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74)
을 위한 세계는 없다-774화(774/817)
EP.774 I hope the Russians love their children too. (2)
***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전당대회…?’
그건 비유도 뭣도 아니었다. 붉은 깃발을 상징으로 삼는 당은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이었으니까.
소련 공산당.
그리고 미국에도 전당대회가 있듯, 소련에도 전당대회가 있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서방과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의회, 행정부, 사법부의 삼권분립이 이루어진 서방과 달리, 소련은 하나의 당이 국가의 모든 걸 지배했으니까.
하나의 연방, 하나의 당… 단 한 명의 서기장.
거기까지 생각한 여명은 이빨을 꽉 깨물었다. 단순히 서기장의 권력 때문이 아니라, 공산당대회란 이름 속에 숨겨진 무게감 때문이었다.
스탈린 실종 이후 마지막으로 열린 29회 공산당대회를 끝으로, 공산당대회는 열리지 않았다.
연방은 무너졌고, 당은 해체되었다.
그런데 전당대회를 열라고? 그건 소련과 공산당, 그리고 서기장의 부활을 뜻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서기장.’
여명은 몇 번이고 그 단어를 되뇌었다. 묵직한 돌을 삼킨 것처럼 가슴이 무거웠다. 마치 온 세상이 자신에게 서기장이 되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주먹을 쥐락펴락하던 여명이 짝! 자신의 볼을 때린 까닭이었다.
눈앞이 번쩍이는 충격 속에서, 여명은 날카롭게 정신을 세웠다. 아직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신탁은 방향을 제시할 뿐, 선택권은 여전히 그에게 있었다.
그리고 여명은 서기장 같은 건 될 생각이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자, 마지막 질문이다. 부디 신중하게 사용하도록.』
고민이 끝났다는 걸 눈치챈 걸까, 수호신은 월계수 잎이 하나 남은 나뭇가지를 흔들며 말했다.
여명은 바로 대답하는 대신, 두 가지 질문을 고민했다. 스탈린은 지금 어디 있는지, 혹은 새로운 변경백 자리를 받아야 하는지.
하지만 여명은 둘 중 어느 질문도 꺼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위한 질문을 고이 접어 넣었고, 신전 바깥을, 정확히는 처제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여명은 자신이 아닌 처제를 위한 질문을 꺼냈다.
“제 처제, 오시리와 이시스의 신격을 찾고 싶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던 걸까, 수호신의 하나 남은 눈썹이 찌그러졌다.
『진심으로 하는 질문이더냐?』
“예, 진심입니다.”
『…좋다. 질문을 선택하는 건 내가 아니라 그대이니. 존중하겠다.』
그렇게 말한 수호신은 너덜너덜한 고개를 젖혀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후우- 깊게 숨을 들이쉰 뒤 말했다.
『명계의 여신이 베푸는 생명도, 죽음의 신이 내리는 판결도 모두 삶의 끝에 있다. 그대가 삶의 끝자락으로 가는 날, 그들은 이름을 되찾을 것이다.』
“삶의 끝자락이라면…? 죽어야 한다는 겁니까?”
『신탁의 해석은 나의 영역이 아니다.』
깐깐하시네. 쓴웃음을 삼킨 여명은 조금 전까지 들은 신탁을 기억 속에 새긴 뒤, 수호신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러웠지만, 고마웠습니다.”
『고마워할 필요 없다. 이건 공정한 거래이니.』
수호신은 잎사귀가 다 떨어진 월계수 나뭇가지를 품에 갈무리한 뒤, 의자에서 일어났다. 쓸쓸히 신전 내부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던 여명은, 이렇게 물었다.
“뭔가, 부탁하실 건 없으십니까?”
『있었다.』
“…?”
『내 아들을 살려 달라 부탁하려 했지만…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보니, 그럴 필요 없을 것 같구나.』
신의 아들? 여명이 불현듯 세 번째 대행자를 떠올리는 사이, 수호신의 모습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자, 가거라. 이 시대의 용사여, 태양이 그대를 축복하노라.』
그리고, 정지된 시간은 다시 움직였다.
***
“뭐, 뭐야. 너 왜 거기서 나와?”
라쉬크는 신전에서 걸어 나오는 여명을 보며 눈을 껌뻑거렸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녀에게는 코앞에 있던 여명이 갑자기 신전에서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였을 테니까.
그에 비해 시리나 듀크 중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시리야 신성을 품고 있어서 그렇다지만, 듀크의 반응은 의외였다.
-뭘 보고 왔는지 물어도, 대답하지 않겠지?
여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게 약속하고 와서요.”
-그럴 줄 알았다. 그러면 이제 뭘 하면 되지?
