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9)
을 위한 세계는 없다-9화(9/817)
〈 9화 〉 주인공을 위한 우연 (5)
* * *
***
암시장의 출구로 향하는 길.
이제는 돈 가방 대신 무기가 가득 담긴 캐리어를 끌고 있는 쇠똥구리를 향해, 장만이 입을 열었다.
“도심에서 무기를 쓸 생각이라면 퇴로부터 생각해 두어라, 싸움이 끝난 뒤에 경찰이 꼬리를 물면 귀찮아지는 법이니.”
그는 쇠똥구리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네크로맨서에 관한 이야기도, 복수에 대한 이야기도 묻지 않았다.
“네가 산 무기는 전부 사거리가 길지 않구나. 가능하다면, 근접에서 빠르게 끝내는 싸움을 하는 게 좋을 게다”
그저 흘러가는 바람처럼, 늙은이의 조언을 입에 올렸다.
섬세하진 않지만, 나름의 걱정과 지혜가 담긴 말이었다.
아마, 이것이 장만 나름의 배려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쇠똥구리는 묵묵히 장만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장만이 말하고, 쇠똥구리가 들으며 왔던 길을 되돌아오길 한참.
이윽고 녹슨 계단을 타고 내려왔던 창고의 입구에 도착하자, 익숙한 가면이 그들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검은 개 가면을 쓴 여자.
그녀는 창고 입구를 지키던 문지기 셋을 아래에 깔아뭉갠 채, 여유로운 자세로 앉아 있었다.
“쯧, 젊은 처자가 끈질기구먼.”
장만이 혀를 차고, 쇠똥구리는 슬그머니 캐리어를 내려놨다.
“저기요. 어르신, 전 싸울 마음 없어요. 이분들은 작은 오해 때문에 이렇게 된 거고요.”
“그래? 그럼 우린 오해할 것도 없으니, 그만 가도 되겠는가?”
“에이, 그건 안 되죠. 제가 여기서 기다린 이유가 어르신 때문인데.”
개 가면의 여자는 사뿐, 문지기들 위에서 뛰어내렸다.
“저랑 거래 하나 하시죠?”
“싫다면?”
“오해하실 상황인 건 알겠는데, 정말로, 진짜 진짜 나쁜 거래는 아니거든요? 오히려 하시는 일에 비해 주머니를 두둑이 채울 수 있는 긍정적인 거래랍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쇠똥구리는 개 가면 여자의 몸을 타고 흐르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낯선 감각이었다. 내 몸도 아닌, 상대의 몸에 흐르는 무언가를 느끼다니.
하지만 쇠똥구리의 새로운 감각과 상관없이, 장만과 가면의 여자는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한 번 들어 보실래요?”
“미친 사람과 대화할 생각 없네.”
“음… 상식적인 대답이긴 한데, 어쩔 수 없네요. 저도 좀 급해서.”
그 말과 동시에, 여자가 발을 굴렀다.
짧은 점프. 그녀는 거의 날아오는 속도로 장만을 향해 달려들었다.
찰나의 순간, 쇠똥구리는 반사적으로 장만의 앞으로 몸을 던져 그녀의 공격을 막았다.
빠악!
첫 시작은 발차기였다. 쇠똥구리는 오른팔을 들어 그녀의 공격을 막았다. 다음 순간, 위력을 버티지 못한 몸이 붕 떠오르며 옆으로 날아갔다.
‘이런 미친.’
날아간 쇠똥구리는 바닥을 두 번 구르고, 골목 벽에 부딪히고 나서야 다시 땅에 발을 붙일 수 있었다.
삐이이
발차기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발차기를 맞은 오른쪽 귀에서 이명이 울렸다.
“하루에 초인을 둘이나 보다니… 재수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군.”
귓가로 장만의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개 가면의 여자는 다시 쇠똥구리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퍼억!
쇠똥구리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옆구리로 발차기가 박혔다. 하지만 첫 타와 달리 이번에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복부, 허벅지, 다시 옆구리, 어깨, 그리고… 턱.
빠악!
묵직한 타격음, 정확한 연속 공격. 그녀는 완벽한 마무리 발차기를 쇠똥구리에게 꽂아 넣었다.
“후.”
쇠똥구리가 바닥에 쓰러진 뒤.
검은 개 가면의 여자는 여유롭게 등을 돌려 장만을 바라봤다.
“이제 거래할 생각이 좀 드시나요?”
“아니, 아직은 아닐세.”
“아직?”
그 순간, 그녀의 감각이 무언가에 반응했다.
