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75)
을 위한 세계는 없다-775화(775/817)
EP.775 I hope the Russians love their children too. (3)
***
-트로츠키의 손자?
듀크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르게이를 비롯한 트로츠키의 아들 딸들은 전부 스탈린 손에 죽었다. 차원문이 열리기도 전에, 대숙청으로 모조리 쓸려 나갔단 말이다.
페로루는 고개를 저었다.
“예, 자식들은 모두 죽었지요. 하지만 자식의 자식은 어떻습니까?”
-…손자?
“예, 트로츠키의 손주들은 살아서 아샤로 넘어왔습니다. 그리고 소련의 눈을 피해 오늘날까지 생존했-”
그때, 여명이 말을 끊었다.
“증거는? 증거가 있습니까?”
“…리보프 본인이 그렇게 주장했고, 또 공산당에서 직접 그의 말을 인증했습니다.”
“확실한 증거는 없다는 거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명은 그 주장이 사실일 거라고 짐작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굳이 트로츠키의 손자를 지칭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눈앞의 오크처럼 트로츠키주의를 지지하는 일부 이단(?)을 설득할 수 있다는 의외의 사실을 제외한다면, 스탈린에게 대항한 트로츠키의 혈통이라는 건 단점밖에 없었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의도가 있을지도.’
빠르건 늦건, 리보프를 한 번 더 마주하긴 해야 할 것 같았다. 생각을 정리한 여명은 일행을 향해 말했다.
“일단 이 공군 기지부터 정리하죠. 페로루. 다른 공산주의자들이 이곳에 들어오는 시간을 알고 있습니까?”
“정확한 건 아닙니다만… 제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한창 일하는 시간에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여명은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점심을 지나 무수한 노동자들이 식곤증과 싸우며 일할 시간이었다.
퇴근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행동까지 여유를 부릴 생각은 없었다. 여명은 곧장 일행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시리와 라쉬크, 그리고 페로루는 각자 나뉘어서 기지 내부를 확인해 주세요. 총기나 총알처럼 공산주의자가 챙겨갈 물건을 발견하면 여기… 이 신호탄을 켜서 절 부르시고요. 아시겠죠?”
여명이 인벤토리에서 작은 신호탄을 꺼내자, 페로루가 살짝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용서해 주시는 겁니까?”
“제가 용서하고 자시고가 있나요. 용서는 당신을 믿은 일족에게 비셔야 합니다.”
“….”
페로루가 고개를 숙이는 가운데, 듀크가 철컥, 총기를 가슴 높이까지 높여 들었다.
-그러면 나는 기지 입구를 지켜야겠군.
“저희 중에서는 중령님이 가장 눈이 좋으시니… 부탁드리겠습니다.”
-뭐, 아부할 필요는 없다. 그편이 효율적이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저기, 북쪽 방향에 무너진 건물 뒤편에 무기고가 있으니, 거기부터 찾아보고… 가능한 한 빨리 끝내라.
“그래도 이런 건 조금 여유를 가지고 하는 게….”
-출발하기 전에 내가 한 말, 잊지 않았지? 미군은 바로 오늘 움직일 거다.
“…알겠습니다.”
여명은 곧장 시리를 데리고 공군 기지 내부로 향했다. 기지에 남은 물자들을 모조리 쓸어 담기 위해서.
***
하루 대부분을 길 위에서 보내는 트럭 운전사들이 멍청할 거라는 대중의 오해와 달리, 트럭 운전사들은 누구보다 최신 뉴스에 빠삭했다.
온종일 틀어 놓는 라디오 덕분이기도 했지만, 그들에게는 정보가 곧 돈인 까닭이었다.
용병 놈들이 베네수엘라 유전을 점령해서 기름값이 올랐다더라, 어느 지역 도로는 상태가 안 좋다더라, 어느 프랑스 기업이 장기 계약을 후려쳤다더라….
트럭 운전사들에게 정보란 지갑과 연결된 목숨줄이나 다름없었다.
자연스레, 트럭 운전사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보를 교환했다. 물류가 모이는 터미널에서, 도로 위에 세워진 휴게소에서.
특히, 아폴로 시티 앞 비료길 휴게소처럼 수많은 트럭 운전사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온갖 정보가 오갔다.
