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800)
을 위한 세계는 없다-800화(800/817)
EP.800 Красная звезда (6) (수정)
***
현대 무기를 따라 뜨겁게 달아오르는 아침의 공기와 상관없이, 여명의 머리는 차갑게 식었다.
상대는 10강.
붉은 별이란 가면을 쓰고 싸우기엔 너무나 강대한 초인이었지만, 패배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만박불통이나 각하를 상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냉철하게 브라우닝의 무술을 분석했다.
브라우닝의 무술은 정확히 무엇인가? 대체 무슨 진의를 품었길래 샤프 슈터와 공간 감지에서 저런 무식한 무술이 만들어졌는가?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그가 일견즉해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10강이 직접 쏟아내는 포격 속에서 무술을 분석하는 건 두뇌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이었으므로.
당장 날아오는 미사일을 피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그동안 쌓아온 깨달음이 아니었다면 반응조차 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동시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공간을 넘어오는 과정에서 생기는 미세한 마나의 떨림, 아지랑이 사이로 느껴지는 감촉이 그에게 어떻게 피해야 할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여명은 두 발의 미사일을 동시에 피하며 브라우닝을 향해 가속했다. 거리를 좁히면 미사일 같은 폭발 무기는 사용할 수 없을 터였다.
그렇게 판단한 여명이 빠르게 브라우닝에게 접근한 순간.
브라우닝이 쏟아내던 포격을 멈추고, 단 한 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여명의 키보다 족히 1m는 크고, 머리에 상어 지느러미 같은 날개가 달린 미사일.
빠르게 날아오는 미사일을 본 여명은 불현듯 춘식이 형과 같이 봤던 전투기 영화를 떠올렸다.
서로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에서 벌어지는 전투기 공중전이 주제인 한 영화였는데, 춘식이 형은 영화를 보는 내내 여명이 그다지 알고 싶지 않은 정보들을 설명해줬더랬다.
예를 들어, 근접 신관 같은 것.
자세한 원리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근접 신관이 달린 미사일은 목표물에 명중하지 않아도 폭발 범위에 들어오면 알아서 폭발한다는 설명은 정확하게 떠올랐다.
왜 하필 날아오는 미사일을 보며 그런 기억이 떠오른 건지 설명할 수 없었지만… 여명은 빠르게 몸을 꺾었다. 단순히 비행하는 것을 넘어, 신성 발판을 밟으며 비각술을 펼쳤다.
후웅 – ! 마치 매처럼 빠르게 움직인 여명의 귓가로, 아슬아슬하게 미사일이 스쳐 지나갔다.
피했다. 피했는데… 안 좋은 예상까지 피하지는 못했다.
미사일이 지나가는 찰나 속에서, 여명은 보았다. 날아온 미사일의 정면에 달린 렌즈가 그를 향해 움직이는 것을.
달깍. 마치 독사가 먹이를 발견한 것처럼 정확하고, 날카롭게.
여명이 반사적으로 보호막을 펼친 바로 다음 순간, 아슬아슬한 회피를 비웃듯 미사일이 폭발했다.
!!!!
조금 전 미사일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거대한 폭발. 후폭풍에 휘말린 피부와 머리카락이 녹아내리고, 고막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보호막이고 뭐고, 여명은 그대로 추락했다.
바닥과 충돌하기 직전에 간신히 몸을 재생해 자세를 다잡았지만, 전신이 얼얼했다. 직격도 아니고 고작 폭발에 휘말려서 이 정도라니.
‘호주에서 맞은 미사일과 같은 녀석인가.’
퉤- 입에 고인 피를 뱉어낸 여명은 브라우닝이 있는 옥상을 올려다봤다. 브라우닝은 손가락을 겨눈 자세 그대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봐주는 건 없다. 제대로 덤벼라.
여명은 기꺼이 그렇게 했다. 다시 하늘로 날아오른 그는 적극적으로 주문을 엮였다.
파스스- ! 3미터에 육박하는 얼음 창과 얼음벽이 여명의 주변 허공에 피어올랐다.
쇠미리나 살로메처럼 고급 마법은 사용할 수 없었지만, 중요한 건 응용력이었다. 무수한 얼음들이 태양을 반사하며 반짝거리는 가운데, 브라우닝이 어디 막아보라는 듯 다시 미사일을 발사했다.
