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78)
을 위한 세계는 없다-778화(778/817)
EP.778 I hope the Russians love their children too. (6)
***
저 멀리, 폭발을 본 비료길 트럭 운전사들의 반응은 정직했다.
-튀어!
-빵! 빵! 비켜 씨발 새끼야!
-다섯 신이시여….
트럭들이 엉키며 비료길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마찬가지로, 아폴로 시티 외곽 감시탑을 지키고 있던 초병들 또한 기겁하며 상부에 보고를 올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폴로 시티에 주둔 중인 군은 발 빠르게 대응했다.
-대형 사고로 번지지 않게, 비료길에 교통 관리관을 급파.
-정찰 부대를 준비해. 무슨 일인지 확인하겠다.
-20분 뒤에 델타 포스가 온다! 모두 자리를 지켜!
혼란은 그렇게 끝나는 듯했는데… 정작 몇 분 뒤에 걸려 온 전화가 다른 혼란을 불러왔다.
[아, 아, 여기는 모닝 아울, 들리는가? 파순과 범죄자들을 처치하고 복귀하는 중이다. 조금 전 폭발은 범죄자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소한 사고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모닝 아울은 팔이 잘린 채 납치된 거 아니었어? 미군이 당황하는 사이, 모닝 아울은 온갖 언론에 동시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나는 모닝 아울이다. 나는 현재 파순과 범죄자들을 처리한 뒤, 녀석들에게 붙잡혀 있던 수십 명의 아이와 오크들을 구출해 아폴로 시티로 향하는 중이다.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니, 인터뷰하고 싶은 언론은 누구라도 아폴로 시티 남쪽 입구로 와라. 선착순으로 인터뷰하겠다.]뒤늦게 미군이 기밀 엄수를 요청했지만, 이미 아폴로 시티에 지부를 둔 모든 언론이 움직인 뒤였다. 개중에는 정직하게 입구로 가서 기다리는 언론도 있었고, 아예 차량을 끌고 비료길로 나서는 언론사도 있었다.
그리고 비료길로 나선 언론인들이 마주한 건, 오크가 운전하는 여러 대 트럭들과 그곳에 가득 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특종이다.
모든 그걸 본 언론인들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들은 먹이를 발견한 맹수가 그러하듯, 우르르 차량을 몰아 모닝 아울의 트럭을 둘러쌌다.
언론사 차량으로 포위된 트럭의 모습은 마치 개선식의 그것처럼 위풍당당했다. 어찌나 기세가 좋은지, 앞서가던 트럭들이 알아서 길을 비켜줄 정도였다.
꽤 멋들어진 우연이었고, 아이들을 태운 트럭은 베를린으로 향하는 소련군처럼 거침없이 아폴로 시티로 향했다.
-정지! 정지!!
트럭의 진격을 멈춘 건, 도시 입구를 지키는 미군이었다.
급하게 병력을 호출한 건지, 입구에는 평소보다 배는 많은 미군이 입구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모닝 아울과 아이들을 끌고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아쉽게도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무수한 언론 때문에.
-모닝 아울! 저희가 가장 먼저 왔습니다!
-비켜! 내가 먼저 왔어!
특종에 미친 기자들은 미군조차 어찌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군인들이 상부의 명령을 기다리며 우물쭈물하는 사이, 모닝 아울은 운전석에서 내려 차 위로 올라갔다.
“먼저, 갑작스러운 연락에도 이렇게 모여주신 언론사와 기자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조금 전 제가 전화드린 바와 같이, 저는 파순과 범죄자들을 쓰러트리고…….”
그렇게 시작된 모닝 아울의 연설은 꽤 괜찮았다. 갑작스러운 연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프로 히어로는 다르긴 다르네.’
오크로 변장한 여명이 그렇게 생각하건 말건, 모닝 아울은 계획대로 연설을 이어 나갔다.