여명은 수호신의 신전을 보며 말했다.
“이 신전을 파괴할 겁니다. 겸사겸사, 이 공군기지도.”
-불태울 거냐?
“아뇨, 조금 더 온건한 방법을 쓸 겁니다. 괜히 불을 질렀다가, 화약이 터져서 도시 지반이 무너지면 큰일이니까요.”
그러자 듀크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도시 지반이 무너진다… 빨갱이들이 들으면 좋아할 이야기로 들리는데.
“…빨갱이들이 아무리 미쳤어도, 그런 짓까지 벌일까요?”
공군 기지 위 지반은 도심지였다. 그런 곳의 지반을 터트린다면… 가장 긍정적으로 예상해도, 천 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나올 게 분명했다.
전쟁도 아니고, 테러로 천 명?
미국과 전쟁이라도 벌일 생각이 아니고서야, 저지를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 아폴로 시티에 있는 사람 대부분은 공산당의 지지자인 노동자 아닌가.
여기서 무기나 챙겨갔으면 챙겨갔지, 지반을 무너트리는 미친 짓은 벌이지 않으리라.
하지만 듀크의 의견은 달랐다.
-그런 짓? 더 한 짓도 할 수 있다.
“….”
-천여명,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절대, 절대로 상식을 바라지 마라.
그건 냉전의 최전선에 있던 군인의 말이었다. 여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피의 신이니, 핵미사일이니 하며 공산주의자가 벌인 미친 짓을 그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면 겸사겸사, 이곳을 무너트리지 못하도록 해야겠군요.”
“그런 게 가능해?”
이해하는 걸 포기한 듯, 바닥에 쪼그려 앉은 라쉬크가 물었다. 여명은 공간의 크기를 가늠하며 말했다.
“대충 산 하나쯤 깎아서 채워 넣으면 되지 않을까요?”
“…?”
“그러고 보니, 도시 뒤쪽에 쓸만한 산이 하나 있던 걸로 기억… 라쉬크, 왜 그런 눈으로 봐요?”
“아니, 그냥… 네 또라이 소리에 적응하는 나 자신이 신기해서.”
“….”
라쉬크의 원래 시나리오를 아는 여명은 애써 쓴웃음을 삼켰다. 아카데미에 독을 뿌리고, 히로인을 중독시키는 역할이었던가.
여명은 굳이 라쉬크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대신, 짝! 그녀의 등짝을 후려치며 말했다.
“헛소리 말고 일이나 시작하죠.”
“일은 무슨, 야! 나 연금술사야! 연금술사! 나 같은 귀중한 엘리트를 고작 건물 부수는 데 쓰겠다고?!”
“아뇨, 신전 부수는 건 1분이면 끝나요. 라쉬크는 중령님과 같이 이 주변 지형을 확인해 주세요.”
1분? 라쉬크는 그리스식 신전과 여명을 번갈아 봤다.
“너 혹시, 그… 기사단장의 무술로 부술 생각은 아니지? 여기 무너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고 한 건 너였-”
다음 순간, 여명은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의 인벤토리 속에 잠들어 있던 50톤짜리 전차가 허공에 튀어나오더니, 그대로-
쿠웅!!!
신전 지붕과 충돌했다. 돌기둥 위에 지붕을 올려놓는 구조로 지어진 신전은 버티지 못하고 꽈드득- 뭔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무너졌다.
“야, 이 미친 새ㄲ-”
라쉬크가 쏟아지는 먼지를 보며 기겁했지만, 여명은 개의치 않고 전차를 회수했다. 그리고 또 한 번 쿵! 무너진 신전 위에 전차를 떨어트렸다.
쿵, 쿵, 쿵!
신전의 잔해가 먼지가 되고, 전차가 고철이 될 때까지 정확히 1분. 마지막으로 염동력을 펼쳐 신전 잔해마저 밀어낸 여명은 탁! 먼지 묻은 옷깃을 털며 말했다.
“자, 이제 가실까요?”
“….”
보호막을 펼쳐 먼지와 파편을 막아낸 시리와 달리, 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쓴 라쉬크는 콜록, 기침을 토하며 말했다.
“…너, 언젠가 노동법 위반으로 고소할 거야.”
“일은 제가 다 했는데 노동법이 왜 나옵니까?”
“빨갱이들은 노동법부터 찾는다고 내 거래자가 말했-”
그때, 듀크가 갑자기 총을 꺼냈다. 철컥! 소총의 안전장치를 푸는 소리가 울리고, 라쉬크가 화들짝 놀라 물러났다.
“노, 노동법 이야기는 안 할게요!”
그녀의 주접과 상관없이, 듀크는 냉담한 눈으로 일행이 걸어온 방향과 반대편 어둠을 노려봤다.