번쩍. 작은 섬광과 동시에 허공에서 튀어나오는 각양각색의 미사일들.
어째서일까, 여명은 조금 전보다 더욱 선명하게 브라우닝의 마나를 느낄 수 있었다. 어딘가 익숙하다고 해야 할까?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여명은 그 감각에 호응했다.
그러니까, 미사일을 향해 마법을 쏘아냈다. 피할 수 없다면 맞서 싸워야 하는 법. 하늘이 얼음으로 물드는 가운데, 가장 앞서가던 얼음 창이 대전차 미사일과 충돌했다.
!!!!
허공을 수놓는 폭발과 동시에, 두꺼운 얼음벽이 공대공 미사일을 막아 섰다. 근접 신관은 얼음벽을 적으로 인식한 건지, 직격하기도 전에 폭발했다.
‘좋아, 먹힌다.’
여명은 곧바로 얼음 창과 얼음벽의 숫자를 늘렸다. 요격을 넘어, 역습을 가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그 모습을 본 브라우닝의 반응은 솔직했다. 감탄, 기특함, 그리고 승부욕.
중년의 위기를 겪는 10강의 얼굴에 사나운 미소가 걸렸다.
너무 힘이 들어가신 거 아닌가? 여명이 뭔가 불길함을 느낀 순간, 쏟아지는 미사일의 숫자가 배로 늘어났다.
아니, 단순히 미사일만 늘어난 게 아니었다. 브라우닝은 미사일 외에도 수류탄, 유탄, 로켓, 총알 등 자잘하면서도 치명적인 무기들을 섞어 날리기 시작했다.
이런 씨-
여명이 대응하려 했지만, 그보다 로켓이 옆구리에 박히는 게 한 발 더 빨랐다. 옆구리를 정확히 직격한 로켓은 환골탈태한 육체와 마나를 뚫고 뱃속을 헤집어놨다.
커헉- 찢어진 내장을 따라 피가 역류했지만, 가만히 재생할 시간 따윈 없었다. 여명은 곧장 대응법을 바꿨다.
미사일은 요격, 수류탄과 유탄은 회피, 총알은 그냥 맞아주며 브라우닝을 향해 접근.
상식적인 판단이었지만, 브라우닝의 화력은 그런 상식 이상이었다.
!!!!
대전차 미사일이 폭발하며 앞을 막는 사이, 뒤통수에서 총알이 쏟아진다. 총알을 피해 공중에서 움직이면 기다렸다는 듯 로켓이 쫓아오고, 로켓을 요격하면 또다시 미사일이 날아온다.
접근은커녕, 눈앞의 폭발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촘촘한 방공망.
여명은 빗물을 피하는 날파리, 혹은 모스크바로 돌진하던 오르세 타불의 기분을 느끼며 생각했다.
‘이런 짓을 30분 내내 할 수 있단 말이지.’
그동안 싸워온 10강과는 다른 의미로 괴물이었다. 또다시 쏟아지는 총알을 본 여명은 이를 악물고 급격한 선회 비행을 시작했다.
길게 아지랑이를 남기는 그를 따라, 폭발이 이어졌다. 언뜻 보면 폭죽 놀이와 닮았지만, 그 속에 즐거움은 없었다.
죽음. 오직 죽음만을 위해 만들어진 불꽃놀이가 아폴로 시티의 아침을 수놓았다.
만약 두 사람이 시민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있지 않았다면, 하다못해 미군이 시민들을 대피시키지 않았다면 수많은 시민의 머릿속에 트라우마를 새겨주기에 충분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여명도, 브라우닝도 개의치 않았다. 연기자도 아닌 두 사람이 세상을 속이기 위해선 어쭙잖은 연기가 아닌, 실전과도 같은 리얼함이 필요했으니까.
물론, 여명은 이길 생각이었다. 당장 조금 전에 죽일 각오라면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지 않았나.
이런 상황에서 패배하는 건 자칭 서기장의 시작으로 적절하지 않았다. 여명은 날아오는 로켓을 피하며 대응법을 고심했다.
