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796)
을 위한 세계는 없다-796화(796/817)
EP.796 Красная звезда (2)
***
“그래, 난 서기장이 될 생각이다.”
담담한 선언 앞에서, 리보프는 머리에 망치를 맞은 것처럼 멍하니 되물었다.
[네까짓 게 감히… 뭐가 되겠다고?]“세계 공산당의 당수, 당중앙위원회의 수장, 연방의 권력.”
노골적이고, 정확한 말. 살기 속에 누워있던 리보프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하! 당원들이 너에게 그 자리를 허락할 것 같으냐? 너에겐 아무런 자격도 없다!]“맞아. 내게 자격 같은 건 없다. 하지만 그건 이전 시대의 혁명가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뭐라?]“레닌은 노동자였나? 아니, 그는 유복한 공무원 집안에서 태어난 부르주아였다. 스탈린은 정의로운 자였나? 혁명의 이름으로 강도질을 벌인 범죄자였지. 트로츠키는? 강제 징용, 징발, 즉결 처형으로 얼룩진 붉은 군대를 만든 장본인이다.”
[….]“말해봐라, 리보프. 혁명가들에게는 무슨 자격이 있어서 혁명을 주도했지? 소련은 무슨 자격으로 혁명의 심장을 자처했고?”
[이놈! 그 더러운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마라…! 우리에게는, 연방에는 억압받는 노동자를 위해 일어났다는 대의가 있었다! 혈통과 죄를 넘어설 수 있는 정의로운 대의가!]리보프는 주먹을 꽉 쥐며 웅변했다.
[너에게 그런 대의가 있느냐? 그만한 대의를 짊어질 각오는 있느냐? 고작 소련의 유산 몇 개를 긁어모은 게 전부인 네놈에게, 연방을 되살릴 대의가 있느냔 말이다!]여명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하늘에 선 그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말했다.
“없다.”
[뭐?]리보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여명은 솔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게 거창한 대의는 없어. 내 본질은, 결국 잡지식이 많은 청소부일 뿐이니까. 하지만….”
말꼬리를 흐린 여명은 고개를 돌려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어둠을 뚫고 고개를 드는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그의 얼굴을 쓸고 지나갔다.
“…한 가지만큼은 그들과 똑같다.”
[….]“불의에 분노하는 것.”
혁명가들은 농민들을 학살한 제국에게 분노했고, 노동자를 쓰레기처럼 내다 버린 자본가에게 분노했고, 그 모든 비극을 일으킨 시대에 분노했다.
그리고 지금, 여명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분노하고 있었다. 연방의 시체로 만족하지 못하는 빨갱이들에게, 고작 군축 때문에 새로운 냉전을 꿈꾸는 미국에게, 그리고 운명이 만들어낸 이 시대에게.
어째서일까, 리보프는 자신도 모르게 ‘혁명가란 세상에 화를 내는 멍청이들’ 이란 격언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 분노가 바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지?]“아이들을 거름으로 쓰는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
리보프는 하, 소리 내 웃었다. 그가 듣고 느끼기에, 그것은 대의였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처럼 투박한 동시에, 최초의 대의처럼 원초적인 대의.
직후, 리보프의 가슴 일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자신이 자연발생 주가시빌리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느꼈던 벅참과 닮은 열기였다.
만약 녀석과 이런 식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다른 시간, 다른 자리에서 만났다면…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간 리보프의 시선으로, 성검을 검게 물들이는 여명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붉은 별에게서 어떤 위엄을 느꼈다.
타고난 재능을 갈고닦아 만든 위엄, 무언가를 파괴하고, 짓밟아 본 자의 위엄. 그리고- 무언가를 지켜낸 자의 위엄.
리보프는 멍하니 진의 무술이 다시 살기를 빨아들이는 모습을 보았다. 휘몰아치는 살기를 따라 멈췄던 시간이 다시 움직이는 것을, 그가 시작한 혁명이 끝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보다 먼저, 예브게니의 비명이 그의 귀를 찔렀으므로.
[뭐 하고 있는 거냐! 리보프!! 당장 그 반동을 죽여!!!]***
예브게니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지만, 리보프의 정신을 깨우기엔 충분했다.
그는 자신이 붉은 별의 승리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단 사실에 경악하며 살기를 움직였다.
직후, 리보프를 둘러싼 살기 덩어리에서 거대한 손이 솟구쳤다. 빌딩과 비견할 정도로 거대한 크기의 손은 어떠한 방해도 없이 여명의 몸을 강타했다.
!!!
주변 살기가 전부 출렁일 정도로 강대한 공격이었지만, 여명의 몸은 한 발자국도 밀려나지 않았다. 오히려 여명의 검이 역으로 주먹을 흩어버리고, 손을 이루고 있던 살기마저 흡수했다.
그러나 예브게니는 멈추지 않고 계속 그를 다그쳤다.
