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8)
을 위한 세계는 없다-8화(8/817)
〈 8화 〉 주인공을 위한 우연 (4)
* * *
***
“잠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아무래도 고급품들은 금고에 있다 보니, 꺼내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요제프는 그렇게 말하며 장만과 쇠똥구리를 고급스러운 방으로 안내했다.
입구부터 은은한 향수 냄새가 풍기고, 바닥에는 처음 보는 괴수 가죽 카펫이 깔린 방이었다.
가끔 보던 TV속 재벌들의 집과 맞먹을 정도로 고급스러운 방이었지만…방에 들어선 순간, 쇠똥구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향수 냄새 사이로… 미처 가리지 못한 피와 기름 냄새가 풍기고 있었으니까.
지독한 냄새였다. 미그니움의 꿈속에서 맡았던 소름 끼치는 냄새와는 다른 의미로 지독했다.
쇠똥구리가 슬쩍 요제프와 장만을 살펴보니, 두 사람은 아무 냄새도 맡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는 건 오직 그만 냄새를 맡았다는 뜻인데…
‘마나를 다루게 된 탓인가?’
일반인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들으며, 맡을 수 없는 것을 맡는다.
오래전, 동료들과 함께 보던 초인 다큐멘터리의 설명이 머리 위로 떠 올랐다.
쇠똥구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코가 아닌 귀에 감각을 집중해봤다.
빨리 움직여! 지하 금고에서… 도 꺼내와!
은 탄환 챙겨! 지금이 아니면… 팔 기회가 …
GP…추적기! 달…놓치면 안…
희미하게나마, 방 바깥에서 들려오는 직원들의 발소리와 고함이 들려왔다.
본인의 귀로 들은 소리임에도, 쇠똥구리는 믿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렇게 쉽게 된다고?’
마나로 감각을 강화하는 건 단순히 근육의 힘을 늘리는 것과 다르다.
그가 기억하는 다큐멘터리 속 초인은 감각을 강화하기 위해선 반드시 몇 년의 수련이 필요하다고 말했었다.
그렇다면 이 결과는 뭔가?
쇠똥구리는 별다른 노력도 없이 그저 감각을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아주 머나먼 곳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가 거짓말을 한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미그니움의…
“영감님, 여전히 차는 안 드십니까?”
쇠똥구리의 상념을 끊은 건 요제프의 한 마디였다. 그는 기다리는 시간이 어색했던 건지, 직접 주전자를 꺼내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뱃놈이 차는 무슨… 술이랑 물이면 족하다.”
“하하,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그럼 우리 손님분께서는?”
“저도 괜찮습니다.”
“이런, 아쉽군요. 꽤 좋은 차인데.”
요제프는 그대로 찻주전자에 물을 따랐다. 주전자의 수증기 사이로, 홍차의 향기가 피어올랐다.
피와 기름 냄새를 가려줄 만큼, 향이 진한 홍차였다.
잠시 지독한 냄새에서 해방된 쇠똥구리는 감각을 하나하나 점검해봤다.
눈, 코, 귀…
그렇게 그가 새로운 감각에 집중하고, 요제프가 차 한잔을 모두 마실 정도로 시간이 흐른 뒤.
덜컥!
방문이 열리며 가지각색의 가방을 든 부하 10명이 방으로 들어섰다.
“하하, 이거 손님들을 너무 기다리게 했군요. 제가 장담하는데, 기다리신 시간이 아깝지 않으실 겁니다.”
요제프의 부하들은 순식간에 간이 무대를 설치했다. 발판과 조명기구를 설치하고, 상자 열 개를 나란히 세웠다.
요제프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팅된 상자들을 등지고 섰다. 그는 마치 홈쇼핑 쇼호스트처럼 과장되게 허리를 숙여 장만과 쇠똥구리에게 인사했다.
“우선 총부터 시작할까요?”
그는 가장 왼쪽에 있는 가방을 열며 설명을 시작했다.
“시작은 가벼운 놈이 좋은 법 아니겠습니까? M231! 한국인이라면 익숙한 M16을 개량한 총입니다.”
가방 안에는 팔뚝보다 M16 돌격소총을 짧둥하게 잘라낸 것처럼 생긴 총이 들어 있었다.
“작고, 가볍지만 살상력은 충분합니다. 역사적으로 이 녀석에게 죽은 마법사의 자릿수가 백을 넘기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한국인이라면 다 아실 높은 신뢰도와 익숙한 그립감까지! 마법사의 뒤통수에 기습적으로 총알을 먹여주는데 이만한 녀석이 또 없습니다.”
요제프는 진짜 쇼호스트처럼 유쾌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총을 들고 사격 자세를 잡아보기도 하고, 순식간에 총을 분해해 속을 보여주기도 했다.
언뜻 신이 난 것처럼 보이는 요제프를 지켜보던 장만은, 한숨을 쉬며 그의 말을 끊었다.
“요제프.”
“예, 왜 그러십니까 영감님?”