이대로 30분을 버텨볼까? 기각. 그전에 미군이 올 게 분명했다.
똑같이 사격전? 불가능했다. 그전에 통구이가 될 게 뻔했으니까.
만탑산을 떨군다? 이건… 기각. 승산은 있지만, 만탑산을 훔친 범인이 자신이라고 밝히는 거나 다름없었다.
남는 건 브라우닝의 무술을 파훼한 뒤, 접근전으로 끝내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마침, 여명은 브라우닝의 무술을 파훼할 수 있는 실마리를 잡았다. 단순히 미사일의 발사 각도나, 총알의 궤도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었다.
익숙함.
그는 브라우닝의 무술에서 익숙함을 느꼈다. 그건 ‘비슷한 기술’을 쓰는 자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함이었다.
두 사람 모두 공간 감지를 익혀서 그런 걸까? 아니, 지금 느껴지는 건 그보다 훨씬 복잡한 무언가였다. 여명은 또다시 떨어지는 유탄을 피하며 생각했다.
‘내가 익힌 무술과 마법 중에선 닮은 게 없어.’
그러면 신성인가? 하지만 브라우닝에게서는 신성 특유의 외부 마나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면 남는 건…
‘…인벤토리?’
가설에 불과했지만, 남은 가능성이 하나뿐이라면야. 여명은 곧장 감각을 확장해 아공간을 추적해봤다.
직후, 미사일이 튀어나오는 마나 너머로 묘한 아공간이 느껴졌다. 인벤토리를 가진 그만이 감지할 수 있을 만큼 은밀하게 숨겨진 아공간… 그건 브라우닝을 중심으로 강처럼, 고목의 나뭇가지처럼 뻗어 나온 거대한 아공간이었다.
‘이게 무술이라고?’
진의 무술이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 넘는다지만, 이건 인벤토리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그래, 브라우닝의 진의 무술은 신의 권능인 인벤토리의 다른 모습이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여명은 그렇게 느꼈다. 여태껏 브라우닝이 보여준 태도가 그 증거였다.
마법사가 아닌 브라우닝은 어떻게 아공간을 가지고 있었는가? 인벤토리와 닮은 무술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는 여명의 인벤토리를 보고도 왜 놀라지 않았는가? 자신도 비슷한 걸 가지고 있으니까.
놀라움 속에서, 여명은 브라우닝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아공간을 분석했다. 그리고 한 번 더 놀랐다.
보관소에 가까운 인벤토리와 달리, 브라우닝의 아공간은 ‘발사대’에 가까운 까닭이었다. 아공간을 통과하는 물체에 샤프슈터의 이치, 그러니까 유도 기능을 부여하는 발사대.
대신 보관 기능은 극단적일 정도로 적었다. 브라우닝의 주 무기인 개틀링 건 한두 개가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작은 공간이 아공간의 전부였다.
30분이 한계란 말도 그렇고, 아마 실제 무기들은 아공간이 아닌 현실의 무기 창고 같은 곳에 연결해서 가지고 오는 것이리라.
어쨌거나, 여명이 무술의 정체를 파악한 바로 그 순간.
펑!
눈먼 유탄이 그의 허벅지에 명중했다. 피와 살이 튀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무술에 너무 신경을 쏟고 있었다. 이를 악 깨문 여명은 쏟아지는 후속 공격에 대응했다. 화산쇄설을 터트려 날아오는 유탄을 막고, 총알을 피하고, 미사일을 향해 얼음벽을 펼쳤다.
한데… 미사일은 폭발하지 않았다.
‘근접 신관이 없는 미사일!’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얼음 창을 던지려 했지만, 미사일은 그대로 와장창! 얼음벽을 깨버리고 여명의 코앞까지 날아왔다.
‘염병.’
이대로라면 직격이다. 여명은 전신을 회전하며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 끝에 맺힌 불씨가 피어오른 직후, 화산쇄설이 폭발했다.
콰아앙 – !!
폭발과 폭발이 충돌하며 불을 내뿜었다. 직격당하는 것만은 어떻게 피했지만, 후폭풍은 무슨 짓을 해도 피할 수 없었다.
!!!!!!
불과 충격이 피부를 때렸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신경이 모조리 녹아버린 탓이었다. 대체 얼마나 큰 부상을 입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쿵!