“……파순과 범죄자들은 인신매매로 팔려 온 아이들을 납치하고 있었습니다. 예, 거기 기자님. 제 말이 이상하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이건 엄연한 사실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아폴로 시티에서는 인신매매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이들만을 노린 인신매매 말입니다! 그리고 파순과 범죄자들은 그 아이들을 중간에서 낚아채 자신들의 주머니에 넣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믿어지십니까? 요 며칠간 이어진 트럭 강도 사건은, 전부 범죄자들의 내전이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닌 제 조국의 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직접 아이들을 구출한 저조차 믿을 수가 없습니다! 국가의 부름을 받은 히어로로서, 이런 비극적인 사안을 묵과할 수 없습니다!”
모닝 아울의 연설이 예상보다 격했던 것처럼, 관객들의 반응도 예상보다 더 뜨거웠다. 카메라를 든 기자들은 물론이고, 구경하던 트럭 운전사들까지 손뼉을 치며 연설에 호응할 정도였다.
이 자리에서 불편을 드러내고 있는 건 미군, 그중에서도 급히 달려온 장교 몇몇이 전부였다.
‘노골적이군.’
그놈의 엘릭서가 뭐라고. 이런 미친 짓을 벌이는 건지. 여명은 애써 표정이 일그러지는 걸 참았다.
지금은 모닝 아울의 시간이었다. 여명은 차 안에서 그가 기자와 나누는 문답에 집중했다.
-조금 전 폭발은 뭐였습니까?
“제가 비상 상태를 위해 숨겨 놓은 필살기입니다. 그동안에는 민간인 피해를 우려해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습니다. 그 외에는 보안상의 문제로 말씀드릴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폭발에 대한 변명.
-파순과 범죄자들은 모두 소탕하신 겁니까?
“아쉽지만, 인질 구출을 우선하느라 범죄자들이 폭발에 휩쓸리는 모습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파순과 범죄자들에 대한 변명.
-어제 팔이 잘린 채 끌려가는 모습이 보도됐는데요. 어떻게 살아서 돌아오신 겁니까?
“그건 적의 아지트를 알아내기 위한 연기였습니다. 여기 보시듯, 제 팔은 아주 멀쩡하게 붙어있습니다.”
그리고 패배에 대한 변명까지.
자세히 따지면 억지나 다름없는 변명들이었지만, 눈앞에서 구출한 진짜 ‘인질’들은 모든 변명을 사실로 만들었다.
트럭 창밖을 보며 신기한 표정을 짓거나, 초콜릿을 오물거리는 아이들 앞에서 반론은 불가능했다.
아무튼, 그렇게 모든 변명을 끝낸 모닝 아울은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구출된 아이들의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계속 아폴로 시티에 머무를 예정입니다. 이후 정식 인터뷰는 약속드린 대로, 차례대로 진행할 테니, 기자분들께서는….”
아이들을 공개적인 장소에 드러내 수작질을 예방하고, 인신매매에 대해 널리 알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여명의 진짜 노림수였고, 기자 중 하나가 그 미끼를 덥썩 물었다.
-아이들을 아폴로 시티의 군에게 맡기는 게 가장 안전한 거 아닙니까?
“글쎄요. 군이 제대로 인신매매범들을 처리했다면 제가 아이들을 구하는 일도 없지 않았겠습니까?”
군이 못 막아서 내가 고생한 거 아니냐- 라는 뜻이 담긴 말이었다. 주변 미군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지만, 모닝 아울은 거침없이 말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저는 연방 히어로입니다. 연방 경찰국과 군과는 지휘 계통이 다른 만큼, 수사가 끝날 때까지 아이들은 제가 직접 보호할 생각입니다.”
기삿거리가 늘어난 기자들이 희희낙락거렸지만, 분위기는 한층 더 살벌해졌다. 물론, 그렇다고 미군들이 모닝 아울을 막아서는 일은 없었다.
