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86)
을 위한 세계는 없다-786화(786/817)
EP.786 교향곡 제10번 E단조 작품 93 (3)
***
여명은 가슴을 관통하는 총알을 느끼며 눈살을 찌푸렸다. 총소리는 뒤에서 들렸건만, 정작 앞가슴을 꿰뚫린 까닭이었다.
‘브라우닝의 무술….’
샤프슈터를 개량한 끝에 미군이 정식으로 채택했다는 바로 그 무술이었다. 몇 번 본 적은 있었지만, 직접 맞아보니 역시 10강의 무술다웠다.
어쩐지, 스승님께서 이런 놈들에게 시간을 끌리고 있나 했다..
당장이라도 날아가서 녀석을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눈앞에서 리보프와 주가시빌리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선공권은 빨갱이들에게 넘어갔다. 여명은 나란히 선 코르부스에게 눈짓을 보낸 뒤,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
검과 살기가 충돌하는 충격파를 시작으로, 다섯 명이 얽힌 난전이 시작됐다. 여명과 코르부스가 동시에 위선과 오만을 펼치는 가운데, 세 주가시빌리의 살기가 몰아쳤다.
피가 튀고, 살이 잘려 나갔다. 대부분은 주가시빌리의 피와 살이었지만, 일부는 여명의 것이기도 했다.
그래, 의외로 공방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았다.
빙의한 예브게니의 실력이 생각보다 뛰어나서?
세 빨갱이의 합공이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형제의 그것처럼 완벽해서?
아니면 결정적인 순간마다 날아오는 총알 때문에?
그 무엇도 정답이 아니었다. 정답은 여명과 코르부스가 주고받는 눈길 속에 있었다.
‘준비하세요.’
‘알겠소.’
코르부스가 고개를 끄덕인 직후, 여명은 예브게니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해할 수가 없군.”
두 명의 주가시빌리는 동시에 예브게니의 말을 전달했다.
[[반동의 부족한 지능으로는 이해할 수 없겠지. 위대한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후손이 같은 목적 아래 힘을 합친다는 게-]]여명은 파고드는 검을 쳐내며 대답했다.
“아니, 그거 말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바로 너다. 너, 정말로 스탈린의 후예가 맞나?”
[[…??]]“내가 직접 본 스탈린이랑 닮은 곳이 하나도 없는데.”
[[뭐?]]“아버지가 양자였다거나, 뭐… 그런 거냐?”
두 주가시빌리는 물론이고, 코르부스에게 검을 휘두르던 리보프의 표정까지도 일그러졌다. 도발 속에 숨겨진 다른 말 때문에.
[[…그분을 직접 뵀다고?]]놀라움 사이로, 공세가 한풀 꺾였다. 여명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코르부스!”
얼어붙은 아스팔트 위로 발자국이 찍히는 동시에, 여명의 검에서 불씨가 치솟았다. 코르부스가 얼음벽을 치는 순간-
콰아아앙 – !!!
화산쇄설의 폭발이 터져 나왔다. 주가시빌리조차 날아가고, 코르부스의 얼음벽이 단번에 깨질 정도로 커다란 폭발.
그렇게 번 찰나의 시간 속에서, 여명은 깨진 얼음벽 사이로 손을 뻗었다. 그동안 여러 번 손발을 맞췄던 스승은 기꺼이 제자의 손을 맞잡았다.
합공?? 손을 붙잡은 두 사람을 본 빨갱이들이 긴장했지만, 이어진 여명의 행동은 그들의 예상과 조금… 아니, 아주 달랐다.
코르부스와 손을 맞잡은 여명은 제자리에서 회전했다. 천도무친의 바람과 살기가 휘몰아치는, 문자 그대로 소용돌이 같은 회전이었다.
그리고 회전이 절정에 달한 순간.
여명은 총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코르부스를 ‘투척’했다.
뒤늦게 그가 무슨 짓을 벌이려는 지 눈치챈 리보프가 움직였지만, 너무 늦었다. 살기를 뚫고 날아간 코르부스는 눈 깜빡할 사이에 까마귀로 변신했으니까.
하늘 너머로 사라지는 까마귀를 보며, 주가시빌리들이 중얼거렸다.
“이 무슨….”
당혹감이 가득한 말투였으나, 지금은 전투 중이었다. 예브게니는 빠르게 침착함을 되찾았다.
[[거짓으로 그분의 이름을 팔아 틈을 만들다니. 연방에 대한 일말의 경의조차 없는 거냐?]]그러자 여명은 스승님을 붙잡고 있던 손을 쥐락펴락하며 대답했다.