-요즘 엘프 숲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데메론드는 뭘 하는 거지?
-아니 글쎄, 그 소식 들었나? 마탑의 그릇이 성녀님한테 국밥 그릇을 집어 던졌다더군! 마탑과 성도가 또 대립하는 게 분명해!
-틴다멜 상단이 드레이테리얼로 향하는 새로운 상로를 개척한다는데, 같이 갈 사람 없나?
-제국 보험사가 수인이랑 거래하다 생기는 문제에 대해선 보험비를 지급하지 않겠다고 공지했다! 니미럴 귀족 새끼들, 그 녀석들이 황제 폐하의 눈을 가리고 있다니까!
고작 휴게소에서 나누는 소문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진지한(?) 정보의 바다. 하지만 요 며칠간 트럭 운전사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소문은 따로 있었다.
-파순과 범죄자들이란 놈들이 비료길에서 인신매매범들을 덮치고 있다.
누군지 모를 금발의 소녀와 오크들이 휴게소에서 퍼트린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단순히 특이한 소문이라서가 아니라, 소문이 실제로 벌어진 까닭이었다.
[제기랄, 내가 봤다니까? 도망치는 차량을 통째로 얼려버렸다고!]증언은 물론이고, 증거도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현실 앞에서, 트럭 운전사들은 어떻게 미군 앞마당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냐고 한탄했다.
물론, 그렇다고 차를 돌리는 운전사는 아무도 없었다.
[도망쳐? 도시 바로 앞에서? 지랄하네. 내 기름값이랑 위약금은 니가 내줄 거냐?]문제는 돈이었다. 계약에 따라 시간 내로 터미널에 도착해야 하는 트럭 운전사에게 도망치거나, 다른 길로 돌아간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
[최대한 휘말리지 않는다.]누가 먼저 그러자고 한 건 아니었지만, 트럭 운전사들은 파순을 마주하면 차선을 비우고 도망치기로 마음먹었다. 마치 구급차가 오면 차선을 피해주는 것처럼.
그건 처음 소문을 퍼트린 귀 큰 소녀의 의도대로였고, 덕분에 파순과 범죄자들은 큰 피해 없이 인신매매범들을 붙잡을 수 있었다.
심지어 다섯 명이나 되는 범죄자들이 한 번에 나타났을 때도,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차선을 비우며 옆으로 흩어질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물론, 전후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하는 데스나이트들로서는 그저 신기한 일이었다.
-이거 참, 이만한 트럭들이 알아서 비키다니? 이게 그, 지구에서 말하는 모세의 기적인가 뭔가 하는 건가?
인신매매 트럭의 바퀴를 잘라낸 두메아 가주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다른 데스나이트들도 한 마디씩 던졌다.
-모두들 알고 있는 게지. 인신매매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범죄라는 것을!
-영감님, 열의에 차신 건 좋지만… 솔직히 그냥 트럭 상할까 봐 저러는 거 아닙니까. 저 트럭, 딱 봐도 엄청 비싸 보이는구먼.
-아무리 비싸다고 해도 아이들의 목숨보다 비쌀까! 오, 검은 신이시여… 제가 이 타락을 벌하겠나이다…!
-아오, 이러다 사람 하나 잡겠네. 거, 용사가 아무도 죽이지 말라고 한 거 잊지 마쇼!
그렇게 벨라디바와 바라나가 잡담을 나누길 잠시.
정지된 트럭 짐칸에서 시리의 할머니인 프리블레이드 세디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았습니다. 여자 아이 둘, 남자 아이 한 명. 총 세 명이고 모두 건강에 문제는 없습니다.
-세 명? 지금 두하칸이 천막으로 데리고 간 꼬마가 몇 명이었지?
두메아 가주가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벨라디바가 휘릭, 손도끼를 회전시키며 말했다.
-네 명. 벌써 일곱 명 째야.
그들이 비료길로 나온 지 얼마나 지났다고, 이만한 숫자의 아이들이 나온단 말인가. 살짝 화가 난 두메아 가주는 트럭 운전석을 노려봤다.
그걸 본 벨라디바는 어쩌다 자신이 상식인 포지션이 되었나 한탄하며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용사가 아무도 죽이지 말라고 했다는 거, 잊지 마쇼.