각하가 지배하는 한국도 아니고, 미군은 언론 앞에서 공개적으로 패악질을 부릴 만큼 멍청하지 않았으니까.
어쨌거나, 기자 회견을 마친 모닝 아울은 다시 트럭으로 돌아왔다. 좌석에 앉은 그는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쉰 뒤, 여명에게 물었다.
“이걸로 됐나?”
“예, 제 예상보다 훨씬 잘해주셨습니다. 이제 바로 호텔로 가시면 됩니다. 아, 되도록 사람들이 많은 호텔로 가시죠.”
“호텔… 차례대로 인터뷰를 잡은 것도 그거 때문인가? 계속 언론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여명이 고개를 끄덕이자, 모닝 아울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만한 힘에, 이만한 여론전 능력… 이대로 계속 너를 돕는 게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
“아이들을 구한 뒤에는 저를 쏘시든, 고발하시든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그전에는 신경 쓰겠다는 말로 들리는군.”
“정확하십니다.”
“….”
슬쩍 트럭 뒤편, 오크로 변장한 데스나이트들을 확인한 모닝 아울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곧 트럭이 출발하고, 그의 뒤를 따라 나머지 오크들의 트럭들이 줄줄이 아폴로 시티 시내로 진입했다.
“이제 좀 쉴 수 있겠군.”
모닝 아울은 아폴로 시티 시내를 보며 긴장을 풀었으나, 여명은 계속 신경을 곤두세웠다. 성공했다고 확신했을 때가 가장 위험한 법이었으니까.
그리고 잠시 후, 여명의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거대한 장갑차 한 대가 트럭의 앞길을 막았다.
전차라고 하기엔 주포가 없고, 장갑차라고 하기엔 기관포와 로켓 등 온갖 무기가 달린 장갑차.
소속을 알아볼 부대 표식이나, 도색도 없었다. 오로지 무광 검은색으로 덮인 장갑차를 본 여명이 최악의 가능성을 떠올리는 찰나, 듀크가 중얼거렸다.
-표식이 없는 보병 전투 차량… 델타 포스다.
벌써? 여명이 눈살을 찌푸리는 가운데, 장갑차가 트럭 앞에서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일행의 트럭 또한 어쩔 수 없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어떻게 할 건가?”
모닝 아울의 질문과 동시에, 장갑차 뒷문이 열리며 검은 방탄복과 최신예 방탄모를 쓴 군인들이 등장했다.
하나, 둘, 셋… 여섯.
두꺼운 안면 방탄유리로 얼굴을 가린 여섯 명의 군인들은 천천히 트럭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여명은 조심스레 델타 포스의 마나를 읽어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초인. 심지어 그중 한 명은 마법을 익힌 갈림길이었다.
“…계속 연기 부탁드립니다.”
여명이 작게 중얼거린 직후, 포위를 끝낸 델타 포스 중 한 명이 똑똑- 창문을 두들겼다. 꿀꺽, 침을 삼킨 모닝 아울은 유리창을 내리며 물었다.
“누구십니까??”
-우리는 미합중국 초인군 특수작전 사령부에서 왔다.
기계음이 섞인 묵직한 목소리. 모닝 아울은 운전대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되물었다.
“…군이 왜 절 붙잡는 겁니까?”
-질문이 하나 있다. 성실하게 대답해주길 바란다.
“증언은 호텔에서 하기로 약속드렸을 텐데요. 무엇보다, 저는 군 소속이 아닙니다. 질문이 있다면 언론이나 경찰국을 통해….”
그때, 철컥! 차량 정면을 막고 있던 특수군의 총에서 소리가 났다. 협박이라기엔 애매하고, 위협이라기엔 노골적인 행동.
모닝 아울은 슬쩍 여명을 바라본 뒤,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좋습니다. 질문이 뭡니까?”
-네가 쓰러트린 파순과 범죄자 중에, 공산주의자가 있었나?
“….”