바닥에 추락하고 나서야, 그나마 신경이 돌아왔다. 척추가 찌르르 울리고, 전신이 고통스러웠다. 그나마 오른팔은 아프지 않… 아니, 다시 보니 오른팔이 통째로 날아간 상태였다.
‘내 팔이 잘리는 건 또 오랜만이네.’
쓴웃음을 삼킨 여명은 다리를 재생하며 일어났다. 그가 남긴 아지랑이 너머로, 무수한 화기들이 그를 향해 쏟아지는 게 보였다. 그건 비였다. 현대전을 상징하는 죽음의 비.
지금 몸 상태로는 피하는 것조차 어려워 보였지만… 조금 전 같은 막막함은 없었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던가? 그 말이 옳았다. 여명은 미사일 너머에서 느껴지는 아공간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한번 무장 혈청을 들어 올렸다.
***
콰아앙 – !!
조금 전 미국에게 도망친 기자는 폭발을 보며 침을 삼켰다.
차기 서기장 붉은 별과 브라우닝의 대결을 이렇게나 가까이서 찍을 수 있다니. 존경하는 종군 기자가 된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리는 동시에, 싸움에 휘말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머리를 스쳤다.
물론,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미군에게서 도망칠 때부터 목숨보다는 진실을 위해 죽기로 각오한 몸 아닌가.
용기를 낸 그는 천천히 전투 현장으로 다가갔다.
쉴 새 없이 땅을 울리는 충격파와 굉음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카메라가 브라우닝의 표정을 찍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이윽고, 그가 지하 공군 기지가 보이는 절벽 난간까지 다가간 찰나.
“스탑!”
웬 여자애가 그의 뒷덜미를 잡아끌었다. 갑자기 엉덩방아를 찧은 기자는 이게 무슨 짓이냐고 따지지 못했다. 그가 서 있던 자리로 붉은 별이 박살 낸 로켓의 잔해가 쿵! 떨어졌으므로.
넘어지지 않았으면 즉사였다. 꿀꺽 침을 삼킨 기자는 자신을 끌어당긴 게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
그의 동생보다도 어려 보이는 여자가 하나도 아니고 셋… 얼굴이 흐릿하게 보이는 걸 보면 환상 마법으로 얼굴을 가린 것 같았- 아니, 이게 진짜라고?
기자는 자기가 헛것을 봤나 싶어 눈을 비볐다가, 소녀들의 얼굴이 사라지지 않는 걸 보고 볼을 꼬집어 봤다. 아팠다.
꿈이 아니네? 그가 황당해하건 말건, 셋 중 리더로 보이는 금발의 여성이 앞으로 나섰다.
“누구시길래, 여기서 촬영하고 계세요?”
어딘가 기품 있는 목소리. 기자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저, 저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자 벤자민 베이컨입니다.”
“아, 기자셨구나. 기자용 방탄복이 없어서 못 알아봤어요.”
“저, 전 비정규직이라, 아직 방탄복은….”
종군기자도 아니면서 왜 이런 곳에 왔냐는 비꼼이 담긴 말이었는데, 상대가 이렇게 나오니 할 말이 없었다.
금발의 소녀는 자신의 연인과 닮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정규직이 되기 위한 특종을 찍으러 오신 거군요?”
“정규직이 목적은 아니지만… 네, 특종을 찍으러 온 거 맞습니다.”
“특종, 특종이라….”
소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콰아앙!! 머리 위로 미사일이 한 발 더 터지고 나서야 말했다.
“저희가 기자님이 특종을 찍을 수 있도록 도와드릴게요. 여기서 조금 더 가까이 가서 찍는 건 어떠세요?”
“그게 무슨…?”
“저희 셋 다 초인이거든요. 기자님 한 명 정도는 도와드릴 수 있어요.”
너무나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대가가 무엇인지 궁금할 정도로 매력적인 제안. 벤자민은 자신이 악마의 말을 듣는 게 아닐까, 고민하며 되물었다.
“그, 제게 원하시는 게….”
“원하는 거요? 없어요. 그냥 기자님이 기자답게, 오늘 찍은 걸 ‘그대로’ 세상에 알리시면 충분해요.”
