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803)
을 위한 세계는 없다-803화(803/817)
EP.803 Красная звезда (9)
***
저 멀리 핵의 폭발을 구경하던 브라우닝은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한껏 승리한 모습을 연기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는 속으로 걱정을 삼키고 있었다.
설마, 진짜 고자가 되는 건 아니겠지.
방사능이 초인을 고자로 만든다는 건 과학적 사실이 아닌, 소문에 불과했지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지면 성녀는 물론이고, 변경백이 그를 죽이러 오리라.
뭐, 남의 자식을 고자로 만들면 그만한 대가는 치러야 하는 법. 브라우닝은 황제에게 엘릭서를 빼앗아 여명에게 먹일 가능성까지 떠올리며 여명을 기다렸다.
이제 남은 건 여명의 마무리 뿐이었다. 미래의 서기장의 멋들어진 공격 한 방으로 자신이 쓰러지면, 작전은 완벽하게 끝난다.
멍청한 CIA 새끼들도, 멀쩡한 배를 좌초시켜 그를 섬에 가둬두려던 해군도, 냉전을 꿈꾸던 모스크바도 모조리 엿을 먹게 되리라.
군과 대통령은 그에게 패배의 책임을 지울 테지만… 뭐, 언제는 정부와 군이 그를 좋아했던가? 브라우닝은 가벼운 마음으로 패배를 준비했다.
하지만 여명이 하늘을 날아오는 걸 확인한 순간, 그의 본능이 뭔가 잘못됐다고 소리쳤다. 다급한 여명의 움직임은 연기라고 하기엔 너무나 리얼했으므로.
뭐지? 브라우닝은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금세 여명이 향하는 곳이 자신이 아닌,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CIA 비밀 기지 방향이라는 걸 깨달았다.
무슨 일이- 거기까지 생각한 브라우닝은 뒤늦게 자신의 통신기를 확인했다. 이미 반쯤 박살 날 통신기 위에는, 흐릿한 기밀 명령이 내려와 있었다.
[CIA 기지 내부의 모든 증거를 지워라.]델타 포스, 브라우닝은 곧바로 CIA 비밀 기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무너진 건물 잔해와 망가진 도로들이 그를 막아섰지만, 그는 10강이었다. 그는 에어 도미넌스를 비롯한 미군의 제식 무술을 사용하며 빠르게 도시를 주파했다.
너무 빠르게 달리느라 마나가 꼬이며 속이 망가졌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거의 날아가는 속도로 달린 브라우닝은 10km나 떨어져 있는 여명보다 빠르게 지반이 뜯겨나간 CIA의 지하 창고에 도달했다.
탁! 지하에 떨어진 그를 반겨준 건, 약에 절인 채 잠들어 있는 수많은 아이들과 단 한 명의 델타 포스였다.
녀석은 총을 든 채 멍하니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브라우닝은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델타 포스. 관등성명.”
그러나 델타 포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멍하니 고개를 돌려 브라우닝을 바라보았다. 깨진 앞면 보호구 사이로, 공황에 빠진 오른 눈동자가 브라우닝을 마주했다.
[…중장님.]“관등성명.”
[중장님도 아이들을 죽이러 오셨습니까?]“….”
어디선가 들어봤던 말. 브라우닝이 입을 꾹 다무는 가운데, 델타 포스는 기계음 섞인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CIA 기지에 왜 이런 아이들이 있습니까? 정부는 왜 이런 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한 겁니까? 이런 건… 빨갱이들이나 하는 일 아닙니까?]“…자네도 알겠지만, 우리 정부라고 딱히 깨끗하진 않네.”
델타 포스라면 그 정도는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연이은 전투와 피부를 찌르는 살기, 그리고 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이 녀석의 정신을 뒤흔든 것이리라.
마치, 그를 떠나 아카데미 교사가 된 그의 옛 부관이 그랬던 것처럼.
[죽이실 겁니까?]브라우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명령에 불복종하시겠단 말입니까?]“자네가 잊었나 본데, 나는 중장일세. 내 판단에 따라 현장 작전을 변경할 수 있는 계급이지.”
[….]“내가 온갖 더러운 꼴을 보면서 별을 단 이유가 바로 이걸세.”
[…윗선은 중장님의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까짓것, 상관없네. 어차피 대통령 임기도 얼마 안 남았고… 지금이라도 군복 벗고, 다른 후보 대선 캠프에 들어가면 되네. 솔직히 빅 쓰리 중에 나만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게 억울하기도 했네.”
