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93)
을 위한 세계는 없다-793화(793/817)
EP.793 교향곡 제10번 E단조 작품 93 (10)
***
[부대 재장전. 차량이 엄호하며 화염방사기 앞으로.] [앞으로.]델타 포스가 주가시빌리들이 몰려드는 골목을 틀어막고, 녀석들을 노릇하게 구워버릴 무렵.
화염 방사기에 바람 마법을 더하던 쇠미리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호흡 사이로 파고드는 불쾌한 살기나, 바닥난 총알 때문은 아니었다. 그녀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드는 원인은 함께 싸우는 델타 포스 그 자체였다.
지금이야 같이 싸우고 있다지만… 이 도시의 빨갱이들을 정리한 후에는?
‘반드시 적이 될 거야.’
그건 의심을 넘어선 확신이었다. 여명이 그동안 만났던 친절하고 또라이 같은 미국인들과 달리, 녀석들에게는 어떠한 대화도 통하지 않으리라.
냉전 시대, 베를린에서 쌓은 델타 포스의 악명을 그것을 증명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최전선이자, 소련의 고위 간부가 직접 ‘서방의 비명을 듣고 싶을 때마다 쥐어짜는 서방의 불알’ 이라고 부른 바로 그 도시에서, 델타 포스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던가?
독일 역사책에 ‘우발적인 무력 충돌’로 뭉뚱그려진 비극 중 절반은 델타 포스가 일으킨 것이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아무튼, 덕분에 쇠미리는 엘프의 보물인 마글르핀의 검이나, 세계수 결정이 박힌 완드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그녀가 엘프라는 사실을 들키는 순간, 그들의 총구가 이쪽을 향할 게 분명했으니까.
‘그냥 이쪽에서 먼저 칠까?’
쇠미리는 딱 하나 남은 폭탄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했다. 델타 포스 중 한두 명… 적어도 전투 차량만 무력화하면 지금처럼 주가시빌리를 막아내지 못할 터. 여명은 좋아하지 않겠지만, 녀석들이 여명에게 총부리를 겨누기 전에 처리하는 게 올바른 동지의 자세 아닐까.
던지자.
쇠미리가 듀크의 눈치를 보며 각오를 다진 바로 그 순간.
!!!
도시 저편에서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술의 폭발 소리와는 전혀 다른, 순수한 현대 무기의 폭발 소리였다.
무슨 일이지? 놀란 미리가 폭탄을 숨기며 고개를 돌리기 무섭게, 똑같은 곳을 보던 델타 포스 대장이 말했다.
[헬파이어… 아군이다.]그러자 다른 델타 포스가 물었다.
[헬기가 뜬 겁니까? 그나마 정신 머리가 박혀 있는 현장 지휘관이 있나 보군요.] [아니, 저건 아폴로 시티 군이 쏜 게 아니다. 폭발할 때 탄두에서 마나 반응이 보였다.] [모지스 탄두? 그러면 설마-]그때, 델타 포스의 무전 채널로 익숙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 아- 델타 포스. 여기는 피터 오스틴 중장이다.]미국의 빅 쓰리, 브라우닝. 그 목소리를 들은 대장은 물론이고 화염 방사기를 쏘던 델타 포스까지 움찔, 몸을 떨며 반응했다.
[델타 포스 A 스쿼드론 6인, 듣고 있습니다.] [현재 상황은?] [현재 아폴로 시티 주둔군의 지원 요청으로 주가시빌리와 교전 중입니다. 장소는 워싱턴 도로에서 닉슨 대로로 이어지는 골목. 교전 중인 적은 주가시빌리 9인입니다.] [보급이 필요한가?] [예, 보급을 요청합니다. 현재 남은 탄약은 2할 정도입니다.]군더더기 하나 없는 군인의 대화. 듣고 있던 딜라가 갑자기 무슨 보급인가 싶어 고개를 돌린 순간, 대장이 갑자기 여러 총알의 규격을 읊기 시작했다.
7.62mm 고폭소이탄, 마나 코팅된 25x59mm 유탄과 아르곤 886 추진 탄환, 재생 억제 염소탄 등… 40x46mm 공중폭발 유탄을 제외하면 하나 같이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는 특수 탄환들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전부 델타 포스가 사용하는 탄환이라는 걸 눈치챈 듀크 중령이 자신은 철갑탄을 보급받고 싶다며 소리친 직후.
주가시빌리들의 움직임이 변했다.
재생력을 믿고 무작정 델타 포스를 향해 달려들던 녀석들은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도심 중앙 부근을 바라보았다.