-누가 뭐라고 했나? 나는 그냥… 팔 하나만 자를 생각일세. 용사도 곧잘 그러지 않았나?
-염병, 일반인은 팔 잘리면 죽는 거 몰라서 이러는 거야?
-잘 자르면 안 죽네. 그리고 솔직히, 발목을 자르는 변경백보단 낫지 않나.
-…누가 들으면 용사가 사지 자르는 게 취미인 줄 알겠네. 하지 말라면 좀 하지 마쇼!
다행히, 불운한 운전사의 팔이 잘리는 일은 없었다. 두메아 가주가 벨라디바의 조언을 새겨들어서? 아니, 갑자기 하늘 위에서 뚝 떨어진 남자 때문에.
“안녕하십니까. 다들 점심은 드셨습니까?”
가볍게 트럭 위로 내려선 남자는 데스나이트들을 향해 인사했다. 칼을 뽑던 두메아 가주가 눈썹을 씰룩거릴 정도로 정중한 인사였다.
‘…초인.’
남자의 마나를 느낀 데스나이트들이 동시에 전투 자세를 잡는 가운데, 두메아 가주가 대답했다.
-아쉽게도 바쁜 일이 있어서 식사는 걸렀네. 그쪽은 먹었나?
“저도 아직 안 먹었습니다. 그, 맛있는 식사가 나오는 곳을 하나 아는데, 같이 가시겠습니까?”
-어디 말인가?
“아폴로 시티 교도소. 삼시 세끼 시간 맞춰 잘 나오는 곳입니다.”
-거절하겠네. 공짜 밥은 별로 안 좋아해서.“
남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공짜 밥을 싫어하시는 분이, 트럭을 터시는 겁니까?”
-트럭을 터는 게 아니라, 불쌍한 아이들을 구출하는 중일세.
“아, 그 소문… 꽤 그럴듯한 선동이었습니다. 그런 종류의 선동은 엘프나 하는 줄 알았는데, 아주 작정하고 왔다 싶더군요.”
진짜 엘프가 들었으면 화들짝 놀랐을 말을 내뱉은 남자는 탁! 트레일러에서 도로로 뛰어내렸다.
“일대일로 싸우시겠습니까, 아니면 한 번에 덤비시겠습니까?”
두메아 가주는 홀로 검을 뽑으며 대답했다.
-일대일.
직후, 다른 데스나이트들이 비어있는 차로 뒤편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걸 본 남자는 툭, 툭- 무늬 올빼미의 깃털과 비슷한 무늬가 새겨진 코트를 털고는, 그대로 자세를 잡았다.
“저는… 흠, 지금은 그냥 휴가 나온 사람입니다. 절 아는 사람들은 모두 저를 모닝 아울이라고 부르죠. 그쪽 어르신의 성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롭 리ㅇ… 가 아니라, 파순일세.
“…파순은 다른 사람 아니었습니까?”
두메아 가주는 다른 데스나이트들을 차례대로 바라보며 말했다.
– 우리 모두가 파순일세. 적어도 지금은.
벨라디바가 ‘난 아닌데?’라며 태클을 걸었지만, 두메아 가주는 들은 척도 안 한 채 검을 늘어트렸다.
-선공은 양보하지.
모닝 아울은 거절하지 않았다. 사아앗! 그의 코트 자락에서 바람이 뿜어져 나오더니, 주변을 휩쓸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료길의 텁텁한 공기가 두메아 가주의 차가운 코를 찌르는 순간. 모닝 아울의 손이 흐릿해졌다.
채앵 – !
반사적으로 휘두른 두메아 가주의 검과 보이지 않는 뭔가가 충돌했다. 마법? 무술? 어느 쪽이건 손이 찌르르 떨리는 게, 위력이 심상치 않았다.
거리를 주면 안 되겠군.
판단은 빨랐고, 행동은 더욱 빨랐다. 두메아 가주는 가전 무술을 펼치며 발을 내디뎠다.
쿵! 그의 발이 아스팔트 도로를 거칠게 짓밟았다. 발아래에서 튀어나온 아스팔트 조각이 그의 발 뒤로 이어졌다.
시작은 검.
오귀스트가 그에게 돌려준 가문의 보검 대신, 여명이 정체를 숨기라며 준 철검을 휘두른 탓일까. 평소보다 검이 느렸다.
