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809)
을 위한 세계는 없다-809화(809/817)
EP.809 code name Joe -2 (6)
***
“에이제.”
오랜만에 이름을 듣자마자, 알파 원은 쾅! 술잔을 내려쳤다.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미국을 대표하는 빅 쓰리의 위협. 하지만 그의 이름을 부른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뉴 브레이브 프로젝트의 실험체 넘버 A-0. 에이 제로를 줄여서 에이제.”
“….”
“아니면 다른 이름으로 불러주길 바라나?”
콰직. 알파 원은 술잔을 쥐어 박살낸 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제발 아가리 닥쳐. 조지프.”
조지프 케네디. 아버지인 로버트 케네디에게서 서글서글한 눈빛과 넓은 이마를 물려받은 그는 터벅터벅 알파 원의 곁으로 다가왔다.
알파 원은 새 술잔을 꺼낼 뿐, 조지프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가 지켜야 하는 대통령 후보라서? 아니, 조지프의 손에 어마어마하게 귀한 위스키가 들려있는 까닭이었다.
“글렌피딕 1937. 자네라면 이 술의 가치를 알고 있겠지.”
“…그깟 술,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살 수 있다.”
“중요한 건 가격이 아니라, 희귀성 아닌가. 영국이 무너진 뒤 이만한 스코틀랜드산 위스키가 얼마나 귀한지…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
“….”
탁, 조지프는 술병을 탁자에 내려놨다. 조금 전 알파 원이 박살 낸 컵 조각들이 반짝이며 마치 찬양하듯 술병을 비췄다.
그러거나 말거나, 알파 원은 무덤덤한 눈으로 술병과 조지프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뭘 부탁할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엿 먹어.”
“아직 아무 이야기도 안 했네만.”
“억 단위 술병을 들고 와서 하는 부탁? 안 들어도 뻔하지.”
“….”
조지프는 부정하긴커녕 고개를 끄덕였다. 알파 원은 흥, 마시던 싸구려 위스키로 병나발을 불었다.
“알았으면 그만 꺼져. 네놈 호위하는 것만으로도 바쁘니까.”
“좀 친절하게 말할 수는 없나?”
“네 대부가 한 짓거리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약과라는 걸 더 잘 알 텐데.”
“내 대부께서 좀 과격하시긴 했지.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난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일세.”
“그래서 모가지 안 날아가고 살아있는 거야. 헛소리 그만하고 이제 꺼져라.”
알파 원이 살짝 마나를 끌어올리며 으르렁거렸지만, 조지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술병을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휘익! 탁자를 향해 내려쳤다.
“이 미친 새끼가!”
놀란 알파 원이 손을 뻗어 술병을 막았다. 얼마나 조심스레 막았는지, 글렌피딕 1937 병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을 정도였다.
조지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술병에서 손을 뗐다.
“귀한 술이 버려지지 않아서 다행이군.”
“….”
“어쨌든, 이제 내 부탁을 이야기해도 되겠나?”
“참신하게 좆 같은 새끼… 볼 때마다 새롭게 좆 같다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알파 원은 술병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조지프는 한 번 더 미소 지었다.
“붉은 별의 정체. 자네는 알고 있지?”
“뭔 질문을 하나 했더니… CIA도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알고 있군.”
“모른다니까.”
“알파 원, 제발… 나 정도 되는 정치인 앞에서 거짓말하지 말게. 자네가 정말로 몰랐다면 내게 전혀 다른 사람을 알려줬을 거야. 즉, 모른다고 잡아 떼는 건 알고 있거나, 최소한 짐작 가는 사람은 있다는 뜻이지.”
“….”
조심스레 술병을 만지작거리던 알파 원은 팍 인상을 찌푸렸다. 조지프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으므로.
역시 공짜로 대통령 후보가 된 건 아니었나. 잠시 뜸을 들이던 알파 원은, 지이잉! 약한 출력의 알파 빔으로 글렌피딕 병의 주둥이를 잘라낸 뒤 말했다.
