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83)
을 위한 세계는 없다-783화(783/817)
EP.783 I hope the Russians love their children too. (11)
***
“뭐해? 덤비지 않고.”
여명의 도발이 제대로 먹혔는지, 주가시빌리들은 순식간에 살의를 되찾았다.
“우라아아아 – !!!”
여섯 주가시빌리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좁은 공간에서 최대한 수적 우위를 살리는 차륜전 대형이었다.
그걸 본 여명은 짧게 숨을 삼킨 뒤, 양손으로 검을 잡았다.
팔만 자르는 자비는 이곳에 없었다. 붉게 물든 주가시빌리들의 눈동자 위로, 똑같이 붉게 물든 여명의 눈동자가 겹쳤다.
무릎은 한 걸음 앞으로, 멸공 성검이 횡을 그렸다.
!!!
얇디얇은 검기가 지나간 자리로, 주가시빌리들이 동시에 발을 멈췄다. 여명이 살기를 빼앗은 까닭일까? 광기로 가득 차 있던 그들은 멍한 표정으로 여명과 자신들의 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찰나의 시간이 흐른 직후. 주가시빌리들의 몸에 기다란 선이 생겨났다. 그리고-
-푸확!
피가 터져 나오며 주가시빌리들의 상체와 하체가 분리됐다. 흩뿌려지는 피, 흘러내리는 내장.
“커흑…!”
“Нихуя себе….”
“크아아악!!”
“Иди нахуй, Иди нахуй, Иди нахуй, Иди нахуй….”
바닥에 널브러진 주가시빌리들의 입에서는 굉음이 아닌 고통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명은 탁! 멸공 성검에 묻은 피를 털었다. 검날이 기분 좋게 울리는 게, 아마 군가라도 부르고 있는 듯했다.
음소거를 해놔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여명은 토막 난 주가시빌리들에게 다가갔다.
그래도 주가시빌리는 주가시빌리라고 해야 할까. 녀석들은 조금 전 여명이 부순 벽 사이에서 흘러드는 미약한 살기로 몸을 재생하고 있었다.
이대로 몇 분만 지나면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일어나겠지. 새삼 주가시빌리의 흉악성을 상기하면서, 여명은 발을 들었다.
비각술의 오의, 진각. 이대로 머리통을 으깨버리고 시체까지 말끔히 태워버리면, 주가시빌리라도 되살아나진 못 하리라.
그렇게 판단한 여명이 발을 내려찍으려는 순간.
쾅!!!
누군가가 멀쩡한 비료 창고의 벽을 박살 내며 안으로 들어왔다. 몸통 박치기 자세로 바닥을 구른 그는, 빠르게 자세를 다잡으며 소리쳤다.
“천여명! 내가 도우러… 음?”
“…?”
여명은 발을 든 자세 그대로 고개를 돌려 침입자를 바라봤다.
“…독화.”
파순과 같은 옛 지배자들의 한 명이자, 드워프의 복수에서 벗어난 최후의 주가시빌리.
붉은 눈동자의 거한은 여명과 쓰러진 주가시빌리들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주가시빌리 여섯 명을… 벌써?”
평소의 여명이라면 그가 무안하지 않도록 배려했을 테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여명은 차갑게 되물었다.
“벌써는 내가 할 말이다. 독화. 뭐 하러 온 거냐? 이번에도 의뢰인의 뒤통수를 친 거냐?”
여기서 의뢰인은 CIA를 뜻했다. 독화는 여명의 말을 이해한 듯했지만, 바로 대답하진 않았다.
그는 아주 짧게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주가시빌리들을 바라보다가, 크흠- 헛기침하며 말했다.
“내가 널 찾아온 건 개인적인 이유다.”
도우러 왔다는 말은 쏙 집어넣었네. 여명은 화악! 멸공 성검에 검기를 불어넣으며 말했다.
“한판 붙을 생각이라면, 빨리 덤벼라. 시간 아까우니.”
“잠깐, 잠깐… 칼 내리고. 일단 대화부터 하자. 살기도 좀 거두고… 이거, 어째 성질이 점점 더 파순을 닮아가는군.”