“거짓? 뭐, 마음대로 생각해라.”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한 걸까, 예브게니의 눈이 조금 더 사나워졌다.
[[저 짐승이 저격수를 없애고 돌아오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우리의 계획이 그렇게 간단-]]그때, 여명이 녀석의 말을 끊었다.
“아니, 돌아오실 필요 없다.”
[[…여기서 죽을 셈이냐?]]“아니, 정 반대지. 너희는 나 혼자서도 충분해.”
예브게니는 물론이고, 리보프조차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그들의 눈동자는 웃지 않았다. 두 공산주의자의 눈은 베를린을 점령한 붉은 군대처럼 살기로 가득했다.
[[기고만장하구나. 하기야, 주가시빌리 여섯을 쓰러트렸으면 그만한 자신감이 생길 법하지. 하지만….]]녀석이 말꼬리를 늘어트린 순간, 하늘 위를 뒤덮고 있던 살기가 한층 더 진해졌다.
주가시빌리가 내뿜는 살기와 어딘가 다른, 마치 여명을 적대하는 듯한 불길한 살기.
그 아래에서, 스탈린의 손자가 선언했다.
[[너와 이 도시 모두… 다음 여명을 보지 못할 것이다.]]***
아폴로 시티 차원문 앞, 출입국 사무소.
군사 관계자 외에는 출입이 불가능한 작전 통제실에서, 계기판을 내려다보던 통신병이 헤드셋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13차례 모두 답변 없음. 헬기 신호가 끊겼습니다.”
“…3대 전부?”
“예, 3대 전부 침묵 중입니다.”
“….”
직후, 통제실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주가시빌리가 날뛰는 도시에서 연락이 끊겼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뿐이었으므로.
머리가 잘렸다.
통제실 내부의 모두가 입을 다문 가운데, 그나마 이곳에서 가장 계급이 높은 장교가 억지로 입을 열었다.
“본부에 연락은? 현재 남은 최선임 장교에게 지휘권을 이양하고, 긴급 명령을 요청….”
다른 통신병이 대답했다.
“본부도 침묵 중입니다.”
설마 본부도 당했나? 최악의 상황을 떠 올린 장교는 자신도 모르게 ‘니미 씨발’ 이라고 중얼거렸다.
지금부터 그가 명령을 내려야 했지만, 애초에 장교에겐 그럴 깜냥이 없었다. 세관에 부임한 이유부터가 전투와는 거리가 멀어서였으니까.
아주 짧게 고민한 그는 결국 명령을 내리는 대신, 책임을 돌리기로 했다.
“인편을 소집해. 차원문 너머로 통신병을 보내 상황을 설명한다. 우리는 펜타곤의 명령을 기다린다.”
그러자 통신병 한 명이 반발했다. 평상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워낙 인망이 없는 장교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재고해 주십시오! 펜타곤의 명령을 기다릴 경우 설명과 판단까지 적어도 10분은 걸릴 겁니다! 그 사이 시민들이 얼마나 죽어 나갈 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당장 긴급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닥쳐! 판단은 내가-”
그때, 군 통신망에서 흘러든 목소리가 장교의 말을 끊었다.
[여기는 초인군 산하 델타.]“….”
[아폴로 시티에 투입된 분견대 6인. 전원 출동 준비 완료했다.]고저가 없는 살벌한 목소리. 델타 포스의 목소리였다. 그들의 전투 차량이 통과했던 걸 직접 봤던 장교는 물론이고, 통신병조차 숨을 죽였다.
[교전 허가를 요청한다.]간신히 정신을 차린 장교가 대답했다.
“…불가하다. 상부의 지시가 올 때까지 자리를 지켜라.”
분명 거절했음에도, 통신 너머의 목소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답했다.
[폭발물 사용과 선제 사격에 대한 권한을 요청한다.]“불가!”
[그 외에 도시의 지형, 인구, 배치 상황이 필요하다. 지휘부의 데이터 베이스 동기화를 요청한다.]“이 미친 초인 새끼가, 명령을 기다리라고 했잖아!”
[….]짧은 침묵. 통신은 여전히 연결되어 있었으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너머에서 철컥- 총이 장전되는 소리와 함께 대답이 돌아왔다.
[격언 하나. 빨갱이에게 시간을 주지 마라.]“…뭐?”
[격언 둘. 대 엘프 전쟁 당시 장교의 사망 원인 중 18퍼센트는 아군에 의한 사살이었다.]“….”
