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73)
을 위한 세계는 없다-773화(773/817)
EP.773 I hope the Russians love their children too.
끝없는 불신의 장벽을 넘어, 드디어 서방과 우리는 진정으로 같은 믿음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버튼을 누른 순간, 반드시 서로를 파멸시킬 것이란 믿음 말입니다.
[1962년 소련 공산당 간부회 기록 044-404번 단락.쿠바 미사일 사태 보고서를 받은 직후, 니키타 흐루쇼프 위원의 촌평.]
***
시간이 멈췄다.
선명해지는 감각과 달리, 여명의 몸은 딱딱하게 굳었다. 혈관 속 피와 마나조차 정지되는 느낌.
하지만 이런 일을 너무 자주 겪은 덕분인가? 여명은 당황하는 대신, 마음속으로 물었다.
‘누구십니까? 저는 천여명이라고 합니다.’
『오, 이건 또 의외가 아닐 수 없구나. 인사가 아니라 욕부터 한 바가지 할 줄 알았건만.』
우연치고는 시작이 좋군- 작게 중얼거린 목소리는 크흠, 헛기침한 뒤 덧붙였다.
『좋다. 그렇다면 나도 내 소개를 하마. 오랜만에 하는 자기소개라 조금 어색할 수도 있으니, 너그럽게 이해해 주길 바란다.』
‘….’
『나는 광명의 주인이며, 시와 음악, 이성과 진실, 의술과 질병, □□와 신탁을 주관하는 자다. 거룩한 델포이와 델로스의 제물을 받는 자이며, 곡물을 영글게 하는 온기이고, 퓌톤의 숨을 끊은 궁사이다.』
골이 울릴 정도로 웅장하고, 위엄찬 목소리. 하지만 마무리가 좀 이상했다.
『신전에 찾아온 자여, 그대에게 내 이름을 부를 영광을 허락하노라. 그대는 나를 빛나는 □□□라 부르라.』
‘…?’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소개한 순간, 마치 노이즈가 낀 것처럼 단어가 뭉개졌다. 여명은 이게 뭔가 싶었지만, 당황하긴 목소리도 마찬가지였다.
『□□□, □□□□… 이것도 안 되는군. 그러면 그냥 나를 □□라… 제기랄. 뭐 되는 게 없군.』
‘….’
『□□□, □□□… 아폴로 시티. 아, 이 염병할 건 된다 이거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쉰 목소리는 구시렁거리듯 말했다.
『그대는 나를 아폴로 시티의 수호신이라 불러라.』
‘다시 말씀드리지만, 천여명입니다.’
『나를 섬기던 땅의 이름은 아니로구나. 이름 말고 뭐… 부르기 쉬운 칭호 같은 건 없느냐?』
칭호? 여명이 가장 먼저 떠올린 건 미그니움의 간택자란 단어였지만, 아쉽게도 그 칭호를 언급하는 일은 없었다.
다음 순간, 목소리가 이렇게 말했으므로.
『이건… 너무 많군. 특히 여자 관련으로.』
‘….’
『그냥 들은 걸로 치고, 그대라고 부르겠다.』
뭔 개소리야. 여명은 반사적으로 목에 힘을 줬다. 그리자 놀랍게도, 정지된 몸이 움직였다.
번쩍! 태양의 빛이 여명의 몸을 뒤덮는 것과 동시에, 그의 고개가 뒤로 향했다. 마치 늪 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느릿했지만, 확실하게.
그리고 다음 순간. 목소리의 주인과 마주한 여명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찌푸렸다.
『왜, 내 모습이 그리 흉측하더냐?』
‘….’
목소리, 그러니까 자칭 아폴로 시티 수호신의 모습은 흉측했다. 정지된 시간 속에서 움직였다는 놀라움이 머릿속에서 지워질 정도로.
그는… 가장 온건하게 표현해도 무덤에서 파낸 시체처럼 보였다.
이미 반쯤 사라진 팔다리는 뼈가 다 드러나 있었고, 기다란 천옷 사이로 드러난 배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개중에서 가장 흉측한 건 얼굴이었는데, 미남이 분명했을 얼굴은 절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신이라기엔 너무나 처참한 모습.
‘미국이… 당신을 그렇게 만든 겁니까?’
여명이 조심스레 묻자, 토막 난 신이 반만 남은 얼굴로 피식 웃었다.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
애매모호한 대답이었다. 여명이 재차 질문하려 했으나, 수호신이 먼저 말을 돌렸다.
『그보다, 벌써 신성을 두르는 법을 익혔군. 내가 할 일이 줄었어.』
‘신성을 두르다니, 그게 무슨 말….’
