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810)
을 위한 세계는 없다-810화(810/817)
EP.810 숲의 사람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조물주는 모든 사람에게 양도할 수 없는 천부적인 권리를 부여했다.
행복과 자유, 그리고 생명을 추구할 권리… 참 멋진 말이야.
이렇게 멋진 선언 위에 나라를 세운 너희라면, 내가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건지, 이해할 거라고 믿는다.
[데메론드 입 맑스, 테러 31초 전 방송. 미국 독립 선언서를 인용하며.]***
[사건 파일 F-011-1] [분류번호 : 00039782] [목격자 진술] [성명 : 와칸 머돈니] [국적 : 아샤 제국] [소속 : 아샤 자유 배송 연합]…
……
…
아샤의 상인, 와칸은 그때의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습죠. 갑자기 빨갱이들이 길을 막고 총을 겨누는데… 딱 보자마자, 강도들이 든 총이 진짜라는 걸 눈치챘습죠. 실탄은 거짓말을 안하걸랑요. 그에 비해 저희 뒤에 있던 오크는 그것도 모르고 차를 돌리려다가 어이쿠! 그대로 뒤질 뻔했지 뭡니까.
그의 상단은 하필 ‘붉은 별의 아이들’이 틀어막은 길 맨 앞에 있었다.
-제가 그, 워낙 올림피아를 자주 챙겨본지라, 딱 보자마자 알 수 있었습죠. 강도단의 두목은… 누가 봐도 초인이었습죠.
초인이 이끄는 강도단이라니.
-옆에 강이 흐르는 강변도로라, 어디 도망갈 길도 없었습죠.
꼼짝없이 트럭 다섯 대 분량의 상품을 다 털릴 수밖에 없는 상황.
-이럴 줄 알았으면 보험금이 짠 제국 보험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지구산 보험을 들걸… 그렇게 후회하고 있던 바로 그때, 도로 뒤편에서 그게 나타났습죠. 그 뭐시냐. 그 검붉은 아지랑이 있잖습니까.
검붉은 아지랑이. 붉은 별의 상징과도 같은 그 아지랑이를 본 와칸은 강도단이 진짜로 붉은 별과 관계되었다고 믿어버렸다.
무시무시한 아야톨라를 참살하고, 미국의 앞마당을 불태워버린 빨갱이… 겁을 먹은 와칸은 당장 트럭에서 내려 무릎을 꿇었다. 상품을 다 내주는 한이 있어도, 목숨만큼은 살려달라고, 그렇게 빌 생각이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쇼! 그렇게 외치려는 순간에, 그분을 느꼈습죠.
너무 느리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게, 느긋한 속도로 아지랑이 사이에서 걸어 나오는 남자.
-붉은 별.
그를 발견한 자칭 ‘붉은 별의 아이들’은 와칸만큼이나 크게 놀랐다.
황당하다는 듯 눈을 껌뻑이는 놈도 있었고, 총으로 붉은 별을 겨누는 놈도 있었지만, 중요한 건 기뻐하는 놈은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분이 도로 위에 나타난 순간부터, 모든 게 조용해졌습죠. 트럭 엔진소리는 고사하고, 그 흔한 날벌레 숨소리조차 안 들렸습니다요. 무슨 마법도 아니고, 모두가 그분에게 압도된 채, 그분이 걷는 걸 지켜만 봤습죠.
멀찍이서 황제 폐하를 직접 봤을 때도 느껴본 적 없는 경험이었다고, 와칸은 덧붙였다.
-그분은 바로 제 옆에 멈추셨습죠. 우연이었겠지만, 덕분에 저는 그분이 붉은 별의 아이들에게 하는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습죠.
감히 서기장의 이름을 파는 너희는 누구냐?
-그 말을 들은 순간, 제 귀를 의심했습죠. 하지만 강도 몇 놈이 무기를 버리고 도망가는 꼴을 보니… 전부 사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요.
하지만 대부분의 강도는 도망가지 않고 마이크를 든 두목 옆에 서서 전투를 준비했다. 강도보다는 군인이 떠오를 정도로 절도와 규율이 있는 모습이었다.