-누군가 온다.
여명은 그의 말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예민한 감각 사이로, 작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듀크처럼 긴장하지는 않았는데, 발소리만으로도 상대가 초인이 아니라는 걸 파악한 덕분이었다.
물론, 장소가 장소인 만큼 빨갱이일 가능성이 높았지만… 여명이 상대를 붙잡을 염동력을 준비하는 순간.
번쩍! 어둠 저편에서 손전등 불빛이 켜지며 다가오던 사람- 아니, 오크의 얼굴을 드러냈다.
“여, 여기서 뭐 하고 계시는 겁니까?”
“그건 내가 역으로 묻고 싶은데. 페로루.”
공산당 내부에 잠입한 오크. 키란 씨족의 페로루는 복잡한 얼굴로 여명과 얼굴을 마주했다.
그는 대답을 고민하듯 입술을 씰룩이다가, 박살 난 신전을 보곤 눈을 크게 떴다.
“신전! 신전을 부수신 겁니까?”
대답한 건 여명이 아닌, 총을 겨눈 듀크였다.
-그래, 우리가 신전을 부쉈다. 알았으면 질문에 대답해라. 왜 여기 온 거냐.
“그건….”
-머리에 구멍이 나기 싫다면, 솔직하게 대답하는 게 좋을 거다.
뒤늦게 듀크의 총구를 발견한 페로루는 꿀꺽, 침을 삼킨 뒤 말했다.
“저, 저도 그 신전을 파괴하러 왔습니다.”
-뭐?
“미, 믿어줍쇼! 여기, 신전을 부수기 위한 폭탄도-”
-정지! 품에 손 집어넣지 말고 손 올려!
듀크가 버럭 소리 지르자마자, 페로루가 기겁하며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듀크는 슬쩍, 여명의 얼굴을 확인하며 말했다.
-확인하겠다.
여명은 고개를 끄덕였고, 듀크는 페로루에게 다가가 그의 품을 뒤졌다. 곧, 낡은 노동복 사이로 동그란 원통형 다이너마이트 다발이 줄줄이 끌려 나왔다.
듀크 중령은 잠시 다이너마이트를 살펴본 뒤, 자신의 허리춤 주머니에 다이너마이트 챙겨 넣으며 말했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지만… 광산용 다이너마이트로 건물을 부수는 건 위험한 행동이다. 다음부터는 발파용 폭탄을 가져오도록.
“예? 예….”
정작 페로루는 총구를 보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듯 눈치였다. 여명은 오크에게 다가가 물었다.
“페로루, 여기는 어떻게 온 겁니까?”
“그, 외부에서 온 당원들이 최근 이곳을 들락거리는 게 걸려서… 뒤를 쫓다가 알게 됐습니다.”
“그러면 신전을 부수려고 한 이유는?”
페로루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라쉬크와 시리, 그리고 듀크를 차례대로 바라봤다.
마치 이 사람들을 믿을 수 있냐는 듯한 눈짓이었고, 여명이 믿을 수 있다는 뜻을 담아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오크는 입을 열었다.
“당원들이… 이 신전에서 이상한 걸 가져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걸 막으려고….”
-이상한 걸 막아? 이 공군 기지의 무기들은 괜찮았나 보지?
“무기는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신전에서 가지고 나오는 건… 달랐습니다. 그건… 너무나 기괴했습니다.”
“기괴했다고요?”
“예, 단단하게 밀봉된 커다란 직사각형의 상자였는데… 몰래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입술이 달달 떨리고, 식은땀이 날 정도였습니다.”
“….”
“그게 뭔지 알 수 없었지만, 이 도시에 그런 걸 가져오게 내버려 둘 수 없어서….”
-그래서 공산당을 배신하고 폭탄을 가져왔다, 이거냐?
듀크가 다시 총구를 들이대며 묻자, 페로루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건… 아니, 설마… 그럴 리가 없는데….
중령은 뭔가 아는 눈치인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여명은 그를 방해하는 대신 페로루에게 물었다.
“페로루, 당신이 공산당 내부를 감시하고 있다는 건 가두두에게 들었습니다. 한데… 왜 여태껏 공군 기지에서 무기를 빼가고 있다는 걸 말하지 않은 겁니까?”
“그건….”
오크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제가 진짜 공산당원이라서 그렇습니다.”
그의 고백을 들은 여명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걸 믿어준 유일한 사람이 사실은 진짜 공산주의자였다니!
역시 빨갱이는 믿을 게 못 된다- 그가 속으로 배신감을 곱씹는 사이, 시리가 여명을 대신해 물었다.
“오크들을 배신한 건가요?”
