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90)
을 위한 세계는 없다-790화(790/817)
EP.790 교향곡 제10번 E단조 작품 93 (7) (수정)
***
쓰나미가 밀려온다.
건물과 빌딩 사이로 몰려드는 붉은 아지랑이를 보며, 라쉬크가 느낀 첫 감상은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감상을 느낀 건 라쉬크만이 아니었다.
쓰나미를 마주한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세관으로 도망치던 사람들 모두가 패닉에 빠졌으니까.
-밀지 마!
-시발, 비켜! 비키라고!
경악과 혼란이 세관 앞 도로를 가득 채웠다. 세관 입구를 막고 있던 군인들이 검사를 중지하고 사람들을 안으로 들여보내기 시작했지만, 무의미한 일이었다.
짙은 아지랑이가 세관을 뒤덮는 게 훨씬 더 빨랐으므로.
후욱 – !
그 순간, 라쉬크는 자신도 모르게 코와 입을 막았다. 밀려든 아지랑이가 독가스와 비슷한 까닭이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눈과 코를 찌르고, 피부를 훑는 불쾌한 감각.
살기로 만든 독가스일까? 스탈린이 구봉산의 드워프들을 몰살했던 것처럼, 이 도시의 사람들을 다 죽일 생각인 걸까?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예상은 틀렸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아지랑이는 그녀의 예상보다 더 끔찍한 일을 만들었다.
-으아아아!!!
시작은 어떤 오크였다. 이종족이란 이유로 세관 입구에서 쫓겨나 도로 저편에 서 있던 그는, 갑자기 괴성을 내지르며 가로등에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쾅! 쾅! 철제 가로등이 찌그러질 정도로 머리를 박는 그의 눈은, 차별만큼이나 붉은색이었다.
-정지! 거기 오크! 당장 멈춰라! 뭐 하는 짓이냐!
놀란 세관의 군인이 총구를 겨눴지만, 오크는 자해를 멈추지 않았다. 가로등에 머리를 박으면서도 스스로 뺨을 때리고, 애처로우면서도 소름이 끼치는 비명을 질러댔다.
-아아아아!!
참다못한 군인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렸지만, 그 총이 발사되는 일은 없었다. 다음 순간, 온 사방에서 비슷한 비명이 들려왔으므로.
아, 아, 아 – !
가족의 손을 잡고 있던 아이가, 전 재산인 트럭을 버리고 도망쳐 온 남자가, 빵 바구니를 안고 있던 드워프가, 일당 걱정에 담배를 피우던 노동자가.
동시에 비명을 지르고, 자해하기 시작했다.
피 냄새가 뒤섞인 화음, 고통과 함께 차오르는 살기.
라쉬크는 그제야, 밀어닥친 살기가 무슨 작용을 한 건지 이해했다.
유형화된 살기가 호흡기와 점막을 통해 몸에 흡수되고, 혈관을 거쳐 뇌에 쌓인다.
즉, 비정상적으로 많은 살기가 뇌를 오염시켰다. 이건…
“…자연발생 주가시빌리?”
마나가 없는 일반 시민이 주가시빌리가 될 가능성이 있는가, 없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원리는 똑같았으니까.
“이런 시발.”
라쉬크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마나를 움직였다. 일반인과 다른 그녀의 내장이 꿈틀거리는 가운데, 살기에 잠식된 시민들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죽어!!!
두 시민은 서로를 향해 주먹과 발을 휘둘렀다. 어색한 몸짓은 무술을 모르는 일반인의 그것이었지만, 상대를 죽이려는 살기는 살인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폭력을 따라 살기가 또 다른 살기를 부르고, 아지랑이는 더욱더 짙어지리라.
좆 됐다. 상황 파악을 끝낸 라쉬크는 곧바로 담장에서 뛰어내리며 소리쳤다.
“시리! 정신 차려!”