그대로… 편집 없이 올리란 말이었다. 벤자민은 자신도 모르게 카메라를 꽉 쥐며 물었다.
“좋습니다. 대가도 없이 도와주신다는 걸 거절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그 전에, 당신들이 누구인지 알려주십쇼.”
“저희요?”
금발의 소녀는 뒤에 서 있는 붉은 색, 하늘 색 머리의 소녀들을 번갈아 바라본 뒤, 환상 마법으로도 가릴 수 없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새로운 서기장의 연인… 이 정도면 답이 될까요?”
“….”
벤자민은 놀라지 않았다. 이미 예상하였으니까? 아니, 불타는 기자 혼 때문에.
“…촬영 끝나고, 따로 인터뷰 가능하십니까?”
***
뭔가 위험하다.
브라우닝의 본능이 경고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그의 화망은 압도적으로 여명을 몰아붙이고 있었고, 여명은 조금 전 추락의 피해를 복구하지 못한 채 계속 도망 다니고 있었다.
설마 이대로 30분을 버티려는 건가? 주가시빌리의 재생력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이 싸움을 30분이나 질질 끄는 것 자체가 패배나 다름없었다.
무엇보다, 그가 아는 여명은 그런 순진한 방법을 쓸 녀석이 아니었다.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건 확실한데… 잠시 머리를 굴린 브라우닝은 조금 전 살기를 빨아들인 검은 진의 무술을 떠올렸다. 그래, 그거라면 단번에 균형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무술 범위에서 벗어나면 될 일. 브라우닝은 한층 더 거리를 벌렸다. 한 발에 억 소리가 나는 공대공 미사일은 덤이었-
그때, 그가 움직이는 걸 본 여명의 비행 방향이 달라졌다. 미사일에서 도망치는 대신, 그를 향해 똑바로 날아오는 게 아닌가?
이동 중에는 화력이 약해질 거라 생각한 걸까? 브라우닝은 그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알려주려는 듯, 촘촘하게 화망을 짰다.
다음 순간, 그의 진의를 따라 아공간이 움직였다. 그의 무술과 연결된 무기고의 온갖 무기들이 공간을 넘어 여명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구경 총기, 유탄, 크레모아, 로켓, 미사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현대 무기는 폭격이란 단어가 부족한 장관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브라우닝도 이만한 화력을 퍼붓는 건 거의 십여년 만에 처음이었-
“…?”
한데, 여명의 속도가 줄어들지 않았다. 회피 기동 때문은 아니었다. 브라우닝은 그것조차 다 감안한 화망을 구성해놨다. 순간이동을 하는 게 아니고서야, 이 화망을 정면에서 뚫는 건 불가능할 텐데.
몇 초간 여명의 행동을 관찰하고 나서야, 브라우닝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깨달았다.
그의 무기들이 요격당하고 있다.
조금 전처럼 날아오는 걸 막아내는 수준이 아니었다. 여명의 얼음 창과 얼음벽은 아예 발사되기 전에, 무기가 나오는 곳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아공간을 인지한 게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
여명이 자신과 비슷한 아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걸 상기한 브라우닝은 곧장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았다.
그의 무술이 파훼 당했다.
그게 진짜인지, 거짓인지 따질 필요도 없었다. 일류는 상황을 의심하는 대신 당당히 맞서는 법. 브라우닝은 아공간에서 여분의 세이버를 꺼냈다.
미군 내부 전통에 따라, 그가 장성으로 진급할 때 부하들이 만들어 바친 예장용 세이버.
1902년에 채용된 미합중국 육군 장교용 세이버를 그대로 빼닮았으나, 마나 메탈로 만든 특제품 세이버가 날카로운 마나를 머금으며 횡을 그린 순간.
코앞까지 다가온 여명의 무장 혈청과 세이버가 충돌했다.
!!!
충격파에 수염이 출렁거렸으나, 브라우닝은 개의치 않았다. 그가 전통적인 세이버 검법을 응용한 군용 무술을 펼치자, 여명이 물었다.
“검도 쓸 줄 아셨습니까?”
여명은 당연히 총검술을 쓰실 줄 알았습니다- 같은 소리를 지껄이며 검을 휘둘렀다. 브라우닝은 거칠게 검을 받아내며 대답했다.
