”
“….”
“발라구가 보냈습니다. 복도에서 하기엔 좀 비밀스러운 이야기인지라… 안에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여명은 기꺼이 그에게 길을 내줬다. 이 오크의 말이 사실이건 거짓이건 간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이 처리하기 쉬울 테니까.
아무튼, 안으로 들어온 오크는 대뜸 탁자 위에 상자를 내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스팸 파이입니다. 시장하실 것 같아서 챙겨 왔습니다.”
노르스름하게 익은 파이 생지 사이로, 기름진 스팸이 보이는 파이. 여명이 슬쩍 파이에게서 시선을 돌리는 가운데, 오크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드레이테리얼에서 뵌 분은 수인님뿐이군요. 그, 세티님과 성녀님은 다른 곳에 계십니까?”
이 정도면 진짜 드레이테리얼에 있던 오크가 맞았다. 여명은 그의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대답했다.
“다른 곳에 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고 찾아온 거지? 만약 공산주의 이야기를 하러 온 거라면… 그대로 일어나서, 방 밖으로 나가라. 알려진 것과 달리,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니까.”
오크, 페로루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고 있습니다.”
“…응?”
“저도 공산주의자가 아니지만, 공산주의자인 척 하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딱 봐도 아니시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야 알아주는 사람이 나타났구나! 여명은 오크에 대한 신뢰가 올라가는 걸 느꼈다.
정작 미리는 묘한 눈으로 오크와 여명을 번갈아 바라봤지만… 아무튼, 오크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용사님. 저희 부족이 마법사의 협박 때문에 인신매매했던 아이들… 기억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