멍하니 폭주한 시민들을 보고 있던 시리가 움찔, 정신을 차렸다. 라쉬크는 그녀의 노란 눈동자를 마주하며 소리쳤다.
“여기는 내가 막을 테니까, 너는 당장 세관으로 가! 목을 자르건 불태우건 상관없으니까, 가서 폭주하는 미군을 막아!!”
초인이랑 무기를 든 놈들이 폭주하면 우리 다 죽는다. 라쉬크는 뒷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그녀의 뒷말을 이해한 시리는 곧장 세관을 향해 뛰어올랐다.
그녀가 멀어지는 걸 확인한 라쉬크는 주머니에서 엑스가 표시된 포션을 꺼냈다. 절대로 마시지 않으리라 장담했던, 하지만 그럼에도 챙겨놨던 포션이었다.
“시발, 이럴 줄 알았으면 따라오지 말걸.”
투덜거림은 있었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라쉬크는 곧장 포션을 들이켰다. 산뜻한 딸기향 뒤로- 구역질 나는 괴수의 맛이 그녀의 목을 타고 내려갔다.
직후, 잠들어 있던 그녀의 내장들이 깨어났다. 미국이 만들어낸 실험체의 내장이었다.
“이걸로 미국인을 구하게 될 줄이야….”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면서, 라쉬크는 양손으로 땅을 짚었다.
‘나와. 한 놈도 빠짐 없이 나와서, 전부 틀어 막아!’
공주가 명령을 내린 직후- 맨홀 뚜껑, 쓰레기통, 그 외에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던 더러운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백성들이 부름에 응했다.
그리고 그녀의 백성을 마주한 몇몇 시민들은, 주가시빌리를 만났을 때 보다 더 큰 비명을 내질렀다.
***
모닝 아울은 감이 좋았다.
오랜 히어로 경험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쁜 예감이 틀린 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 순간,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거대한 덩어리와 그곳에서 몰려드는 아지랑이를 본 그의 감은 전력으로 경보등을 울렸다.
저기에 닿으면 안 된다. 모닝 아울은 당장 대기 중인 오크들에게 소리쳤다.
“지금 당장 문틈과 환풍구를 막아! 테이프건 뭐건 상관없으니, 저 아지랑이가 못 들어오게 막아!”
일족의 오크들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호텔을 향해 몰려드는 살기는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었으니까.
우당탕-! 오크들이 발 빠르게 호텔 VIP룸을 봉인하는 가운데, 모닝 아울은 호텔 로비에 전화를 걸어 똑같은 걸 요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최악이었다.
[호텔로 대피해 온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문을 닫을 수가 없습니다!]모닝 아울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했다. 조금 전 공산주의자들의 난동으로 도망갔던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든 것이리라.
세관이나 도시 바깥이 아닌, 하필 이 호텔로 온 이유? 뻔했다.
정문을 막은 얼음덩어리를 보고 대단한 마법사가 이 호텔에 있을 거라고 착각한 게 첫 번째요, 그리고 정말로 호텔에 묵고 있는 히어로 모닝 아울의 이름값이 두 번째였다.
“그러면 일단 직원들을 시켜 창문부터 닫으라고 명하시오. 투숙객들에게도 창문을 닫으라 전하고!”
[예, 예! 일단 그렇게 전하겠습니다!]직원과의 통화를 끝낸 모닝 아울은 이마를 쓸었다.
지금이라도 호텔 로비로 내려가야 하나? 내려가면 뭘 하지? 마법으로 어떻게든 아지랑이를 밀어내야 하나?
모닝 아울의 고민이 깊어지던 그때, 한 아이가 다가와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겁을 먹은 걸까? 모닝 아울은 아이를 위로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내려다본 아이의 눈에서 두려움은 찾을 수 없었다. 녀석은 오히려 모닝 아울을 위로했다.
“아저씨, 겁 먹찌마.”
“….”
“까마기가, 이기고 올 거래써.”