“내게 근접전을 걸어오는 녀석이 자네뿐이었을 것 같나? ”
“아뇨, 하지만 총검술을 쓰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 구닥다리 기술은 엘프 전쟁 이후 교리에서 빠졌어.”
여명은 역시 옛날 다큐는 믿을 게 못 되네요- 같은 소리를 지껄이며 검을 휘둘렀다.
채앵-! 브라우닝은 여명과 검을 맞댈 정도의 실력은 있었다. 아마 웬만한 초인 정도는 마나로 압도해 죽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여명은 시대를 대표하는 검사들과 싸워 온 용사였다.
순수한 검술로만 겨루면, 검을 몇 번 나누기도 전에 브라우닝의 팔을 잘랐으리라.
그러나 브라우닝은 검만 쓰지 않았다. 간결한 세이버 검술 사이사이, 아공간을 타고 총알이 쏟아졌다.
특수 코팅이 된 산탄과 흔히 매그넘이라 불리는 대구경 총알들. 여명은 총알을 피하고, 어떨 때는 그냥 맞아주며 계속 브라우닝을 압박했다.
그렇게 옥상 난간까지 몇 걸음 안 남은 자리까지 밀린 순간, 브라우닝이 말했다.
“내 팔도 자를 셈인가?”
여명은 애써 뜨끔하는 표정을 숨겼다. 브라우닝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세이버를 휘둘렀다.
“자네, 그거 병이야. 전우들이 비슷한 증상을 보여서 잘 알지. 나중에 정신과에 가서 치료받게. 알겠나?”
“….”
“그리고… 흠,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내가 졌군.”
“예?”
“모른 척할 필요 없다. 네가 나보다 강하다는 건 충분히 실감했으니까. 대충 10킬로미터 정도 바깥에서 싸웠으면 해볼 만 했을 텐데… 쓰으읍, 아직 주와이외즈는 쓰지도 않았지?”
여명은 알파 빔에 대한 정보를 숨기며 대답했다.
“중장님도 도시를 불태우는 소이탄은 안 쓰셨잖습니까.”
“그거랑 이거랑 같나?”
“민간인 피해를 신경 쓴다는 점에서는 같지요.”
“…허, 지금 도시를 이 꼴로 만들어 놓고 민간인을 따지나?”
여명은 슬쩍, 높이가 달라진 지평선을 확인하며 대답했다.
“건물이야 뭐, 보험사가 책임질 문제죠. 철도랑 외곽도로는 아직 멀쩡하고요.”
“….”
브라우닝은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 듯 여명을 바라보다가, 세이버를 방어적으로 휘두르며 말했다.
“뭐, 이 이야기는 됐고, 일단 장소를 옮기지. 여기서 지면 방송 각이 안 나오니까.”
“….”
“부탁한 거 아닐세. 지더라도 멋지게 져야지.”
직후, 발아래 빌딩에서 쿠구궁…! 커다란 충격파가 올라왔다. 빌딩 내부에서 뭔가가 폭발하는 소리였다.
…이 양반이 진짜.
빌딩이 기울어지는 걸 느낀 여명이 당황하는 사이, 브라우닝이 무너지는 옥상 난간을 붙잡으며 말했다.
“꽉 잡아라.”
“전 날 수 있는데요.”
여명이 반박하기 무섭게, 브라우닝이 아공간에서 권총을 뽑아 들었다.
“잡아. 그쪽이 그림이 좋으니까.”
“….”
여명은 군말 없이 기울어지는 옥상 난간을 붙잡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총을 안 쏜 건 아니었다.
탕!
***
여명과 브라우닝의 분위기가 어떻건 간에, 도시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하늘을 수놓는 폭발도, 천지를 울리는 굉음도 모두 진짜였으므로.
그리고 코르부스의 분노 또한 진짜였다. 핵무기 허가가 내려왔다는 말을 들은 직후부터, 그녀는 깃털이 쭈뼛 설 정도로 분노했다.
독화와 뒤늦게 찾아온 듀크가 그녀의 앞을 막지 않았다면, 당장 브라우닝에게 달려가 머리에 부리 구멍을 내줬으리라.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명과 브라우닝의 싸움이 격해질수록 그녀의 인내심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진지하게 싸우는 거 아니라니까.