-녀석들도, 두목도 어딘가 이상했습죠. 누가 봐도 진짜인 그분을 향해 감히 서기장을 사칭하는 가짜를 죽이겠다고 소리치고, 총구를 겨눴습죠.
그러나 붉은 별은 당황은커녕,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와칸은 자칫하면 총을 맞을 수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붉은 별이 손을 드는 모습을 빤히 올려다봤다.
-정말이지, 평생을 가도 그 광경은 못 잊을 겁니다요. 그분이 활짝 편 손바닥으로 강도단을 겨누고….
죽여!! 강도단 두목의 거친 고함과 함께 총구가 불을 뿜는 순간.
붉은 별이 콱, 주먹을 쥐었다.
***
!!
여명의 손에서 시작된 염동력은 총알보다 빠르게 공기를 흔들었다.
“커헉!”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린 강도가 숨 막히는 비명을 내지르고, 붉은 별의 아이들을 자청하던 수십 명의 몸이 동시에 허공으로 떠올랐다.
녀석들은 보이지 않는 밧줄에 걸린 사람처럼 발버둥치며 목을 긁어댔지만, 여명의 염동력은 일반인의 힘으로 풀 수 있는 주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붉은 별의 아이들 중에는 일반인이 아닌 자들도 있었다.
마이크를 든 강도단의 두목과 로켓을 든 놈.
둘은 동시에 손에서 어딘가 익숙한 화염 주문을 뿜어냈다. 화르륵! 마나로 이루어진 강렬한 불길이 여명의 주문을 그대로 태워버렸다.
‘마법을 태우는 마법?’
역시 평범한 강도는 아니었다. 여명은 다른 강도들의 목을 조른 염동력을 유지한 채 한 번 더 염동력을 사용했다.
녀석들의 주문을 한 번 더 보기 위해서였는데… 정작 두 녀석은 대응하지 않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산개!”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도주. 강도나 용병보다는 군인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여명은 아지랑이 바깥으로 도망치는 두 녀석을 바라보다가, 인벤토리에서 기관단총을 꺼냈다.
오래전 KGB 망령에게서 빼앗은, 마나 메탈 코팅 기관단총.
느긋하게 약실을 확인한 여명은 기관단총을 머리 위로 겨눴다. 그리고 주가시빌리 아지랑이 속 공간 감지 능력으로 녀석들의 도주 경로를 읽어낸 뒤- 발사.
두두두두 – !!
발사된 총알은 마치 바닷속을 들락날락하는 날치처럼 아지랑이 사이로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며 두 강도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어억!”
총알은 도망가던 두 녀석의 종아리와 발목을 꿰뚫었다. 녀석들이 바닥을 구르며 쓰러지는 가운데, 여명은 휘릭- 성녀처럼 멋지게 총을 접었다.
샤프슈터의 이치와, 브라우닝의 진의 무술에서 배운 아공간 조준 능력을 응용한 사격.
아공간 점프와 필중 능력 모두 아지랑이 내부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소한(?) 단점을 제외한다면 꽤 쓸만했다.
성녀나 델타 포스와 비교하면 살짝 부족한 면이 있었지만, 앞으로 아지랑이가 깔린 범위 내 사격전에선 그 누구도 여명을 미필이라 부를 수 없으리라.
“썅, 이거나 처먹어!!!”
당장 바닥에 넘어진 녀석이 발작적으로 발사한 로켓만 봐도 그랬다. 여명은 로켓을 피하지 않았다.
뒤쪽 도로의 트럭들에 피해가 가기 전에, 단 세발의 사격으로 날아오른 로켓 탄두를 요격했다.
!!!
샤프슈터를 가르쳐 준 듀크 중령이 옆에 있었다면, 감탄의 박수를 쳤을 정도로 깔끔한 요격.
로켓을 쏜 당사자조차 놀라서 어버버 당황하는 가운데, 여명은 주먹을 꽉 쥐었다.
까득. 적당히 죽지 않을 정도로 목을 비틀자, 로켓을 든 녀석은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여명은 고개를 돌려 마지막 생존자, 그러니까 강도단의 두목을 바라봤다.