그 말을 들은 모닝 아울은 새삼스레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다급한 오크나 자신과 달리, 아이들은 평온했다. 자그마한 불안이 있을지언정, 엉엉 울거나 움츠러든 아이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모닝 아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코르부스는 이미 공산주의자들에게 패배했을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당장 호텔 아래에서 들려오는 총소리가 그 증거였다.
두두두두 – !!
공산주의자들이 호텔을 향해 사격하는 소리.
모닝 아울은 곧바로 아래로 내려갈 준비를 했다. 수인처럼 아이들에게 믿음은 줄 수 없겠지만, 적어도 호텔에 몰려든 민간인들의 피해는 줄일 수 있을 터.
‘히어로답게 죽겠군.’
모닝 아울이 오랜 각오를 다시 꺼내든 순간.
호텔 아래에서 들려오던 총소리가 멎었다.
뭐지? 설마 벌써 로비의 직원들을 다 학살한 걸까? 모닝 아울은 다급하게 문고리를 잡고 방을 나섰다.
…나서려 했다.
하지만 그가 몇 걸음 가기도 전에, 쩌저적!! 뭔가 얼어붙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인지 물을 필요도 없었다.
우르르 창가로 몰려간 아이들이 정답을 말해줬으니까.
“까마기!!”
모닝 아울이 아이들을 따라 아래를 내려다보자, 호텔 입구와 정문 사이를 뒤덮은 커다란 얼음 장막이 보였다. 입구에 몰려든 피난민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장막.
물론, 아이들은 장막 대신 다른 걸 보고 있었다.
“저기, 저기!”
미군으로 보이는 군인과 공산주의자들을 주렁주렁 매단 채 날아가는 까마귀.
그녀가 날아가는 방향은 호텔이 아닌, 조금 전에 솟아난 거대한 붉은 덩어리 방향이었다. 모닝 아울은 전장으로 향하는 까마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오크들을 향해 말했다.
“…나는 내려가서 아지랑이를 밀어내고 있겠다. 아이들을 부탁하마.”
***
거대한 살기 덩어리를 향해 날아가면서, 여명은 보았다.
자신의 가게로 사람들을 대피 시켰던 선량한 드워프가 사람들에게 물어 뜯기는 광경을 보았다.
살기에 장악 당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달려들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았고.
공격할 사람이 없어서 자해하는 사람을, 자신을 공격하는 아이를 끌어안은 어머니를, 폭주하기 전에 들고 있던 총을 버리고 자신의 팔을 묶는 시민을 보았다.
도시를 뒤덮은 불합리한 비극과 잔혹한 광기… 그러니까, 공산주의를 보았다.
그래, 이 광경이 공산주의였다. 마르크스가 재창한 사상이 이것과 다를지라도, 레닌이 이런 것을 위해 혁명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해도. 이것이 공산주의가 만든 현실이었다.
폭주한 이데올로기, 운명이 지배하는 세상의 한 축, 그리고- 주인공을 위해 준비된 사냥감.
여명은 주먹을 쥐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을 동정하지 않았지만, 증오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광경은… 역겨웠다.
치밀어오르는 구역질을 참으면서, 여명은 거대한 살기 덩어리 앞에 멈췄다. 덩어리 속 리보프가 그를 보며 미소 지었다.
[항복하러 왔나? 붉은 별?]“아니. 너희의 미친 짓을 끝내러 왔다.”
[미친 짓이라. 우리가 무슨 일을 벌였는지, 이해한 것처럼 말하는군.]여명은 멸공 성검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살기의 신성을 이용해, 도시의 시민들을 오염시킨 거겠지. 인공 성물은 그걸 위한 준비물일 테고.”
[….]“그나마 살기의 신이 되겠다고 깝죽거리지 않아서 다행이야. 피의 신을 노리다가 죽은 베리야를 보고 배운 게 있나 보지?”
정곡을 찔린 걸까, 리보프의 표정에 살짝 금이 갔다.