하지만 가주는 이미 장비를 탓할 경지가 아니었다. 마나가 가득 담긴 그의 검기가 단번에 모닝 아울을 덮쳤다.
!!!
정교한 검기가 트레일러를 두 동강 내는 가운데, 모닝 아울은 하늘로 떠올라 검을 피했다. 올빼미란 이름에 걸맞은 활공이었다.
하지만 두메아 가주는 도주를 허락하지 않았다. 다리에 마나를 모은 그는 잘려 나간 트레일러를 박차고 뛰어올라, 허공에 뜬 모닝 아울을 향해 재차 검을 휘둘렀다.
검을 본 모닝 아울의 눈이 커졌다. 피하기엔 너무 가까운 거리였고, 모닝 아울의 선택지는 하나, 맞대응뿐.
그리고 모닝 아울은 그렇게 했다.
다음 순간, 사아앗 – ! 그의 코트 자락 안쪽에서 바람이 터져 나왔다. 검은 물론이고, 두메아 가주의 몸을 밀어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바람이었다.
이런. 두메아 가주는 허공에서 휘릭, 자세를 다잡은 뒤 땅에 착지했다. 마찬가지로 트레일러 위에 착지한 모닝 아울이 말했다.
“진짜 아샤 귀족처럼 싸우시는군요.”
-진짜 귀족이니까.
“…진짜 귀족이 왜 강도질을 하고 있습니까?”
-거, 강도질 아니라니까.
잡담은 거기까지였다. 모닝 아울의 손이 흐릿해지고, 또다시 보이지 않는 뭔가가 두메아 가주를 노렸다. 같은 공격? 아니, 이번에는 하나가 아니라 다섯 개였다.
채앵, 챙 – !
절반은 검으로 쳐내고, 나머지는 피해냈다. 거칠게 바닥을 구른 두메아 가주는 구멍 난 아스팔트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공기를 압축해서 쏘는 마법… 마법사였나.
몸속에서 마나가 느껴지길래 초인인 줄 알았건만, 거리를 좁힐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두메아 가주는 재차 날아오는 바람 마법을 피하며 후우- 진의를 읊조렸다.
‘아무리 느려도 물은 아래로 흐르고, 아무리 묶어도 바람은 자유로이 흐른다.’
마나가 흘러내린 물처럼 발아래 고이고, 몸이 가벼워졌다.
‘나는 물도 바람도 될 수도 없으나, 나의 마음은 물과 바람을 바라니.’
인생을 한 줄로 압축하는 개인의 진의와 달리, 오랜 세월 가문의 초인들이 쌓아 온 진의.
‘마나는 아래로, 의지는….’
가주의 마나가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은 모닝 아울이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는 사이, 가주가 마지막 진의를 읊었다.
“…자유롭게.”
그리고 다음 순간, 가주의 몸이 주욱- 늘어났다. 가전 무술을 통한 급가속. 어느새 하늘에 오른 모닝 아울이 압축한 공기를 연달아 쏘아냈지만, 땅과 트레일러를 연달아 박찬 두메아 가주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빠르게 좁혀지는 거리, 번뜩이는 검.
모닝 아울은 조금 전처럼 강렬한 바람을 뿜어냈다. 가주를 밀어내기 위해서? 아니, 공중에서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
그의 대응은 정답이었다. 두메아 가주의 회심의 일격은 아슬아슬하게 그의 몸을 지나쳤다. 잘려 나간 건 코트 자락 뿐.
탁! 중력을 따라 다시 착지한 두메아 가주는 아직 하늘에 떠 있는 모닝 아울을 확인했다.
-그런 거였군.
잘려 나간 그의 코트 자락 사이에는, 무수한 마법진들이 새겨져 있었다. 히라리아의 귀족인 두메아 가주조차 처음 보는 마법진.
아마 공기를 압축하는 마법과 그 압축한 공기를 쏘아내는 마법의 마법진이 아닐까- 판단을 끝낸 두메아 가주는 휘릭,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처음 보는 마법인데… 자네가 직접 만든 마법인가?
모닝 아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학부생 시절에 만든 겁니다. 꽤 괜찮은 마법이지요?”
