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80)
을 위한 세계는 없다-80화(80/817)
〈 80화 〉 전학생을 위한 우연 (10)
* * *
***
쿵!
무언가 벽 너머에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지하에 있는 대피소까지 어떻게 접근했는지 알 수 없었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대피소의 벽은 오래 버티지 못하리라.
드드드드!
무언가가 벽을 파내는 소리가 대피소 전체에 울렸다. 곧이어, 벽 위로 쩌저적 균열이 생겨났다.
꿀꺽.
갈라지는 벽을 본 누군가가 침을 삼켰다. 설마 하던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 적이 왔다.
모두가 그 사실을 깨닫기 무섭게, 짧은 비명과 우르르 물러나는 발소리가 들렸다.
겁먹은 학생들의 소음, 갈라지는 벽.
쩌저적!!
대피소 전체가 비명을 지르고, 벽이 콘크리트 조각과 먼지를 토해내는 그 순간.
여명이 무기를 쥐며 말했다.
“…모두 준비.”
쾅하는 소음과 함께 큼지막했던 벽이 포탄에 맞은 것처럼 박살 났다.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소음과 충격에 일행 모두가 무기를 들거나 몸을 웅크리며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여명만 제외하고.
화악!
그는 벽이 무너지는 것과 동시에 땅을 박찼다. 날아오는 파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너지는 벽 사이로 검기를 쏘아냈다.
방어보다는 공격을. 북만주에서 피로 얻은 경험이었다.
“아악! 내 팔!!”
검기를 맞은 누군가의 팔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그리고 잘려 나간 어깨에서 쏟아진 피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여명은 벽 너머에 착지했다.
탁.
벽 너머에는 성인 남성 대 여섯이 나란히 설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토굴이 뚫려 있었다.
여명이 건설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 토굴을 하루아침에 만들 수 없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이 습격이 적어도 몇 달, 혹은 몇 년에 걸친 계획이라는 걸 단적으로 증명하는 규모.
“저, 저놈! 그 편입생이다!”
그곳에는 총기로 무장한 괴한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소총은 물론이고, 벽 너머로 로켓을 겨누고 있는 놈까지.
어지간한 용병단을 상회하는 화력이 동시에 여명을 향했다.
“죽여!”
녀석들의 총구가 불을 뿜는 것과 여명이 땅을 박차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투두두두두!
좁은 토굴에서 총을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여명은 총알을 몸으로 받아내며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적을 향해 달렸다.
벽을 뚫은 장본인이 틀림없는, 지팡이를 든 마법사.
“히, 히라리아의…! 내게 응답 컥!”
그가 반사적으로 주문을 외웠으나, 여명의 검이 그보다 조금 더 빨랐다. 마나가 담긴 검이 마법사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끄, 끄윽…”
여명은 피를 쏟아내는 마법사의 몸을 그대로 붙잡고, 토굴을 향해 들어 올렸다.
누가 봐도 마법사를 고기 방패로 삼기 위한 모습.
그것을 본 적들이 반사적으로 사격을 멈췄으나, 이미 총구를 떠난 총알들이 마법사의 몸에 박혔다.
“데랄! 안 돼!”
아군 오사에 충격을 받은 녀석들이 잠시 틈을 보였다. 그리고 여명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마법사의 시체를 들고 그대로 적들을 향해 내달렸다.
“막아! 용을 잡은 놈이다! 접근을 허용하지 마!”
한 걸음. 총알이 빗발쳤다. 여명은 마법사의 시체로 얼굴과 상체를 가렸다.
두 걸음. 심장을 펌프질했다. 마법사를 죽이기 전에 총알을 맞은 곳에서 피가 콸콸 흘렀지만, 사고가 급속도로 빨라졌다.
세 걸음. 종아리에 총알이 박혔다. 이를 악물고, 검에 마나를 담았다.
넷, 다섯… 그리고 일곱.
적들의 눈동자가 보일 정도로 가까워진 순간, 여명은 시체를 집어 던지며 검을 휘둘렀다.
번쩍!
억눌려 있던 검기가 폭발하며 토굴을 빛으로 가득 채웠다.
파양결의 마나가 담긴 검기는 날아오는 총알과 대기를 동시에 가르며 날아갔다.
“피햇!”
누군가 소리쳤지만, 토굴에 피할 자리가 어디 있겠는가? 습격자들이 할 수 있는 건 발작적으로 총을 갈기거나, 눈을 질끈 감는 것뿐.