“뭘 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전투라면 사양이다. 난 널 호위하는 중이니까.”
“술을 마시면서?”
“술 마시지 않는 메이커보다, 술에 취한 내가 좋다고 한 건 너였다.”
조지프는 거기까지 알고 있냐는 듯 눈썹을 씰룩이다가, 알파 원에게 술잔을 내밀며 말했다.
“전투 같은 건 바라지 않네. 내가 원하는 건 대화야.”
“대화? 공화당 대통령 후보와 차기 서기장의 대화라. 핵 감축 협약이라도 할 생각인가?”
“비슷하지. 냉전을 바라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나와 닮았어. 적어도 대화의 여지는 있을 거라고 보네만.”
“좆까.”
“나는 진심일세.”
“진심은 염병, 론 매케인, 그 양반과 서기장이 붙어 먹는 게 싫어서 그렇겠지.”
“뭐, 그런 마음이 아예 없다곤 안 하겠네.”
알파 원은 쯧, 혀를 차며 잔에 술잔을 채웠다. 쪼르르- 술이 흘러내리는 소리가 기분 좋게 술잔을 채웠다. 조지프는 엿 같았지만, 그가 가져온 위스키의 향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물이었다.
아무튼, 조지프는 여전히 술잔을 내민 자세로 말했다.
“그냥 말을 전하는 것도 어렵겠나?”
“한 번 더 정중하게 대답하지. 조옷- 까아-.”
“글렌피딕 1937… 사실 두 병 더 가지고 있네. 나의 대부님이 남기신 유품이지.”
“….”
“거기다 추가로 3일.”
“3일?”
“자네가 원하면 3일간 FBI와 CIA의 감시를 완전히 차단해주지. 오랜만에 휴일을 보내는 걸세. 어떤가?”
움찔, 술잔을 들던 알파 원의 손이 멈췄다. 하지만 곧 그는 아무렇지 않게 위스키 잔에 입술 자국을 남겼다.
그는 그렇게 위스키를 천천히 음미하다가, 탁! 소리 나게 잔을 내려놨다.
“일주일.”
“아무리 나라도, 일주일은 어렵네.”
“흠.”
알파 원은 한 번 더 잔을 채우며 말했다.
“글렌피딕 1937 두 병에, 내가 원하는 날에 5일 휴가.”
“…받아들이겠네.”
“좋아, 거래 성립이다. 조지프.”
알파 원은 그대로 술병과 술잔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지프는 자신의 빈 잔과 멀어지는 알파 원의 등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그가 방을 떠나기 전에 소리쳤다.
“내가 얼마나 기다리면 되겠나?”
“길어도 열흘 내로 답장이 올 거다.”
열흘이라. 귀한 위스키 세 병과 정치력을 낭비하는 것치곤 그다지 마음에 드는 보상은 아니었지만… 선거에 패배자를 위한 자리는 없고, 이기기 위해선 출혈도 감수해야 하는 법.
조지프는 조용히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그사이 방을 나선 알파 원은 술병 꽉 쥐고 창문 바깥으로 날아올랐다.
붉은 별의 정체를 알만한… 아니, 세상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기 위해서.
***
엘프 숲으로 향하는 여행은 평화로웠다.
페로루의 운전 실력은 성녀와 비교하면 천사나 다름없었고, 트럭의 컨테이너는 모두가 함께 자기엔 좁지만 아늑했다.
무엇보다, 비료길은 안전했다.
몰락해가는 제국이 필사적으로 국력을 투입하는 중이라는 걸 증명하듯, 비료길 중간 중간 제국군의 군사 기지와 순찰을 하는 기사들이 보였다.