“이놈, 미필이다.”
요제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가, 순식간에 제자리를 찾았다. 그는 방금 전 표정이 거짓이라도 되는 것처럼 웃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따로 사격훈련을 받으신 적은…?”
“…없습니다.”
“아하, 그럼 한국군 장비는 굳이 사용하실 필요 없겠군요.”
쇠똥구리의 대답을 들은 즉시, 요제프는 고개를 돌려 대기하던 부하들에게 손짓했다.
신호를 받은 그의 부하들은 불만 한마디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더니, 첫 번째 가방부터 여섯 번째 가방까지 방 바깥으로 치워버렸다.
여섯 개나 군 장비였던 건가?
이제는 네 개밖에 남지 않은 가방을 보자, 쇠똥구리는 난생처음으로 미필이란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너무 실망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짜배기들은 언제나 나중에 나오는 법 아니겠습니까? 뒤에 남은 전부 무기들은 앞선 군수품들보다 뛰어난 무기들입니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꿀 요량인지, 요제프는 바로 일곱 번째 가방이 열었다.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건 성인 팔뚝보다 아주 조금 더 큰 수준의 총이었다.
다시 말해 권총이라기엔 너무 크고, 소총이라기엔 너무 작았다.
“래밍턴 MH750.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펌프 액션 샷건을 대 마법사용으로 개조한 개량형이죠.”
샷건? 쇠똥구리가 관심을 보이자, 요제프가 설명을 덧붙였다.
“특수 처리된 은탄 값이 비싸긴 합니다만, 네크로맨서가 일으킨 시체에 이보다 효율적인 무기가 없습니다. 어린이가 써도 될 정도로 사용과 장전 모두 간편하지요.”
철컥, 요제프는 친절하게 탄환을 장전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장탄수는 고작 3발이었지만, 산탄 하나하나에 담긴 구슬양이 어마어마했다.
쇠똥구리가 관심을 보이자, 요제프는 씨익 웃으며 다음 가방을 열었다.
“다음은 EK33 수류탄입니다. 미군이 만든 최고의 걸작 중 하나죠. 비전문가를 위한 최고의 수류탄입니다.”
이번 가방 내부에는 주먹만 한 수류탄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이걸 좀비벽 뒤에 숨은 네크로맨서의 머리 위로 던지면, 말 그대로 좋아 죽는 네크로맨서를 볼 수 있을 겁니다.”
개조 샷건과 수류탄.
불법 밀수꾼다운 무기 두 개를 소개한 요제프는, 아홉 번째 가방 앞에 섰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며 말했다.
“여기서부턴 조금 특별한 무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철컹! 이번 가방은 앞선 가방들과 달리 잠금장치부터 묵직했다.
그리고 상자 안에 준비된 상품의 모습 또한, 앞선 무기들과는 전혀 달랐다.
검.
상자 안에는 기다란 철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지난 전쟁 시기, 제국에서 기사들에게 보급하던 검입니다. 지구에선 구할 수 없는 특수한 광석이 포함되어 있지요.”
“….”
“일반인에겐 그냥 튼튼한 철검에 불과하지만, 마법사들의 방어막을 자를 땐 바주카나 다름없는 위력을 발휘합니다.”
요제프의 설명이 이어졌지만, 쇠똥구리는 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름다워서? 탐이 나서? 아니, 아니다.
저 검은… 플레이어의 것과 똑같은 검이었다.
단순히 비슷한 검 수준이 아니었다.
눈앞의 검과 똑같은 검을 휘두르던 플레이어의 모습이, 마치 낙인처럼 그의 망막에 새겨져 있었으니까
‘제국의 기사들이 쓰던 보급품이라고…?’
플레이어, 녀석을 쫓을 단서.
뜻밖의 행운을 마주한 쇠똥구리는 다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저 검만큼은 반드시 사야겠다고.
“검이 굉장히 마음에 드시나 보군요. 하긴, 차원문 너머의 무기들은 지구의 것과 다른 특별함이 있지요.”
쇠똥구리의 눈빛을 오해한 것일까, 요제프는 벌써 거래를 성사시킨 것처럼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이 물건이 마음에 드셨다면, 마지막 물건도 마음에 드실 겁니다.”
요제프는 마지막 가방 앞으로 다가갔다.
이번 가방은 가로로 길쭉한, 마치 검집처럼 생긴 가방이었다.
어째서인지, 가방 앞에선 요제프는 바로 가방을 열지 않았다. 그는 아주 짧은 시간, 장만과 눈을 마주쳤다.
장만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것을 신호로 요제프는 마지막 가방을 열었다.
푸쉬이익
연기와 함께 가방이 열리고,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막대기…?
상아색으로 빛나는 막대기는 양 끄트머리에는 말과 비슷한 무언가의 조각이 새겨져 있었고, 몸통에는 일정한 패턴의 물결무늬가 음각되어 있었다.