그 순간, 움찔! 여명의 몸이 다시 정지했다. 수호신은 의아한 얼굴로 여명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뼈가 드러난 손이었음에도, 그의 손바닥은 따스했다.
『아직 다 익힌 건 아니로구나. 주가시빌리를 너무 자주 쓰다 보니 본능적으로 알게 된 건가?』
‘예?’
『이러니저러니 해도 주가시빌리의 근본은 살기의 신성. 결국 신성을 쓴다는 점에서 신의 힘을 휘두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잠깐, 그러니까 당신, 아니, 수호신께서 하시는 말은… 신성을 쓰면 이 멈춘 시간 속에서 움직일 수 있다, 그 말이십니까?’
『그렇다.』
여명은 곧장 케프리의 이름을 불렀다. 다음 순간, 번쩍! 조금 전보다 더욱 선명한 햇빛이 터져 나오며 그의 몸을 덮었다. 그리고 수호신의 말마따나, 정지된 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부위가 움직인 건 아니었다. 움직인 건 절반을 살짝 넘는 정도에 불과했다. 심장은 움직여도 우측 혈관은 멈춰 있거나, 양 눈동자 중 왼쪽만 움직인다든가 하는 식이었다.
덕분에 혈관이 역류하며 피가 터지거나, 눈의 초점이 망가졌다. 하지만 그래도 움직이는 건 움직이는 거였고, 여명은 한결 나은 자세로 수호신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한쪽만 남은 손으로 손뼉을 치고 있었다.
『멋진 재능이군. 당장 내일 화신이 돼도 이상하지 않겠어.』
‘…화신?’
『걱정 마라. 한동안은 그럴 일 없을 테니.』
나중에는 그럴 일이 있다는 말로 들렸다. 불길함 예감이 여명의 등을 쓸고 지나가는 가운데, 수호신은 반쪽짜리 박수를 멈춘 채 신전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질문할 게 많은 표정이로군. 일단 따라오겠나?』
여명은 정지된 일행들의 얼굴을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자칭 수호신은 반만 남은 다리로 저벅저벅 신전 계단을 오르며 물었다.
『그대는 어쩌다 이곳까지 오게 되었지?』
“그… 빨갱이들의 비밀 통로를 찾다가 오게 되었습니다.”
『아, 그 열심히 사는 친구들. 녀석들이라면 이곳을 오가는 게 맞다. 비밀 통로보단 무기고란 표현이 더 어울리긴 하지만.』
무기고… 직설적이지만, 사실적인 표현이었다. 여명은 버려진 공군 기지를 보며 말했다.
“…미군은 이런 곳을 왜 버린 겁니까?”
『버린 게 아니고, 숨긴 거다. 부끄러운 일기장을 덮어버리는 것처럼,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오를 콘크리트와 철근 아래 파묻어 버린 거지.』
‘….’
『그리고 그 과오란, 나를 말하는 거고.』
미국의 과오라니. 여명은 무례한 질문을 참고, 최대한 정중하게 물었다.
“…대체 당신께서는 정체가 뭡니까?”
토막 난 수호신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식으로 지어진 신전 내부로 걸어가, 세발 솥처럼 생긴 의자에 앉은 뒤에야 입을 열었다.
『자기소개는 아까 했지만… 그대가 원하는 대답은 이쪽이겠군. 이곳에선, 아샤와 지구가 같은 하늘을 공유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실험이 있었다.』
‘….’
『그리고 보다시피, 나는 아샤에 떨어진 지구의 신이다. 실험 결과가 어땠을 것 같나?』
“반만… 성공했군요.”
수호신은 미소 지었다. 얼굴의 반절이 날아갔음에도, 참으로 멋진 미소였다.
『정확히는, 4할 정도 성공했다. 나는 이 땅에 떨어졌지만, 온전히 떨어지진 못했다. 처참하게 조각난 나의 신성 속에서 미국인들이 챙겨갈 수 있던 건, 내가 관장하는 신성의 일부와 이름… 그리고 씨앗 정도지.』
“….”
지금 남은 몸은 6할 정도 된다는 소리였다. 여명은 조금 먹먹한 눈으로 그를 마주했다.
“유감입니다. 제게 깃드신 신도 비슷한 일을 겪으셨기에, 그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압니다..”
『그대는 감히 신을 동정하느냐?』
“악행을 당한 피해자에게 동정심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고 배웠습니다.”
그러자 수호신이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신과 어린아이를 똑같이 동정하다니. 오만하기 짝이 없는 선의로구나.』
“….”