-솔직히 말하자면, 마탑의 웬만한 마법보다 낫군. 응용법 범위도 넓고… 마법진이 가득한 코트로 몸을 덮어서 초인인척 마나를 교란한 것도 좋았네. 깜빡 속았어.
거기까지 간파했나? 이러면 힘들어지는데. 모닝 아울은 팔짱을 낀 채 구경하는 나머지 데스나이트들을 체크하며 말했다.
“혹시나 해서 여쭙는 건데, 이 강도단에서 어르신이 가장 강합니까?”
-당연….
두메아 가주가 그렇다고 대답하기도 전에, 벨라디바가 빽 소리쳤다.
-가장 강한 건 나고! 저 노인네가 제일 약하다!
“….”
-뭘 봐? 내 말이 틀려? 손녀 시집 보낸 뒤로 아주 흐물흐물해져서는.
손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었다. 껄껄 웃는 두메아 가주의 반응도 예상 밖이었고.
살 떨리는 싸움을 각오했던 모닝 아울은 애써 한숨을 삼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호승심은 꺼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초인과 싸운다는 흥분이 그의 입꼬리를 간질였다.
“먼저 공격한 것치고는 여유가 없군요. 다음 일격으로 승부를 보시죠.”
-좋지. 그리하게.
이미 강도와 강도를 잡으러 온 히어로의 입장은 남아있지 않았다. 모닝 아울과 두메아 가주는 동시에 마나를 끌어 올렸다.
사아아 –
하늘에 떠 있는 모닝 아울과 땅에 선 두메아 가주 사이의 대기가 불안정해졌다. 거친 바람이 꼬이고, 이윽고 회오리바람이 되는 순간.
탁. 두메아 가주가 땅을 박찼다. 진의를 머금은 그는 투석기에서 발사된 돌만큼이나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검기와 공기 마법이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흐릿하게 보이는 마나는 단 한 번의 공격을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커다란 소용돌이 속에는 무수한 바람이 존재하듯, 두 사람의 교환 속에는 무수한 공방이 오갔다. 특히 압축된 공기는 거의 수십 개의 주먹처럼 두메아 가주를 덮쳤다.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하고, 한 번의 유효타를 내기 위한 싸움. 그건 어떤 의미에서 일격이란 단어에 가장 어울리는 싸움이었다.
!!!
바람이 찢어지는 소음을 끝으로, 두 사람의 일격이 끝났다. 서로 코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접근한 두메아 가주의 검이 모닝 아울의 가슴을…
…꿰뚫지 못했다.
오히려 작은 바람으로 만들어진 단검이 두메아 가주의 목을 정확히 겨누고 있었다.
-훌륭하군. 처음부터 이걸 노렸나?
두메아 가주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검을 내려다봤다. 싸구려 군용 철검은, 바람 마법을 버티지 못하고 부러져 있었다.
“한국산 싸구려 철검을 쓰시길래, 한 번 도전해봤습니다.”
딱 손가락 한 마디만 더 남아 있었어도 모닝 아울의 어깨를 찌를 수 있었을 텐데. 두메아 가주는 쯧 혀를 찼다.
-원래 검을 썼으면 내가 이겼을 거란 핑계는 대지 않겠네.
모닝 아울은 픽 웃은 뒤, 공기 마법을 조종해 천천히 트레일러 위로 착지했다. 여전히 두메아 가주의 목에 칼날을 가져다 댄 채였다.
“당신을 강도 및 도로 교통 방해죄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한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심문받을 때 변호사가 대신 대답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할 경우, 국선 변호사가 선임될 것입니다. 당신은 이런 권리가 있다는 걸 인지했습니까?”
-그건 갑자기 무슨 소린가?
두메아 가주가 눈을 깜빡이며 되묻자, 모닝 아울이 살짝 당황했다.
“미란다 원칙입니다만… 그냥 그런 게 있다고만 알고 계시지요. 자, 그리고 다른 파순 여러분? 이분이 죽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항복해 주십시오.”
이번에는 다른 파순(?)들이 눈을 깜빡일 차례였다. 덩치 큰 벨라디바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죽일 수 있으면 죽여봐.
“…일말의 고민도 없이 동료를 버리는 겁니까? 강도는 역시 강도군요.”
벨라디바가 한 번 크게 웃어 재끼며 대답하려는 순간.
