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87)
을 위한 세계는 없다-787화(787/817)
EP.787 교향곡 제10번 E단조 작품 93 (4)
***
[[너와 이 도시 모두… 다음 여명을 보지 못할 것이다.]]여명은 대답 대신, 멸공성검을 들었다.
공산주의만큼이나 붉은 칼날을 마주한 리보프와 예브게니는 사납게 달려들었다.
예브게니가 조종하는 두 명의 주가시빌리가 살기를 뿜으며 앞장서고, 뒤따르는 리보프가 그 살기를 흡수하며 검을 붉게 물들었다. 어찌나 많은 양의 살기가 마나로 전환되는지, 두 사람 주변의 대기가 일렁거릴 정도였다.
더 강하게, 더 빠르게.
냉전이 낳은 살인 무술이 여명을 향해 쏟아졌다. 멸공성검이 울리는 가운데, 네 명의 주가시빌리가 격돌했다.
상단에서 찔러 들어오는 주먹. 막는다. 검으로 반격. 목을 벤다.
그사이 옆구리를 걷어차는 발. 마나를 두른 채 맞아준다. 내장이 뒤틀렸지만, 리보프의 검을 막을 수 있었다. 왼손으로 반격.
리보프가 물러나고, 뒤이은 주가시빌리와 크로스 카운터. 서로의 머리를 노렸으나, 아슬아슬하게 목에 구멍이 났다. 치밀어 오르는 피를 참으며 가슴을 토막 낸다. 다시 달려든 리보프의 검에 찔리면서, 리보프의 눈을 찌른다…
네 명의 주가시빌리는 서로가 찰흙 인형이라도 되는 양, 상처 따윈 개의치 않고 난타전을 벌였다.
피와 뼈, 살과 내장이 흩뿌려지는 미친 난타전.
당연하게도, 난타전의 승기를 잡은 건 숫자가 더 많은 예브게니 쪽이었다. 그는 여명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내며 소리쳤다.
[[큰소리치던 입은 어디 갔나! 너무 막혀서 말문이 막히기라도 한 거냐?!]]여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히 바람을 모으고 또 모을 뿐.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여명의 검에 허벅지가 잘려 쓰러진 리보프는 뒤늦게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바람이 이상했다. 주변에 휘몰아치는 바람은 살기나, 싸움의 충격파로 만들어진 것 이상으로 격렬한 바람… 설마?
“…잠깐, 예브게니!”
그가 경고하려는 순간.
멸공 성검의 붉은 검신을 따라 천도무친의 바람과 화산쇄설의 불씨가 함께 휘몰아쳤다. 살기와 바람, 그리고 불씨가 한데 뒤엉켜 태풍을 만들어냈다.
조금 전 불씨가 폭발하는 걸 봤던 예브게니는 빠르게 몸을 뒤로 뺐다. 무의미한 짓이었다.
여명은 너무 느리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게 검을 휘둘렀다. 예브게니를 정확히 노릴 필요도 없었다. 그의 검에서 터져 나온 태풍은 이미 전방을 가득 채웠으니까.
화산쇄설. 지구를 벌하고자 했던 기사의 폭발을 따라, 천도무친. 자유와 선을 바라던 군인의 바람이 증폭했다.
그리고- 폭발.
소리는 없었다. 너무나 큰 충격 때문에 고막이 찢어진 거였지만, 여명은 개의치 않았다. 그와 싸우던 세 주가시빌리는 고막 이상을 잃었으니까.
살과 피로 이루어진 세 남자가 폭발 속으로 사라졌다. 아스팔트 도로가 뒤집어지고, 옆에 서 있던 건물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
한박자 늦게, 충격이 몸을 강타했다. 그래, 폭발은 여명을 피해 가지 않았다. 그의 몸이 땅에 긴 흔적을 남기며 밀려나고, 성검을 쥐고 있던 오른쪽 상체가 폭발에 휩쓸려 박살 났다.
여명은 상관하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의 안위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휘두른 폭발이었다. 그는 뼈조차 남지 않은 오른손을 재생하며 폭발의 현장을 눈에 담았다.
화산쇄설의 폭발이 지나간 자리는 마치 거대한 짐승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처참했다. 아스팔트 아래 땅이 드러나고, 폭발 속에서 망가진 잔해들이 곳곳을 장식하고 있었다.
위력만 따지면 서울을 덮쳤던 포격 이상.
민간인이 있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공격이었으나, 휘말릴 민간인은 공산당의 요란한 등장을 보자마자 도망친 뒤였다.
어쨌거나, 여명은 날아간 멸공 성검을 인벤토리로 회수한 뒤, 다시 손에 쥐며 폭심지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머리와 무기를 쥔 오른손만 남은 리보프와 마찬가지로 상체만 남은 예브게니가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다른 놈이 보이질 않는 걸 보아, 한 명을 방패 삼아 목숨을 건진 듯싶었는데… 심지어 방패로 쓰인 주가시빌리조차 뼛조각 하나에서 몸을 재생하고 있었다.