듀크가 재차 그렇게 말했지만, 코르부스의 표정은 더욱 사나워지기만 했다.
“저 폭발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시오?”
-네 제자는 저런 걸로 안 죽잖아.
“직격당해서 뇌까지 다 타버리면 죽소.”
-확신하냐?
“아마도 그럴 것이오. 그보다, 안 죽으면 미사일에 맞아도 된다는 말이오? 머리에 총알을 맞아도 안 죽은 것처럼?”
코르부스는 기절한 델타 포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듀크는 니 제자만 안 죽는다고 말하는 대신,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브라우닝은 네 제자와 같이 아야톨라를 잡은 전우다. 거기다 니 제자가 저 녀석 딸을 구해주기도 했고… 나나 브라우닝을 못 믿겠다면, 네 제자를 믿어라.
“제자의 마지막 무전으로는 일대일로 싸운다고만 했소. 연기란 이야기는 없었단 말이오.”
-그게 그거지.
합! 코르부스는 부리 대신 입술을 부딪쳤다. 그건 분노가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증거였다. 옆에 있던 독화는 피곤한 표정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갈림길의 구도자, 브라우닝은 이런 일로 뒤통수를 칠 사람이 아니니… 그냥 기다리는 게 어떻소?”
“그걸 당신이 어떻게 장담하오?”
“브라우닝은 순순히 윗사람의 명령을 들을 정도로 충성스러운 군인이 아니오. 그런 적도 있었지만… 후회는 사람을 바꾸지.”
“….”
“적어도 지금의 그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인기 없는 대통령을 위해 딸의 은인에게 핵을 쏠 사람은 아니라고 확신하오. 그러니 조금만 화를 참고 기다려보시오.”
브라우닝에 대해 퍽 많이 아는 듯한 말투였다. 코르부스는 주가시빌리인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따지지 않았다. 때마침, 여명과 브라우닝이 근접전에 돌입했으니까.
듀크는 무너진 벽 너머로 보이는 근접전을 보며 신음했다.
-브라우닝이 봐준 건 아니고… 어떻게 한 거지?
의외로 그의 질문에 대답한 건 독화였다.
“브라우닝의 무술을 파훼했군… 10강의 무술을 이렇게 단시간에….”
-파훼? 공간을 넘어 사격하는 기술에 파훼랄 게 있나?
“트루 스트라이크의 원본이 되는 브라우닝의 진의 무술은 그 이상이다. 델타 포스가 쓰는 제식 무술도 훌륭하지만… 원본에서 사격 기능만 떼어 온 열화판에 불과하니.”
-주가시빌리치곤 미군에 대해 아는 게 많군?
“그쪽이 초창기 특수군의 알파 2라는 것도 알고 있지. 듀크 중령.”
-….
빨갱이가 어떻게? 듀크가 대놓고 인상을 찌푸리건 말건, 독화는 개의치 않고 여명과 브라우닝의 전투를 바라봤다.
“내 말을 믿는다면, 조금만 더 기다려봐라. 이대로 근접전에 돌입했으니… 곧 브라우닝이 자연스레 패배하는 그림이 나올 거다”
코르부스는 어디 두고 보자는 듯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봤다. 그리고 잠시 후, 여명의 검에 밀린 브라우닝은 정말로 패배 직전까지 몰렸다.
독화가 내 말이 맞지? 란 표정으로 코르부스와 듀크를 바라본 순간.
두 사람이 싸우던 빌딩 중앙에서 콰앙! 불길이 치솟았다. 내부에서 미사일을 터트리는 신호였다.
뒤의 상황은 설명할 것도 없었다. 기울어지는 빌딩, 옥상 난간을 붙잡은 브라우닝과 여명, 그리고 여명을 향해 권총을 쏘는 브라우닝.
코르부스는 차가운 눈으로 독화를 노려봤다. 독화는 뭐라 할 말이 없는지 애꿎은 주가시빌리들을 힐끗거렸…
-이런 썅.
그때, 듀크가 욕설을 내뱉었다.
-저 빌딩, 이쪽으로 쓰러진다!