“뭐 씨발?”
“…농담이다. 진짜 너와 싸울 생각 없으니, 그 불길한 칼 집어넣어라.”
“….”
파순과 닮아간다는 말이 어지간히도 짜증 났는지, 여명은 여전히 칼을 든 자세였다. 독화는 몸에 묻은 콘크리트 조각을 털며 말했다.
“제안이 하나 있다. 사정이 조금 긴데, 일단은-”
“시간 없으니까 짧게, 요약만.”
“….”
독화는 쓰러진 주가시빌리들을 향해 턱짓했다.
“나는 주가시빌리 형제들의 신변과 목숨을 원한다.”
형제는 무슨. 여명은 쓰러진 주가시빌리들을 바라봤다. 땅을 기는 그들은 상체만 남은 꼴로도 어떻게든 공격하겠다는 듯 손을 휘젓고 있었다.
여명은 남들보다 빠르게 재생을 끝마친 고려인 주가시빌리의 팔을 자르며 대답했다.
“…거절한다.”
“이쪽 조건을 듣고 대답해도 늦지 않을 텐데.”
“무슨 조건인지 몰라도, 이런 위험한 녀석들을 살려두는 것보다 가치가 있을 것 같진 않-”
그때, 콰아아앙!!! 도심 저편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들려왔다. 미군이 주둔 중인 차원문 세관에서 나는 소리였다.
미군과 교전을 시작한 건가? 여명이 눈살을 찌푸리는 가운데, 독화는 아지랑이 너머로 보이는 불꽃을 보며 말했다.
“첫 번째로, 주가시빌리와 전투에 나도 한손 거들겠다. 제 정신인 주가시빌리가 한 명 더 있으면, 피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겠지.”
“…첫 번째? 그러면 두 번째도 있나?”
“주가시빌리들의 대처법을 알려줄 생각이었는데… 그건 필요는 없어 보이는군. 그러니, 그만큼 값진 정보를 넘기겠다.”
“….”
“이 도시에 주둔 중인 CIA의 목적이 뭔지, 궁금하지 않나?”
“…CIA의 목적? 어차피 엘릭서겠지. 애초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쪽도 어련히 이 싸움에 낄 테니.”
독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CIA의 목적은 엘릭서가 아니다. 그리고 또… CIA는 이 싸움을 방해했으면 했지, 절대로 돕지 않을 거다.”
“…뭐?”
뒤이어 그가 꺼낸 말은, 여명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CIA의 목표는, 아폴로 시티를 제2의 버마로 만드는 것이니.”
***
푸확!
가짜 붉은 별은 샤쉬카를 휘둘러 팔을 잘랐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왼팔을.
툭- 잘린 팔이 바닥에 떨어진 직후, 재생을 억누르고 있던 위선과 오만의 마나가 사라졌다.
“재생을 방해할 정도로 극악한 침투공… 짐승이나 익힐 무술이군.”
붉은 별이 잘린 팔을 재생하며 이죽거리자, 코르부스가 손날을 수평으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빨갱이 처형에 딱 어울리는 무술 아니오?”
“….”
“다음에는 척추를 찔러드리겠소. 어디, 거기도 잘라낼 수 있는지 보겠소.”
“하! 아주 자신만만하군.”
가짜 붉은 별은 입에 고인 피를 삼키며 덧붙였다.
“미국에게 패배한 짐승 주제에.”
“망한 나라의 혁명가만 하겠소?”
“….”
정곡이었던 걸까? 가짜 붉은 별의 표정이 굳는 순간, 얼어붙은 아스팔트에서 날카로운 얼음 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도발 후 이어지는 선공. 붉은 별은 훌쩍 얼음을 피하며 말했다.
“여유가 없군. 짐승. 호텔의 아이들이 걱정되나 보지?”
코르부스는 대답 대신,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손날을 휘둘렀다. 손가락 사이로 칼날처럼 사아악-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가짜 붉은 별의 샤쉬카가 번뜩였다.
쩌엉 -!!!