그녀는 바로 자리를 박차고 멀찍이 거리를 벌렸다. 그녀의 발목을 붙잡으려던 쇠똥구리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어떻게?”
쇠똥구리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개 가면의 여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초인이라도 이 정도 충격이면 기절하는 게 정상일 텐데?
“맷집이 말도 안 되게 좋으시네요? 뭐 좋은 거라도 드셨나?”
퉤, 쇠똥구리는 입에 고인 피를 뱉었다. 아직도 충격이 머리를 징징 울리고 있었지만, 양손을 들어 싸움 자세를 취했다.
“군말 말고 덤벼.”
“원하신다면야.”
가면의 여자가 한 번 더 발을 굴렀다. 그녀는 이번에도 쫓을 수 없는 속도로 움직였으나, 달라진 게 있었다.
쇠똥구리의 눈.
온 신경을 눈에 쏟은 쇠똥구리의 시야로, 날아오는 발차기의 궤적이 기다란 선처럼 떠올랐다.
‘보인다.’
쇠똥구리는 궤적의 범위 밖으로 허리를 꺾었다. 그녀의 발재간에 비하면 한없이 느린 속도였지만, 조그마한 균열을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사악! 턱을 노리고 날아들던 그녀의 발이, 아슬아슬하게 앞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반격.
쇠똥구리는 비틀었던 허리를 되돌리며 그녀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주먹이 닿으려는 순간, 그녀는 기묘한 발놀림으로 쇠똥구리의 공격 범위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났다.
“…꽤 하시네요?”
이번에는 쇠똥구리가 먼저 달려들었다. 그녀와 달리 그저 주먹을 휘두르는 조잡한 공격에 불과했지만, 쇠똥구리는 초인이었다.
물론, 상대 또한 초인이었고.
쇠똥구리의 주먹이 바람을 가르며 살벌한 소리를 남겼지만, 단 한 방도 가면의 여자에게 닿지 못했다.
그녀가 쓰는 기묘한 발놀림.
쇠똥구리가 어떻게 공격하건, 그녀는 단 한 번의 발놀림으로 그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오히려 그때마다 빈틈을 노려 짧은 발차기를 내질러 쇠똥구리의 몸에 타격을 쌓았다.
그것이 땅을 튕기듯 날아다니는 사람과 꾸역꾸역 걷는 사람의 차이였다.
‘뭐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개 가면의 여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상대하는 적의 수준이 너무 빠르게 변하는 탓이었다.
첫 공격을 먹일 때 만해도 상대는 초짜에 불과했다. 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낙법조차 치지 못했다.
하지만 쓰러진 직후부터, 뭔가가 달라졌다.
그녀의 발차기를 막아내는 반응은 점점 더 빨라지고, 주먹과 발을 뻗는 방법은 계속 정교해졌다.
발을 뻗는 자리에 먼저 손이 날아오고, 땅을 튕기면 착지할 위치로 달리기 시작한다.
마치, 그녀가 어떻게 움직일지 아는 것처럼.
‘실시간으로 파훼하고 있는 건가?’
그녀는 흥미와 짜증을 동시에 느꼈다.
그녀가 고생해가며 배운 기술을 실시간으로 따라오는 상대에 대한 흥미, 그리고 몇 번이고 발차기를 얻어맞고도 버티는 상대의 맷집에 대한 짜증.
다른 기술을 꺼낸다면, 이 싸움에서 승기를 잡을 수도 있겠지만…
‘자존심이 문제지, 이건.’
이후 벌어진 공방은 평행선을 그렸다.
쇠똥구리는 발차기에 얻어맞으면서도 달려들고, 개 가면의 여자는 거리를 벌리며 연신 발차기를 날려댔다.
그 균형이 깨진 건, 쇠똥구리가 그녀와 비슷한 발놀림을 따라 하기 시작한 뒤였다.
“…!”
땅을 튕기는 게 아니라 밀어내는 발놀림에 가까웠지만, 그것만으로도 속도의 차이가 줄어들었다.
가면의 여자는 이를 악물고 더욱더 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 순간까지, 그녀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쇠똥구리에게 먹인 발차기와 타격이 족히 수십 대였고, 아직 체력도 많이 남아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용사 후보도 아닌 초짜 초인에게 자신이 질 일은 없다. 그녀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리고 그녀의 생각은 틀렸다.
지루한 공방이 이어지던 순간, 쇠똥구리가 갑자기 그녀의 발걸음을 사이를 파고든 것이다.
“어?”
피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타이밍.
“이런 씨…!”
깨달았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쇠똥구리는 그녀의 발차기를 붙잡고, 그대로 그녀를 집어 던졌다.