그렇게 수십 명의 몸이 반으로 갈라지기 직전.
“히라리아의 빛이여 !”
습격자들의 뒤편에서 어떤 빛줄기가 터져 나왔다.
쩌엉!
빛줄기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속도로 검기와 충돌했다. 번쩍임과 동시에 방향을 잃은 마나가 터져 나왔고, 토굴 전체가 비명을 질렀다.
쿠구궁…!
돌조각과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충격에 휩쓸린 여명은 재빨리 자세를 다잡고 적들을 노려봤다.
마법이 검기의 위력을 제대로 줄인 건지, 사상자는 많지 않았다.
꽤 마나를 끌어모아서 쓴 일격이었건만… 쓰러진 건 폭발에 휩쓸려 토굴 벽에 처박힌 몇 놈이 전부.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습격자들이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토굴 너머로 총포를 쏟아낼 생각만 했지, 이렇게 역으로 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여명은 습격자들이 충격에서 벗어날 시간 따윈 주지 않았다.
비각술을 펼쳐 땅을 박차고, 그대로 상대를 향해 달렸다.
“플랜B로 변경한다! 초인들은 전부 앞으로 나서라! 힘을 아끼지 마! 녀석은 성녀, 그릇과 동급이다!”
적들도 가만히 당해주고 있지 않았다. 이 이상 총알을 낭비하는 대신, 습격자들 사이에서 초인들이 튀어나왔다.
놈들은 곧장 여명의 얼굴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만주의 용병들이 보여주던 무식한 검술과는 달랐다.
초인이 된 후 몇 번 본적 없는, 진짜배기 무술.
‘아카데미를 습격할 만한 실력은 있다는 건가?’
여명은 녀석들의 정체가 궁금했으나, 세 자루가 넘는 검이 그를 덮치며 생각을 끊었다.
쩌저정!
검과 검이 부딪히며 불티가 튀었다. 마나가 담긴 검이 충격을 토해내고, 손이 찌르르 울렸다.
‘아슬아슬하다.’
실력 이전에, 무기의 문제였다.
연습용 검이 그의 마나를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벌써 검신에 쩌적 금이 가는 게 느껴졌다.
여명은 계속 검을 막으며 고민했다. 이대로 후퇴하느냐, 아니면…
‘일격에 죽이고, 무기를 빼앗는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여명은 마나를 모아 다시 한번 검기를 준비했다.
“또 그 검기다! 모두 물러…”
그때 여명의 뒤편에서 갑작스럽게 누군가 튀어나왔다. 물결치는 검은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
스악!
연습용 검이 여명에게 집중하고 있던 초인의 목을 쓸고 지나갔다.
“혼자 돌진하면 어떡해?”
뒤늦게 울리는 세티의 목소리.
목을 베인 초인이 쓰러지기도 전에, 여명과 세티는 눈빛을 교환했다.
그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초인들을 향해 검을 뻗었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동료들이 달려들었다.
***
전윤성과 웨슬리, 쇠미리와 제미니 선생님… 그리고 맨 뒤에서 소리치는 성녀까지.
“세티! 다치지 마!”
여명이 만들어 놓은 혼란 속으로 세티와 동료들이 뛰어들자, 상대의 전열이 우수수 무너졌다.
“젠장! 상대는 전부 초인이다! 오사 따위 걱정하지 말고 쏴!”
학생이라고 해도, 총구를 보고 총을 피하는 것 정도는 기본으로 하는 초인들.
습격자들이 발작적으로 총을 쐈으나, 전세는 이미 이쪽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기대했던 것만큼 일방적인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끝없이 총소리가 이어졌고, 드문드문 여명을 노리고 초인의 검이 날아왔다.
초인의 목에 칼을 박아넣고, 칼을 빼앗은 여명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짧게 일행의 싸움을 지켜본 뒤에야 여명은 싸움이 지지부진해지는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얘들 학생이었지.’
무자비하게 적을 죽이는 사람이 여명과 세티뿐.
나머지 넷은 습격자들을 쓰러트리거나 기절시키는 데 힘을 낭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탓할 이유도, 마음도 없었다. 나름 용기를 낸 학생들 아닌가. 살인까지 강요하는 건 너무 가혹했다.
그 대신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여명은 더욱더 격렬하게 검을 휘둘렀다.
여명의 검은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고, 그가 걷는 걸음걸음마다 피가 흘렀다.