여명은 눈살을 찌푸렸다.
‘주가시빌리가 아무리 강해도, 이만한 생존력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애초에 완성형이 아니면 살기를 유형화하는 것조차 못 할 텐데….’
이상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스탈린의 말마따나, 압도적인 화력은 많은 걸 해결하는 법. 여명은 다시 한번 천도무친을 일으켰다.
또다시 몰아치는 바람을 본 예브게니는 쿨럭, 입에서 잿가루 섞인 피를 토하며 말했다.
[궈타오… 조국을 배신하고 에뮤 불알이나 따는 놈의 무술을… 네놈이 어떻게….]여명은 불씨가 휘날리는 검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모든 공산주의자는 형제라는 게 소련의 모토 아니었나? 형제끼리 물건을 나누어 쓰는 게 뭐가 그리 신기하지?”
예브게니는 분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명의 바로 뒤통수에서.
[반동 새끼가, 감히!]흠칫, 뒤를 돌아보자, 처음 보는 주가시빌리가 그를 향해 손날을 내려치는 게 보였다.
여명은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 !!!
증폭이 없어 조금 전보다 화력이 떨어졌지만, 사람 하나 박살 내기엔 충분한 폭발이 주가시빌리를 후려쳤다.
하체가 통째로 사라진 주가시빌리가 반대편으로 날아가는 가운데, 여명은 다시 검을 쥐었다.
‘범위 내에 있는 주가시빌리를 조종할 수 있다…? 아니, 이 경우에는 살기가 닿는 모든 곳을 조종할 수 있다고 봐야 하나. ’
대체 무슨 수를 쓰는 건지 몰라도, 도시를 가득 채운 살기와 관계가 있는 게 분명했다. 예브게니와 리보프에겐 살기를 흡수할 수 없는 이상, 이 살기의 근원지부터 찾아야 하리라.
판단을 끝낸 여명은 이제 막 재생을 끝낸 예브게니를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
손바닥을 본 예브게니는 곧장 전투 자세를 잡았다. 마법? 무술? 아니면 또다시 폭발? 살기를 흠뻑 빨아들인 그는 다음 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여명이 손바닥을 꽉 쥐며 던진 공격은, 모든 예상을 뛰어넘었다.
머리 위에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돌덩어리들.
예브게니는 그게 지하 공군기지를 메꾸기 위해 인벤토리에 챙겨놓은 돌이라는 걸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떨어지는 돌의 양이 폭심지를 통째로 채우고도 남을 양이라는 건 곧바로 알아챘다.
산채로 파묻힌다.
기겁한 그는 아직 재생을 끝내지 못한 리보프와 주가시빌리를 안고 위로 뛰어올랐다. 떨어지는 돌 사이를 폴짝폴짝 뛰어오르는 그의 모습은 가히 예술에 가까웠다.
하지만 여명은 감탄 대신, 염동력으로 조금 전에 무너진 건물의 잔해와 상체만 남은 주가시빌리를 집어 들었다.
“처박혀 있어.”
[이노옴 – !!!]잔해로 뭘 할지 깨달은 예브게니가 소리치건 말건, 여명은 잔해와 주가시빌리를 동시에 집어 던졌다.
휘익! 날아간 거대한 잔해는 그대로 예브게니의 몸을 강타했다. 간신히 위로 올라왔던 주가시빌리의 몸이 균형을 잃는 순간이었다.
다음 순간, 쿠구궁…!!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를 끝으로, 예브게니와 주가시빌리들은 무수한 돌 아래 파묻혔다.
끝났나?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저 돌덩어리로도 오래 붙잡아 둘 수 없을 거란 확신에 가까운 예감 때문에.
여명은 자신이 만든 빨갱이 돌 무덤을 잠시 바라보다가, 살기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깊게 살기를 들이마셨다.
폐에 들어차는 진한 살기를 따라, 감각이 곤두섰다.
이 살기의 근원지는 어디인가? 너무 많은 살기 때문에 탐색이 쉽지 않았지만, 여명은 곧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주변에 적어도 다섯 곳 이상. 가장 가까운 건 차원문이 있는 방향으로 2km 정도…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여명은 한 번 더 돌무덤을 확인한 뒤, 곧장 차원문 방향으로 뛰어올랐다.
번쩍! 그의 몸이 신성을 따라 빠르게 가속하길 잠시.
멀지 않은 곳에서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작은 상점이 보였다. 다행히 민간인은 모두 도망간 듯, 주변에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여명은 그대로 착지해 상점으로 들어갔다. 아지랑이가 어찌나 진한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가 눈 대신 감각으로 내부를 살피던 그때.
상점 주류 전시대 보드카 사이에서, 살기의 근원을 발견했다.