거기다 아샤의 귀족들은 영지를 관통하는 비료길을 틀어막긴커녕, 휴게소 치안에 사활을 걸었다. 물류창고와 지역 특산물 판매로 얻는 이익은 귀족들의 전통을 바꿀 만큼 짭짤했으므로.
개중에 가장 많이 만나는 영지는 ‘레락 가문’의 영지였는데, 여명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샤 태생 오크인 페로루는 지나갈 때마다 레락 가문을 욕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여행이 어찌나 평화로운지, 라쉬크가 이런 말을 할 정도였다.
“강도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샤도 평화롭구나?”
네티가 어디서 강도 소환 주문 쓰냐며 라쉬크의 옆구리를 찔러댔지만, 그 후 강도는커녕 흔한 자동차 사고 한번 없었다.
덕분에, 여명은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명상에 빠질 수 있었다.
-제자는 아폴로 시티에서 얻은 깨달음을 정리하는 중이니, 건들지 마시오. 특히 쇠미리. 사람들 다 보는 컨테이너에서 신체 접촉은 금지요! 아시겠소?!
-그러면 컨테이너 바깥에서는 괜찮을까요?
-자꾸 성녀님처럼 굴지마시오!
코르부스의 지원사격 덕분이기도 했지만, 뭐 아무튼.
평화로운 시간이 이어지자, 일행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냈다.
코르부스는 달리는 트럭 위에 올라 주변을 감시했다. 딜라는 주가시빌리가 버리고 간 뼈로 뭔가를 만드는데 여념이 없었고, 라쉬크는 간단한 물약들을 조제했으며, 네티와 시리는 여명의 옆에서 각자 수련에 몰두했다.
그리고 쇠미리는-
[명상하는 여명과 한 컷.jpg] [미래의 서기장과 함께.jpg] [성녀는 못 하는 거.jpg] [부럽지? 부럽지? 부럽지?.jpg]온 힘을 다해 성녀와 살로메에게 상황 보고(?) 문자를 보냈다. 다른 용사 파티원들이 문자를 보내려면 차원문을 넘어야 한다는 약점을 노린, 비겁한 공격이었다.
그리고 돌아온 답장은 쇠미리가 기대한 그대로였다.
[어차피 우리 엄마도 소련인임ㅗ 너만 빨갱이 아님ㅗ] [공주면 공주답게 체통을 지키세요. 호엔촐레른 가문처럼 만들어 버리기 전에.]두 사람을 놀리는 게 어찌나 재밌는지, 미리는 세티가 [그만] 이란 문자를 보낼 때까지 계속 두 사람을 놀렸다.
뭐, 아무튼.
그렇게 여명과 일행이 무사하다는 걸 확인시켜 준 미리는 트럭 여행 내내 세티와 연락하며 엘프 숲으로 들어갈 비밀 루트를 확인했다.
엘프 공주인 그녀가 엘프 숲에 몰래 들어간다는 게 조금 웃기게 들릴 수도 있었으나, 이건 정치적인 문제였다.
엘프 숲은 겉으로나마 아샤-지구 간의 무력 활동을 자제하는 몰타 발표를 준수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현재 그녀를 비롯한 세계수 혁명단의 활동은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인 소수의 테러리스트의 범죄에 불과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모두가 거짓이라는 걸 알고 있는 평화 상태였다. 영약을 향한 지구인들의 욕심과 전쟁 준비 시간이 필요한 엘프들의 마음이 맞아 지속되는 눈 가리고 아웅 식 평화라고나 할까.
그런 상황에 미리가 당당하게 정문으로 들어간다? UN은 미리를 체포하고, 그녀를 미끼 삼아 엘프를 정치적으로 압박하리라.
‘그럼 미리 언니만 몰래 들어가고 우리는 정문으로 들어가면 안 되나요?’
네티가 그런 반동적인 지적을 하기도 했지만, 여명의 꿀밤에 금세 제압당했다. 서기장다운 조직 관리법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평화로운 여행이 무르익을 때쯤.