화염 방사기의 불길을 뒤집어쓴 채 고개 돌린 그 모습은 어딘가 비현실적이면서도, 섬뜩했다. 같은 빨갱이인 쇠미리가 정색할 정도로.
정작 델타 포스는 재장전 시간을 벌었다며 그 시간마저 알뜰하게 써먹었지만… 주가시빌리들이 고깃덩이가 된 동료를 챙겨 다른 곳으로 도망치기 시작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살기에 미친 놈들이 후퇴를? 놀란 델타 포스들이 빠르게 장갑차에 올라타며 녀석들을 쫓으려던 찰나.
쿵!!
골목길, 정확히는 델타 포스의 전투 차량 바로 앞에 군복을 입은 남자가 착지했다.
첫 무전만큼이나 갑작스러운 등장.
“브라우닝….”
쇠미리와 델타 포스가 한 번 더 놀라는 건 말건, 브라우닝은 아공간을 열어젖히며 말했다.
“요청한 탄환들은 지금 당장, 넘칠 정도로 보급해주겠다.”
브라우닝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가 연 아공간에서는 온갖 총알들이 우수수- 쏟아졌으니까.
말은 필요 없었다. 델타 포스들은 재빨리 총알과 유탄을 차량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눈치만 보던 딜라 또한 엉겁결에 탄환을 함께 옮기는 사이, 브라우닝이 재차 말했다.
“A 스쿼드론. 이 도시에 있던 옛 공군 기지 위치를 알고 있나?”
대장은 철컥, 유탄 저격총에 새 탄창을 장전하며 대답했다.
[철거된 곳 말입니까?]“그래, 그곳. 나는 지금부터 저기, 저 살기 괴물을 그곳으로 몰아넣은 뒤 사살할 생각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도시의 모든 주가시빌리들이 나를 막기 위해 몰려올 것으로 예상된다.”
[저희가 그 주가시빌리를 처리하는 역할이겠군요.]브라우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죽일 수 있다면 죽이는 게 가장 좋겠지만… 이렇게 살기가 깔린 상황에서는 어렵겠지. 처치보다는 저지에 중점을 두되, 가능한 많은 수를 저지하는 쪽으로 진행하라.”
여명이 세운 작전이라는 걸 모르는 델타 포스들은 명령을 받들겠다는 뜻을 담아 짧게 경례를 올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브라우닝은 델타 포스가 예상하지 못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주가시빌리를 제외한 민간인 피해는 최소한으로 줄이도록.”
[그러면 살기에 잠식된 빨갱이들은…?]브라우닝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눈을 부라렸다.
“내가 말한 민간인은 주가시빌리를 제외한 시민 전부다. 살기에 중독된 시민이라도, 가능한 발목을 쏴서 무력화하는 정도로 끝내도록.”
[….]“반론은 허락하지 않겠다. 알겠나?”
다음 순간, 쇠미리조차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불안, 혹은 불만이 델타 포스 사이로 퍼져나갔다. 물론, 직접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아무리 빨갱이가 싫다고 해도, 그들은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이었으니까.
[…명령을 받들겠습니다.]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총알을 전부 차량에 실은 델타 포스들은 다시 전투를 준비했다. 총에 새 탄창이 장전 되고, 장갑차의 엔진이 사납게 울었다.
하지만 브라우닝은 떠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듀크 중령을 바라보았다.
데스나이트가 된 선배를 보는 그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고, 손에는 철갑탄 한 뭉치가 들려 있었다.
“이번 전투에 민간인을 위한 자리는 없다. 그쪽은 당장 서쪽 도로로 우회해서 차원문 앞 세관으로 물러나도록.”
브라우닝은 듀크 중령에게 철갑탄을 넘기며 말했다. 쇠미리의 귀에는 그게 ‘서쪽 도로로 가면 다른 일행과 합류할 수 있다’ 는 말로 들렸다.
총알을 챙긴 듀크 또한 그 속내를 짐작했는지, 브라우닝을 향해 짧게 경례했다.
-공화국을 위해.
낡아버리다 못해 이제는 기억하는 사람조차 거의 없는 옛 구호. 브라우닝은 자신도 모르게 웃으며 후렴을 읊었다.
“마지막까지 명예롭게.”
***
그렇게 브라우닝이 델타 포스를 움직이고, 분신이 성물을 모으던 시점.
여명의 본체는 쉴 새 없이 리보프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자신의 몸보다 백 배는 큰 살기 덩어리를 찢고, 베고, 꿰뚫고, 폭발시키는 그의 모습은 마왕과 싸우던 초대 용사에 비견될 만 했다.