쿵! 가면의 여자는 조금 전 쇠똥구리가 날아갔던 바로 그 골목 벽에 처박혔다.
흙먼지가 튀어 오르고, 그녀가 쓰고 있던 가면이 벗겨지며 저 멀리 날아갔다.
“끄응….”
두어 번 바닥을 구른 그녀는 짧은 신음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존나 아프네….”
그녀가 힘겹게 고개를 들자, 가면 아래 숨겨져 있던 얼굴이 드러났다.
미인.
적어도 쇠똥구리가 생전 처음 보는 수준의 미인이었다.
신이 특별히 제작한 것처럼 선명한 이목구비 위, 흑단 같은 머리카락이 이마를 따라 길게 늘어졌다. 비단처럼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차가운 푸른색 눈이 쇠똥구리를 마주했다.
“꽤, 하네?”
호흡 두 번, 그리고 땅을 튕기는 발바닥.
그녀는 쇠똥구리를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이번에도 그 기묘한 발놀림이 뒤섞인 발차기가 쇠똥구리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왔지만, 그의 눈은 이미 그녀의 공격에 완벽하게 익숙해진 뒤였다.
쇠똥구리는 길게 이어지는 발차기의 궤적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그 짧은 간격 속에서, 그녀가 보여 준 발차기를 그대로 따라 했다.
몸통을 노리는 후려차기.
퍽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에 발차기가 박혔다. 그녀는 쇠똥구리가 처음 발차기를 얻어맞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몸의 균형을 잃고 날아갔다.
하지만 낙법조차 모르던 쇠똥구리와 달리, 그녀는 빠르게 자세를 잡았다. 그녀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쇠똥구리를 노려봤다.
“내 비각술! 어떻게 그 짧은 사이에?”
“비각술?”
“…촌스러운 이름이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머리를 쓸어 뒤로 넘겼다. 주륵, 미세혈관이 터진 것인지, 그녀의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아, 얼마 만에 코피야.”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손등으로 코를 슥슥 문질렀다. 피를 본 게 꽤 화가 난 것인지, 고운 아미를 가득 찌푸렸다.
“아무튼, 비각술은 이름이 촌스러운 거지, 난이도가 낮은 건 아니거든요. 그런 기술을 실시간으로 훔치다니… 아, 이거 참… 뭐라고 표현을 못 하겠네.”
그녀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씨… 로 시작하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좋아, 맨손으론 싸우는 건 내가 좀 밀려요. 인정! 그렇다고 무기를 꺼내면…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할 거 같고. 이쯤에서 대화로 풀래요?”
그녀의 질문은 쇠똥구리를 향했으나, 대답은 엉뚱한 곳에서 돌아왔다.
“대화라, 나쁘지 않지. 단, 입 말고 다른 부분은 움직이지 마시게나.”
철컥.
쓰러진 문지기들이 놓친 기관단총을 든 장만이 그녀에게 총구를 겨눴다.
그녀는 총을 보고도 살짝 눈을 흘길 뿐, 당당한 태도로 대답했다.
“뭐, 그러죠. 제 요구는 그쪽도 손해는 아닐 테니.”
“말해 보게.”
“요제프에게 어떤 물건을 좀 사고 싶은데, 저하곤 영 거래할 생각이 없나 봐요.”
“그 친구 정도 되면 초짜는 안 받는 게 당연하지.”
“예, 뭐, 듣는 초짜는 조금 억울하네요.”
하아, 그녀는 과장되게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어르신께서 요제프랑 친한 거 같던데, 저 대신 물건을 구해주시면 물건값은 물론이고 수수료도 두둑이 챙겨드릴게요.”
“수수료?”
“물건값 빼고, 수수료로 5억. 물건값이 제 예상보다 싸면 더 드릴 수도 있구요. 어떠세요?”
5억?
아직 청소부의 금전 감각이 남아 있던 쇠똥구리는 겨우 수수료로 그 돈을 내놓겠다는 그녀를 보며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좋은 제안일수록 리스크가 크지. 어떤 물건인지 알려주겠나?”
“무기답게 생기지 않은 물건이에요. 흐음,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그녀는 뭔가를 떠올리려는 듯 잠시 뜸을 들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유니콘의 뿔로 만든 막대기…?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네요. 원래 이름하곤 좀 매치가 안 되다 보니.”
그녀의 대답을 듣자마자, 장만과 쇠똥구리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뱀 가면과 태양 가면 너머로, 묘한 눈빛이 오고 갔다. 갑작스레 대화에서 소외된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예요 이 분위기? 설마 이상한 생각하는 거 아니죠?”
그녀의 예상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그 설마가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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