-대답.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인은 없었습니다.”
모닝 아울의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은 걸까, 델타 포스 요원들 사이로 마나가 살짝 출렁거렸다.
-피부를 찌르는 감각을 느끼거나, 붉은 아지랑이를 본 적 있나?
“그런 건 없었습니다. 파순과 범죄자들은 전통적인 아샤 무술과 마법을 사용했습니다.”
-….
또다시 마나가 출렁거리는 가운데, 창가에 서 있던 델타 포스의 고개가 돌아갔다. 오크로 변장한 여명을 향해서.
피눈물의 환상을 알아챈 걸까? 아니면 단순한 우연?
알 수 없었다. 델타 포스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다시 모닝 아울을 바라봤으니까.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던 그는 방탄복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며 말했다.
-협력해줘서 고맙다. 히어로 모닝 아울. 이걸 받아둬라.
델타 포스가 내민 건 엄지손톱보다 작은 기계장치였는데, 그게 뭔지 짐작한 여명은 고개를 숙여 표정을 숨겼다.
모닝 아울은 기계장치를 받아 들었다.
“이건…?”
-긴급 호출기다. 적이 오거나, 공산주의자를 보면 버튼을 눌러 우리를 호출해라.
“…거부할 권한은 없겠군요.”
델타 포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모닝 아울이 호출기를 챙기자,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포위를 풀고 다시 장갑차 속로 향했다.
주변을 억누르던 살벌한 마나가 사라지고, 장갑차 또한 자리를 떠난 직후, 듀크 중령이 입을 열었다.
-그거, 그냥 호출기가 아니야. 실시간으로 작동하는 위치 추적기다.
“….”
모닝 아울은 꺼림칙한 표정으로 호출기를 바라봤다. 위치 추적기라니. 함부로 버릴 수도 없는 물건 아닌가.
묘한 침묵이 오가길 잠시, 여명은 장갑차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호텔에 도착하는 대로 헤어지는 게 좋겠습니다. 제 스ㅅ… 아니, 동료를 남겨둘 테니, 문제가 생기면 바로 호출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끄덕인 모닝 아울은 도시에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중앙 지역의 호텔을 향해 트럭을 몰았다.
***
대략 30분 뒤, 기자들과 구경꾼들이 가득 몰린 호텔 입구.
모닝 아울을 필두로한 아이들과 오크들이 호텔에 들어서는 걸 확인한 여명은, 곧바로 떠날 준비를 했다.
CIA와 공산당 면전에 이만한 떡밥을 던진 이상, 아이들과 함께 있는 건 하책이었다. 모닝 아울이 아이들을 맡은 사이, 그는 CIA에 붙잡힌 아이들을 구하는 편이 나았다.
쇠미리와 라쉬크를 비롯한 일행들 또한 그 의견에 동의했다. 이 도시를 휘감은 음모의 정체가 무엇이건 간에, 아이들을 구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물론, 방법론을 두고 이견이 좀 있었다.
“절대, 절대 델타 포스랑은 안 싸울 거야. 차라리 날 죽여.”
라쉬크는 언제나처럼 겁에 질려 있었다. 사람이 몰린 호텔 입구라서 조용히 말하고 있을 뿐, 일행끼리만 있었으면 진작에 빼액 비명을 질렀으리라.
의외인 점은, 쇠미리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는 사실이었다.
“언젠가 미국과 싸우더라도, 지금은 용사 후손의 유산을 찾는 게 먼저예요. 최대한 싸움 없이 아이들을 구하고, 이 도시를 떠나죠. 나머지 일은 주지사에게 모조리 떠넘기고요.”
그에 비해 듀크 중령은 공산당, 나아가 아이들을 납치한 CIA도 싸그리 쓸어버리고 싶어 했다.
-내 경험상, 폭력은 많은 걸 해결해준다.