『하지만 공평하군. 아주 공평해… 그가 그랬던 것처럼.』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린 수호신은 뭔가를 떠올린 듯 갑자기 피 묻은 옷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녹색 나뭇잎이 붙은 나무가지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그대의 공평함을 치하하는 의미에서, 제안을 하나 하마. 천여명, 조금 전에 말했듯, 나는 신탁의 신이기도 하다. 정확한 □□은 알려 줄 수 없지만… 신탁을 내려주마.』
정확한 □□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신의 신탁이라는 건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다. 여명은 감사히 받겠노라 말하는 대신, 역으로 물었다.
“제가 신화에 밝지는 않지만, 신탁에는 대가가 필요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습니다. 이 제안의 대가가 무엇입니까?”
여명은 당연히- 미국의 과오를 폭로하는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수호신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의 예상과 정반대였다.
『미국의 과오를 누구도 알지 못하게, 이 공군 기지를 부숴다오.』
“…?”
『의외인가? 하지만 난 내가 원해서 이 땅에 떨어졌다. 비록 이런 꼴이 됐다 해도, 이곳에 있는 건 나의 의지이며, 이곳을 숨기는 것 또한 나의 의지이다.』
“….”
『다른 누구도 아닌, 빨갱이들에게 나의 추락이 폭로되는 건 막고 싶다. 그러니 내 신전과 이곳을 전부 부서라. 그대에게도 이득이 되는 일일 거다.』
“무슨 이득 말입니까?”
『여기서부터는 유료다.』
“….”
여명이 무례한 표정을 참기 위해 애쓰건 말건, 수호신은 느긋하게 말했다.
『공평함을 위해 덧붙이자면, 이 제안을 거절해도 난 그대에게 어떠한 보복도 하지 않겠다.』
갑작스러운 만남만큼이나,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멈춘 시간 덕분에 숙고할 시간이 많아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여명은 잠시 심사숙고한 뒤 물었다.
“…저와 만난 건, 순전히 우연입니까?”
『우연이다. 운명이 그대를 내게 보낼 리 없으니.』
당연하다 못해 확신으로 가득한 말. 여명은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운명에 대해 잘 아십니까?”
『잘 안다. 나는 그대가 운명이라 부르는 존재에게 동조하는 신이니까.』
“….”
여명이 움찔, 놀랐다. 하지만 수호신은 나뭇가지를 휘휘 저으며 말했다.
『뭘 놀라느냐? 운명이 이 세상을 주무르는걸, 모든 신들이 반대하는 줄 알았느냐?』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예, 그럴 줄 알았습니다.”
『운명에 저항하는 게 모든 별의 뜻은 아니다. 침묵하는 동조자들과 포기한 자들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적극적인 동조자도 있는 법이지.』
“….”
『이 이상 말하는 건 그대의 선택을 방해하는 일이 되겠구나. 잡담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다. 자, 어쩌겠느냐? 나의 제안을 받겠느냐?』
여명은 고민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탁을 받겠습니다..”
***
여명이 신탁에 대해 아는 건, 옛 종교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 본 정보가 전부였다. 사제들의 목욕 방법, 의복, 제례 음식, 기도법 등 사소한 정보들.
아쉽게도, 이 자리에서 그 정보는 별 쓸모가 없었다.
『복잡한 의식은 생략하겠다.』
“저 때문이라면 꼭 그러지 않으셔도 됩-”
『난 여사제가 아니면 싫다.』
“….”
너무나 직설적인 이유였다. 여명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최대한 축약해서, 패리노스만 내는 것으로 하지.』
“패리노스요?”
『세금.』
“….”
뭔가 상상과 다른데. 여명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인벤토리에서 황금을 꺼냈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양으로. 기왕 복비(?)를 내는 거, 확실한 편이 나았으니까.
마경, 드레이테리얼, 미국, 성도, 심지어 종말 교단 창고에서 훔쳐 온 금까지.
온갖 금괴와 금화를 가득 모아 신전 바닥에 내려놓은 여명은 슬쩍 수호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반만 남은 그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러나 정작 여명은 뭔가가 부족하다는 감상을 느꼈는데, 그는 곧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음식이 없네.’
한국인이란 본디 밥의 민족. 신께 바치는 예물에 밥이 없는 게 말이 되는가?
여명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라날을 위해 준비한 간식과 과일, 그리고 얼마 전 천막에서 아이들을 위해 만든 샌드위치 한조각을 황금 더미 위에 올려놨다.