“배신… 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크의 미래는 공산당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공산당을 빨아주던 지식인들은 다들 그렇게 지껄이곤 했지.
듀크가 이죽거렸지만, 페로루는 굴하지 않았다.
“저는 그런 지식인들보다 부족한 오크지만… 제가 틀렸다는 것 정도는 압니다. 예, 저는 거짓에 속아 눈이 멀었습니다. 저는… 리보프 위원이 진정으로 아폴로 시티의 노동자를 도우러 온 볼셰비키-레닌주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볼셰비키-레닌주의?”
시리의 질문에 대답한 건, 듀크였다.
-트로츠키주의의 다른 말이다. 이 새끼. 공산당 내부 이단아였군.
“…트로츠키주의?”
그건 여명도 아는 단어였다. 스탈린과 레닌의 후계자를 두고 싸웠던 혁명가, 레프 트로츠키가 재창한 공산주의 이론.
하지만 트로츠키는 스탈린에게 패배해 실각, 암살당했다.
그리고 패배자의 이론이 언제나 그러하듯, 스탈린이 지배하는 공산주의에서 트로츠키주의는 ‘이단’ ‘사문난적’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당장 스탈린부터가 마음에 안 드는 정치인을 ‘트로츠키주의자’로 몰아 숙청했었고, 스탈린 실종 이후 공산당 지도부들이 서로를 향해 가장 많이 한 비난이 ‘트로츠키주의자’ 였을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할까?
아무튼, 그것과 상관없이 소련과 정 반대편 미국의 공산주의자가 트로츠키주의자라니… 아니, 그래서 트로츠키주의자가 될 수 있었던 건가?
여명이 신기한 눈으로 오크를 바라보는 사이, 듀크가 물었다.
-리보프란 녀석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왜 트로츠키주의자로 생각한 거냐? 소련 공산당 소속이라면 마르크스-레닌주의… 그러니까 스탈린주의를 믿는 게 당연한데?
“그건….”
페로루는 이번에도 망설였다. 구경하던 라쉬크가 뭘 들어주고 있냐고, 빨리 자백제나 먹이자고 말하려는 찰나, 그가 여명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붉은 별… 당신은 트로츠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왜 하필 나한테 그런 질문을? 여명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스탈린에게 패배한 자.”
“그게 전부입니까?”
“공산주의 이론을 묻는 거라면, 사람 잘못 찾았어. 저번에도 말했듯,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야.”
“그렇습니까….”
짧게 말끝을 흐린 페로루는,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리보프, 저는 그를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모스크바가 아닌 아샤에서 자란 공산주의자였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무엇보다?
“…레프 트로츠키의 친손자입니다.”
***
같은 시각. 아폴로 시티의 미군 감시탑.
감시탑 난간에 기댄 한 남자가 머나먼 비료길를 보며 말했다.
“한 명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의 질문에 대답한 건 대행자에게 더그 대위라 불린 미군이었다.
“한 명이었다. 오늘 아침까지는.”
“…아하, 내가 올 때가 되니, 하나가 갑자기 다섯으로 불었다?”
남자의 말마따나, 저 멀리 비료길에서 트럭을 박살 내고 있는 초인은 최소로 잡아도 다섯 명이었다. 더그 대위는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대답했다.
“저 녀석들이 스스로 밝힌 조직 이름은 파순과 범죄자들이다. 한 명이 아니라는 건 미리 예측했어야지. 히어로는 그런 기본적인 사고도 못 하나?”
“….”
“아니면, 막상 적을 보고 나니 두려운가? 히어로?”
노골적으로 비꼬는 말투. 남자는 사람 좋은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두려움이라니? 내가 걱정하는 건 군의 자존심이야. 군은 한 놈도 처리하지 못했는데, 내가 덜컥 다섯을 처리하면… 언론이 뭐라고 말하겠나? 응?”
“….”
한 방 먹은 더그가 정색하고, 감시탑의 미군들이 눈치를 보건 말건, 남자는 탁, 탁- 줄무늬 올빼미처럼 무늬가 새겨진 코트의 먼지를 털었다.
“그러면, 내가 녀석들을 정리하는 동안 잘 구경하고 있게. 더그 대위.”
“…혓바닥에 걸맞은 실력이 있기를 바라지. 히어로.”
히어로라 불린 남자는 대답 대신 감시탑 난간에 발을 올린 뒤 훌적, 아래로 몸을 날렸다.
아찔한 높이의 감시탑이었지만,, 추락 소리는 없었다.
사아앗! 뜨거운 비료길의 공기가 그의 코트를 가득 스치는 가운데, 히어로 네임 모닝 아울은 파순과 아이들(?)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