녀석은 더 이상의 도주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는지, 결연한 표정으로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7MZh3. 속칭 스탈린의 솔방울.
주변을 싹 날려버리고도 남을 마도구에 마나를 불어 넣은 녀석은 여명을 향해 말했다.
“진짜 붉은 별이냐?”
여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가짜인 너희와 다르게.”
“하, 불행은 언제나 형제를 데리고 온 다더니….”
프랑스 속담을 지껄인 녀석은 곧장 솔방울에 화염 마법을 불어 넣었다. 자폭.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자폭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솔방울은 폭발하지 못했다. 화염 마법이 임계점에 도달하기 직전,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그의 수류탄을 걷어찼으므로.
“투명 망토?!”
수류탄을 잃은 녀석은 곧장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했다. 투명 망토를 입은 채 녀석에게 접근한 네티는 상으로 녀석의 턱를 걷어찼다.
빠각! 완벽한 수준의 비각술이었고, 녀석은 그대로 땅에 머리를 박았다.
붉은 별의 아이들을 자처한 것치고는, 꽤 허망한 최후였다.
***
잠시 후, 강변도로에서 멀찍이 떨어진 숲.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이상해요.”
기절한 수십 명의 강도를 살피면서, 쇠미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엘프 숲 코앞에서 이만한 숫자의 강도라니….”
녀석들의 총을 인벤토리로 회수하던 여명이 되물었다.
“강도가 이상하다고? 의외로 엘프 숲 주변은 치안이 괜찮은가?”
“아뇨? 당연히 개판인데요.”
“….”
“하지만 그건 불법으로 영약을 노리는 용병단이나, 전문 엘프 사냥꾼들 때문이에요. 이렇게 아샤인들을 노리는 강도는… 전례가 없어요.”
“전례가 없다?”
“강도질도 결국은 돈을 벌려고 하는 짓이니까요. 강도질을 할 거면 영약을 노리지, 비료길 트럭을 노린다? 그것도 마법사가 둘이나 있는 강도단이?”
확실히, 조금 이상하긴 했다. 영약 사업과 비교하면 이런 트럭 털이는 수입도 적고, 붙잡힐 확률도 높은 범죄였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여명의 이름을 판 게 이상해요. 강도질이 무슨 조직 폭력 범죄도 아니고, 은밀할수록 이득이잖아요. 근데 하필 지금 가장 유명한 붉은 별의 이름을 팔다니….”
“…꼭 다른 목적이 있는 것처럼 들리네.”
“예, 제 말이 바로 그 말이에요.”
그렇게 여명과 미리가 쿵짝을 맞추는 사이, 딜라와 함께 두목의 몸을 뒤적거리던 페로루가 말했다.
“저, 서기장님? 여기, 이 물건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뭔가 찾았나?”
“예, 생전 처음 보는 휴대폰입니다.”
페로루가 찾은 건 보안성과 내구성을 높인 군용 스마트폰, 러기드 폰이었다.
‘강도 주제에 군용 스마트폰을 쓴다고??’
여명은 어이가 없다는 듯 다가가 러기드 폰을 확인했다. 보안 때문에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군용인 건 확실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거, 꼭 어디서 본 거 같지 않아요?”
같은 러기드 폰을 보던 네티의 한마디.
그녀의 말마따나, 여명은 이 폰을 본 적 있었다.
드레이테리얼을 벗어나 제미니 시티로 향하던 길에서 만났던 용병단… 정확히는 용병단으로 변장하고 있던 프랑스 외인부대가 이것과 똑같은 러기드 폰을 쓰고 있었으니까.
“프랑스….”
그러고 보면, 어색한 점이 몇 개 있었다. 특히 그의 염동력을 끊어낸 화염 마법. 그건 오귀스트의 프레시외즈와 유사했다.
하지만 프랑스가 왜 그의 이름을 팔아 강도질을 벌인단 말인가?
의문이 깊어진 여명은 강도들을 하나 하나 깨워 심문하기 시작했다.