무기라기보단,정교한 예술품이란 표현이 더 어울리는 막대기였다.
“겉모습에 실망하시면 안 됩니다. 이 물건의 진가는 따로 있으니까요.”
요제프는 물건에 손대지 않았다. 그가 손을 들자, 부하가 다가와 그의 손에 새하얀 장갑을 씌워줬다.
단순히 쇼처럼 보이진 않았다. 조심스럽게 막대기를 집어 올리는 요제프의 얼굴은 진지함 그 자체였으니까.
“드워프, 그것도 장인급 드워프가 만든 물건입니다. 도끼나 망치의 손잡이로 쓸 생각이었나 본데, 아쉽게도 스탈린이 구봉산에 독가스를 풀어버리는 바람에 손잡이만 완성됐지요.”
손잡이? 쇠똥구리는 그제야 막대기가 이렇게 생긴 건지 이해했다. 그리고 동시에 물음표를 떠올렸다.
손잡이가 왜 무기지?
쇠똥구리의 의문에 대답하듯, 요제프가 계속 말했다.
“하지만 구봉산 시절의 제작품인 만큼, 이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번 쥐어보시겠습니까?”
요제프는 조심스레 쇠똥구리에게 막대기를 건넸다.
쇠똥구리는 장갑도 없이 이런 귀한 물건을 쥐어도 되나 고민했지만, 건네주는 걸 거부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라 덥썩 막대기를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쇠똥구리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말을 걸어왔다.
[여자와 손 한번 잡아본 적 없는 완벽한 동정. 하지만 영혼에서 시체와 불의 냄새가 나는군. 저주라도 받은 건가?]쇠똥구리가 화들짝 놀라 요제프를 바라보자, 그는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
“목소리를 들으신 겁니까? 역시, 초인이셨군요. 영감님이 모셔온 분이니 당연히 그러리라고 짐작했습니다.”
당연히 초인일 줄 알았다고? 의문스러운 말이었지만, 쇠똥구리는 그 의문보단 막대기에 대해 먼저 물었다.
“…이게 대체 뭡니까?”
“그 물건의 재료는 유니콘의 뿔입니다.”
“….”
“대체 무슨 기술로 만든 건지 알 수 없지만, 유니콘의 사념이 그대로 녹아 있는 유니콘의 뿔이지요. 덕분에 마나가 있는 사람에겐 종종 말을 걸어오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귀신 들린 물건이다?”
“동시에, 온갖 오염과 독에 저항성을 주는물건이지요.”
요제프는 자랑하듯 설명을 이었다.
“방사능이나 염산 같은 건 못 막아도, 마나로 이루어진 독가스나 저주를 막는 데 아주 탁월한 효과를 보입니다. 장담컨대, 네크로맨서를 상대로는 사제님 열 명보다 이거 하나가 더 나을 겁니다.”
요제프의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은걸까, 쇠똥구리가 쥐고 있는 막대기가 그의 머릿속으로 설명을 더 했다.
[나를 쥔 동정이여, 착각하지 말라. 이 뿔의 신성함으로 못 막은 오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방사능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그 또한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하겠다.]쇠똥구리는 막대기와 요제프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막대기가 한 번 더 ‘동정이여…’ 라고 지껄일 낌새가 보이자 냉큼 요제프에게 막대기를 돌려줬다.
“어떠십니까? 방금 보여드린 상품들이면 웬만한 네크로맨서를 상대로 모자람은 없을 겁니다.”
개조 샷건, 수류탄, 대 마법사용 검, 그리고 유니콘의 뿔.
네크로맨서에 대해선 상식 정도만 알고 있는 쇠똥구리가 보기에도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네크로맨서에게 효율적인 무기들뿐이었다.
문제는…
“네 개 전부 구매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하핫, 가격 문제라면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제가 설마 영감님의 손님을 털어먹을 리 없잖습니까.”
다른 손님은 얼마든 털어먹는다는 소리로 들렸으나, 굳이 그 사실을 지적하진 않았다.
“무기 네 개 전부 드리겠습니다. 가격은 처음 제시하셨던 돈 가방 두 개 전부. 어떠십니까?”
요제프의 입가에 기다란 미소가 어렸다.
“대신, 수류탄과 탄환의 양은 넉넉히 챙겨드리겠습니다.”
요제프는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그의 전 재산을 요구했다.
쇠똥구리는 흥정이라도 해볼까 하다가, 옆자리에 앉은 장만을 보고 생각을 접었다.
장만이 아니었으면 소개받지 못했을 자리였다.
소개해준 장만이 가타부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쇠똥구리가 가격을 깎는 건 그의 체면을 깎는 일이었다.
“돈 가방 두 개, 좋습니다.”
“하핫, 역시. 영감님의 손님다우십니다!”
쇠똥구리는 메고 있던 가방을 그대로 내려놨다. 그는 이곳에 없는 나머지 가방 하나도 사람을 시켜 전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몇 년은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이었지만…아까움은 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돈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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