[계속 몰아쳐라! 녀석이 더는 살기를 흡수할 수 없게 만들어!]리보프는 그렇게 했다. 계속 손을 휘둘러 여명을 방해하고, 또 방해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의 살기는 허무하게 흡수될 뿐이었다. 어느새 눈에 띄게 줄어든 살기를 보며, 리보프는 의문에 빠졌다.
이게 붉은 별이 다른 살기를 흡수하지 못하도록 시간을 끄는 것 외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갑자기 시간이 멈춘 것과 연관이 있나? 예브게니는 뭘 하고 있지?
그 질문의 답은 아직 새벽이 닿지 않은 도시 서쪽의 어둠 속에 있었다.
고오오 – !! 엄청난 크기로 피어오르는 살기의 구름.
그새 여명의 분신을 처치한 걸까? 열 명의 주가시빌리와 그보다 많은 인공 성물을 중심으로 부풀어 오른 구름에서는 예브게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붉은 별! 뭐가 되겠다고? 하하하!! 꿈도 야무지구나! 하지만 이걸 봐라! 애송아, 이 정지된 세상을 보란 말이다! 이게 뭘 뜻하는지 아느냐?]자신만만한 목소리 직후, 퍼어엉!!! 살기의 구름이 폭발했다.
[그분께서, 나의 승리를 바라신다!!]***
같은 시각, 독화는 멍하니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그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갑자기 시간이 정지한 건지, 그런 시간 속에서 자신과 주가시빌리들은 어째서 움직일 수 있는지…
개중에서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건, 그가 봉인하던 주가시빌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었다.
심장에 박힌 대못도, 몸을 얼린 냉동 관도 무시한 채 자리에서 일어난 그들은, 붉은 별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와 안면이 있는 몇몇은,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기까지 했다.
“오랜만이군. 허크. 집중 훈련 이후 처음인가?”
“자네도 그분의 목소리를 들었나?”
“너를 동정한다.”
옛 전우들, 실패작으로 낙인찍힌 전우들의 목소리는 녹슨 칼처럼 섬뜩했다. 독화는 칼에 찔린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조용히 깨어난 주가시빌리들의 뒤를 쫓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가시빌리들의 목적지는 멀지 않았다.
예브게니의 주가시빌리들이 살기를 내뿜고, 붉은 별이 묵묵히 리보프의 공격을 막아내는 곳.
미 공군 기지로 통하는 큼지막한 구덩이가 뚫린 바로 그곳에서, 주가시빌리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렬로 섰다.
[연방은 승리한다!! 우리가!! 붉은 혁명이 세상을 뒤덮으리라!!!]예브게니가 미친 듯한 고함이 이어지는 가운데, 독화는 다른 주가시빌리들의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그의 질문에 대답한 건, 가장 먼저 깨어났던 흑인 주가시빌리였다.
“내가 아까 말했잖나. 허크, 이건 임명식일세.”
“새로운 서기장의 임명식….”
독화는 조금 전에 들었던 말을 되새기며 붉은 별과 예브게니를 바라보았다. 그는 상황을 이해하는 걸 포기하고, 그냥 되는대로 물었다.
“야코프. 좀 더 자세히 말해줘. 저 둘 중 한 명이 서기장이 된다는 건가? 이 모든 게 서기장 자리를 두고 열리는 싸움인가?”
그러자 야코프라 불린 흑인 주가시빌리가 허허, 웃었다.
“허크, 이 친구야. 이상한 질문일랑 하지 말게. 자네가 보기에, 예브게니에게 자격이 있다고 보나?”
“….”
“새 시대를 여는 건 언제나 새로운 인물이지. 안 그런가?”
붉은 별… 천여명이 서기장이라고? 독화는 그게 가능하냐고 따지는 대신, 예브게니와 여명의 싸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리보프의 공격을 막아내기에 급급한 천여명보다, 열 개가 넘는 성물로 살기를 뿜어내는 예브게니가 더 서기장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천여명이 언제나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승리했다는 걸 상기한 독화는 다른 질문을 꺼냈다.
“자네들은… 이번 임명식에서 무슨 역할이지?”
“제물일세.”
“…제물?”
야코프는 빙그레 웃으며 독화와 얼굴을 마주했다.
“새로운 서기장, 새로운 신이 탄생할 때를 위한 제물… 어허, 그런 표정 짓지 말게. 허크, 어차피 우리들은 실패작 아닌가. 마지막까지 연방을 위해 쓰일 수 있다면 고마운 일이지.”
독화는 그 연방은 이미 사라졌다는 말을 삼켰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자들에게 그런 말은 무의미했다. 하지만…
“…새로운 서기장이 제물을 거부한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
“거기까진 우리도 잘 모르네.”
“그분께서 그건 알려주지 않으셨나?”
야코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일일세. 우리의 목숨은 새로운 서기장님께서 판단할 일… 아, 미안하지만 대화는 여기까지 해야겠네. 허크.”
“뭐?”
“시작되었네.”
무엇이 시작되었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 순간, 붉은 별이 예브게니의 살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