-저, 전 그냥 돈을 준다고 해서 왔습니다! 정말입니다!
붉은 별을 보자마자 도망친 녀석들은 용병도 뭣도 아닌지, 울음을 터트리며 목숨을 구걸했다.
-진짜 붉은 별을 만나다니… 제기랄, 빨갱이식 고문이라도 할 셈이냐? 하지만 소용없다. 우리도 계약금 받고 하는 일이라 자세히는 모르니까.
그나마 도망치지 않았던 녀석들은 용병이었다. 그것도 엘프 숲에서 일하던 용병들.
-최근에는 숲에 들어가는 양반들이 거의 없어서…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한 거다. 혹시, 우리를 고용할 생각 없나?
여명은 역으로 거래를 걸어오는 용병들을 기절시킨 뒤, 그의 총에 맞았던 두 마법사를 깨웠다.
-할 말 없다. 죽여라.
-퉤.
예상했던 대로, 녀석들은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쇠미리는 고문과 라쉬크의 자백제로 입을 열자는 쪽이었지만, 작은 불길함을 느낀 여명은 그보다 훨씬 온건한 방법, 그러니까-
“오귀스트가 왜 프랑스 군을 싫어하는지, 이제 좀 알겠군.”
사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옳았다. 여명의 발치에 침을 뱉은 마법사가 움찔, 몸을 떨었으니까.
강도단 두목이 녀석을 노려봤으나, 이미 늦었다. 여명은 그의 품속에서 찾아낸 러기드 폰을 휙, 바닥에 던지며 말했다.
“너희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 첫 번째는 이대로 아가리를 다무는 것. 두 번째는 내게 사실을 말하고 기회를 얻는 것.”
“…기회? 무슨 기회를 말하는 거냐.”
“내가 파리를 박살 내는 걸 막을 기회.”
“….”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 파리 코뮌은 파리를 불태웠지. 그 전통을 이어받는 의미에서, 빌어먹을 도시를 전부 불태워주마.”
단순한 협박이었으나, 말에 담긴 무게가 달랐다. 대외적으로, 붉은 별은 아폴로 시티를 파괴한 당사자였으니까.
“….”
그러나 프랑스군이 분명한 강도는 눈을 부라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명은 킴 필비에게서 빼앗은 컴비네이션 건을 꺼내 강도 두목의 이마를 눌렀다.
철컥. 차가운 총구 위로 장전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로켓을 발사했던 녀석이 입을 열었다.
“붉은 별, 잠깐! 협상에 응하겠다! 사격을 멈춰!”
“라헐!! 외인부대에 항복이란 있을 수 없다!!”
라헐이라 불린 마법사는 고개를 저었다.
“대장, 이건 항복이 아닙니다. 이 상황에서 붉은 별과 대립하면 자칫 제국에-”
“닥쳐! 우리 조국은 제국이 아닌 프랑스다!!!”
이건 또 뭐야? 여명이 총을 거두고 두 사람의 말싸움을 구경했다.
제국이 어쩌고, 프랑스가 어쩌고- 두 사람이 서로 언성을 높이길 잠시. 대장이란 녀석의 고함이 여명의 귀를 찔렀다.
“새 변경백? 그놈이 뭘 어쨌단 거냐!”
“….”
“세상을 바꾸는 건 그런 가짜가 아니라! 진정한 충성, 그리고 충성에 걸맞은 강대국이다! 그 가짜 변경백 놈은 충성도 뭣도 없는, 황제가 대중의 눈을 가리기 위해 만든 가짜에 불- 컥!”
그때, 뒤에 있던 미리가 대장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여명은 물론이고, 라헐이란 마법사, 그리고 미리 본인조차 놀란 듯 눈을 깜빡거렸다.
“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
“그래도 뭐, 뒤지는 것보단 낫잖아요? 그렇죠?”
이러다가 연인들이 모두 성녀가 되는 건 아닐까- 무시무시한 생각을 삼킨 여명은 라헐을 향해 말을 돌렸다.
“이제 말해라. 외인부대, 이곳에서 왜 이런 짓을 하고 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