딜라는 언제나처럼 관심 없어 했지만, 시리는 달랐다. 그녀는 듀크와 마찬가지로 CIA 본진을 불태우고 싶은 눈치였다.
“저는 형부의 뜻에 따를게요. 하지만… 아이들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실험실의 희생양 시절이 떠오른 걸까? 여명이 처제를 위로하려던 순간.
?
뭔가가 그의 감각에 걸렸다. 모닝 아울을 보기 위해 호텔 로비에 몰린 구경꾼들 사이로, 뭔가가 느껴졌다.
익숙한… 빨갱이의 기운.
판단은 빨랐고, 행동은 더 빨랐다. 여명은 일행들이 무어라 질문하기도 전에, 인파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탁! 품에서 뭔가를 꺼내는 남자의 손목을 붙잡았다.
“뭐 하는 거냐.”
갑자기 손목을 붙잡혔음에도, 남자는 당황하지 않았다. 하수도 청소부 복장을 한 남자는 오히려 픽 웃으며 여명을 바라보았다.
“리보프 동지의 말이 맞았군.”
“….”
“이걸 꺼내면, 바로 정체를 드러낼 거라고 하셨지요.”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품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건… 스탈린의 솔방울이었다.
“내기해 보시겠습니까? 이걸 터트리면, 몇 명이나 죽을지 맞춰보는 겁니다.”
여명은 밀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 내기는 다른 내기를 이긴 뒤에 하지. 솔방울이 먼저 터질지, 아니면 니 머리가 내 손에 먼저 떨어질지.”
“….”
“해볼까?”
여명이 낮게 으르렁거린 다음 순간, 남자가 품에서 손을 뗐다. 그는 양손을 머리 위로 올리며 말했다.
“리보프 동지께서 부르십니다. 공군 기지와 이 아이들, 그리고… 오크 첩자에 관해 오해를 풀자고 하시더군요.”
“….”
오크 첩자… 페로루? 어쩐지, 대응이 너무 빠르다 했다. 여명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는 가운데, 남자가 덧붙였다.
“부디 거절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스탈린의 솔방울은… 하나가 아니니까.”
다음 순간, 여명의 감각으로 다른 솔방울들이 느껴졌다. 적어도 다섯 개. 터지면 호텔 입구는 물론이고 건물 안에 있는 아이들조차 위험한 화력이었다.
대체 이만한 솔방울을 어디서 구해온 거지?
“…아주 철저하게 준비하고 오셨군.”
여명이 인상을 찌푸리자, 남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격에 맞는 대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시겠습니까?”
“좋아, 리보프를 만나겠다. 하지만….”
말끝을 흐린 여명은, 솔방울의 마나가 느껴지는 사람들을 차례대로 훑은 뒤 덧붙였다.
“만나는 시간은 이쪽에서 정한다.”
남자가 그건 곤란하다고 말하려는 순간.
여명의 일행들이 움직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수한 인파 사이로 파고든 일행들은, 거의 동시에 여명이 훑은 사람들을 제압했다.
라쉬크는 언제 꺼내었는지 모를 단검으로 공산당의 옆구리를 찔렀고, 시리와 듀크는 뒤에서 목을 졸랐다. 그리고 쇠미리는… 대놓고 뒤통수를 후려쳤다.
-뭐, 뭐야?!
-여기, 오크가 사람을 팬다! 경찰! 경찰 어딨어?!
아니, 좀 조용히 처리 해야지… 여명은 당황한 눈으로 공산당원을 두들겨 패는 미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녀가 솔방울을 회수한 뒤에야 침착함을 되찾았다.
“생각보다 많이 과격하시군요. 그래도 같은 사상을 공유하는 동포인데….”
“…먼저 협박을 한 쪽에서 할 말이냐?”
“….”
남자의 입을 다물게 한 여명은, 마찬가지로 남자의 품에서 솔방울을 빼앗으며 선언했다.
“리보프에게 전해라. 내일, 내가 직접 찾아가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