장교는 무어라 반박하려다가, 통제실에 모인 다른 장교들과 병사들을 둘러봤다. 긴장, 의심, 뭔가를 각오하는 듯한 눈빛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꿀꺽.
침을 삼킨 장교는 잠시 고민했다. 혹은, 고민했다. 다시 말하지만, 장교는 책임을 짊어질 용기 따윈 없었다.
그는 눈을 질끈 감으며 대답했다.
“허가… 한다.”
직후, 통신 너머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교전 허가는 그저 사후 변명을 위한 거라는 걸 증명하는 소리였다.
***
샌드위치를 숭배하는 네크로맨서가 확성기로 어울리지 않는 말을 내뱉고 있는 빌딩 아래.
온 힘을 다해 달리는 엘프가 소리쳤다.
“두 명! 포인트까지 300미터!!”
그녀의 말을 해석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앞의 두 명은 주가시빌리 두 명을 끌고 왔단 뜻이었고, 포인트는 듀크 중령이 대기하고 있는 계단을 뜻했다.
그랬다. 쇠미리는 주가시빌리들을 끌고 오는 미끼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엘프 공주답지 않은 희생정신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행 중에 주가시빌리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게 그녀뿐이었으니까.
아무튼, 그녀는 주가시빌리에게 잡히기 전에 빌딩 계단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두 명의 주가시빌리가 계단에 도착한 순간.
두두두두 – !!
계단 위에서 대기 중이었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총알을 낭비하는 일이었지만, 사수가 샤프슈터를 마스터한 데스나이트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계단 아래로 쏟아진 발사된 모든 총알이 불가능한 각도로 꺾이더니, 그대로 주가시빌리들을 강타했다. 발목, 허벅지의 대동맥, 척추, 폐, 심장, 목, 그리고 뇌.
순식간에 벌집이 된 주가시빌리들은 계단을 물들이며 쓰러졌다. 하지만 함정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계단을 오른 엘프는 곧장 준비해둔 기폭 장치를 꾹- 눌렀다.
!!!!
계단 위아래로 설치된 폭탄은 정확하게 주가시빌리들의 몸을 날려버리고, 바로 위층 계단을 무너트렸다. 돌이 쏟아지는 소리가 울린 직후, 주가시빌리들은 계단의 잔해 아래 파묻혔다.
슬쩍 무너진 계단을 확인한 엘프는 푸하- 안도의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데스나이트분들도 부를 걸 그랬어요….”
곧, 위층에 있던 듀크가 계단을 내려오며 대답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 양반들이 나설 자리가 아니다. 전통 아샤 초인은 주가시빌리와 상성이 너무 안 좋아. 괜히 붙었다가 박살 나면 진짜 성불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말이 그렇다는 거죠….”
짧게 투덜거린 그녀는 곧 대화 주제를 바꿨다.
“이제 다음 포인트로 이동하시죠. 다시 폭탄을 설치하고 총을 설치하려면 시간이 빠듯해-”
그때, 그녀의 시야로 꿈틀, 움직이는 팔이 보였다.
계단 아래 파묻힌 주가시빌리의 팔.
사후 경련? 아니, 아니었다. 팔은 또 한 번 꿈틀거렸다.
“???”
머리에 총알이 박히고, 폭발하고, 돌에 깔렸는데도 살아 있다고?
쇠미리는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주, 중령님? 원래 저 정도로 질겨요? 원래 뇌에 구멍 나면 죽는 거 아니었어요?”
-아니, 네 말대로 뇌가 박살 나면 주가시빌리도 죽는다.
“그, 그럼 저건…?”
중령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미리가 준비한 폭탄에 기폭장치를 달며 말했다.
-딱 한 번, 비슷한 내용의 보고를 본 적 있었다. 한데, 이 상황에 그게 맞는 건지 모르겠군.
“무슨 보고였죠?”
-스탈린이 동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녀석을 죽이기 위해 투입된 암살팀이 비슷한 보고를 올렸었다. 스탈린을 호위하는 주가시빌리들은 뇌와 심장이 터져도 재생했다고.
스탈린 암살이라니. 쇠미리는 새삼 냉전이 미친 시절이라는 걸 상기하며 되물었다.
“…대처법은요? 어떻게 처리해야 하죠?”
-모른다. 있었다고 해도 우리로선 알 방법이 없다. 암살팀 중 생존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
-하지만 이상한 일이군. 설마 스탈린이 살아 돌아온 건 아닐 텐데….
듀크가 말꼬리를 흐리는 가운데, 쇠미리는 스탈린이 살아있다는 말을 삼켰다. 그녀가 아는 한, 스탈린은 이쪽(?) 편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