하지만 의외로 수호신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는 다른 것도 아닌 샌드위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빵 쪼가리는 빼라.』
그의 샌드위치를 싫어하는 사람… 아니, 신은 처음이었기에, 여명은 살짝 놀랐다. 그리고 이어진 수호신의 말에 한 번 더 놀랐다.
『충고하건대, 죽음을 섬기는 자들에게 그 빵을 나눠주지 말라. 알겠느냐?』
“….”
이미 중독될 정도로 줬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그가 슬그머니 샌드위치를 치우자, 수호신이 만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왕과 황제만이 이만한 황금을 바치는 법. 그대에겐 지배자의 자격이 있다.』
신이 딱! 뼈만 남은 손가락을 튕기자, 막대한 금이 그대로 사라졌다. 여명의 인벤토리와 아주 비슷한 힘이었다.
어쨌거나, 세금을 받은 수호신은 나뭇가지로 여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알고 싶은 바를 말하라. 그대는 이 월계수의 잎사귀 수만큼 답을 얻을 것이다.』
여명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나뭇가지를 확인했다. 월계수 잎은 다섯 잎. 즉, 질문도 다섯 개란 말이었다.
의외로 넉넉하네.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여명은 두 손을 모으며 공손하게 물었다.
“제가 닉슨과 싸우게 될까요?”
수호신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신전의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때, 금이 간 천장 사이에서는 은은한 빛이 내려와 그를 비췄다.
『그대가 운명과 싸운다면, 그리될 것이다.』
애매하기 짝이 없는 대답. 수호신이 나뭇가지의 잎사귀 하나를 뜯어내는 가운데, 여명은 곧바로 다음 질문을 던졌다.
“…닉슨을 이길 방법은 무엇입니까?”
『너무나 많은 길이 있다. 노란 돌을 터트려도 되고, 붉은 성을 점령해도 된다. 황제의 곁으로 가도 되고, 신의 곁으로 가도 된다. 하지만 진정 닉슨을 이기는 것이 너의 목적인가? 고민하라. 네가 원하는 길은 좁디좁은 길뿐이니, 너 혼자 피를 흘리고자 한다면, 운명과 검을 맞대는 고된 길을 걸어야 하리라.』
노란 돌과 붉은 성…? 옐로우 스톤 국립 공원을 말하는 건가? 그러면 붉은 성은 크렘린이고? 애매한 건 둘째 치고, 전쟁을 하라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여명은 살짝 항변했다.
“그, 대답과 비유가 제가 기대한 것과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신탁이란 그런 것이다. □□가 있었다면 더 정확했겠지만, 그 힘은 지금 차원문 너머에 있다.』
“….”
하긴, 다섯 신께서 내려주는 성녀의 예지조차 미래를 확정하지 못하는 판 아닌가. 여명은 조금 기대를 덜어 놓으며 말했다.
“지금 운명은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그와 정면으로 싸우기 위해선 어디로 가야 합니까?”
『운명은 일곱 언덕 중 가장 신성한 언덕, 시대를 박제한 곳에 있다.』
“….”
시대를 박제해?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조금 전 비유도 그렇고, 신앙 전문가인 성녀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쨌거나, 덜컥 세 개의 질문을 써버린 여명은 조금 진지하게 다음 질문을 내뱉었다.
“제가… 아이들을 구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잎사귀를 떼어내던 수호신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역으로 질문했다.
『어느 아이들을 말하는 것이냐? 이 도시의 아이들? 거름이 될 아이들? 그것도 아니라면, 이 세계의 모든 아이들? 제대로된 신탁을 듣고 싶다면, 범위를 좁혀라.』
“….”
예상 외의 조언이었다. 여명은 자신도 모르게 모든 아이들이라고 대답할 뻔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오만이었다. 그는 산타가 아니었고, 전 세계의 아이들을 구하기엔 그가 가진 힘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물었다.
“이 시대에 희생될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선 뭘 해야 합니까?”
수호신과 나눴던 그 어떤 말보다도 진지한 질문. 수호신은 반만 남은 눈썹을 으쓱이며 대답했다.
『주인공을 위한 황금 위에 답이 있다. 이 시대의 가장 강한 실패자의 발자국 뒤에 답이 있고, 총의 정신을 가진 자들의 어깨 옆에 답이 있으며….』
살짝 흐려지는 말끝,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월계수 잎.
신전의 천장에서 흘러든 빛이 여명을 비추는 가운데, 토막 난 신의 목소리가 여명의 가슴을 찔렀다.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전당대회에 답이 있다.』
어째서일까, 여명은 수호신의 마지막 말을 해석할 수 있었다.
서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