너무 솔직했던 걸까, 델타 포스는 얼떨떨한 눈으로 브라우닝을 바라보았다.
[사모님과 자녀분은 어쩌시려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그러자 피터 오스틴 중장은 픽 웃었다. 가족이 없는 델타 포스가 가족을 언급해서? 아니, 아야톨라의 악몽 속에서 비슷한 말을 나눠본 적 있어서.
그래서, 오스틴 중장은 그때 했던 말과 똑같은 대답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참전 용사의 아이와 아내를 외면하지 않는 조국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러니 내가 여기서 가족을 위해 양심을 포기하는 건, 그 자체로 가족에 대한 배신이자 조국에 대한 반역이다… 이걸로 대답이 됐나?”
델타 포스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중장님. 이해했습니다.]“알았으면 떠나게. 이곳은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 가서, 전우들을 구하게”
그렇게 말한 브라우닝은 진의 무술로 공간을 연결했다. 곧, 허공에서 우수수- 총기와 총알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델타 포스 요원이 허겁지겁 무장을 챙기는 사이.
“브라우닝. 여기 있었나.”
하늘에서 붉은 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붉은 별…!!]델타 포스가 깜짝 놀라 총기를 들자, 계단을 내려오듯 하늘을 내려오던 붉은 별이 그를 알아봤다.
“장갑차에 타고 있던 요원이군.”
붉은 별은 브라우닝과 그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휘릭, 무기를 거두며 말했다.
“너희가 내 몸을 쐈을 때, 너는 머리가 아닌 다른 곳을 노렸었지… 내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했던 게 신경 쓰였나?”
[닥쳐! 이 빨갱이 새끼!]“다시 말하지만, 난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닥치라고 했을 텐데!]여명은 슬쩍, 브라우닝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여명은 그렇게 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했다.
“뉴욕에 위치한 컬럼비아 대학교의 모토는?”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 36장 9절 말씀이지. 미국인이 이것도 모르나?”
[…뭐, 뭣?]“잘 생각해 봐라. 경전과 미국 대학 모토를 동시에 언급하는 공산주의자를 본 적 있나?”
[….]“다시 말하지만, 난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그 사실을 숨길 생각도 없다.”
거기까지 말한 여명은 크흠, 헛기침한 뒤 덧붙였다.
“알았으면, 이제 떠나라. 지금 내가 볼일이 있는 건 브라우닝이다. 너와 너희 동료들의 죄를 벌하는 건 나중으로 미뤄도 충분하다.”
[감히…!]그때, 브라우닝이 끼어들었다.
“떠나라.”
[중장님…!]“내가 조금 전에 내린 명령을 잊었나? 가서 전우들을 구해라.”
[….]“날 믿어라. 난 패배하지 않는다.”
브라우닝이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델타 포스는 총과 총알을 챙겨 자리를 떠났다. 마지막까지 여명을 노려보긴 했지만… 뭐, 여명이 알 바는 아니었다.
어쨌거나, 떠나는 델타 포스의 발소리가 작아질 때쯤.
브라우닝이 한숨과 함께 말했다.
“큰일 날 뻔했군.”
“예, 아이들이 다쳤다면 전부 소용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저 델타 포스도 살아서 떠날 수 없었을 테고요.”
“뭐, 델타 포스도 사람이니 말일세… 덕분에 의미 있는 말도 했고.”
“…?”
“개인적인 일일세.”
직후, 브라우닝은 탁, 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이제 마무리만 남았는데… 어떻게 하겠나? 이참에 날 쓰러트리고 이곳에 있는 아이들이 CIA의 짓이라는 걸 공표하는 건?”
“제가 CIA를 잘 알진 못하지만, 당연히 빨갱이의 음모로 치부할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군. 그러면 자네가 구해서 돌아가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군.”
그렇게 말한 브라우닝이 바닥에 늘어지게 눕던 그때, 여명이 무전기를 꺼냈다. 잠시 무전기를 바라보던 여명은, 음모를 떠올린 사람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제게 좋은 수가 떠올랐습니다.”
“좋은 수?”
***
벤자민과 서기장의 연인들이 CIA 지하에 도착했을 때, 상황은 이미 종료된 후였다.