검과 살이 충돌하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지랑이가 출렁거리는 가운데, 가짜 붉은 별은 하- 웃음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으며 뒤로 쭉 밀려났다.
코르부스는 곧바로 따라붙으며 발을 휘둘렀다. 무진연각. 가짜 붉은 별은 숨을 고를 새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샤쉬카에 깃든 살기와 마나가 발차기를 막아냈지만, 힘의 우위는 명확했다.
그는 한 번 더 뒤로 밀려나며 생각했다.
이만한 마법에, 주가시빌리로 강화한 육체를 상회하는 힘이라니. 빌어먹을 짐승년.
그가 짐승에게 지는 일은 없겠지만, 이대로 살려 보내면 계획이 망가질 가능성이 있었다. 가짜 붉은 별은 진짜 척추를 노리는 코르부스의 손날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소리쳤다.
“청색과 녹색 신호탄을 터트려라!!”
곧, 아지랑이 너머에서 대기하고 있던 공산당원이 두 개의 신호탄을 꺼내 하늘로 쏘아냈다.
피유웅- 펑!!
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한 신호탄이 폭죽처럼 허공을 채웠다. 누가 봐도 지원을 부르는 신호였고, 코르부스는 조금 더 속도를 높였다. 위선과 오만을 두른 손날, 그리고 주문 영창.
“눈 내린 사립문을 열고, 눈 쌓인 마당에 발자국을 찍는다.”
주변의 마나를 따라 주문이 공명하고, 마법사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복잡한 주문들이 실처럼 엮이며 거대한 베일을 만들어냈다.
곧, 코르부스가 준비하는 게 무슨 주문인지 깨달은 가짜 붉은 별은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서리 특이점!”
시카고에서 마왕을 얼려버렸던 바로 그 마법이었다. 가짜 붉은 별은 기함하며 크게 검을 휘둘렀다. 위선과 오만에 직격당하는 일이 있어도 거리를 벌리겠다는 의지가 담긴 검이었다.
하지만 코르부스는 거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그녀는 아지랑이를 가르며 가짜 붉은 별을 압박했다.
촤악! 코르부스의 손날이 가짜 붉은 별의 광대뼈를 긁는 것과 동시에, 주문이 완성된 것 됐다.
다음 순간, 얼어붙은 마나가 그대로 폭발했다.
앞에 있던 가짜 붉은 별이 아닌, 뒤통수를 향해서.
파스스 – !! 그녀의 뒤에 있던 가로등과 도로, 그리고 그 위에서 달려들던 대형 트레일러 트럭이 통째로 얼어붙었다.
끼이이이익 – !!
급제동 브레이크를 밟은 것처럼 멈춰 선 트럭은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눈치가 빠르군. 짐승의 본능이란 거냐?”
뒤로 물러나는 가짜 붉은 별의 조롱과 동시에, 거대한 트럭이 호텔 앞 도로를 긁었다. 아스팔트가 출렁거리고, 흙먼지가 비산했다. 끔찍한 광경이었지만, 진짜 끔찍한 일은 이제 시작이었다.
“우라아아아아 – !!”
분노한 외침과 동시에, 벌겋게 충혈된 눈동자의 군인이 트레일러를 찢고 튀어나왔다.
광폭화환 주가시빌리. 그것도 두 명.
녀석들은 얼어붙은 팔과 다리를 통째로 뜯어낸 뒤, 몸을 재생하며 트럭에서 뛰어 내렸다. 조금 전 신호탄은 녀석들을 부르기 위한 거였나?
코르부스는 다시 한번 마나를 모으며 자세를 잡았다.
“…오늘, 본인의 사냥 목록에 주가시빌리 셋을 추가하겠구려.”
그러자 도주를 멈춘 가짜 붉은 별이 웃었다.
“주가시빌리 셋? 고작 두 명만 지원하러 왔다고 누가 그랬지?”
“…!”
코르부스는 그제야, 녀석이 신호탄을 두 개 터트렸다는 걸 떠올렸다. 신호탄 하나에 주가시빌리 한 명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또 하나는 뭐지?
그녀의 의문에 대답한 건, 뒤통수 방향에서 날아온 대구경 총알이었다.