물론, 리보프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 또한 주가시빌리에 닿은 초인. 여명과의 싸움이 길어질수록, 그는 점점 더 능숙하게 살기를 다뤘다..
기껏해야 주먹 모양으로 살기를 변신 시켰던 처음과 달리, 이제는 열 개에 가까운 손을 만들어 휘두르는 게 그 증거였다.
하나하나가 기차만큼이나 굵고 기다란 손은 스치는 것만으로도 주변 건물의 외벽을 박살 낼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리보프의 손은 여명에게 닿지 못했다. 공중을 누비는 여명의 속도가 너무 빠른 탓이었다. 신성 발판 사이를 뛰어다니는 그의 몸은 흩날리는 민들레 씨앗만큼이나 현란했다.
[날파리 같은 짓은 그만하고 당장 와서 맞서 싸워라! 붉은 별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거냐?]헛손질의 답답함은 분노로, 분노는 살기와 뒤섞인 고함으로.
리보프는 이미 반쯤 이성을 잃을 정도로 분노한 상태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명은 착실하게 검을 휘둘렀다. 그의 몸이 총알처럼 쏘아질 때마다 멸공 성검이 살기 덩어리와 그 속에 있는 리보프에게 흉터를 남겼다.
그리고 어느 순간, 푸확! 용사의 무술 1초식이 리보프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고함을 지르던 리보프의 입에서 왈칵 피가 터져 나왔고, 그는 더욱 성난 표정으로 살기의 손을 휘둘렀다.
콰과광 – !! 애꿎은 건물이 손에 맞아 무너졌다. 콘크리트 먼지가 살기와 뒤섞이는 가운데, 여명은 빠르게 물러나며 주변을 확인했다.
리보프와 싸우며 걸어 온 길은 무슨 포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파괴되어 있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재산 피해가 났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대충 천억 단위의 돈이 깨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여명은 개의치 않았다. 도시 복구는 미국과 보험사가 걱정할 일이었고, 무엇보다 진짜 파괴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으므로.
[이제 좀 죽어라! 죽으란 말이다!!]그 사이, 리보프가 훌쩍 여명과의 거리를 좁혔다. 손 만으로는 부족했다고 생각했는지, 살기 덩어리에서 자라난 열 개의 손에는 검과 비슷한, 하지만 몽둥이에 가까운 뭔가가 쥐어져 있었다.
살기로 만든 무기… 무장 혈청으로 무기를 만들었던 베리야와 같은 방식이었다.
빨갱이들의 상상력이 거기서 거기인 걸까, 아니면 리보프 또한 살기의 신성이 되는 걸까?
[빨갱이들의 상상력이 부족한 거다.]‘진짜 살기의 신성’이었던 멸공 성검이 투덜거리는 것과 동시에, 열 개의 몽둥이가 여명을 향해 쏟아졌다. 더욱 빠르게, 더욱더 강하게- 현대 무술의 집대성이나 다름 없는 매서운 공격이었다.
여명은 검을 피하지 않고, 그에 맞서 멸공 성검을 휘둘렀다. 용사의 무술에서 시작된 검기가 폭발하듯 튀어나오며 열 개의 몽둥이와 충돌했다.
!!!
결과는 무승부. 여명의 검기가 열 개의 몽둥이를 흩어놨지만, 질량 차이가 너무 컸다. 힘에서 밀린 여명은 그대로 쭈욱-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에 처박혔다. 그는 아스팔트 도로를 데굴데굴 구르고, 애꿎은 가로등과 충돌하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멸공 성검은 왜 안 피하고 정면 승부를 했냐는 듯 지잉지잉 울었다. 하긴, 성검이 아닌 일반 검이었다면 이 충돌로 부러지고도 남을 정도로 살벌한 충돌이었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실제로 성검이 아니었던 여명의 손목은 이미 부러져 있었다. 쯧, 여명은 성검을 지팡이 삼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사이 쿵! 쿵! 리보프의 살기 덩어리가 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여명은 녀석과 도심 사이 거리, 그리고 스승님의 마나를 가늠하며 말했다.
“대충 3km만 더 가면 되겠네.”
리보프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갑자기 머리 위에 떨어진 미사일 때문이었다.
콰아아앙 – !!!
2미터가 넘는 대전차 미사일 다섯 발. 정확히 같은 곳에 집중된 폭발은 살기 덩어리 속 리보프를 후려치기에 충분했다.
커헉! 한 움큼 피를 토한 리보프는 마나가 느껴진 곳을 노려봤다. 멀지 않은 빌딩 옥상에서, 익숙한 미국인이 그를 향해 손을 겨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