바닥에 쓰러진 브라우닝과 그런 브라우닝의 앞에 서서 인민의 낫과 망치를 늘어트린 붉은 별…
하지만 벤자민의 시선을 끄는 건 따로 있었다. 벽면과 바닥 곳곳에 잠들어 있는 아이들. 이상한 호스가 연결된 아이들은 누가 봐도 인체 실험, 혹은 그에 비견되는 일의 희생양처럼 보였다.
특종이었다. 그는 손을 벌벌 떨면서도 카메라를 들었다.
다음 순간, 브라우닝이 기다렸다는 듯 소리쳤다.
“붉은 별…! 이 아이들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린다면…! 내 조국은 결코 널 용서하지 않을 거다!”
아이들을 지키느라 진 거구나. 벤자민이 애국자는 아니었지만, 한 명의 미국인으로서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그는 초인이 아니었고, 그가 할 수 있는 건 브라우닝의 장렬한 최후를 카메라에 담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붉은 별은 브라우닝을 끝장내지 않았다. 오히려 권력자 특유의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누가 누굴 용서해? 애국심에 눈이 멀었구나, 브라우닝. 10강이란 이름이 아깝다.”
“닥쳐라!”
“아니, 누구도 혁명가의 입을 닥치게 할 수 없다. 내가 너에게 진실을 알려주마.”
다음 순간, 붉은 별은 고개를 숙여 브라우닝에게 무어라고 속삭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브라우닝의 표정이 시시각각 일그러지는 걸 보니 평범한 이야기는 아닌 게 분명했다.
그리고 붉은 별이 다시 고개를 든 뒤, 브라우닝은 손을 부르르 떨며 소리쳤다.
“그게 설사 사실이라 해도, 내 애국심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의 대의가 정당하다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니…! 그것이 트루 스트라이크의 진의다!”
벤자민은 그 진의가 애국가의 일부라는 걸 깨닫고 눈물을 삼켰다. 저런 참 군인이 빨갱이에게 패배해 쓰러지는가?
그는 당장이라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비를 외치고 싶었다. 붉은 별이 병영 앞에서 아이를 구했던 건 전부 연기였냐고, 그렇게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브라우닝과 붉은 별이 무어라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이번에도 심각한 대화를 나눈 건지, 브라우닝은 전에 없던 표정으로 정색하며 아공간에서 샷건을 꺼냈다. 그리고-
터엉!!
그대로 붉은 별을 쏴버렸다. 마지막까지 전의를 잃지 않는 10강의 자존심인 걸까? 벤자민은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붉은 별과 브라우닝을 번갈아 찍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번에도 끝은 없었다. 비틀거리던 붉은 별은 갑자기 무장 혈청을 다시 속에 집어넣은 뒤, 벤자민이 있는 방향과 브라우닝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인가… 쯧, 운이 좋구나. 브라우닝.”
“…도망치려는 거냐!”
“도망? 어디, 진실 앞에서도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지 내가 똑똑히 지켜보겠다. 브라우닝.”
다음 순간, 붉은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브라우닝이 사라지는 그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가운데, 뒤에 서 있던 여인들이 갑자기 벤자민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수고했어요, 기자님.”
“정부 검열 당하기 전에 인터넷에 먼저 올리세요. 아셨죠?”
“진실이 뭔지, 잘 보시고요.”
그렇게 떠나는 세 여인의 발소리를 끝으로, 아폴로 시티 참사가 끝났다.
아마도.
***
얼마 지나지 않아, 여명과 합류한 미리의 첫 질문은 이것이었다.
“여명, 마지막에 브라우닝이랑 무슨 대화를 하셨길래, 브라우닝이 그렇게 화를 냈어요?”
당연히 고자 이야기부터 나올 줄 알았던 여명은 살짝 당황하며 대답했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캐서린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시더라고.”
“브라우닝의 딸이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하셨어요?”
“내 취향은 아니지만, 좋은 초인이 될 거라고 했지.”
“….”
“….”
미리와 네티가 정색하는 사이, 시리가 짧게 촌평을 내놨다.
“이렇게 단기간에 아버지의 샷건을 두 번이나… 형부 잘못이네요.”
아니 솔직하게 대답하라고 해서 솔직하게 대답한 게 왜 내 잘못이야? 억울함을 꾹 삼킨 여명은, 애꿎은 휴대폰을 꺼냈다.
[성녀님의 부재중 전화 591회] [주지사의 부재중 전화 43회] [아직 읽지 않은 문자 1430…]그는 말 없이 휴대폰을 집어 넣었다. 전투는 끝났지만, 서기장 노릇은 이제 시작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