터엉 – !!
코르부스는 거의 본능적으로 360도 보호막을 펼쳤다. 미군의 전투 마법사들조차 감탄할 완벽한 대응. 이런 반응이 가능했던 높은 마법 실력과 경험 덕분이었다.
미군과 싸웠던 경험.
쩌적 – ! 보호막과 총알이 충돌하며 마나 가루가 튀고 쩌적 보호막에 금이 갔다. 전차 급은 아니더라도, 소총탄 정도는 가뿐히 막아내는 보호막이 일격에?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총알이 박힌 곳은 총소리가 들려온 뒤통수가 아니라, 그녀의 이마 바로 앞이었다.
발사된 위치와 전혀 다른 곳에서 날아오는 총알… 코르부스는 불길함을 삼키며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왜 안 좋은 예감은 틀리질 않는 건지. 아슬아슬하게 마법 범위를 벗어난 상가 건물 창문 너머, 커다란 총을 거치한 군인이 보였다. 그리고 그가 입은 군복은…
“…미군.”
빨갱이와 미군이 손을 잡았다…. 코르부스는 자신을 포위하는 세 명의 주가시빌리를 차례대로 바라봤다.
“오래 살다 보니 별꼴을 다 보게 되는구려.”
“장수의 단점이지. 일찍 죽는 게 복인 시대야.”
가짜 붉은 별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뒤, 조금 전에 코르부스에게 맞아 찢어진 광대뼈를 문질렀다.
찌익-! 그의 얼굴을 덮고 있던 가죽이 벗겨져 나가고, 그 아래에서 익숙한 얼굴이 드러났다. 아폴로 시티 공산당 대표, 리보프.
코르부스는 습관적으로 합! 입술을 다문 뒤 물었다.
“그쪽이 미국에 붙은 거요, 아니면 미국이 그쪽에 붙은 것이오?”
리보프는 다른 두 명의 주가시빌리와 함께 포위망을 만들며 대답했다.
“우리는 딱히 손을 잡은 적 없다. 공통의 목적을 위해 서로에게 낚시대를 드리웠을 뿐.”
“공통의 목적이라… 당신들도 수인이었소?”
아이들을 잡아먹기 위해 손을 잡은 거냐는 말. 리보프는 미간을 모아 애매한 미소를 만들었다. 계획에 성공한 음모가의 미소였다.
“그깟 아이들이라면 지구에도 썩어 넘친다.”
“엘릭서가 아샤에 있다는 걸 굳이 지적해야 하오?”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군. 하지만 아까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원하는 건 그 이상이라고. 엘릭서는 그저 과정에 불과하다.”
빠직. 깨진 얼음을 짓밟으며, 세 명의 주가시빌리가 코르부스를 둘러쌌다. 살기가 넘실거리고 있음에도, 이성을 잃은 주가시빌리 특유의 광증은 보이지 않았다. 코르부스는 이번 전투가 꽤나 길어질 걸 실감하며 말했다.
“무슨 이상인지 물을 필요도 없겠구려. 이 살인 괴물들이야말로 공산당의 이상 그 자체이니.”
“말조심해라. 짐승아. 당의 이상은 이데올로기가 뭔지도 모르는 짐승이 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논할 수 없다?”
“그래, 고작 초원 하나를 두고 아등바등하던 너희는 절대 모를 것이다. 세계의 절반을 지배하던 공산주의가 어떤 이념인지!”
“참 자랑스러우시겠소. 지배하던 세계의 절반을 잃었으니.”
“부정하겠다. 우리는 절반을 잃었지. 하지만 그건 우리가 패배해서 잃은 게 아니다. 혼란에 빠진 당 지도부가 스스로가 그 권리를 놓쳤을 뿐이다.”
“….”
“우리는 다시 일어나,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겠다.”
“…전쟁을 벌이겠단 말이오?”
그때, 터엉 – ! 미군 쪽에서 또다시 총이 발사됐다. 그리고 코르부스가 총알을 피해 보호막을 펼치는 것을 신호 삼아, 세 명의 주가시빌리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그래, 전쟁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냉전을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