[살기의 신성을 알고 있다… 역시, 자연 발생 주가시빌리라 이건가.]끌끌, 쓰게 웃은 그는 살기에 삼켜진 도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네가 뭘 알고 있건, 늦었다. 우리 계획은 이미 성공했다.]“….”
[이 도시는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진주만을 공격 당했을 때처럼, 미국은 군대에 막대한 자원을 투자하겠지. 다시 냉전이 시작될 거다.]“미국을 이길 자신은 있고?”
[물론이다. 도시 하나를 통째로 폭주시키는 힘… 우리에게 이런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미국인들의 표정이 어떨지, 상상이 되나??]“…모스크바의 사람들이 무슨 표정을 지을진 예상이 간다.”
[그래, 바로 그거다. 미국은 핵무기를 준비하겠지만, 감히 연방을 포기한 모스크바의 쓰레기들은 우리에게 복종하게 될 거다! 우리는 오늘 수백 명의 주가시빌리를 얻게 될 테니까.]수백 명의 주가시빌리? 그 단어 속에 숨겨진 뜻을 읽어낸 여명은 눈살을 찌푸렸다.
“백만 명이 넘게 사는 도시에서… 수백 명만 남을 때까지 사람들을 상잔시키겠다고?”
[그래, 한 만 명쯤 죽이면, 마나를 모르는 일반인도 어엿한 주가시빌리가 되겠지.]“….”
여명은 그 미친 스케일에 감탄하는 대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해야… 이런 미친 짓을 태연하게 저지를 수 있는 거냐? 너희는 대체 어디가 잘못된 거냐?”
리보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모든 건 노동자를 구원하기 위해서다.]“…뭐?”
[이 시대는 잘못됐다. 노동자들은 신음하고, 자본가들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 들지 않아. 자본주의는 잘못됐다. 그들의 반대편에 있는 우리가 스스로 무너졌기에, 그들은 폭주했다.]“….”
[그 모든 실수를 바로 잡기 위해, 소련은 다시 일어나야 한다. 냉전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미친 새끼가. 여명은 분노로 떨리는 멸공 성검을 꽉 쥐며 되물었다.
“그들이 구원을 바라지 않으면?”
[흐음?]“소위 혁명가란 놈들은… 언제나 그게 문제지. 이 세상 모두가, 자신이 베푸는 구원을 원할 거라고 착각해.”
[….]“하지만 사람들은 너희에게 구원을 구걸한 적 없다. 전쟁이 하고 싶으면 너희끼리 해.”
그러자 리보프는 딱하다는 듯 구겨진 눈으로 여명을 바라보았다.
[놀랍군… 붉은 별, 네가 그런 이상주의자같은 소리를 지껄일 줄이야.]“…뭐?”
[우주전쟁을 쓴 작가 허버트 조지 웰스를 알고 있나? 그는 1차 대전을 모든 전쟁을 끝낼 전쟁이라고 불렸다. 참으로 순진한 자였지. 지금의 너처럼.]“….”
[모든 전쟁을 끝낼 전쟁 따위는 없었다. 수천 만이 죽은 2차대전은 2차대전이었고, 냉전은 냉전이었지. 알겠나? 이 세상의 모든 건 투쟁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사람은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구원을 거부하겠다? 세상에 중립을 위한 자리는 없고, 원할 때만 좋은 곳에 자리 잡는 얌체들을 위한 자리를 더더욱 없다!]한껏 궤변을 지껄인 리보프는, 차가운 눈으로 선언했다.
[우리에게 맞서다 죽거나, 우리에게 합류하거나. 둘로 나눠진 세상에서 남은 선택지는 그것뿐이다.]마찬가지로, 여명 또한 차가운 눈으로 대답했다.
“아니, 네가 말하지 않은 선택지가 하나 더 있다.”
[….]“너희와 맞서 싸우고, 너희를 죽이는 것.”
리보프는 웃지 못했다. 다음 순간, 양손으로 멸공 성검을 잡은 여명이 횡으로 검을 휘둘렀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