그리고 그 덕분에, 습격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여명을 향해 더욱 적극적으로 공격을 쏟아냈다.
“죽어!”
수류탄을 들고 자폭을 시도하는 놈, 아군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로켓을 발사하는 녀석…
탕!
그때마다 어느새 총을 주워든 성녀가 적을 저격해 여명을 도왔다.
어두운 토굴 속에서 어떻게 정확한 사격을 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성녀는 평소에도 안대를 차고 다니지 않나.
여명은 신경 쓰지 않고 착실히 적의 숫자를 줄여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적의 맨 뒤에 숨어있던 마법사를 대면할 수 있었다.
“이, 이럴 수가…”
그는 아연실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특히 여명을 보는 눈빛에선 허탈함마저 느껴졌다.
“사제님의 예상이… 틀렸군. 넌 성기사가 아니야. 아니, 성기사일 수가 없다. 그 어떤 성기사도 너처럼 무자비할 수 없으니.”
“…사제? 이 습격의 배후에 종교단체가 있는 거냐?”
여명은 그렇게 물으면서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상대는 마법사, 그것도 그의 검기를 단번에 무효화시킬 주문을 쓸 수 있는 마법사였다.
언제라도 기습적인 주문을 발사할…
“…조제프 선생님?”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제미니 선생님이 마법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제미니 선생.”
“다, 당신이 어떻게…?”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어 유감이오.”
저 마법사의 정체가 아카데미 선생이라고? 여명은 두 사람을 번갈아 확인했다.
제미니 선생님의 얼굴에는 충격이 가득했으나, 조제프라 불린 마법사의 표정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서, 선생님이 대체 왜… 왜 이런 일을?”
“…대의를 위해서였소.”
조제프가 대답하기 무섭게, 여명이 끼어들었다.
“학생들에게 총알을 쏟아내는 대의라. 거참 대단한 대의로군?”
“…마음대로 지껄여라. 네깟 놈이 우리의 한과 대의를 이해할 턱이 없으니.”
“그런 말은 내가 아니라 경찰한테나 하는 게 어때.”
여명은 이죽거리며 검을 들었다.
아무리 잘난 마법사라도, 지팡이를 빼앗고 팔다리를 자르면 조금 건강한 일반인에 불과한 법.
성큼성큼 다가오는 여명을 보며 조제프는 한숨을 내쉰 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제미니 선생을 향해 말했다.
“제미니 선생. 내 마지막으로 충고하나 하겠소.”
“….”
“만에 하나라도 이 자리에서 살아남는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고향으로 돌아가시오.”
“그, 그게 무슨 말…”
“이 아카데미를 공격하는 건 우리가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오. 지구가 세운 거짓 평화의 상징을 부수고 싶은 사람은 무수히 많으니까.”
조제프는 그리 말하며 갑작스레 마나를 끌어 올렸다. 여명이 반사적으로 검기를 쏘아내려는 그 순간.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말고 다른 자들이 아카데미를 노리고 있는 게 그 증거 아니겠…”
주문이라기엔 무식하고, 폭주라기엔 너무나 정교한 마나가 조제프의 몸에서 터져 나왔다.
‘자폭?’
아니, 그건 단순한 자폭이 아니었다. 조제프의 육신을 찢어발기며 터져 나온 마나는 그대로 위로 솟구쳐 올라 토굴 천장을 강타했다..
콰아아아앙!!!
설마 토굴을 무너트리려는 생각일까? 여명이 재빨리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조제프의 목적은 그 이상이었다.
그의 시체가 충돌한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토굴 전체가 아닌, 한곳만을 노린 정교한 자폭.
‘대체 무슨….’
여명은 조심스레 천장에 뚫린 구멍을 살펴봤다. 그가 위를 향해 고개를 든 순간, 구멍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눈동자와 마주쳤다.
썩은 진물을 질질 흘리는, 초점 없는 눈동자.
문제는 그 숫자가 한두 개가 아니란 점이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세어봐도 족히 수백 이상이었고, 감각으로 느껴지는 건…
“세티!”
여명은 토굴을 정리하고 있는 일행을 향해 외쳤다.
“응? 여명?”
“전부 대피소로 물러나! 지금 당장!”
그가 멍하니 서 있는 제미니 선생님을 낚아채고 뒤로 달리기 시작한 그때.
천장의 구멍에서 어마어마한 숫자의 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