손바닥만 한 붉은 별 안에 ‘10월 혁명’이라고 적힌 깃발과 군함이 그려진 오각형 문장이 박힌 물건.
그게 뭔지 알아본 여명이 눈살을 찌푸리는 사이, 멸공 성검이 그것의 이름을 말했다.
[10월 혁명 훈장… 인공 성물이다.]소비에트 연방의 시작을 알린, 10월 혁명을 기리는 훈장. 적기 훈장이나 레닌 훈장만은 못 했지만, 이것도 꽤 이름있는 훈장이었다.
물론, 여명은 이런 귀한 훈장을 봤다는 감동 같은 건 느끼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살짝 질린 얼굴로 훈장을 바라보았다.
빨갱이 새끼들. 훈장이란 훈장은 다 성물로 만드는구나.
어쨌거나, 훈장에 가까이 다가간 여명은 내부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인벤토리에 회수할 생각이었는데….
움찔.
성물이 그를 거부했다. 성물에 신성을 불어넣는 신이 그를 거부하는 것처럼, 강렬하게.
뭐지? 설마 인공 성물이 자신을 거부할 줄 몰랐던 여명은 멸공 성검에게 물었다.
“멸공.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겠어?”
[나도 잘 모르겠다. 애초에 이 훈장은… 스탈린이 살아있던 시절에는 인공 성물로 개조된 적 없는 물건이다. 적기 훈장이나, 레닌 훈장과 비교하면 격이 낮았으니까.]“….”
스탈린 실종 이후에 제작된 물건… 안 좋은 예감을 삼킨 여명은 그대로 10월 혁명 훈장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손에 힘을 줘 훈장을 박살 내려는 순간.
-끼익.
그의 감각이 상점 앞에 커다란 장갑차가 멈춰서는 걸 캐치했다. 누구인지 물어볼 것도 없었다. 이 도시에서 검은 보병 전투 장갑차를 타는 녀석들은 딱 하나뿐이었으니까.
직후, 그의 확신에 쐐기를 박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갑차에서 내리는 여섯 명의 발소리.
‘델타 포스….’
운도 없지. 여명이 짙은 아지랑이 너머에서 느껴지는 총구를 느끼는 가운데, 노이즈가 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너희야말로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대답 대신 철컥, 피 냄새가 섞인 장전 소리가 들렸다.
[질문은 우리가 한다. 손에 든 물건 내려놓고, 뒤로 물러나.]“….”
여명은 그냥 훈장을 버려두고 자리를 뜰까 고민했다. 어차피 델타포스가 노리는 것도 이 훈장일 테니까.
하지만 녀석들이 자신을 순순히 놓아줄 것 같지 않았다. 괜히 추격전으로 넘어가면 공산당만 좋은 일 아닌가. 그래서 여명은 조심스레 훈장을 내려놓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얼굴에 덮여있던 피눈물의 환상을 다른 사람으로, 정확히는 남자 시절 파순의 얼굴로 바꾼 뒤 물었다.
“요구대로 물러났다. 이제 질문해도 되겠나?”
[아니, 그보다 먼저 네가 빨갱이가 아니란 걸 증명해라.]“….”
말로 빨갱이가 아닌 걸 어떻게 증명해? 여명이 그렇게 되물으려는데, 멸공 성검이 대뜸 이렇게 대답했다.
[스탈린은 개새끼다.]“….”
[대숙청으로 함께한 혁명 동지들을 죽이고,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한 학살자! 세상의 반을 움켜쥐고도 만족할 줄 몰라서 권력을 독점한 독재자! 히틀러가 없었다면 그가 세계의 적이 됐으리라!]여명이 놀란 눈으로 성검을 바라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지랑이 너머 델타포스가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하긴, 갑자기 스탈린 욕이 나오니 당황스럽긴 했겠지.
그들은 자기들끼리 무어라 쑥덕거리다가, 재차 질문해왔다.
[레닌은?] [유서 한 장 똑바로 못 쓴 대머리다. 볼셰비키는 스스로를 다수파라 불렀지만, 폭력을 사용하기 전 그들은 한 번도 다수였던 적 없었다!] [베리야는?] [소아성애 대머리. 위로는 권력에 아첨하고, 아래로는 공포를 흩뿌린 짐승 같은 놈! 녀석에겐 평가조차 아깝다.]이쯤 되자, 델타포스도 빨갱이가 아니란 걸 믿는 눈치였다. 잠시 뜸을 들인 그들은 추가 질문을 던졌다.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홀로도모르는 공산당과 스탈린의 무능이 부른 참사였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비옥한 땅의 주민들을 아사시켰어!] [레닌그라드 칼리닌 폴리 테크닉 연구 대학의 구호는?] [소련 만세! 북극곰이여 전진하라… 아.]성검이 아주 기초적인 함정에 빠진 순간, 여명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델타 포스는 그에게 일제히 총을 겨누며 말했다.
[빨갱이다. 사살해라.]여명은 정말 억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