주가시빌리들은 물론이고, 코르부스조차 화들짝 놀랐다. 듀크의 말마따나, 기울어진 빌딩은 그들이 있는 폐허를 향해 수직 낙하하고 있었다.
“전원 대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살기를 잃은 주가시빌리, 듀크, 독화, 코르부스- 기절한 델타 포스를 챙기는 건 그나마 듀크 중령이 유일했다.
그렇게 달린 일행이 간신히 빌딩의 범위에서 벗어난 직후.
!!!!!
엄청난 굉음과 함께 빌딩이 바닥과 충돌했다. 조금 전까지 일행들이 서 있던 자리에는 무너진 옥상의 잔해가 쏟아졌다.
충격의 뒤로 짙은 흙먼지가 눈을 가리는 사이, 코르부스가 방향을 바꿔 잔해 사이로 뛰어들었다.
“제자여! 무사하시오?!”
그녀의 애타는 마음이 닿은 걸까, 잔해의 먼지 사이로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가 돌아왔다. 놀란 코르부스는 바람 마법으로 먼지를 밀어내며 기침이 들려온 자리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를 반겨준 건, 여명이 아닌 먼지를 뒤집어쓴 브라우닝이었다.
“콜록, 딱 적절할 때 왔군. 가만히 보고 있지 말고- 컥!”
브라우닝이 무어라 말하던 그때, 코르부스의 주먹이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10강을 쓰러트리기엔 모자랐지만, 입술을 터트리기엔 충분한 주먹이었다.
“내 제자는 어디있소?”
브라우닝은 찢어진 입술을 문지르며 대답했다.
“적당한 순간에 공중으로 날아갔다. 제기랄, 같이 떨어져야 한다니까.”
날아갔다고? 코르부스가 고개를 든 순간, 하늘에서 여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땅에 충돌하란 말은 안 하셨잖습니까.”
“자네는 말을 꼭 그렇게 곡해해야겠나?”
“같이 추락하자는 것보다는 곡해가 낫죠.”
“거참, 한 마디를 안 지는군. 우리 딸이랑 똑같아.”
브라우닝이 그렇게 투덜거리고, 코르부스가 착지한 여명에게 다가가는 사이- 자리를 피했던 듀크가 달려왔다.
-흠… 내가 이상한 건가? 핵무기 허가가 내려온 것치곤 분위기가 너무 좋은데.
농담과 상황 파악이 반반 섞인 말. 하지만 듀크의 말은 두 가지 목적에서 모두 실패했다. 브라우닝과 여명이 표정이 동시에 딱딱하게 굳었으니까.
“핵무기?”
심지어 브라우닝은 처음 듣는 듯한 반응이었다. 듀크는 혹시나 싶어 되물었다.
-…기밀 명령을 듣지 못했나?
브라우닝은 그제야 아공간에서 통신기를 꺼냈다. 반쯤 깨지고, 금이 간 통신기에는 브라우닝의 지문으로만 열 수 있는 기밀 명령이 세 개나 도착해 있었다.
기밀 명령을 확인한 브라우닝은 핫, 헛웃음을 흘렸다.
“데이비 크로켓 사용 허가라… 대통령이 단단히 미쳤군.”
그러자 보병용 핵무기의 이름을 알아들은 여명이 되물었다.
“데이비 크로켓? 설마 그것도 쏠 수 있습니까?”
“허가가 내려오면 쏠 수 있다… 마침 허가가 내려왔군.”
“….”
진짜 전략 무기 맞네. 여명은 핵무기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보병 용 핵무기의 위력을 떠올리며 미간을 구겼다.
아무튼, 코르부스가 여명의 상태를 확인하고, 여명이 괜찮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다는 등의 대화를 나누길 잠시.
여명은 자리를 털고 일어난 브라우닝에게 물었다.
“어쨌거나, 브라우닝께서 원하시는 대로 떨어졌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원래는 이대로 자네가 나를 붙잡고 공중으로 올라가 추락시키는 광경으로 끝내려 했는데… 더 좋은 그림이 떠오르는군.”
“…더 좋은 그림?”
브라우닝은 콰직, 통신기를 박살 내며 대답했다.
“자네, 제2의 변경백이 될 생각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