트레일러 아래에서 갑자기 으아앙!! 꼬마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린아이 특유의 당황과 두려움이 가득한 울음소리였고, 모닝 아울은 자신이 인질을 잡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아래를 확인했다.
조금 전 두메아 가주가 잘라낸 트레일러 틈 사이로, 우는 꼬맹이를 어르고 달래는 여인이 보였다.
우는 꼬맹이의 옆에는 짐짝처럼 묶인 꼬마가 두 명 더 있었는데, 오랜 시간 범죄와 싸워온 모닝 아울은 단번에 그 꼬마들의 상태를 알아봤다.
“인신매매?”
-진짜 아이를 구하고 있다고 했잖는가.
두메아 가주가 그렇게 덧붙이자, 모닝 아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럴 리가… 미군이 보호하는 도시에서 마약도 아니고 미성년자 인신매매 같은 걸 할 수 있을 리가….”
-할 수 있네. 눈앞에 증거가 있지 않나.
“….”
모닝 아울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그는 머릿속으로는 휴가까지 빼앗아 가며 아폴로 시티로 자신을 보낸 연방 히어로 경찰청과 이상할 정도로 적대적이었던 더그 대위, 그리고 눈앞의 꼬맹이를 연달아 스치고 지나갔다.
엿 같은 일에 엮였군.
판단을 끝낸 그는 두메아 가주의 목에 겨눈 바람 칼날에서 힘을 빼며 말했다.
“일단… 모두 무기를 손에서 내려놓고, 체포되어 주십시오. 이대로 간단히 덮을 사안이 아닌 것 같습니다.”
-미안하지만 그건 어렵겠네만.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닙니다. 연방 히어로로서 여러분들에게 요구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무장 해제한 뒤 저를 따라와 주십시오. 제 히어로 네임을 걸고 여러분들의 안전과 진실을 보장하겠습니다.”
-우리가 거부한다면?
모닝 아울의 지그시- 두메아 가주의 목을 누르며 말했다.
“피를 봐야겠지요.”
그의 진지한 목소리와 달리, 구경하던 거구의 파순… 그러니까 벨라디바의 반응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존나 웃기네. 야, 모가지 날려! 이참에 성불시켜 버려!
-저, 저 미친년… 손녀 결혼식까지 성불할 생각 없다니까!
-저번에는 딸 만나면 성불한다며? 이러다가 평생 살겠네.
이 양반들은 왜 이렇게 여유로워?? 가벼운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모닝 아울이 정색하며 푹- 아주 살짝, 두메아 가주의 목에 칼날을 찔렀다.
“이게 마지막 권고입니다. 당장 무장 해제하고….”
그제야, 벨라디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역시 사람은 피를 봐야만 진지해진… 잠깐.
모닝 아울은 벨라디바가 자신이 아니라, 뒤편 하늘을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왜?
그리고 다음 순간, 뭔가를 확인한 벨라디바가 화들짝 놀라서 소리쳤다.
-오, 이런 씨, 잠깐, 잠깐!
“…?”
-야, 시발 피해!
첫 말은 그를 향한 게 아니었지만, 두 번째 말은 분명히 모닝 아울을 향한 경고였다. 모닝 아울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찰나.
번쩍!
섬광이 그의 어깨를 내려쳤다.
잘리는 어깨, 놀란 눈동자, 그리고 가주와 그 사이로 착지하는 정체불명의 인영.
잘린 어깨에서 터져 나오는 붉은 피 사이로, 모닝 아울은 그의 팔을 자른 습격자의 정체를 알아봤다.
경찰청에서 처음 보여준 사진의 주인공…
“파순…!”
깨달음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모닝 아울은 곧장 코트 속 마법진을 발동해 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빨리, 파순의 발이 그의 몸을 짓눌렀다.
“커헉!”
단순히 짓밟는 게 아니었다. 마나의 흐름을 정확히 노린 찍기. 마나가 역류한 모닝 아울의 입에서 피가 튀는 가운데, 쪼르르 트레일러 아래로 떨어진 두메아 가주가 말했다.
-거봐, 팔 자르는 건 된다고 했지?
-염병, 정답을 맞혀서 좋겠수다!
빼액 소리 지른 벨라디바는 물론이고, 바라나와 세디달 또한 동시에 여명을 말리기 위해 트레일러 위로 뛰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