쇠미리는 일행들 앞에서 지도를 꺼내 펼쳤다.
“…자, 평화로운 트럭 여행은 오늘로 끝입니다. 이따가 레가에르 강에 도착하면, 우리는 트럭을 버리고 배를 탈겁니다.”
쇠미리가 지도에서 말한 레가에르 강은 아샤 대륙 중부의 동서를 관통하는 거대한 강 줄기를 뜻했다.
레가에르 강은 한국의 한강처럼 굵은 강 줄기를 중심으로 수많은 강이 뻗어나가는 구조였는데, 개중에는 엘프 숲으로 이어진 물길도 있었다.
미리는 지도 위에 그려진 바로 그 물길을 짚으며 설명했다.
“이 물길을 따라 내려가면, 이틀 내로 엘프 숲 북부에 도착할 수 있어요. 북부 숲은 침엽수가 많은 온화한 숲이니까, 일정도 편할 거고요.”
온화한 숲은 또 뭐야? 그럼 공격적인 숲도 있나? 여명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가운데, 네티가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러면 배는 누가 몰아요?”
“당연히 내가 운전하지.”
“언니 배도 몰 줄 알았어요?”
“응, 그리고 코르부스도 몰 줄 알아.”
그러고 보니, 코르부스가 아카데미에 온 방법도 배였지… 여명은 코르부스를 보며 옛날 생각을 떠올렸다.
정작 코르부스는 ‘본인이 배를 몰면 모두 멀미할 텐데, 괜찮으시겠소?’ 같은 말을 하고 있었지만.
어쨌거나, 미리의 계획에 반대하는 일행은 아무도 없었다. 이 주변 지리를 아는 건 그녀뿐이었고, 모처럼 평화로운 여행에 물든 덕분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클리셰에 민감한 네티가 “형부랑 평화로운 여행이라니, 막판에 강도가 몰려드는 건 아니겠죠?” 라는 강도 소환 주문을 사용하고.
오시리가 그걸 “빨갱이들이 나타나는 게 더 참신하겠네.”는 말로 받아칠 정도였다.
다른 일행들도 저마다 그 정도 농담은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분위기.
바로 그런 분위기 속에서 페로루는 비료길과 레가에르 강이 만나는 도로에 도착했다.
강 줄기 바로 옆에 흙과 바위를 쌓아 만든 강변도로 위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건….
-지금 이 도로에 진입한 모든 운전자에게 알린다. 지금부터 이곳은 우리 붉은 별의 아이들이 접수한다. 당장 차에서 내린 뒤 바닥에 엎드려!!
빨갱이의 탈을 쓴 강도였다. 한두 명이 아니라, 강변도로를 틀어 막을 수 있을 정도로 머릿수가 많은 강도단.
녀석들의 무장 상태도 나쁘지 않았는데, 강도 대부분은 지구산 AK-47 소총을 쥐고 있었고, 개중에는 흔히 요술봉이라 불리는 대전차 로켓으로 무장한 녀석들도 있었다.
강도가 아니라, 어디 군벌인가? 운전석에 앉아 있던 여명이 마나를 끌어 올리며 차에서 내린 순간, 녀석들이 이상한 말을 지껄였다.
-붉은 별 서기장께서 말씀하시길, 순종적인 노동자들의 목숨은 거두지 않겠다 하셨다!!
“….”
-그러니까 죽기 싫으면 당장 차에서 내려 씹새끼들아!!!
아니, 그래서 이름이 붉은 별의 아이들이었어?? 여명이 황당한 표정으로 강도단의 대장을 바라보는 가운데, 컨테이너에서 내린 네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놈들, 우리가 주문 외워서 나타난 건 아니죠? 그죠??”
여명은 얼굴에 피눈물의 환상을 뒤집어쓰며 대답했다.
“…일단 잡아서 확인해 보자.”
다음 순간, 검붉은 살기가 강변도로를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